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직접 결정하면, 불행의 시작이 된다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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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1 09:12
지리산에 호랑이를 없애고 나니 신이 나는 것은 늑대 여우고, 죽어 나가는 것은 서민이다.
독재 중에는 아주 좋은 경우도 가끔 있다. 이 나라의 복 중에 하나는 그런 복을 누렸다. 그 과정에 괜찮은 독재를 없애고 나니 요즘 독재는 아주 끝장을 보는 늑대며 여우의 잔인함을 다 갖췄다. 과거 독재는 책임은 있었고 법은 지켰다. 지금은 뿌리를 뽑고 있다. 이런 글은 정치적이라고 한다. 공회는 정치를 피하고 목회를 하는 곳이다.
결혼이란 어느 교파 어느 교회라 해도 교회가 권면하고 교인이 순종하는 방향이 되면 좋다. 공회의 결혼이란 교회가 소개하면 대개 그대로 했다. 공회조차, 공회의 목회자 가정들조차 본인들이 알아서 찾고 그리고 결혼식장에는 목사를 하객으로 불러 댄다. 공회는 그렇지 않았다. 언제부터 결혼하는 사람이 상대를 골랐던가? 이 것이 요즘 결혼이 미뤄 지고 또 가정이 깨어 지는 원인이다. 알고나 있는가? 인간이 어떤지, 그 사람의 살아 온 내막과 집안이 어떤지, 또 이런 사람은 살아 갈 때 어떻게 될지를 겪어 보지 않고 어떻게 알까? 알 리가 없는 나이에 자기가 상대를 선택한다는 것은 지나 가는 사람 아무나 얼굴만 마음에 들면 붙드는 일이다. 위험하고 참으로 곤란한 일인데 어느 순간 세상이 그렇게 되었고 또 세상이 그렇게 되었다 쳐도 공회란 결혼할 사람이 자기 짝을 자기가 고른다는 그런 일이 없었는데 지금은 그냥 세상을 거의 다 따라 간 듯하다. 그래서 결과가 어떤가?
공회의 역사 중에 어느 날 교회의 결혼에 나선 이들이 파탄을 낸 경우가 있었다. 결혼의 추진은 교회가 했지만 이 사람은 내심으로 세상 조건을 봤다. 그리고 결혼 후 사고를 냈다. 교회의 결혼이란 추진과 함께 결혼 후에 발생하는 문제도 교회의 권면을 받는다. 그러면 모두 해결이 된다. 적어도 공회는 그러했다. 결혼 추진부터 제 마음대로 하는 경우, 결혼의 추진은 교회에 맡긴다 해놓고 속으로는 세상 면만 보고 했다가 결혼 후에는 제 마음대로 살려다가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면 파탄을 내는 것은 교회 결혼이 아니다. 공회는 교회 결혼을 가장 최근까지 지켜 왔다. 결혼으로 말하면 호랑이가 된 것이다. 호랑이를 싫어 하는 늑대 여우들이 세상에 떠도는 말을 교회 안에까지 가져 와서 민주화 데모를 했다. 연구소의 교회들도 최근 수년간 민주화 데모에 앞장 선 분을 모시고 실제 민주화를 데모를 위해 수백 건을 고소 고발을 하고 공회 재산을 개인 것으로 바꿔야 개인의 자유가 보장이 된다고 난리다. 요즘 경기도 쪽에 사건들이 함께 가져야 할 공공 토지를 개인 것으로 해먹었다가 발각 된 꼴과 같다.
결혼을, 가정을, 부부를, 결혼의 생활이라는 것을 해 본 적도 없는 20대가 덩치만 성인이지 속에 있는 결혼 지식과 경험은 유치원 수준인데 유치원 학생이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하겠다? 그렇다면 파탄이다. 그 파판이 기묘하게 잘못 되면 이제 결혼 자체를 미루고 피하고 출산이 없어 지는 참화로 간다. 20대의 덩치와 교재를 읽은 지식은 기형적으로 커졌다. 그들 속에 인간으로 살아 가는 운영법과 경험과 철학은 유아화가 극심하다. 이런 것들이 눈에 보이는 이성의 사랑을 위해 결혼하는 것이 진정한 결혼이라고 떠들고 있다. 세상은 끝장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이다. 이 것을 지적하고 되돌려 놓을 수 있어야 설교며 심방이며 교회다. 교회마저 포기하고 두고만 본다면 소돔의 불벼락이 따라 간다.
