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회병 - 공회의 빈틈을 파고 드는 여러 사례

남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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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판에는 이 홈에 올려진 글 중에 이곳에서 따로 소개하고 싶은 글도 포함됩니다. 

공회병 - 공회의 빈틈을 파고 드는 여러 사례

담당 0 12
사도 바울조차 주님을 기준으로 삼고 말씀을 그대로 적용해 버리면 죄인 중에 괴수가 된다. 사울 왕처럼 나쁜 인간도 다윗이 기준을 아래로 놓고 보면 아버지가 되고 귀한 종이 된다. 사도 바울을 천사라 해도 맞고 죄인 괴수라 해도 맞다. 사울 왕을 다윗의 신앙 스승으로 추앙해도 좋고 다윗을 사냥한 사단으로 봐도 된다. 베드로도 그렇다. 기준에 따라 달라 진다. 어느 기준을 언제 어떻게 사용했는지를 보면서 '표현'을 보면 우리는 복음으로 복된 길만 걷고 전할 수 있다.



공회를 두고 타 교단과 수평 비교를 하면 보석이며 진주처럼 빛이 난다. 그러나 문제 아동, 학교 이탈 청소년, 비행 전과범과 비교하지 말고 교회와 교단의 정상적인 기준으로 보면 참 못났고 문제도 많다. 그 내막을 잘 아는 나는 평생 공회가 교회와 교단으로 존재하는 것은 불가하다는 말을 많이 한다. 더하고 덜한 차이는 있어도 한심하다. 말하는 자기의 부족이야 자기가 더 잘 알고 있다. 내게 대한 남들의 비판은 보통 B급 범죄를 거론하는데 거의 전부 거짓말이다. 내게 있는 심각한 범죄는 A급인데 놀랍게 모두가 모르고 있다. 나는 자주 표시를 했음에도 공연히 포장한다고 생각한다. 그 것도 참 보이지 않는 고통이다.



어제, 공회의 역사에 빈 틈을 잘 활용한 분의 근황을 전해 들었다. 공회 내 이 분을 아는 분들은 거의 없다. 지금 80세 이하거나 70년대 이후 목회를 출발했거나 공회의 초기 상황을 잘 모르는 분들은 이름조차 생소할 듯하다. 타 교단 출신으로서 공회를 접한 분이다. 공회는 50년대와 60년대 초까지 목사님이 전국 최고의 부흥강사로 활동을 하면서 그 이름이 참 대단했다. 1960년대 중반쯤 목사님은 어느 순간 외부 활동을 일체 중단하고 1989년까지 공회 밖으로는 얼굴 한 번을 보여 준 적도 없다. 워낙 출중했으므로 가는 곳마다 은혜가 쏟아 지는데 그 은혜를 없애고 덮고 부정하려는 운동이 집회 이후에 더욱 강력해 졌고 결국은 받은 은혜들이 제대로 자라 가기 어려운 모습을 보면서 공개 활동을 접었다. 그 대신 자신을 따르는 공회 교회와 교인을 상대로 5월과 8월의 집회를 인도했고 이 두 집회 외에는 서부교회의 11번 강단만 평생을 지켰다.

외부 활동을 전부 멈추게 되자 교계도 목사님을 잊어 갔다. 은혜의 소식과 함께 비판도 동시에 없어 지고 마치 지난 역사처럼 흘러 갔다고 생각할 때 입에서 입으로 조용히 퍼져 나갔고 이 소식은 주로 목회자들 사이에 소문이 나면서 목회자가 작정하고 공회를 향하게 되면 그 목회자가 알아서 그 교회를 이끌며 공회의 성향이 전해 졌다. 그 과정에 목회자들은 매월의 교역자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공회는 원래 조직화나 체계화가 늦은 편이다. 복음 운동이 앞에 나가고 그 결과로 모여 진 전체에 분담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면 비로소 최소한의 연락 체계를 가진다. 다른 곳처럼 화려하고 정밀한 조직 체계와 법규정을 만들어 놓고 그 취지로 부흥이 되거나 활성화가 되게 하려고 경영을 하고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교단과 교회와는 시작부터 성격이 반대다.



