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가 부동산을 매매할 때 '명의' 표시
공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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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20 12:26
1970년경 공회는 대구에 기도원을 매입하려 대구 지방 목회자에게 매매 계약서를 진행시켰다.
논이나 밭은 농지법 때문에 교회가 등기 소유주로 표시를 하지 못한다. 이런 경우 공회는 목회자에게 이름을 맡긴다.
계약서에도 또 부동산 등기를 할 때도 공회 이름은 빠지고 목회자 이름이 올라 간다. 전국의 교인들은 공회 재산인 줄 알고 연보를 했다. 기도원이 발전을 하다 보니 주변의 크고 작은 필지를 계속 사들이고 훗날 큰 필지는 해결을 했으나 누락 된 필지는 원래 계약자 등기자 이름을 바로 잡지 못했다. 목회자가 죽자 자녀들은 부동산 명의 표시가 실제 소유자라고 유산 상속으로 처리해 버렸다. 공회는 소송금지원칙 때문에 소송에 항상 서툴다. 한다 해도 소송금지원칙을 어기고 하거나 소송금지원칙에 따라 대처를 할 수 있는데도 소송 말만 나오면 신사참배를 한 것처럼 오해를 해서 넘겨 줘 버린다. 이럴 때 교회가 하지 못하면 교인이 하면 되도록 공회는 1988년 사직동교회 사건 때 길을 열어 뒀다. 없던 길을 열어 준 것이 아니라 공회의 소송금지원칙을 바르게 알려 줬었다.
2002년경 공회는 거창에 대규모 토지를 매입했다. 농지가 절반이나 포함이 되었고 농지의 필지가 너무 많았다.
공회가 등기를 할 때 문제가 되어 계약에 나선 목회자에게 입금을 시키고 계약서에 도장을 찍게 했다. 이 계약서를 법원에 제시하면서 그 땅은 계약서 이름에 적힌 사람의 개인 소유가 된다고 주장하며 법원에 '총공회' 명의를 목사 개인 이름으로 바꾸라고 소송을 하고 있다. 이 건은 소송금지원칙에 따라 대응이 가능했다. 몇몇 목사까지 가세하고 주변 친인척이 동원 되어 소송한 목사 편을 들고 있다. 하나는 이 사정 때문에, 하나는 저 사정 때문에, 하나는 덕유산이 미워서, 하나는 지리산이 좋아서... 이유가 각가지다. 그런데 그 이유끼리 한 곳에 모아 보니 원래 서로 원수였다. 이런 경우를 두고 성경은 빌라도와 헤롯이 원수였으나 예수 죽일 때는 당일 친구가 되었다.
개척 교회를 하는 목사가 세상에서 할 일이 없다 보니 목회를 나섰다. 원래는 세상에서 잘 나가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돈도 좀 벌었고 이제 나이나 여러 입장에서 더 이상 좋은 일이 없게 되자 노후까지 고려해서 목회를 나서면서 '영원 전 예정에 따라 이 곳에 교회를 개척하며 이 교회에 뼈를 묻겠다'고 선언을 했다. 다른 교파에서는 하도 많이 써먹어서 잘 먹히지 않지만 공회는 얼마 전까지도 이렇게 치고 나가면 호응이 있었다. 그렇게 해서 잘 되면 평범해 보이는 교회가 되고, 그렇게 시작을 했다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면 경력을 가지고 기존 교회로 이동을 한다. 그를 쳐다 보며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모인 교인들은? 낙동강 오리알이 되고 그들을 출세에 사닥다리로 삼고 밟고 올라 간 목회자는 원래 실력으로는 도전하지 못할 교회로 부임을 한다. 그리고 써먹고 버린 교회의 뒷모습을 보니 개척했다가 떠난 사람이 재산 정리도 지혜롭게 알짜배기로 청산을 잘 해 갔다. 자본주의 세상에서는 교회도 자본주의에서 벗어 나기 어렵다.
