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의식 - 그 선용과 악용, 그 결과
담당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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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04 13:30
(피해 의식)
사람은 피해를 피할 수는 없다. 그런데 이 피해는 그 사람에게 기억과 경험을 남긴다. 피해의 크기에 따라 남는 것도 크다.
피해를 입었던 기억과 경험은 '피해 의식'이라는 이름으로 남게 된다. 그리고 이후 평생에 이 피해 의식은 영향을 끼친다.
사람이 특별한 것은 피해를 인식하지 못할 수 있고 또 피해가 없었으나 입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피해의 크기도 그렇다.
(주변 사례)
일제 때 부친이 신앙의 고난을 겪은 이들은 오늘 우리가 아무리 이해를 하려 해도 그 피해의 크기는 짐작할 수 없이 크다.
해방 후부터는 이야기가 좀 달라 진다. 고생한 목회자의 자녀의 고통은 크게 2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같은 고통이 아니다.
목회자가 무능해서 교인이 반발하고 교회가 침체 되어 사택 자녀가 고생을 한 것은 교회나 목회 탓이 아니다. 부모 탓이다.
부모가 세상적으로 실제 잘 살 수 있는데 목회를 했고 목회를 잘했지만 교회의 구조 때문에 피해를 입었다면 피해가 맞다.
1970년대부터는 목회자가 많아 지면서 세상으로 별 할 일도 없는 사람이 목회에 나선 경우가 많다. 이 때부터는 달랐다.
고생한 목회자 자녀는 거의 다 부모의 불충 무능 잘못 때문이었다. 정말 실력이 있는 목회자의 자녀는 고생하지 않았다.
백 목사님의 자녀들은 평생 목회자 자녀로서 당한 불행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전부 최고의 대학을 나왔고 잘 먹고 살았다.
굶을 기회도 없었고 굶지도 않았다. 그리고 백 목사님의 자녀라는 명성 때문에 혜택 본 것은 너무 많다. 고생하지 않았다.
문제는 피해 의식이다. 피해를 당했다고 생각을 하면 피해 의식이 되고 그 피해가 극심했다고 생각하면 피해 의식은 크다.
(피해 망상)
피해 의식은 누구나 가질 수 있다. 그런데 피해 의식을 가지는 순간 이미 이 사람은 신앙을 떠났다. 신앙이란 감사뿐이다.
부모가 없어 고생을 했다는 사람, 천하에 부모 없는 사람은 모두가 불행하고 고생을 했을까? 성공한 사람도 부지기수다.
심지어 부모가 부자여서 자기를 잘못 기르는 바람에 나쁜 사람이 됐다는 사람도 있다. 고아를 탓하는 사람과 사실 동류다.
피해 의식이란 잘 사용하면 예방 주사가 되어 큰 화를 피하고 복을 마련할 수 있다. 피해 의식을 잘못 사용하면 독약이다.
만사 남 탓에다 작은 것 하나에 피의 의식이 피해 망상이 되면서 반응을 하게 되면 이 때부터는 자기부터 크게 망치게 된다.
부모가 남 도와 주는 바람에 자기가 소외 되었다고 생각하고 평생에 절대로 남을 돕지 않겠다고 맹세를 하는 사람이 있다.
도와 줄 수 있는 부모를 가졌다는 것은 그 부모로부터 보이는 것보다 더 큰 다른 것을 자기도 모르게 혜택을 봤을 것이다.
주변의 아이 하나는 다른 아이를 괴롭히다 야단을 맞으면 갑자기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지금 하늘에 새가 날고 있다 한다.
하늘에 새 나는 것과 자기가 다른 아이를 괴롭힌 것과 무슨 상관이 있나? 그 어떤 이유로도 갖다 댄다. 끝없이 그렇게 산다.
지역적으로, 무슨 말만 나오면 부글부글 끓는 곳이 있다. 집안적으로, 무슨 일만 생기면 개떼처럼 모여 달라 드는 곳이 있다.