공회도 교회가 결혼을 주도하다 세상 풍파에 한동안 맡겨 놓고 지켜보다 다시 교회의 결혼들이 추진 되었고 공회가 형성이 되어 활발하게 잘 진행이 되고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세상처럼 상대를 선택하는 분위기가 보였다. 예나 지금이나 교회가 결혼을 추진할 때는 부모 대신에 의견을 물어 본다. 최종 결정은 본인이 하지만 기본적으로 자기는 자기를 잘 모르고 자기는 결혼의 훗날을 모르기 때문에 배우는 입장이다. 요즘은 아예 교회를 가르치려 든다. 교회가 철 없는 어린 사람들에게 배울 수는 없고, 그렇다고 아무리 철이 없고 망할 쪽으로 가려 한다 해도 교회가 결혼을 강제할 수는 없다. 결혼만 그런가? 진학도 진로도 생활도 예배 참석까지도 그냥 눈치를 보면서 권해 볼 뿐이다. 교회의 권면을 성실하게 따르면 당연히 신앙이 있는 사람이다. 어떤 것이든 제 주장이 있어서 교회 권면이 겉돌거나 거부 되면 신앙이 없는 사람이다. 신앙이란 주입을 시킨다고 들어 가는 것도 아니고, 또 신앙을 가진 사람이 신앙에 좋아서 순종을 한다면 이런 상황을 두고 신앙 없는 사람이 교회가 개인사를 간섭한다고 말하면 참 나쁜 표현이다.
신앙이 있어서 교회가 권하면 별 문제가 없이 진행이 되던 때가 있었다.
신앙이 없어서 교회가 눈치조차 보지 못하고 알아서 하는 때가 되었다.
어느 때가 더 낫고, 어느 결혼이 더 나은지 살펴 보면 좋겠다. 말로는 교회에 순종을 잘 했다는 사람이 결혼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 바로 그 상태가 제 멋대로라는 말이다. 살면서 문제가 생길 때 교회가 권면을 하면 바로 해결이 된다. 그런데 교회의 권면을 아예 차단해 버리는 사람이 있다. 그 행동이 바로 결혼 전부터 제 마음대로 하던 사람이다. 그런데 결혼은 어떻게 잘 순종했던가? 그 것은 속으로 그 사람의 딴 계산이 있었기 때문이다. 교회가 권면하면 결혼도 또 결혼 이후의 생활도 순종해 보면 모두가 잘 산다. 우리 교회 어느 한 가정 어느 한 사람을 딱 찍어서 이 곳에 공개하기는 곤란하겠지만 사무실로 와서 구체적으로 따져 봐 주면 좋겠다. 순종하면 다 잘 살게 되고, 제 생각으로 결정한 사람들은 보이게 후회하듯 혼자 속으로 후회하든 모두가 불행해 져 있다.
새해가 되고 몇 곳에 결혼이 추진 되고 있다. 겉으로 순종 같은나 속으로 자기 마음대로 결정하는 사람, 뒤에는 좋지 않게 되어 있다. 누구라도 다 자기 생각이 있지만 교회의 권면을 신중히 존중하고 마음 속으로 순종하면 결혼도 훗날도 좋다는 것은 우리 교회와 공회의 통계며 결과다. 어느 공회 어느 교회라도 교회다운 교회라면 모두가 같은 고민과 대처를 하고 있을 듯하다.