곳곳에 개척 교회로 출발을 했다가 공회의 괜찮은 교회로 옮겨 간 교회에 흔하게 보이는 현상이다. 곳곳에 교회 재산을 구입하라고 대표로 도장을 맡겼다가 개인 것으로 바뀐 경우가 흔하다. 다행스러운 것은 공회의 이런 분쟁은 아직도 타 교단에 비하여 초기 행태이다. 아직은 공회 교회가 건전하다는 뜻이다. 이런 문제가 없는 공회들이 없고, 이런 문제가 잠재 되어 있는 않은 교회는 공회 안에 실은 없다. 어느 한 교회만 그런 줄 아는 것도 문제다. 모두가 다 그러한 줄 알고, 그리고 이 교회의 문제는 이 교회의 문제로 또 저 교회의 사정은 그 교회의 사정을 감안해야 한다. 공회는 시무투표 제도까지 끼어 들어 있다. 공회는 어떤 법도 없다. 그런데 성경의 모든 법이 다 실정법으로 적용이 된다.
백 목사님부터 자신의 가장 큰 재산인 설교를 7남매에게 우리 몰래 상속한 셈이 되어 버렸다. 그 여파로 대구의 노곡동 집회 장소는 하루 밤 사이에 폐허가 되었다. 뒤로 누가 꽝! 소리를 내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모두가 혼비백산 튀어 버렸다. 간이 좀 큰 이 곳만 아직도 철거하지 않고 노곡동 높은 곳에 깃대를 세워 놓고 모두에게 알리고 있다. 평화시에 고발 소리 하나에 예배당을 자진해서 모두 뜯고 도망 가는 인간들이, 환난 시에 목숨을 걸고 예배당을 지키겠다... 귀신이 배를 잡고 웃을 일이다. 평화시에 잘 감당을 해도 환난 때는 은혜로 넘어 가면 넘어 가지 인간의 의지로 넘어 가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그렇게 배웠고 그렇게 알고 있다.
공회와 연구소와 공회 교회의 모든 재산은 주교생 하나부터 어느 교인 어느 목회자 어느 목회자 가정의 자녀라도 개인 것이라고 주장하고 나서면 일리가 있게 형성 되어 있다. 가져 가는 것은 각자 실력이다. 모두가 자기 것이니 떳떳하게 가져 가면 된다. 그런데 괜히 남의 눈치를 보면서 가져 가는 사람도 있다. 그 사람의 양심이 그 사람에게 너는 도적이라고 지금 찔러 대고 있는 것이다. 누구든 적을 수 있는 이 곳은 모든 공회들이 함께 사용하고 오는 곳이다. 이 곳에 어느 예배당은 내 것이라고 떳떳하게 밝히면 된다. 그런데 자기 것이라고 고소를 해 놓고 만일 내가 고소한 사실을 알리면 처벌을 하겠다는 사람도 있다. 그의 양심이 그에게 너는 도적이라고 외쳤기 때문에 괜히 혼자 놀라서 야단이다.
공회의 주교가 1970년대부터 공회적 주교라는 이름으로 완전히 자리를 잡는 순간, 중간반도 장년반도 또 예배당의 재산도 공회의 재산도 어느 누구라도 자기 혼자의 것이라고 떳떳하게 주장하고 펴놓고 가져 갈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래서 공회 안에서는 타 교단처럼 교회 재산을 두고 개인 것으로 돌릴 때 사실 비판할 일은 아니다. 공회가 원래 그런 곳이다. 그런데 가끔 백 목사님의 설교를 정말 그대로 실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100명 목회자 중에 한둘은 있어 보인다. 목사님은 1989년 8월 31일 김해 장유에 묻을 때 서부교회와 전체 가족과 총공회는 목사님의 육신만 묻지 않고 그 분의 부탁과 가르침도 함께 묻었다. 그래서 실제 현재 공회들과 교회들 안에는 백영희 노선이란 없다. 혹시 있는 곳도 있을까? 알려 주면 가서 공부도 배우고 실제 그런지 알아 보고 싶다.