개떼처럼 똘똘 뭉쳐 죽기 살기로 대 드니 대개는 그냥 넘어 간다. 그들은 그들의 단결이 그들의 자랑으로 무기라고 생각한다.
그 것이 ㅂㅅ 꼴값인데.. 천하에 어려운 과거 없는 사람이 있을까? 세상에 문제 없고 피해 없는 사람이 있을까?
유독 자기 중심이 강한 악한 사람일수록 자기가 당한 것만 기억한다. 그 것도 여러 배 혹 백 배를 키워 말한다.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한다. 이 정도면 병원에 입원할 상황이다.
사람은 피해를 피할 수는 없다. 그런데 이 피해는 그 사람에게 기억과 경험을 남긴다. 피해의 크기에 따라 남는 것도 크다.
피해를 입었던 기억과 경험은 '피해 의식'이라는 이름으로 남게 된다. 그리고 이후 평생에 이 피해 의식은 영향을 끼친다.
사람이 특별한 것은 피해를 인식하지 못할 수 있고 또 피해가 없었으나 입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피해의 크기도 그렇다.
(주변 사례)
일제 때 부친이 신앙의 고난을 겪은 이들은 오늘 우리가 아무리 이해를 하려 해도 그 피해의 크기는 짐작할 수 없이 크다.
해방 후부터는 이야기가 좀 달라 진다. 고생한 목회자의 자녀의 고통은 크게 2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같은 고통이 아니다.
목회자가 무능해서 교인이 반발하고 교회가 침체 되어 사택 자녀가 고생을 한 것은 교회나 목회 탓이 아니다. 부모 탓이다.
부모가 세상적으로 실제 잘 살 수 있는데 목회를 했고 목회를 잘했지만 교회의 구조 때문에 피해를 입었다면 피해가 맞다.
1970년대부터는 목회자가 많아 지면서 세상으로 별 할 일도 없는 사람이 목회에 나선 경우가 많다. 이 때부터는 달랐다.
고생한 목회자 자녀는 거의 다 부모의 불충 무능 잘못 때문이었다. 정말 실력이 있는 목회자의 자녀는 고생하지 않았다.
백 목사님의 자녀들은 평생 목회자 자녀로서 당한 불행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전부 최고의 대학을 나왔고 잘 먹고 살았다.
굶을 기회도 없었고 굶지도 않았다. 그리고 백 목사님의 자녀라는 명성 때문에 혜택 본 것은 너무 많다. 고생하지 않았다.
문제는 피해 의식이다. 피해를 당했다고 생각을 하면 피해 의식이 되고 그 피해가 극심했다고 생각하면 피해 의식은 크다.
(피해 망상)
피해 의식은 누구나 가질 수 있다. 그런데 피해 의식을 가지는 순간 이미 이 사람은 신앙을 떠났다. 신앙이란 감사뿐이다.
부모가 없어 고생을 했다는 사람, 천하에 부모 없는 사람은 모두가 불행하고 고생을 했을까? 성공한 사람도 부지기수다.
심지어 부모가 부자여서 자기를 잘못 기르는 바람에 나쁜 사람이 됐다는 사람도 있다. 고아를 탓하는 사람과 사실 동류다.
피해 의식이란 잘 사용하면 예방 주사가 되어 큰 화를 피하고 복을 마련할 수 있다. 피해 의식을 잘못 사용하면 독약이다.
만사 남 탓에다 작은 것 하나에 피의 의식이 피해 망상이 되면서 반응을 하게 되면 이 때부터는 자기부터 크게 망치게 된다.
부모가 남 도와 주는 바람에 자기가 소외 되었다고 생각하고 평생에 절대로 남을 돕지 않겠다고 맹세를 하는 사람이 있다.
도와 줄 수 있는 부모를 가졌다는 것은 그 부모로부터 보이는 것보다 더 큰 다른 것을 자기도 모르게 혜택을 봤을 것이다.
주변의 아이 하나는 다른 아이를 괴롭히다 야단을 맞으면 갑자기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지금 하늘에 새가 날고 있다 한다.