호랑이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포학한 호랑이가 아니라 괜찮은 호랑이라면 죄를 짓고 잔인하기 그지 없는 늑대나 간사한 여우가 고민할 일이지 토끼나 다람쥐 수준의 우리로서는 오히려 호랑이 때문에 지리산과 우리의 오늘 현실은 살 만하다. 살 만한 정도가 아니라 세계 최고의 나라에서 교계의 가장 좋은 환경으로 살 수 있다고 본다. 못된 늑대와 간사한 여우가 온 지리산의 토끼와 다람쥐를 꾀어 호랑이를 없애자는 운동, 데모, 그런 눈치에 미혹 되지 않았으면 한다.
공회 교회는 알고 보면 그냥 괜찮은 호랑이가 아니라 다윗과 솔로몬을 조금이라도 닮은 목자 쪽에 가까울 듯하다. 판단은 각자가 한다. 교회를 포학한 호랑이로 생각하고 교회를 와도 화가 난 사람, 교회를 괜찮게 보지만 그래도 호랑이라고 생각하여 한 발 떨어져 겉도는 분들, 남들은 그렇게 보든말든 교회를 다윗보다 솔로몬보다 낫다고 보는 교인도 혹시 계실까? 마태복음 23장에서 포학한 호랑이라도 교회의 권면은 모세라 생각하고 순종하라 했다. 누가복음 16장에서는 집에 찾아 온 거지가 귀찮다 해도 모세로 모시면 복이 된다고 했다. 우리 교회는 그렇게 위대하지도 않으나 그렇게 몹쓸 정도도 아니라 본다. 오늘까지 우리 교회는 교인의 공부, 진로, 결혼, 직장, 자녀 문제를 두고 주변에 비교할 교회가 없을 정도로 괜찮았다. 설교가 시원찮아서 그렇지 교회의 생활 권면은 순종하는 것이 거부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아 보인다.
결혼이란 자기가 추진하고 결정하면, 딱 그만큼 후회하고 땅을 치게 된다. '
결혼이란 괜찮은 교회의 권면을 따라 진행하면 좋은 결혼이 된다. 결혼 후 문제가 생기면 자기를 조금 고쳐 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 바로 그 단점까지 고쳐 주는 더 좋은 결혼이었음을. 공회가 정상적일 때 공회 통계만을 두고 보면 맞다고 생각한다. 이의가 있으면 개인 신상 문제는 연구소 연락처로 발언해 주면 좋겠다.
독재 중에는 아주 좋은 경우도 가끔 있다. 이 나라의 복 중에 하나는 그런 복을 누렸다. 그 과정에 괜찮은 독재를 없애고 나니 요즘 독재는 아주 끝장을 보는 늑대며 여우의 잔인함을 다 갖췄다. 과거 독재는 책임은 있었고 법은 지켰다. 지금은 뿌리를 뽑고 있다. 이런 글은 정치적이라고 한다. 공회는 정치를 피하고 목회를 하는 곳이다.
결혼이란 어느 교파 어느 교회라 해도 교회가 권면하고 교인이 순종하는 방향이 되면 좋다. 공회의 결혼이란 교회가 소개하면 대개 그대로 했다. 공회조차, 공회의 목회자 가정들조차 본인들이 알아서 찾고 그리고 결혼식장에는 목사를 하객으로 불러 댄다. 공회는 그렇지 않았다. 언제부터 결혼하는 사람이 상대를 골랐던가? 이 것이 요즘 결혼이 미뤄 지고 또 가정이 깨어 지는 원인이다. 알고나 있는가? 인간이 어떤지, 그 사람의 살아 온 내막과 집안이 어떤지, 또 이런 사람은 살아 갈 때 어떻게 될지를 겪어 보지 않고 어떻게 알까? 알 리가 없는 나이에 자기가 상대를 선택한다는 것은 지나 가는 사람 아무나 얼굴만 마음에 들면 붙드는 일이다. 위험하고 참으로 곤란한 일인데 어느 순간 세상이 그렇게 되었고 또 세상이 그렇게 되었다 쳐도 공회란 결혼할 사람이 자기 짝을 자기가 고른다는 그런 일이 없었는데 지금은 그냥 세상을 거의 다 따라 간 듯하다. 그래서 결과가 어떤가?