논이나 밭은 농지법 때문에 교회가 등기 소유주로 표시를 하지 못한다. 이런 경우 공회는 목회자에게 이름을 맡긴다.
계약서에도 또 부동산 등기를 할 때도 공회 이름은 빠지고 목회자 이름이 올라 간다. 전국의 교인들은 공회 재산인 줄 알고 연보를 했다. 기도원이 발전을 하다 보니 주변의 크고 작은 필지를 계속 사들이고 훗날 큰 필지는 해결을 했으나 누락 된 필지는 원래 계약자 등기자 이름을 바로 잡지 못했다. 목회자가 죽자 자녀들은 부동산 명의 표시가 실제 소유자라고 유산 상속으로 처리해 버렸다. 공회는 소송금지원칙 때문에 소송에 항상 서툴다. 한다 해도 소송금지원칙을 어기고 하거나 소송금지원칙에 따라 대처를 할 수 있는데도 소송 말만 나오면 신사참배를 한 것처럼 오해를 해서 넘겨 줘 버린다. 이럴 때 교회가 하지 못하면 교인이 하면 되도록 공회는 1988년 사직동교회 사건 때 길을 열어 뒀다. 없던 길을 열어 준 것이 아니라 공회의 소송금지원칙을 바르게 알려 줬었다.
2002년경 공회는 거창에 대규모 토지를 매입했다. 농지가 절반이나 포함이 되었고 농지의 필지가 너무 많았다.
공회가 등기를 할 때 문제가 되어 계약에 나선 목회자에게 입금을 시키고 계약서에 도장을 찍게 했다. 이 계약서를 법원에 제시하면서 그 땅은 계약서 이름에 적힌 사람의 개인 소유가 된다고 주장하며 법원에 '총공회' 명의를 목사 개인 이름으로 바꾸라고 소송을 하고 있다. 이 건은 소송금지원칙에 따라 대응이 가능했다. 몇몇 목사까지 가세하고 주변 친인척이 동원 되어 소송한 목사 편을 들고 있다. 하나는 이 사정 때문에, 하나는 저 사정 때문에, 하나는 덕유산이 미워서, 하나는 지리산이 좋아서... 이유가 각가지다. 그런데 그 이유끼리 한 곳에 모아 보니 원래 서로 원수였다. 이런 경우를 두고 성경은 빌라도와 헤롯이 원수였으나 예수 죽일 때는 당일 친구가 되었다.
개척 교회를 하는 목사가 세상에서 할 일이 없다 보니 목회를 나섰다. 원래는 세상에서 잘 나가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돈도 좀 벌었고 이제 나이나 여러 입장에서 더 이상 좋은 일이 없게 되자 노후까지 고려해서 목회를 나서면서 '영원 전 예정에 따라 이 곳에 교회를 개척하며 이 교회에 뼈를 묻겠다'고 선언을 했다. 다른 교파에서는 하도 많이 써먹어서 잘 먹히지 않지만 공회는 얼마 전까지도 이렇게 치고 나가면 호응이 있었다. 그렇게 해서 잘 되면 평범해 보이는 교회가 되고, 그렇게 시작을 했다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면 경력을 가지고 기존 교회로 이동을 한다. 그를 쳐다 보며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모인 교인들은? 낙동강 오리알이 되고 그들을 출세에 사닥다리로 삼고 밟고 올라 간 목회자는 원래 실력으로는 도전하지 못할 교회로 부임을 한다. 그리고 써먹고 버린 교회의 뒷모습을 보니 개척했다가 떠난 사람이 재산 정리도 지혜롭게 알짜배기로 청산을 잘 해 갔다. 자본주의 세상에서는 교회도 자본주의에서 벗어 나기 어렵다.
