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구별과 협력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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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15 09:49
교회는 생명체이다. 한 몸과 같다.
한 몸에 두 팔이 서로 돕고 협력을 하면 온전해 지고, 더 나아 지며, 한 몸답게 된다.
한 몸에 두 팔이 서로 치고 박고 깨버리면 한 몸, 그 자체가 망가진다. 이기고 지는 문제가 아니라 이겨도 지고 져도 진다.
이 간단한 논리가 좌로도 우로도 치우치지 말고 말씀의 인도를 똑 바르게 따라 가는 것이며, 그리 어려워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귀신은 곳곳을 노리며 우로나 좌로나 조금 더 가 버리게 만든다. 그렇게 되면 탈선이 되고 망하게 된다. 참 쉽다.
우선 귀신은 교회끼리 교인끼리 공회끼리 마치 남남인 것처럼 나뉘게 하고 싸우게 하고 견제하여 좌로 가게 밀어 버린다.
시기와 질투와 자기 중심과 야욕을 슬쩍 풀어 놓으면 남과 싸우지는 않아도 한 몸 안에서 지체들끼리는 피터지게 싸운다.
실컷 싸우는 과정에 귀신은 중간 평가를 해 본다. 얼마를 벌었고 얼마는 아직도 버티고 있는가? 가끔 버티는 교회도 있다.
그런 교회들에게는 자기 신앙의 성결을 지켜 내라며 외부와 연결과 공유와 협력을 철저히 차단 시키고 고립을 시킨다.
한국 교회사에서는 장로교의 총회와 고신은 피터지게 싸움을 붙였다. 해방 후의 재건교회는 이 싸움에 말리지 않았다.
그러니 재건교회에게는 신앙의 성결을 지키고 또 싸워 봐야 유익이 없으니 타 교인과는 길에서 만나도 인사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고신이나 타 교단 교인과 인사조차 하지 않으면서 불신자와는 인사를 했다. 이 정도면 이미 문제는 예사롭지 않다.
자기의 의무, 자기가 지켜 낼 자기 신앙은 철저하게 지켰냈으니 오른 팔이 오른 팔만은 상하지 않게 잘 보존한 것이다.
그런데 왼 팔이야 잘려 나가든 말든, 두 다리는 썩어 문드러 지든 말든, 오른 팔만 멀쩡하면 될 것인가? 우로 밀쳐 버렸다.
세상을 따라 신앙을 포기해도 탈, 그렇게 되지 않으려고 자기 신앙을 고수하다 주변을 책임 질 의무를 버려도 또 탈이다.
여기서 이제 마지막 단계가 나온다. 공회는 신앙을 고수하면서 주교나 교훈 등을 통해 교계를 위한 수고도 아끼지 않았다.
공회는 철저히 외롭게 독보적으로 나가는데 이 것은 하나님만을 바라 보고 나가려다 보니 피할 수가 없을 때 그러하다.
공회는 한국 교회에게 소개하고 본이 되고 전해 준 것이 참 많다. 표시 내지 않고 교계를 신앙답게 만드려고 참 노력했다.
이렇게 좌로나 우로나 치우 치지 않고 바른 길을 걸어 가면 이제 귀신이 마지막 단계의 시험으로 또 한 번 뒤흔들어 놓는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 치지 않는 공회, 이런 교회가 교계를 더 옳고 바르게 만들기 위해 교계와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하나가 될 것인가? 주변 지역의 교회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부활절 연합 예배도 하고? 시청에 단체 협의도 나가고?
한 몸의 얼굴은 외부를 상대한다. 한 몸에 심장과 뇌는 어떤 경우가 있어도 외부를 직접 만나지 않는다. 사명이 서로 다르다.
얼굴은 외부를 봐야 하고 들어야 하고 대화를 해야 한다. 밖을 파악해야 할 위치와 사명이 있다. 그래서 얼굴은 밖에 두셨다.
통합 교단, 합동 교단, 고신 교단, 침례교와 감리교는 모두 정통 교회들이다. 이들 때문에 공회는 소리 없이 혜택을 본다.