공회의 역사 중에 어느 날 교회의 결혼에 나선 이들이 파탄을 낸 경우가 있었다. 결혼의 추진은 교회가 했지만 이 사람은 내심으로 세상 조건을 봤다. 그리고 결혼 후 사고를 냈다. 교회의 결혼이란 추진과 함께 결혼 후에 발생하는 문제도 교회의 권면을 받는다. 그러면 모두 해결이 된다. 적어도 공회는 그러했다. 결혼 추진부터 제 마음대로 하는 경우, 결혼의 추진은 교회에 맡긴다 해놓고 속으로는 세상 면만 보고 했다가 결혼 후에는 제 마음대로 살려다가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면 파탄을 내는 것은 교회 결혼이 아니다. 공회는 교회 결혼을 가장 최근까지 지켜 왔다. 결혼으로 말하면 호랑이가 된 것이다. 호랑이를 싫어 하는 늑대 여우들이 세상에 떠도는 말을 교회 안에까지 가져 와서 민주화 데모를 했다. 연구소의 교회들도 최근 수년간 민주화 데모에 앞장 선 분을 모시고 실제 민주화를 데모를 위해 수백 건을 고소 고발을 하고 공회 재산을 개인 것으로 바꿔야 개인의 자유가 보장이 된다고 난리다. 요즘 경기도 쪽에 사건들이 함께 가져야 할 공공 토지를 개인 것으로 해먹었다가 발각 된 꼴과 같다.
결혼을, 가정을, 부부를, 결혼의 생활이라는 것을 해 본 적도 없는 20대가 덩치만 성인이지 속에 있는 결혼 지식과 경험은 유치원 수준인데 유치원 학생이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하겠다? 그렇다면 파탄이다. 그 파판이 기묘하게 잘못 되면 이제 결혼 자체를 미루고 피하고 출산이 없어 지는 참화로 간다. 20대의 덩치와 교재를 읽은 지식은 기형적으로 커졌다. 그들 속에 인간으로 살아 가는 운영법과 경험과 철학은 유아화가 극심하다. 이런 것들이 눈에 보이는 이성의 사랑을 위해 결혼하는 것이 진정한 결혼이라고 떠들고 있다. 세상은 끝장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이다. 이 것을 지적하고 되돌려 놓을 수 있어야 설교며 심방이며 교회다. 교회마저 포기하고 두고만 본다면 소돔의 불벼락이 따라 간다.
공회도 교회가 결혼을 주도하다 세상 풍파에 한동안 맡겨 놓고 지켜보다 다시 교회의 결혼들이 추진 되었고 공회가 형성이 되어 활발하게 잘 진행이 되고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세상처럼 상대를 선택하는 분위기가 보였다. 예나 지금이나 교회가 결혼을 추진할 때는 부모 대신에 의견을 물어 본다. 최종 결정은 본인이 하지만 기본적으로 자기는 자기를 잘 모르고 자기는 결혼의 훗날을 모르기 때문에 배우는 입장이다. 요즘은 아예 교회를 가르치려 든다. 교회가 철 없는 어린 사람들에게 배울 수는 없고, 그렇다고 아무리 철이 없고 망할 쪽으로 가려 한다 해도 교회가 결혼을 강제할 수는 없다. 결혼만 그런가? 진학도 진로도 생활도 예배 참석까지도 그냥 눈치를 보면서 권해 볼 뿐이다. 교회의 권면을 성실하게 따르면 당연히 신앙이 있는 사람이다. 어떤 것이든 제 주장이 있어서 교회 권면이 겉돌거나 거부 되면 신앙이 없는 사람이다. 신앙이란 주입을 시킨다고 들어 가는 것도 아니고, 또 신앙을 가진 사람이 신앙에 좋아서 순종을 한다면 이런 상황을 두고 신앙 없는 사람이 교회가 개인사를 간섭한다고 말하면 참 나쁜 표현이다.
신앙이 있어서 교회가 권하면 별 문제가 없이 진행이 되던 때가 있었다.
신앙이 없어서 교회가 눈치조차 보지 못하고 알아서 하는 때가 되었다.