혼자 걸어 가다 배우는 목회자들이 많아 지고 그들에게 따로 가르칠 필요가 있어 매월 교역자회를 시작했다. 목사님이 시작하는 것은 어떤 것이든 소리가 없고 적게 시작한다. 그런데 세월 속에 생명이 성장하듯 자라 간다. 교역자회의 은혜가 역대급이라는 말이 나가게 되자 타 교단에 속한 상태에서 출석하는 분들이 처음에는 방청이었고, 공회는 신앙의 뜻이 같거나 이해를 한다는 생각에 환영했다. 찾아 오는 손님을 나가라 하지는 않았다. 이들의 수가 많아 졌다. 그 중에 일부는 과거 소속을 정리하고 정식으로 공회 교역자가 되었다. 과거 소속에 있어도 잘 나갈 수 있는데도 공회로 들어 온 분은 이진헌 김석준 두 분 정도다. 나머지는 원래 계신 곳에서 딱히 있을 곳이 마땅치 않은 면이 있어 보인다. 애매한데 이 곳이 더 좋으니 들어 왔거나 목회자라는 이름을 가졌으나 갈 곳이 없다면 더욱 이 곳에 올 가치가 있었다. 이 분들의 특징은 신앙이 특별한데 그 특별한 신앙을 알아 주고 받아 주지 못하는 일반 교단과 맞지를 않아서 그런 듯했다. 공회로 들어 온 이후 이들은 중견 목회자로 대부분 잘 안착했다. 그리고 나서는... 어느 날 모두 탈퇴해서 돌아 갔다. 이진헌 한 분만 끝까지 남은 듯했다. 다른 분도 계시기는 하나 외부 교류의 끈을 보면 내부인지 잘 모르겠다. 이진헌 목사님조차 내가 왜 공회에 들어 왔던가 라는 낙망? 후회? 또는 자기 질문을 했다는 말을 들었다. 물론 직접 접했기 때문에 그런 표현이 나오게 된 배경은 잘 안다. 공회 안에서 뿌리를 내리게 될까 계속 교회를 옮기는 바람에 노년에 앉을 교회 하나가 제대로 없게 되었다.. 대충 이런 것이다.

공회 안에서만 자란 사람에게 이런 표현은 '공회에 들어 올 때부터 정치적으로 무슨 계산이나 목표가 있었다는 말인가?' 공회 안에서만 자란 사람에게는 이런 정치적 계산은 체질에 맞지도 않고 가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끝까지 가지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가둬 놓고 기르고 시골에서만 자라도 어느 날 알 것은 다 알게 되고 늦게 배운 도둑이 더 무섭다는 말이 나온다. 선도 없이 끝장을 본다. 그런 면에서 탈퇴한 이들은 교회 정치를 일찍 아는 분들이다. 공회 기준으로는 비겁하게 배신했다 하지만 역사를 돌아 보면 그 분들은 합리적이었다. 그들을 비판해 놓고 목사님 사후에 집단으로 간판까지 변경한 서울공회는 생전에 탈퇴한 분들보다 사실 더 나쁜데도 서울공회는 목사님 사후에 소리 높혀 그들이 정말 공회라고 했다. 그 선전으로 공회를 주도하려다 실패하니 본색을 드러 내고 집단 탈퇴를 했다. 대구공회는 그 서울공회와 동지로 함께 가다가 어느 순간 돌아 섰다. 중심이 대구공회와 같은 줄 알았으나 본색이 전혀 다른 줄 알고 자신들 발로 걸어 나왔는데 이렇게 걸어 나오는 것은 공회식은 아니다. 어쨌든 끝까지 가지 않고 중간에 서 버렸으니 좀 어색하기는 해도 그래도 낫다. 반면 부산공회들은 공회의 정체성 자랑과 유지에 경쟁적 언사를 뿜어 냈다. 북한의 충성 경쟁 보는 듯했다. 그런데 공회 정체성에 제일 반대가 되는 인물을 각 공회들이 그들의 지도자로 올려 놓는 순간, 이들에게는 정신이라는 것이 있는지도 모를 지경인데 하여튼 공회라는 기치를 치켜 드는 바람에 지금도 원래 공회의 모습을 많이 가지고 있는 듯하다.



어제 소식을 들은 분,
공회를 접했고 교역자회에 오랜 세월 출석을 했다. 여기서 공회의 대부분은 공회 목회자인 줄 알았다. 목사님은 공회에 함께 하는 듯해도 공회 안으로 들어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여러 사람이 있었다. 모두에게 이유는 같았다. 백 목사님께 교역자회까지 참석해서 직접 배운다는 것은 천하 어디에서도 생각할 수 없는 진리의 무한하며 옳고 바른 교회의 운영과 목회자 자신을 하나님 앞에 세우는 길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목회자에게는 '교회'라는 사업체가 현실 상황이다. 백 목사님께 배우고 공회의 일원이 되는 것이 아무리 좋아도 목회직을 전업으로 삼은 목회자에게 교회가 시원찮으면 먹고 사는 것도 또 자신의 훗날도 불안하게 된다. 이미 자기 교회를 따로 가진 상태에서 공회에 정식 가입을 하게 되면 시무투표를 받아야 한다. 그리고 교회 이동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실력과 신앙과 교회의 여러 형편을 봐서 이동을 하게 된다. 목회자가 정말 더 배울 수 있는 교회, 그 목회자가 가야 그 교회를 고칠 수 있는 교회, 또는 그 교역자가 가진 내면의 치명적 단점을 고치려면 고생을 해 보거나 자신과 맞지 않는 교회에 재임을 해야 되는 경우가 있다.

