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무당, 目死.. 절반 아는 공회의 위험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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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27 09:04
1980년대 초반, 8월 집회의 참석자가 폭발적으로 늘어 나며 거창의 산 속에 대대적으로 공사를 해야 했다. 모두 불법이었다.
1960년대 초반에 고시를 합격한 공회 목사님이 의욕적으로 대규모 공사를 하다 군청의 고발로 체포 영장이 발부 되어 졌다.
수습차 군청에 들어 간 분의 눈에 군청 칠판에 '目死(목사)'라고 적혀 있었고 이를 보고 받은 목사님은 평생 이 말씀을 하셨다.
선무당이 사람을 잡는다? 실제 잡아 버린다.
돌팔이가 사람을 잡는다? 면허증 유무가 아니라 어설픈 의사는 많은 사람을 잡는다.
땡중? 그 쪽은 사람 잡을 일이 별로 없을 듯하다. 산속까지 찾아 간 절망의 사람에게 더 이상 무엇이 있겠는가.
목사가 성경을 읽는 눈에 문제가 생기면 소경이 되어 소경을 인도하여 둘이 구덩이에 함께 빠진다. 이 경우는 허다하다.
한 목사의 평생에 잘못 가르친 분량과 바르게 가르친 분량을 나란히 쌓아 둔다면 예외 없이 잘못 가르친 것이 많을 듯하다.
여기까지를 아시는 주님이 그래도 교회라는 제도를 세우고 인도자를 앞에 세운 것은 주님이 자라 간 길을 따르도록 했다.
눅2:40, 아이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족하며.. 주님은 죄가 없이 자라 갔다. 죄가 없을 뿐이지 약한 길을 걸어 갔다.
우리의 약한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자라 가면 된다. 문제는, 자라 가지 않으려 버티며 돌아 서서 유아가 되는 것이다.
세월 속에 나아 져야 하는데 세월을 통해 아이로 돌아 가는 것을 치매라 한다. 자연 현상이 아니라 작정하면 문제가 된다.
평생 성경을 읽으며 늘 다시 배우는 것이 있고 더 깨닫는 것이 있다면 부족한 줄 알게 된다. 그렇게 되면 자라 가게 된다.
다 안다고 생각하거나 더 알 것이 있는데도 이를 외면해 버리면 이 때부터는 고범죄다. 작정하고 죄를 짓는 사람이 된다.
지금은 백영희 설교를 2018 년 이전처럼 전면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권순일까지 동원해서 막았다면 하나님이 막으셨다.
그런데도 2018 년 이전처럼 지금도 원하면 원하는 대로 마음껏 볼 수 있다. 이미 모든 자료를 가진 분들은 더욱 그러하다.
잡음과 소음이 끊이지 않는 한국 교회, 세계 교회와 역사의 교회치고 조용한 교회는 없지만 유독 심한 것이 한국의 우리다.
침례교 쪽에서 예수님의 십자가에 더하여 부활까지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를 하자 이단 전문가?들이 벌떼처럼 정죄를 했다.
공회는 아예 사활의 대속이라고 못을 박고 왔다. 이런 공회의 교리에 선생이라는 분, 백 목사님의 틀린 것도 지적하신 분..
퍼뜩 떠오르면 영감이라는 분, 신발 주머니에 신발을 넣고 뒷꿈치를 들고 들어오는 것을 총공회 교리라고 출간하신 분..
이 분까지 부활 신앙에 대해 정죄를 하고 나섰다. 설교록의 앞은 읽고 뒤는 읽지 않아서 생기는 일이다. 공회를 모른 결과다.
공회 이름을 요즘은 떼고 고려파로 활동하니 다행이지만 여전히 공회 이름을 적당히 사용하기 때문에 미혹이 참으로 크다.
무지한 사람은 완전 거짓말로 몰아 가고, 망설이는 사람은 실제를 적당히 섞은 반 거짓말로 끌면 효력이 큰 법이다.
안수한 책임 때문에 이 곳은 표시판을 달아 놓는다. 이 점은 옳고 맞고 장점이고, 이 면은 오해며 문제며 고쳐야 할 점이다..