곳곳에 개척 교회로 출발을 했다가 공회의 괜찮은 교회로 옮겨 간 교회에 흔하게 보이는 현상이다. 곳곳에 교회 재산을 구입하라고 대표로 도장을 맡겼다가 개인 것으로 바뀐 경우가 흔하다. 다행스러운 것은 공회의 이런 분쟁은 아직도 타 교단에 비하여 초기 행태이다. 아직은 공회 교회가 건전하다는 뜻이다. 이런 문제가 없는 공회들이 없고, 이런 문제가 잠재 되어 있는 않은 교회는 공회 안에 실은 없다. 어느 한 교회만 그런 줄 아는 것도 문제다. 모두가 다 그러한 줄 알고, 그리고 이 교회의 문제는 이 교회의 문제로 또 저 교회의 사정은 그 교회의 사정을 감안해야 한다. 공회는 시무투표 제도까지 끼어 들어 있다. 공회는 어떤 법도 없다. 그런데 성경의 모든 법이 다 실정법으로 적용이 된다.
백 목사님부터 자신의 가장 큰 재산인 설교를 7남매에게 우리 몰래 상속한 셈이 되어 버렸다. 그 여파로 대구의 노곡동 집회 장소는 하루 밤 사이에 폐허가 되었다. 뒤로 누가 꽝! 소리를 내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모두가 혼비백산 튀어 버렸다. 간이 좀 큰 이 곳만 아직도 철거하지 않고 노곡동 높은 곳에 깃대를 세워 놓고 모두에게 알리고 있다. 평화시에 고발 소리 하나에 예배당을 자진해서 모두 뜯고 도망 가는 인간들이, 환난 시에 목숨을 걸고 예배당을 지키겠다... 귀신이 배를 잡고 웃을 일이다. 평화시에 잘 감당을 해도 환난 때는 은혜로 넘어 가면 넘어 가지 인간의 의지로 넘어 가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그렇게 배웠고 그렇게 알고 있다.
공회와 연구소와 공회 교회의 모든 재산은 주교생 하나부터 어느 교인 어느 목회자 어느 목회자 가정의 자녀라도 개인 것이라고 주장하고 나서면 일리가 있게 형성 되어 있다. 가져 가는 것은 각자 실력이다. 모두가 자기 것이니 떳떳하게 가져 가면 된다. 그런데 괜히 남의 눈치를 보면서 가져 가는 사람도 있다. 그 사람의 양심이 그 사람에게 너는 도적이라고 지금 찔러 대고 있는 것이다. 누구든 적을 수 있는 이 곳은 모든 공회들이 함께 사용하고 오는 곳이다. 이 곳에 어느 예배당은 내 것이라고 떳떳하게 밝히면 된다. 그런데 자기 것이라고 고소를 해 놓고 만일 내가 고소한 사실을 알리면 처벌을 하겠다는 사람도 있다. 그의 양심이 그에게 너는 도적이라고 외쳤기 때문에 괜히 혼자 놀라서 야단이다.
공회의 주교가 1970년대부터 공회적 주교라는 이름으로 완전히 자리를 잡는 순간, 중간반도 장년반도 또 예배당의 재산도 공회의 재산도 어느 누구라도 자기 혼자의 것이라고 떳떳하게 주장하고 펴놓고 가져 갈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래서 공회 안에서는 타 교단처럼 교회 재산을 두고 개인 것으로 돌릴 때 사실 비판할 일은 아니다. 공회가 원래 그런 곳이다. 그런데 가끔 백 목사님의 설교를 정말 그대로 실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100명 목회자 중에 한둘은 있어 보인다. 목사님은 1989년 8월 31일 김해 장유에 묻을 때 서부교회와 전체 가족과 총공회는 목사님의 육신만 묻지 않고 그 분의 부탁과 가르침도 함께 묻었다. 그래서 실제 현재 공회들과 교회들 안에는 백영희 노선이란 없다. 혹시 있는 곳도 있을까? 알려 주면 가서 공부도 배우고 실제 그런지 알아 보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