백 목사님의 지도는 성경으로 설교만 하고 교회 운영의 방법만 알려 주는 강사에 그치지 않았다. 실제 그렇게 하도록 이끌었다. 이런 목사님의 세계에서 배우는 것만 접하고 실제 자기를 던져 넣는 것은 자기와 가족이 고생을 해야 한다. 동물원에서 철장 속에 동물들을 구경하며 동물의 세계를 배우는 것과 철장 속에 들어 가서 뒹구는 것은 세계가 다르다. 동물원 밖에서 보면 동물원 안에 들어 가는 직원과 관람객이 같아 보이나 동물원 안에 들어 가 보면 사자 우리 속에 맨 손으로 들어 가는 사육사가 있다. 사단과 교회에서 직접 마주치는 상황을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가? 철장 밖에서 말만 해도 충분한데 철장 안에 들어 가는 위험을 감수해야 할까?





이 분은 공회를 알게 되었고, 교역자회까지 다 참석하게 되어 공회 교역자들은 동역자인 줄 알았다. 그리고 이 분은 교회 주변의 지방 공회 교회들과 평소 장례든 매일의 기도 생활까지 함께 하다 보니 지역의 일반 공회 교인들도 공회 목회자 중에 한 분인 줄 알았다. 그리고.. 이 분의 교회 교인들은 그들이 총공회 소속의 교회인 줄 알았다. 백 목사님이 돌아 가신 뒤에도 온 교인들이 그들은 모두가 공회 교인인 줄 알았다. 집회도 전 교인이 함께 참석했다. 그런데 공회는 교회들끼리 교류가 없고 늘 고요하다 보니 이런 상황이 수십 년 계속 될 수 있었다.


목사님 사후 그 교회에서 연구소로 전화가 몇 통 왔다. 몇몇 분들이 자기 교회가 공회 소속이 아닌 줄 이제야 알게 된 것이다. 이 교인들이 얼마나 착한가, 순진한가, 진실한가, 정말 순종적인가를 잘 알 수 있는 순간이다. 그런데 아무리 순수해도 지혜를 빼 버리면 속수무책으로 당한다. 박형룡 박윤선과 공회는 순수한 면에서는 같다. 그런데 공회는 지혜가 있어 당하지는 않았다. 두 분은? 평생 참으로 많은 고초를 겪었다. 학자로서 가장 치욕적인 비판을 들어야 했다. 누구를 탓하겠는가? 학자가 아니면 무식을 핑계 대면 된다. 신앙의 지조를 지켜 내지 못하고 이리저리 굴러 다녔다는 비판을 받으나 해명할 길이 없어 보인다. 공회는 가난하고 못나도 우리는 지조를 지켰다는 말은 할 수 있다. 목사님 사후 공회들 중에서는 연구소 공회만 그럴 듯하다. 연구소 공회 안에서조차 이제는 그런 곳과 아닌 곳으로 또 나뉘었다. 누구를 탓하기 전에 스스로 지조를 버렸다 더럽혔다는 이런 말은 사실 목숨보다 소중한데도 이런 말을 들으면서까지 행동에 나서는 것은 자존심 등의 자기 성향 때문이거나 아니면 먹고 사는 문제다.



수십 년을 교인들은 공회 정식 소속인 줄 알고 의심을 품어 본 적이 없고, 공회는 수십 년을 함께 해도 안으로 발을 들여 놓지 않는 분을 보며 신앙의 한 몸은 아니고 늘 이웃으로만 살았다. 아파트의 한 계단을 함께 사용하나 복도에서 좌우로 세대가 나뉘는 것과 같다. 남이 보면 이 남자와 저 여자가 같이 올라 갔으니 부부로 생각하나 복도에서는 이웃이지 부부가 아닌 것처럼. 교인들이 아는 것은 여기까지일 듯하다. 실은 교회를 매각하려 여러 이야기들이 있었다. 이 것은 공회 내 핵심만 아는 일이다. 타 교단에 넘기는 것보다 공회에 교회를 맡기겠다고 제안을 했다. 교인과 예배당 건물을 공회에 드리게 되면 공회는 감사하다며 그냥 받지 않는다. 그렇게 순수하게 표현하는 말 속에 들어 있는 제안을 읽는다. 그 제안이 순수하면 순수하게 받는다. 그 제안 속에 공회는 공짜로 가져 가는 수가 없으니 돈을 줄 것으로 생각했다면 굳이 입에 돈 이야기를 할 것이 없다. 그냥 드린다 하면 된다. 그러면 공회는 기어코 그 교회가 타 교단에 넘어 갈 때 오갈 돈을 계산하면서 합리적으로 잘 책정하고 정중하게 선교비로 드린다. 선교비를 어떻게 사용하느냐는 것은 본인이 결정할 일이다.