깊지 않은 세계는 더 파 봐야 나올 것이 없다. 설교록의 깊이는 측량하기 어렵다. 이럴 때 접근법은 전부를 살피는 것이다.
초기부터 중기와 마지막까지를 살펴 보고, 이 면과 저 면을 함께 살펴 볼 필요가 있다. 모서리 하나를 들고 가는 것이 문제다.
그래서 자료를 무조건 무제한 제공을 했다. 그리고 귀신은 이 것을 막기 위해 혈안을 했고, 부활에 오해한 이도 막아 섰었다.
자료가 모두 공개가 되면 그늘에 숨어 암살하기가 어려워 진다. CCTV로 다 깔아 버리면 도둑이 불편해 진다. 그렇게 되면 인권을 앞 세워 도적 떼가 CCTV를 없애자고 운동을 하게 된다. 그 운동하는 그들이 도적이다.
1960년대 초반에 고시를 합격한 공회 목사님이 의욕적으로 대규모 공사를 하다 군청의 고발로 체포 영장이 발부 되어 졌다.
수습차 군청에 들어 간 분의 눈에 군청 칠판에 '目死(목사)'라고 적혀 있었고 이를 보고 받은 목사님은 평생 이 말씀을 하셨다.
선무당이 사람을 잡는다? 실제 잡아 버린다.
돌팔이가 사람을 잡는다? 면허증 유무가 아니라 어설픈 의사는 많은 사람을 잡는다.
땡중? 그 쪽은 사람 잡을 일이 별로 없을 듯하다. 산속까지 찾아 간 절망의 사람에게 더 이상 무엇이 있겠는가.
목사가 성경을 읽는 눈에 문제가 생기면 소경이 되어 소경을 인도하여 둘이 구덩이에 함께 빠진다. 이 경우는 허다하다.
한 목사의 평생에 잘못 가르친 분량과 바르게 가르친 분량을 나란히 쌓아 둔다면 예외 없이 잘못 가르친 것이 많을 듯하다.
여기까지를 아시는 주님이 그래도 교회라는 제도를 세우고 인도자를 앞에 세운 것은 주님이 자라 간 길을 따르도록 했다.
눅2:40, 아이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족하며.. 주님은 죄가 없이 자라 갔다. 죄가 없을 뿐이지 약한 길을 걸어 갔다.
우리의 약한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자라 가면 된다. 문제는, 자라 가지 않으려 버티며 돌아 서서 유아가 되는 것이다.
세월 속에 나아 져야 하는데 세월을 통해 아이로 돌아 가는 것을 치매라 한다. 자연 현상이 아니라 작정하면 문제가 된다.
평생 성경을 읽으며 늘 다시 배우는 것이 있고 더 깨닫는 것이 있다면 부족한 줄 알게 된다. 그렇게 되면 자라 가게 된다.
다 안다고 생각하거나 더 알 것이 있는데도 이를 외면해 버리면 이 때부터는 고범죄다. 작정하고 죄를 짓는 사람이 된다.
지금은 백영희 설교를 2018 년 이전처럼 전면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권순일까지 동원해서 막았다면 하나님이 막으셨다.
그런데도 2018 년 이전처럼 지금도 원하면 원하는 대로 마음껏 볼 수 있다. 이미 모든 자료를 가진 분들은 더욱 그러하다.
잡음과 소음이 끊이지 않는 한국 교회, 세계 교회와 역사의 교회치고 조용한 교회는 없지만 유독 심한 것이 한국의 우리다.
침례교 쪽에서 예수님의 십자가에 더하여 부활까지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를 하자 이단 전문가?들이 벌떼처럼 정죄를 했다.
공회는 아예 사활의 대속이라고 못을 박고 왔다. 이런 공회의 교리에 선생이라는 분, 백 목사님의 틀린 것도 지적하신 분..
퍼뜩 떠오르면 영감이라는 분, 신발 주머니에 신발을 넣고 뒷꿈치를 들고 들어오는 것을 총공회 교리라고 출간하신 분..
