목사가 미워 절로 간 경우 - 인천교회를 중심으로
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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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7.01 00:00
1.아무리 철이 없어도
부모 잔소리 때문에 가출을 하는 학생들
그들대로 할 말은 많겠지만, 목회자로서 그리고 집안 어른으로서
가출하는 자기 자식을 향해서 잘했다 할 것인가?
아니면 이해는 하지만 그래서 안 된다 할 것인가?
남한의 군사독재가 심하다 해서
정권과 대치하던 평양 김일성 김정일을 두둔하다가
내침 김에 평양 정권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과거 재야 세력들을 두고
그럴 수 있다고 이해를 해야겠는가?
아니면 민족의 생사를 가지고 불장난을 한다고 가차없이 처단을 해야 하는가?
2.부산공회 내를 전제로 말한다면, 부공(1)과 부공(2)는 남북관계였는데
부공(1)의 이재순목사님 측 입장에서 부공(2)의 서영호목사님 측은
부산공회 내에서는 남북대결처럼
사상이 달랐고
노선이 달랐으며
서로가 생사를 걸고 싸워야 할 이권다툼이 있었으므로
10년을 엉켜붙어 해 보지 않은 싸움이 없었는데
그때마다 '하나님'과 '진리' 그리고 '총공회 교리 신조 행정'이 이유라고 했는데
부공(1)에 속한
인천교회 교인들과 주변 함께 하는 몇 교회들이
부공(2)로 소속했다는 소식이 있어
여러 가지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게 합니다.
3.제일 결정적 동기는 인산교회 목사님에 대한 반발이었는데
박정희가 미워서 월북을 한 사람들
부모가 보기 싫어서 가출한 아이들
교회 장로가 돈을 떼먹었다 해서 불교로 가버린 교인들
공회 내에 싸움이 보기 싫다고 고신이나 합동교단으로 소속을 옮긴 이들
인산교회 목사님이 너무 심하다 해서
소속을 부공(2)로 옮긴 사람들
모두들 회개하고 돌아서야 할 사람들인데
보통 이런 분들이 사람 좋고 깨끗하고 충성스러워 재목으로는 큰 인재지만
순간의 감정에 쏠려
세상 사람들의 경우는 평생과 자손을 망쳐먹고
믿는 사람들의 경우는 영생을 간단하게 불질러버리고 잿더미 위에 올라 앉습니다.
4.인산교회에서 분리하던 인천교인들에게
2004년 11월 시무투표 당시의 상황이 이 홈에 올려지면서
바로 오늘의 이 재앙적 사태가 염려 되어 몇 말씀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불과 8개월 전의 일입니다.
이왕 일이 벌어진 바에야
이 노선의 최선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기 때문에 지켜보고 있었으나
이 노선에서 걸을 수 있는 최악의 선택을 해버렸습니다.
당시 오늘의 이런 상황에 이르지 않도록 간곡하게 소개하였으나
자신들은 그렇지 않고 그럴 리가 없다고 펄쩍 뛰며 부인했습니다.
다 순수하고 좋은 분들이어서 호랑이 입속으로 들어가면서도 그 호랑이를 믿고
여우의 간교에 자신의 고기를 다 뺏겨놓고도 그의 일말의 양심을 끝까지 믿고
태평양만큼 넓은 그물로 조여들어오는데도 그 속의 물고기는 자기들의 자유로
모든 것을 결정한다며 자신하는 모습에서 과연 그분들은 사람 좋기는 최고지만 자신들을 둘러싸고 있는 이리떼 속에서 '뱀같이 지혜롭고' 하신 말씀은 분실하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는 말씀만 꼭 쥐고 있는 듯 합니다.
5.인산교회에서 나오던 순간이 자기들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인 줄 알았을까!
천번만번을 양보하고 이해를 해 준다 해도
이재순목사님이 인산교회를 근거지로 삼아
총공회 공식 명의로 소송을 했고 그런 결과를 계속 공개 광고를 했으며
5월 8월 대집회에서조차 그리 했고
기타 수많은 공회 관련 사안에서 인산교회와 담임목회자의 입장과 행동은 공개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교회의 모든 교인들은
인산교회와 목회자가 그동안 잘한 행동에 대하여서는 함께 상급을 받아야 하고
인산교회와 목회자가 몹쓸 짓을 한 것이 있다면 공범이며 배후 지원범의 책임을 져야 합니다. 만일 이것을 부인한다면 이는 세상 양심도 없는 이들입니다.