그들은 교계의 얼굴들이다. 그들 스스로 그런 역할이 중요하다고 나섰다. 공회는 그들의 배후에서 기도하고 감사할 뿐이다.
정권이 전도 금지법을 만들고, 동성 지지법을 만들며, 정권이 무신론에 교회 박해에 달인이 된 평양을 대책 없이 지지할 때
통합 합동 고신 감리교 침례교의 거물 지도자들이 몇 년을 밤낮 없이 주일도 없이 막아 나서며 웃고 울고 투쟁하고 있었다.
그들의 주장을 일일이 다 찬성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기독교를 문명 사회의 법과 제도를 통해 압살하는 것은 막는 것은 좋다.
그들은 한 몸의 손바닥이며 발바닥이며 얼굴이기 때문에 손발로 뛰고 얼굴을 들고 여야와 언론과 대중을 만나며 수고를 한다.
공회는? 공회도 한 몸이며 교회이니 할 일이 있다. 한 몸에 모든 지체가 손발이 되고 얼굴이 되려 하면 심장과 뇌도 필요하다.
우리가 심장이나 뇌처럼 숨은 실력자가 되고 싶거나 고차원의 우위를 가지려 한 것이 아니라, 하다 보니 그렇게 되어 버렸다.
공회는 목회자부터 또는 공회의 지도자일수록 성경만 읽고 기도만 하느라고 서로가 만날 기회도 없고 만나지도 않는다.
원래 교회는 다 이렇게 출발을 했다. 세월이 지나며 한 교회씩 얼굴이 되고 손발이 되려고 나가는 바람에 우리만 남았다.
공회 안에도 부산에서 목회만 하는 줄 알았는데 수도권에 일반 신학교의 강좌를 맡아 교계에 실력을 발휘하는 분도 있고
공회 목회자는 양성원에서만 배워도 너무 버거운데 수도권이나 전국의 지명도 있는 신학교를 다시 다니는 분들도 있다.
그럴 정도의 시간이 있는 것도 부럽고 또 그렇게 해서 쌓은 것으로 잘 사용할 기회가 있다니 그 것도 참으로 대단하다.
그런데 원래 공회는 원래의 다른 교회들처럼 성경과 기도 그리고 전도와 심방만 했고 교계적 활동은 아예 없다시피 했다.
교계가 하나 둘씩 세상으로 나가다 보니 공회만 남은 듯 되었고, 공회 안에서도 그렇게들 나가다 보니 우리만 남은 듯하다.
어쨌든 손발이 바쁘고 얼굴이 외부를 파악하고 대처할 일이 많을수록 한 몸 안에서는 뇌와 심장이 할 일이 많아 진다.
일이 많거나 힘들거나 위험이 다가 오면 뇌가 사용하는 산소와 영양분은 급증한다. 우리는 더욱 기도할 일이 생겼다.
움직임이 더할수록 또 뇌가 바쁘게 움직일수록 심장은 숨가쁘게 뛰어야 한다. 더욱 은밀하게 더욱 기도에 집중할 때다.
한 몸의 지체들은 한 몸의 자기 위치를 지키고 자기 사명을 고수하는 것이 한 몸의 협력과 생존에 첫째 필요한 조처다.
그리고 자기의 위치를 지키면서 한 몸의 다른 지체를 자기 위치와 사명과 장점을 가지고 돕는 것이 교회 일치다.
지방의 목회자들과 한 교단의 동역자들이 호텔에서, 식당에서, 해외로, 유원지로 돌아 다니며 하나 되는 것은 붕괴라 한다.
모든 교단과 모든 교회가 더욱 자기 위치를 지키며 각자에게 주신 원래의 사명에 충실하게 해 달라고 매일 기도하고 있다.
모든 공회들과 교회들이 자기 위치와 사명을 뒤섞지 않도록 기도하고 있다. 그리고 도울 일을 돕도록 기도를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우리 공회, 이 연구소, 우리 동역자와 회원들이 자기가 지키고 해야 할 사명을 남에게 떠넘기지 않도록 기도한다.