이 분까지 부활 신앙에 대해 정죄를 하고 나섰다. 설교록의 앞은 읽고 뒤는 읽지 않아서 생기는 일이다. 공회를 모른 결과다.
공회 이름을 요즘은 떼고 고려파로 활동하니 다행이지만 여전히 공회 이름을 적당히 사용하기 때문에 미혹이 참으로 크다.
무지한 사람은 완전 거짓말로 몰아 가고, 망설이는 사람은 실제를 적당히 섞은 반 거짓말로 끌면 효력이 큰 법이다.
안수한 책임 때문에 이 곳은 표시판을 달아 놓는다. 이 점은 옳고 맞고 장점이고, 이 면은 오해며 문제며 고쳐야 할 점이다..
깊지 않은 세계는 더 파 봐야 나올 것이 없다. 설교록의 깊이는 측량하기 어렵다. 이럴 때 접근법은 전부를 살피는 것이다.
초기부터 중기와 마지막까지를 살펴 보고, 이 면과 저 면을 함께 살펴 볼 필요가 있다. 모서리 하나를 들고 가는 것이 문제다.
그래서 자료를 무조건 무제한 제공을 했다. 그리고 귀신은 이 것을 막기 위해 혈안을 했고, 부활에 오해한 이도 막아 섰었다.
자료가 모두 공개가 되면 그늘에 숨어 암살하기가 어려워 진다. CCTV로 다 깔아 버리면 도둑이 불편해 진다. 그렇게 되면 인권을 앞 세워 도적 떼가 CCTV를 없애자고 운동을 하게 된다. 그 운동하는 그들이 도적이다.

이런 이들을 이단 전문가라 하는데 이들의 공통점은 정상적인 목회를 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삼위일체 교리를 가지고 어떤 신학자라 해도 그 신학자가 가정에서 자기 아이들에게 삼위일체를 가르칠 때는 아이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별별 말을 합니다. 그 대화를 녹음해서 정죄를 한다면 피할 사람이 없습니다.
아이를 낳아 보지 않은 여자, 여자 되기 어렵고
처자식을 먹여 살려 보지 않은 경제학자, 경제를 입에 담기 어렵습니다.
불신자를 전도하고 어린 교인을 신앙으로 한 걸음씩 지도해 보지 않은 이들이 가장 쉽게 뉴스에 나오고 곳곳을 다니며 강의를 할 때 좋은 먹잇감이 '이단'입니다. 십자가는 너무 쉽게 느껴 지는 것이어서 역사 이후 교회들이 잘 가르쳤습니다. 심지어 지나 치게 반응을 해서 자기 손에 못을 박은 이들까지 나옵니다. 이런 과격한 행동 때문에 십자가의 강조가 잘못 된 것은 아닙니다. 십자가란 '사활의 대속'인데 죽음에 눈물만 흘리다가 부활의 소망을 주신 것은 잊어 버리고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으면 이 것도 참 문제입니다. 느낌에 김성로 목사님은 공회의 설교록을 직접이든 간접으로든 접한 듯합니다. 모두가 그렇듯이 출처는 표시하지 않은 듯합니다. 강원도 충청도 쪽에 침례교 교회들에게 본 연구소는 수도 없이 설교록 데이타를 보내 드렸습니다.
공회 출신을 써먹어 가며 부활을 정죄한 인물, 목사님 생전에 이 노선에 비수를 꽂고도 가만히 들어 왔다 다시 가만히 나간 자신을 두고 아직도 스스로 공개하고 회개한 모습을 보지 못했다. 지난 날은 대충 덮어 버리고 앞만 보고 나가고 있다. 옳은 것을 향해 타협하지 않고 막히지 말라고 할 때 앞만 보라고 한다. 그러나 지금 이전 정권의 좌파들처럼 어제까지 했던 자신들의 그 짓은 그렇게 잊어 버리고 오늘을 이렇게 언행하면 양심에 화인 문제가 거론된다. 이 곳을 이단으로 정죄한 행동, 이단에게 안수 받은 자기 안수는 어떻게 할까. 이 곳은 그 때나 지금이나 늘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