공회 안에 이렇게 오간 거래가 있는 줄 아는 분들조차 거의 없다. 이런 이야기는 이 건을 진행하는 한두 명과 목사님만 안다. 사안 별로 그렇다. 공회로서는 그 교회 교인이 공회 교인인 줄 알고 오랜 세월 집회까지 참석하고 찬송가조차 공회 찬송가만 사용하며 주변에 자기들은 공회 교인이라고 전도했고 자랑을 했던 그 교인들이 받은 공회적 은혜와 생활과 역사를 다른 곳에 입양 가도록 또는 팔려 가도록 둘 수가 없어 신앙의 부모 된 입장에서 책임을 지려는 것이다.




공회는 제도적으로 너무 이상적이다. 그런데 그 이상적인 제도의 곳곳을 뜯어 보면 굳이 험한 산 속으로 밀림으로 사냥을 갈 것도 없이 목장 안에서 챙겨도 된다. 위험한 바다로 가서 고기를 잡을 수도 있으나 수족관에서 고기를 잡으면 훨씬 낫다. 어느 교단, 어느 교회, 어느 단체가 공회처럼 한 노선이라고 생각하고 이렇게까지 지원하는 경우가 있을까? 공회의 제일 중심에 있다는 표현과 행동을 하면 공회는 본능적으로 최선을 다한다. 이 것이 공회 설교의 '구원의 사랑'이다. 이웃에게 먹을 양식을 나눠 주는 식의 사회 구제는 공회가 거의 죄처럼 생각하고 배제하나, 한 교회가 교회로 출발을 하고 제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하는데 필요한 더 중요한 것, 다른 곳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을 파격적인 것은 공회가 더 최선을 다한다. 꼭 경제가 필요하면 공회의 경제 지원은 다른 곳처럼 인사 치례로 표시하고 끝나지 않는다. 전력을 다한다. 교인들이 자기 평생을 고려하고 진학과 진로와 결혼과 사는 곳을 정할 때도 공회 교회를 출석하는 곳을 전제한다. 이럴 때 공회적 교회로 보여야 유리하다. 우리는 몇 명 정도가 아니라 몇십 명을 보낸 곳도 있고 백여 명 이상을 보낸 곳도 있다. 예배당을 마련해 드리기도 한다. 물론 우리의 원칙은 목회자 부부가 사는 방 한 칸에서 출발하고 나머지는 전도하고 또 주시는 대로 받는다. 그런데 이 것이 되는 목회자도 있고 그렇게 하라고 그냥 두면 굉장히 훌륭하게 될 수 있는 분이 초기 진입 과정에서 무너 질 수도 있다. 그래서 공회의 역사는 백영희 자신만 공회 원칙으로 끝까지 걸어 갔고 그 주변의 다른 분들에게는 파격에 파격의 대우와 혜택이 주어 졌다. 탈퇴한 분들 중에 훌륭한 분들일수록 파격적 대우를 많이 받았다. 김석준 이진헌 이런 분들은 원래 본인들의 신앙과 실력이 출중했으나 공회 틀 때문에 오히려 손해를 본 분들이다. 그래서 늘 이런 분들께는 공회를 대표하는 이 곳에서는 마치 우리가 직접 빚을 진 것처럼 죄송하다.

그러나 서울 한 복판에 한 블럭을 다 차지하고 서울의 강남에서도 잘 나간다는 곳, 중원의 어디에서 고신의 중심 교회가 되어 모범 사례로 이름을 날리는 곳.. 등등 곳곳에 우리는 공회의 빈틈을 참으로 잘 활용했다며 지켜 보고 있다. 그 끝이 좋을 수는 없다. 심은 대로 거두는 말씀이 뒤를 따라 가기 때문이다. 심은 것이 무엇일까? 그 기준은 참으로 많다. 알면 쉽게 보일 것이고 모르면 착시 때문에 죽을 때도 영광과 감사를 노래하며 갈 수 있다.


한 때 공회에 정식 소속을 둔 적도 있었다. 그러나 시무투표가 이동을 실제 반영하자 소속을 철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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