그런 상황이 10년 이상 지속이 된 끝에
2004년 시무투표를 통해 교회와 담임목회자를 공식 반대했으므로
사실 인산교회의 시무투표 사건은 노선 문제라기 보다는 교인과 목회자의 단순한 감정 문제나 이해 문제로 접근할 사안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인산교회와 목사님 그리고 그 교인들의 상황이 일반 교회와 다른 점이 아주 많기 때문에 최대한 이해를 하는 심정으로 그간의 잘못을 지적하기 보다는 앞으로의 걸어갈 걸음이 원래 그들이 원했던 이 노선의 옳은 방향으로 가기를 기대하고 몇 마디 말을 통해서라도 지원했습니다.
그런데도
이재순목사님과 인산교회로부터 새롭게 출발한다는 분들과 교회들의 결정은
박정권을 반대하여 월북을 한 꼴이 되어버렸습니다.
부모 잔소리와 행동에 반발하여 술집에 간 딸들이 되었습니다.
6.세월은 또다시 오늘을 열매로 보일 것입니다.
송종섭 송종관 김응도 이진헌 이만기목사님 등 부공(1)의 주도 목회자 거의 전부가 그런 길을 앞서 걸었습니다.
그분들이 그렇게 되기 직전에 소장파 목회자 20여명이 앞서 그런 길을 걸었습니다. 당시 이유는 목사 안수를 지연한다는 밥그릇 문제 때문에 소속을 옮겨버렸던 것입니다. 목사 안수를 지연하기 때문에 그동안 목회자로서 생명을 걸고 투쟁했던 적진으로 항복을 하고 전향을 해버렸습니다.
수족들이 전부 전향을 하자 그들을 지도했던 분들이 그들의 뒤를 따른 꼴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5년이나 더 버티며 소속과 노선만은 별개라고 하던 이들이
이번 2004년 11월의 인산교회 시무투표 건을 두고
앞서 많은 분들이 걸어갔으므로 이제 고속도로처럼 잘 닦여 있는 대로를 통해
월북을 해버렸습니다.
세상은 소수의 월남 사건을 거쳐 이제 대규모 월남 사건이 정례화되었는데
공회는 대규모 월북 사건이 탄탄 대로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7.인산교회에서 개척 나오던 많은 목회자들에게
인산교회 교인들을 목회자로 계속 내보내는 일들이 있을 때
이 홈은 평생을 바쳐 목회자로 나선다는 엄숙한 순간의 그들을 향해
담임목회자가 공회의 표대결과 거점을 확보하는 그대들을 이용한다고 혹평을 서슴치 않았습니다. 인산교회 출신 목회자 전체를 면전에 놓고 7년 전에 직접 한 말입니다. 그 이전에도 늘 그렇게 반복해서 그들 귀에 들리게 했습니다.
거의가 다 그런 경우였기 때문입니다.
그 본인들은 공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그저 순수했습니다.
위에서 적을 사살하라 해서 생명을 걸고 싸웠는데
그런 자신들의 숭고한 충성을 이용하여 지도부는 역적 반란과 사리사욕을
취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데에는 약간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제는 속았다는 것을 알았으면 원래 정상으로 돌아와야 하는데
아예 반대편으로 지나치게 넘어가버렸습니다.
좌로 치우쳐도 우로 치우쳐도 기다리고 있는 것은 귀신입니다.
주변에서 이런 문제를 두고 어떻게 그분들이 그렇게 되었느냐고 묻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때마다 말씀드립니다.
세상에서는 그렇게 귀신같고 민첩하고 지혜롭고 날고 기는 분들인데
어쩐 일인지 교회 문제만 생기면 갑자기 3-4살 먹은 아이들처럼 된다고.
세상 일이면
이 좋은 노선에서 떠나는 이들이 많아지면 희소성의 원리에 의하여
남아 있는 이들에게 복이 쏟아진다고 좋아할 일이나 신앙 세계는 그 반대이므로 탄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