하늘에 새 나는 것과 자기가 다른 아이를 괴롭힌 것과 무슨 상관이 있나? 그 어떤 이유로도 갖다 댄다. 끝없이 그렇게 산다.
지역적으로, 무슨 말만 나오면 부글부글 끓는 곳이 있다. 집안적으로, 무슨 일만 생기면 개떼처럼 모여 달라 드는 곳이 있다.
개떼처럼 똘똘 뭉쳐 죽기 살기로 대 드니 대개는 그냥 넘어 간다. 그들은 그들의 단결이 그들의 자랑으로 무기라고 생각한다.
그 것이 ㅂㅅ 꼴값인데.. 천하에 어려운 과거 없는 사람이 있을까? 세상에 문제 없고 피해 없는 사람이 있을까?
유독 자기 중심이 강한 악한 사람일수록 자기가 당한 것만 기억한다. 그 것도 여러 배 혹 백 배를 키워 말한다.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한다. 이 정도면 병원에 입원할 상황이다.

춘천에 사장님 소유의 밭이 하나 있어 봄에 심어 놓았던 감나무랑 여러 묘목들이 잘 자라고 있나 볼겸 차가 막힐까 봐 6시 30분쯤 아침 일찍 출발을 했습니다.
새벽부터 눈발이 조금 날렸는데 아침을 먹으러 7시 30분쯤 휴게소에 들렀을 때는 눈이 꽤 5센티 정도 내리고 있었고 재설차량 5대 정도가 도로에 염화칼슘을 뿌리며 저속운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눈이 많이 와서 돌아오는 길에 차량통제가 되는 건 아닐까 하고 내심 걱정도 살짝 되었으나 사장님이 별말씀을 안하셨고 저또한 별일이야 있겠나 하고 다시 고속도로에 차를 올렸습니다.
주말이라서 그런지 아침부터 강원도로 가는 차들이 꽤 많았습니다. 거의 막힘없이 2시간만에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동홍천IC를 나와 30분 정도 가면 인가가 거의 없는 오지 산골에 사장님 밭이 있습니다.
밭에 가보니 봄에 심어 두었던 나무들이 절반 이상이 죽어 있어 아쉬웠지만 눈도 오고 해서 잠깐 밭을 둘러보고 곧바로 서울을 향했습니다.
강원도로 갈 때는 사장님이 운전하셨고 서울로 돌아올 때는 제가 운전했습니다. 그런데 밭에서 나오자마자 가파른 오르막길이 한곳 있는데 눈길 때문에 미끄러지지 않고 잘 올라갈 수 있을까 내심 걱정하며 서행으로 운전했습니다.
평소 같으면 바로 우회전 꺽으면서 곧바로 시작되는 오르막길을 오르는데 그날은 눈이 좀 내려 차가 미끄러질 것을 감안해서 곧바로 직진하고 유턴해서 직진거리에서 가속을 붙여 오르막길을 힘껏 올라 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조금 가서 공터에서 후진을 하는데 갑자기 끽하면서 차가 뒤로 가지를 않는 것이었습니다. 전진을 해도 차가 꼼짝달싹을 안하는 것이었습니다.
내려서 차 밑을 보니 커다란 돌덩이가 차 밑에 프레임에 걸려 오도가도 못하는 상태가 되고 말았습니다. 처음에는 간단하게 쉽게 해결될 줄 알고 앞, 뒷 바퀴에 돌과 나무를 깔고 계속 전진 후진을 해 봤으나 그럴수록 더 바퀴만 깊이 패이고 바퀴 고무타는 냄새만 심하게 났습니다.
20분 정도 씨름하다가 안되겠다 싶어 일단 삼성화재 보험사에 긴급출동 전화를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서비스가 밀려 있고 눈이 많이 내렸고 설상가상으로 지금 우리 차가 위치한 곳이 오지라서 적어도 두시간 이상 또는 그보다 훨씬 더 오래 걸릴 수도 있다는 답변을 듣게 되었고 우선 출발하게 되면 전화부터 달라고 했습니다.