어느 때가 더 낫고, 어느 결혼이 더 나은지 살펴 보면 좋겠다. 말로는 교회에 순종을 잘 했다는 사람이 결혼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 바로 그 상태가 제 멋대로라는 말이다. 살면서 문제가 생길 때 교회가 권면을 하면 바로 해결이 된다. 그런데 교회의 권면을 아예 차단해 버리는 사람이 있다. 그 행동이 바로 결혼 전부터 제 마음대로 하던 사람이다. 그런데 결혼은 어떻게 잘 순종했던가? 그 것은 속으로 그 사람의 딴 계산이 있었기 때문이다. 교회가 권면하면 결혼도 또 결혼 이후의 생활도 순종해 보면 모두가 잘 산다. 우리 교회 어느 한 가정 어느 한 사람을 딱 찍어서 이 곳에 공개하기는 곤란하겠지만 사무실로 와서 구체적으로 따져 봐 주면 좋겠다. 순종하면 다 잘 살게 되고, 제 생각으로 결정한 사람들은 보이게 후회하듯 혼자 속으로 후회하든 모두가 불행해 져 있다.
새해가 되고 몇 곳에 결혼이 추진 되고 있다. 겉으로 순종 같은나 속으로 자기 마음대로 결정하는 사람, 뒤에는 좋지 않게 되어 있다. 누구라도 다 자기 생각이 있지만 교회의 권면을 신중히 존중하고 마음 속으로 순종하면 결혼도 훗날도 좋다는 것은 우리 교회와 공회의 통계며 결과다. 어느 공회 어느 교회라도 교회다운 교회라면 모두가 같은 고민과 대처를 하고 있을 듯하다.
호랑이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포학한 호랑이가 아니라 괜찮은 호랑이라면 죄를 짓고 잔인하기 그지 없는 늑대나 간사한 여우가 고민할 일이지 토끼나 다람쥐 수준의 우리로서는 오히려 호랑이 때문에 지리산과 우리의 오늘 현실은 살 만하다. 살 만한 정도가 아니라 세계 최고의 나라에서 교계의 가장 좋은 환경으로 살 수 있다고 본다. 못된 늑대와 간사한 여우가 온 지리산의 토끼와 다람쥐를 꾀어 호랑이를 없애자는 운동, 데모, 그런 눈치에 미혹 되지 않았으면 한다.
공회 교회는 알고 보면 그냥 괜찮은 호랑이가 아니라 다윗과 솔로몬을 조금이라도 닮은 목자 쪽에 가까울 듯하다. 판단은 각자가 한다. 교회를 포학한 호랑이로 생각하고 교회를 와도 화가 난 사람, 교회를 괜찮게 보지만 그래도 호랑이라고 생각하여 한 발 떨어져 겉도는 분들, 남들은 그렇게 보든말든 교회를 다윗보다 솔로몬보다 낫다고 보는 교인도 혹시 계실까? 마태복음 23장에서 포학한 호랑이라도 교회의 권면은 모세라 생각하고 순종하라 했다. 누가복음 16장에서는 집에 찾아 온 거지가 귀찮다 해도 모세로 모시면 복이 된다고 했다. 우리 교회는 그렇게 위대하지도 않으나 그렇게 몹쓸 정도도 아니라 본다. 오늘까지 우리 교회는 교인의 공부, 진로, 결혼, 직장, 자녀 문제를 두고 주변에 비교할 교회가 없을 정도로 괜찮았다. 설교가 시원찮아서 그렇지 교회의 생활 권면은 순종하는 것이 거부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아 보인다.
결혼이란 자기가 추진하고 결정하면, 딱 그만큼 후회하고 땅을 치게 된다. '
결혼이란 괜찮은 교회의 권면을 따라 진행하면 좋은 결혼이 된다. 결혼 후 문제가 생기면 자기를 조금 고쳐 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 바로 그 단점까지 고쳐 주는 더 좋은 결혼이었음을. 공회가 정상적일 때 공회 통계만을 두고 보면 맞다고 생각한다. 이의가 있으면 개인 신상 문제는 연구소 연락처로 발언해 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