한 몸에 두 팔이 서로 돕고 협력을 하면 온전해 지고, 더 나아 지며, 한 몸답게 된다.
한 몸에 두 팔이 서로 치고 박고 깨버리면 한 몸, 그 자체가 망가진다. 이기고 지는 문제가 아니라 이겨도 지고 져도 진다.
이 간단한 논리가 좌로도 우로도 치우치지 말고 말씀의 인도를 똑 바르게 따라 가는 것이며, 그리 어려워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귀신은 곳곳을 노리며 우로나 좌로나 조금 더 가 버리게 만든다. 그렇게 되면 탈선이 되고 망하게 된다. 참 쉽다.
우선 귀신은 교회끼리 교인끼리 공회끼리 마치 남남인 것처럼 나뉘게 하고 싸우게 하고 견제하여 좌로 가게 밀어 버린다.
시기와 질투와 자기 중심과 야욕을 슬쩍 풀어 놓으면 남과 싸우지는 않아도 한 몸 안에서 지체들끼리는 피터지게 싸운다.
실컷 싸우는 과정에 귀신은 중간 평가를 해 본다. 얼마를 벌었고 얼마는 아직도 버티고 있는가? 가끔 버티는 교회도 있다.
그런 교회들에게는 자기 신앙의 성결을 지켜 내라며 외부와 연결과 공유와 협력을 철저히 차단 시키고 고립을 시킨다.
한국 교회사에서는 장로교의 총회와 고신은 피터지게 싸움을 붙였다. 해방 후의 재건교회는 이 싸움에 말리지 않았다.
그러니 재건교회에게는 신앙의 성결을 지키고 또 싸워 봐야 유익이 없으니 타 교인과는 길에서 만나도 인사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고신이나 타 교단 교인과 인사조차 하지 않으면서 불신자와는 인사를 했다. 이 정도면 이미 문제는 예사롭지 않다.
자기의 의무, 자기가 지켜 낼 자기 신앙은 철저하게 지켰냈으니 오른 팔이 오른 팔만은 상하지 않게 잘 보존한 것이다.
그런데 왼 팔이야 잘려 나가든 말든, 두 다리는 썩어 문드러 지든 말든, 오른 팔만 멀쩡하면 될 것인가? 우로 밀쳐 버렸다.
세상을 따라 신앙을 포기해도 탈, 그렇게 되지 않으려고 자기 신앙을 고수하다 주변을 책임 질 의무를 버려도 또 탈이다.
여기서 이제 마지막 단계가 나온다. 공회는 신앙을 고수하면서 주교나 교훈 등을 통해 교계를 위한 수고도 아끼지 않았다.
공회는 철저히 외롭게 독보적으로 나가는데 이 것은 하나님만을 바라 보고 나가려다 보니 피할 수가 없을 때 그러하다.
공회는 한국 교회에게 소개하고 본이 되고 전해 준 것이 참 많다. 표시 내지 않고 교계를 신앙답게 만드려고 참 노력했다.
이렇게 좌로나 우로나 치우 치지 않고 바른 길을 걸어 가면 이제 귀신이 마지막 단계의 시험으로 또 한 번 뒤흔들어 놓는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 치지 않는 공회, 이런 교회가 교계를 더 옳고 바르게 만들기 위해 교계와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하나가 될 것인가? 주변 지역의 교회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부활절 연합 예배도 하고? 시청에 단체 협의도 나가고?
한 몸의 얼굴은 외부를 상대한다. 한 몸에 심장과 뇌는 어떤 경우가 있어도 외부를 직접 만나지 않는다. 사명이 서로 다르다.
얼굴은 외부를 봐야 하고 들어야 하고 대화를 해야 한다. 밖을 파악해야 할 위치와 사명이 있다. 그래서 얼굴은 밖에 두셨다.
통합 교단, 합동 교단, 고신 교단, 침례교와 감리교는 모두 정통 교회들이다. 이들 때문에 공회는 소리 없이 혜택을 본다.