언제 올지도 모르는 보험 서비스 차는 뒤로 하고 일단 오기 전에 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 고민하다가 차 밑에 끼인 바위를 자세히 보니 콘크리트 돌이 적어도 30키로 이상 그리고 그 위에 화강암 돌이 툭 튀어 올라와 있어 누가 견인해 주거나 아니면 그 돌을 깨부수는 방법 밖에는 달리 수가 없어 보였습니다. 30분동안 지나가는 차는 한대도 없었고 해서 그래도 다행히 10미터 근처에 민박집이 있어 사장님이 가 보니 86세 노부부가 살고 있어 양해를 구하고 삽과 망치, 바위 깨는 정과 해머를 빌려 무작정 바위를 치기 시작했으나 꿈쩍도 안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기도 한 것이 1톤 트럭 차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 밑에 돌이 박혀 있어 누워서 오른손으로 망치를 치니 힘이 제대로 안 들어갔습니다 한 5분정도 수차례 때려도 파편만 튈뿐 바위는 꿈쩍도 안했습니다. 지름이 40센티는 족히 되는 큰 콘크리트 덩어리 위에는 사각 기둥의 화강암 경계석이 튀어나와 있어 깨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제 입에서는 안돼. 이건 불가능해 그러고 있고 사장님은 계속 차만 앞 뒤로 전진, 후진 반복하며 타이어 타는 냄새만 태우고 계시고 저는 진흙탕에 빠진 생쥐처럼 차밑에 누웠으니 옷이 다 젖었고 내일 주일 설교도 해야 하고 예배도 참석해야 하는데 지금 손발이 묶여 꼼짝달싹 못하고 있으니 정신적으로 멘붕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냥 입에서는 주여 도와 달라하면서도 손으로는 연거푸 망치질을 해대지만 꼼짝 없는 바위를 보며 계속 이건 안돼 불가능이야 그러면서도 내일 주일예배에 대한 간절함이 있으니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렇게 차가 빠진지 1시간을 넘기고 있는데 망치질을 계속 해대니 돌과 콘크리트 사이로 미세하게 틈이 생기며 균열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힘이 생겨 더 세게 망치질을 하니 그렇게 태산 같은 바위, 아니 큰크리트 덩어리가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더니 어느 순간에 쩍하고 그 큰 콘크리트 덩어리가 정확하게 세등분으로 갈라져 버린 것입니다. 이건 기적이야 하면서 바위를 끄집어 내고 시동을 걸려는 찰나,
저 멀리서 갤로퍼 차량이 오고 있었습니다. 일단 차를 보내고 시도하려는데 그 차가 비상 깜빡이를 켜고 잠시 멈추어 후진해서 서더니 밧줄 있으시냐고 도와주겠다길래 잠시만요 한번만 시도해 보고요 하고 시동을 걸어 전진을 하니 쉽게 아주 쉽게 차가 나오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그 차를 보내고 2시간 가까이 고생하고 나니 그 때사 지원군이 오는 이런 상황은 또 뭔가 하면서 이제 집에 갈 수 있다는 생각에 들떠 빨리 유턴을 해서 오르막을 오르기 위해 가속도를 붙여 힘차게 엑셀을 밟았으나 오르막 중턱에서 차가 눈 때문에 못 올라가 멈추고 브레이크를 잡아도 차가 후진하고 해서 사이드 브레이크 겨우 잡아 당기니 다행히 차는 멈췄으나 이제는 아까보다 더 위험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왼쪽은 바위산, 오른쪽은 낭떠러지 사이드만 풀면 핸들 먹통, 브레이크 작동 불능 오직 믿을 것은 사이드 브레이크 밖에 없었습니다. 도저히 답이 안 나와 삽과 망치 빌렸던 노부부에게 다시 가서 삽과 빗자루를 다시 빌려 눈을 쓸고 있으니 그 할아버지 하시는 말씀,
저 위에 모래가 많이 쌓여 있으니 그거 뿌리면 금방 올라갈 수 있다는 한마디 말을 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눈을 치우고 차바퀴 앞 뒤에 모래를 뿌리고 시동을 걸어 사이드를 조심스레 풀면서 엑셀을 서서히 밟으니 언제 그랬냐는 듯 차는 오르막을 아주 쉽게 박차고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고 나니 또 내 뒤에서 눈 치우는 차가 눈을 깨끗하게 치우고 지나가는 것이었습니다. 10분 정도만 늦게 왔어도 눈이 다 치워진 상태에서 안전하게 오르막을 쉽게 올라갈 수 있었는데 하나님의 계획에는 쉽고 편한 것보다 나를 온전한 사람 만드시기 위하여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일하고 계심을 목도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집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아침6시30분 서울에서 출발, 춘천 8시30분 도착 30분 둘러보고 늦어도 11시면 서울 도착인데 집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2시 30분, 눈 때문에 평소보다 3시간 넘게 지체를 한 것이었습니다.
서울로 올라오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세상만사 모두 주님이 주권하시고 내게 감당할 시험만 허락하시는데 왜 이런 일을 주셨을까? 하필이면 눈 오는 날 사장님이 가자 해서, 왜 또 차는 거기 돌에 걸려 가지고 처음에는 원인 분석을 나 아닌 남에게서 찾으려 했습니다 마치 에덴동산 선악과 먹고 나서 아담과 하와가 서로에게 책임 전가를 했듯 말이죠. 난 잘못 없다. 사장님이 눈 오는날 가자 해서 이렇게 사고가 났다. 돌 때문에 길 때문에 눈 때문에 오르막 때문에 운전 실력 때문에 내가 지금 이렇게 고생하고 있는 것이지 원인은 남 때문이고 환경 때문이라는 이런 피해의식은 결국 남탓의 책임 회피로 이어지고 결과적으로 우리가 만나는 매 현실에서 기쁨과 감사를 사라지게 만들고 대신 불평, 불만, 낙망, 절망이라는 악순환이 연속적으로 계속되는 원인자임을 교훈받았습니다.
그런데 실상 차 밑에 끼어 있던 돌은 내 안에 깊이 박혀 있는 자기 중심이라는 돌이었습니다. 이 돌 때문에 힘들게 신앙생활하고 바울되기 전에 사울처럼 가시채를 뒷발질하는 네게 고생이라는 말씀처럼 차 밑에 돌을 없애기 전에는 차가 나올 수 없듯이 내 속에 자기 중심적인 돌, 근본 원인되는 돌을 빼내지 않고는 올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시려고 사장님 마음을 움직이게 해서 꼭 눈 오는 날 춘천을 가게 했고 아무리 조심해서 운전했어도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바위에 걸리게 했고 오르막에서 차가 미끌리는 위험천만한 이 모든 역사를 주님이 나의 악습 하나 고치려고 영원 전에 예정하셨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니 그저께 토요일 있었던 모든 일정의 범사에 비로소 감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저에게 있는 돌을 꺼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시려고 2시간 가까이 지나가는 차가 한 대도 없게 하셨다가 돌을 깨고 나올 때쯤 차가 오게 하신 것도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쉽게 해결해 줄 수도 있었지만 내게 다 이유가 있었다고 주님이 말씀하시는 것만 같았습니다. 만약 10분만에 지나가는 차가 있어 도움을 구했거나 보험차가 빨리 와서 쉽게 해결했다면 그 귀한 교훈을 깨달을 수 없었을 뿐더러 무엇보다 주님을 간절히 찾고 기도응답의 기적은 맛보지 못했을 것이고 이런 간증도 못 나눴을 것입니다.