그들은 교계의 얼굴들이다. 그들 스스로 그런 역할이 중요하다고 나섰다. 공회는 그들의 배후에서 기도하고 감사할 뿐이다.
정권이 전도 금지법을 만들고, 동성 지지법을 만들며, 정권이 무신론에 교회 박해에 달인이 된 평양을 대책 없이 지지할 때
통합 합동 고신 감리교 침례교의 거물 지도자들이 몇 년을 밤낮 없이 주일도 없이 막아 나서며 웃고 울고 투쟁하고 있었다.
그들의 주장을 일일이 다 찬성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기독교를 문명 사회의 법과 제도를 통해 압살하는 것은 막는 것은 좋다.
그들은 한 몸의 손바닥이며 발바닥이며 얼굴이기 때문에 손발로 뛰고 얼굴을 들고 여야와 언론과 대중을 만나며 수고를 한다.
공회는? 공회도 한 몸이며 교회이니 할 일이 있다. 한 몸에 모든 지체가 손발이 되고 얼굴이 되려 하면 심장과 뇌도 필요하다.
우리가 심장이나 뇌처럼 숨은 실력자가 되고 싶거나 고차원의 우위를 가지려 한 것이 아니라, 하다 보니 그렇게 되어 버렸다.
공회는 목회자부터 또는 공회의 지도자일수록 성경만 읽고 기도만 하느라고 서로가 만날 기회도 없고 만나지도 않는다.
원래 교회는 다 이렇게 출발을 했다. 세월이 지나며 한 교회씩 얼굴이 되고 손발이 되려고 나가는 바람에 우리만 남았다.
공회 안에도 부산에서 목회만 하는 줄 알았는데 수도권에 일반 신학교의 강좌를 맡아 교계에 실력을 발휘하는 분도 있고
공회 목회자는 양성원에서만 배워도 너무 버거운데 수도권이나 전국의 지명도 있는 신학교를 다시 다니는 분들도 있다.
그럴 정도의 시간이 있는 것도 부럽고 또 그렇게 해서 쌓은 것으로 잘 사용할 기회가 있다니 그 것도 참으로 대단하다.
그런데 원래 공회는 원래의 다른 교회들처럼 성경과 기도 그리고 전도와 심방만 했고 교계적 활동은 아예 없다시피 했다.
교계가 하나 둘씩 세상으로 나가다 보니 공회만 남은 듯 되었고, 공회 안에서도 그렇게들 나가다 보니 우리만 남은 듯하다.
어쨌든 손발이 바쁘고 얼굴이 외부를 파악하고 대처할 일이 많을수록 한 몸 안에서는 뇌와 심장이 할 일이 많아 진다.
일이 많거나 힘들거나 위험이 다가 오면 뇌가 사용하는 산소와 영양분은 급증한다. 우리는 더욱 기도할 일이 생겼다.
움직임이 더할수록 또 뇌가 바쁘게 움직일수록 심장은 숨가쁘게 뛰어야 한다. 더욱 은밀하게 더욱 기도에 집중할 때다.
한 몸의 지체들은 한 몸의 자기 위치를 지키고 자기 사명을 고수하는 것이 한 몸의 협력과 생존에 첫째 필요한 조처다.
그리고 자기의 위치를 지키면서 한 몸의 다른 지체를 자기 위치와 사명과 장점을 가지고 돕는 것이 교회 일치다.
지방의 목회자들과 한 교단의 동역자들이 호텔에서, 식당에서, 해외로, 유원지로 돌아 다니며 하나 되는 것은 붕괴라 한다.
모든 교단과 모든 교회가 더욱 자기 위치를 지키며 각자에게 주신 원래의 사명에 충실하게 해 달라고 매일 기도하고 있다.
모든 공회들과 교회들이 자기 위치와 사명을 뒤섞지 않도록 기도하고 있다. 그리고 도울 일을 돕도록 기도를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우리 공회, 이 연구소, 우리 동역자와 회원들이 자기가 지키고 해야 할 사명을 남에게 떠넘기지 않도록 기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