그동안 내 안에 있는 돌 때문에 누가 힘들었을까? 찬송가 가사처럼 돌같은 내 마음 곧 녹여 줍소서 평소 자기중심을 부인해야 된다고 그렇게 수도 없이 전했고 들었지만 피부로 그렇게 와 닿지는 않았지만 2시간 가까이 차 밑에 깔린 돌과 씨름하면서 내 속에 박힌, 도저히 빠져 나오지 않을 것 같은 그 원수인 돌, 자기 중심을 뼈저리게 느끼는 시간이었습니다.
요즘 신앙이 챗바퀴 돌듯이 늘 똑같은 일상에 허우적대고 있었는데 자아를 깨우는, 올해 있었던 사건 베스트였습니다. 내 안에 돌 때문에 나도 힘들고 아내도 자녀도 힘들고 직장 동료, 사장님, 교회 교우들도 알게 모르게 많이 힘들었겠다 싶었습니다. 오르막 오를 때도 내 힘으로 아무리 머리를 굴리고 노력해도 그러면 그럴수록 더 위험에 빠져 들어갔는데 그 곳에 사시는 86세 노부부가 건넨 말 한마디, 저 위에 모래가 있으니 삽으로 도로에 깔면 금새 올라간다. 눈 오면 차가 많이 빠지는 것을 많이 목격한 그 경험담. 이것 또한 내 힘으로 안될 때는 끝까지 우기지 말고 남의 말에 귀 기울여 보자. 말 한마디를 어떻게 듣느냐에 따라 생사가 결정된다. 마귀말인지 사람을 통한 주님의 음성인지 말이다.
저는 군대를 강원도 인제 원통에서 자대생활을 했는데 겨울 때만 되면 하루가 멀다 하고 눈 치우는 게 일이었고 군대 차가 오르막에 못 올라가면 모래 깔아서 쉽게 올라가던 기억이 있었는데 차가 뒤로 미끌리는, 당황하는 순간이 되고 보니 모든 판단력 깜깜, 과거 경험담 잊어먹음, 위기 대처 능력 스위치 오프, 마귀는 돌발상황을 만들어 놓고 판단을 흐리게 해서 일을 그르치게 하는데 당황한 순간에 잠시 행동을 중단하고 눈을 감고 기도하며 차분하게 생각하는 거기에 모든 일의 실마리가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안다 하지만 아직 모르는 것 같습니다. 차 밑에 깔린 돌은 2시간 남짓만에 다 깨부수었지만 제 나이 48년동안 쌓인 자기 중심의 돌은 평생을 두고 깨고 또 깨고 나가야 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불가능해 보이던 차 밑에 돌이 깨어지는 것을 경험하며 내 속에 깊이 박혀 있어서 도저히 빼낼 수 없는 악습들도 주님의 돕는 은혜를 힘입어 포기만 안하고 인내하며 신앙의 망치질을 계속하면 주님의 때에 반드시 제거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제 속에 악습이 고쳐지고 날마다 돌을 깨고 부수는 이 작업을 멈추지 않고 계속하는 저와 우리 가정이 되기를 또한 우리 교회와 우리 공회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하게 됩니다.
좋은 위치에 좋은 내용의 글이었습니다.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는 이러한 일들이 과연 가능하겠습니까?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으로서는 그 모든 것이 다 가능하다고 하신 주님 말씀의 이런 담대한 자신감의 원천인 담력은 어디서부터 나오는가? 예수의 피, 사활 대속의 은혜인 주님의 살과 피를 기념할 때 그 모든 불법, 불의, 불목, 낙망이 사라지고 수십년 묵혀 두었던 교회에 악취나고 공회에 골칫덩어리인 쓰레기들, 자타에게 있는 피해의식과 피해망상을 포함한 그 모든 악습과 인간병을 고칠 수 있는 기회가 바로 새해 성찬식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2023년 1월 새해 성찬식을 통해 우리 총공회 모든 교회 교역자들을 포함한 모든 교인들이 악성, 악습인 죄악병을 고쳐 담대하게 신앙생활함으로 인생의 큰 전환점을 맞이함으로 복음의 지경을 넓혀가는 한 해가 되도록 미리부터 기도로 준비하는 우리가 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히브리서 10:19-20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