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영 회장을 전도한 공회 가족의 이야기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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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10 09:54
정주영 회장은 현대 그룹을 만들면서 삼성 이병철과 극히 반목했다. 체질도 또 성장 과정과 주력 방향도 너무 달랐다.
두 인물이 위대하며 나라를 위해 큰 일을 한 것은 같으나 상극이었다. 여러 과정을 거친 후 정 회장은 전경련을 맡았다.
그러면서 정권과 직접 겪은 경험 때문에 정권을 잡지 않고는 경제도 없고 또 경제를 거쳤으니 국가 운영도 해 보고 싶었다.
여기까지는 언론에 공개 된 내용이다.
1992년의 대통령 선거는 군인들이 집권한 1960년대와 70년대 그리고 80년대를 지나 이제 민간인이 정권을 잡을 차례였다.
김영삼 김대중의 절박감에 정주영 회장이 끼어 들었다. 처음에는 모두가 웃었으나 경제계의 성공처럼 될 가능성이 보였다.
당시 김영삼은 야당에서 여당으로 들어 가며 무조건 당선이 되는 줄 알았으나 보수 성향의 후보가 나서며 위기를 느꼈다.
김영삼은 당선 후 펼쳐 놓고 현대를 쥐어 박았다. 정주영은 선거에 나선 정도니 건강을 핑계로 수감을 피하기도 어렵다.
정주영은 생애 처음으로 그리고 인생의 마지막 전부를 쏟아 부은 대통령 선거의 실패와 보복을 당하며 절망하게 되었다.
대통령 선거에 낙선한 직후 누구도 알 수 없는 그의 행적과 절망적 상황에 그의 옆에는 평소와 다른 동행이 한 명 있었다.
정주영은 정권에 도전하기 위해 전경련 시절 각계를 차원 다르게 포섭하였고 기독교 쪽을 맡겨 놓은 측근이 있었다.
그의 형은 공회 목회자였고 그의 동생 둘은 사직동교회 교인이었다. 그의 조카가 목회연구소에 소위 최고 지도자였다.
그만 빼고 모친까지 그의 모든 식구가 공회 사람들이다. 기독교 최고 지도자들을 따로 뽑아 챙기는 과정에 형을 포함했다.
그의 형은 공회 안에서야 모르는 사람이 없는 골수 공회 지도자이나 공회는 바깥 활동을 하지 않고 교회도 개척 수준이었으니
교계가 그를 알 리가 없었고 더구나 대선을 준비하던 정주영 정도의 눈에는 일반적으로 언론에 등장하는 인물만 인물인데도
동생 때문에 한국 교회의 지도자 몇 명에 공회 목사님은 이름을 올렸다. 이 이름을 알아 보는 사람은 실제 그 정도가 된다지만
그 이름을 알아 본 사람은 당시 교계에서는 거의 없다고 해야 할 듯하다. 정주영은 그 명단을 가지고 특별한 모임도 가졌다.
김영삼은 당선했다. 서울에서 정치를 하기 위해 충현교회 소망교회 등으로 옮겼지만 원래 신앙은 부산 서부교회 교인이다.
공회는 그를 위해 이름 한 번 올려 본 적이 없다. 오히려 백 목사님은 설교 중에 어린 여공들을 부추긴다고 비판을 했었다.
김영삼의 당선 후 막다른 골목에 몰린 정주영, 그는 신앙과 전혀 상관 없이 살았다. 그 측근이 그를 교회로 모셨다고 한다.
서울은 보는 눈이 많아서 피하고 시선이 잘 쏠리지 않는 인천 쪽의 어디로.. 그 교회 그 위치 그 이야기는 드러 내지 않았다.
그 측근의 조카가 연구소 안에서 들려 준 이야기를 적었다.
김영삼 정권 시절, 공회는 마음 먹으면 크게 신세를 지거나 영향력을 가질 수 있었다. 노곡동의 해결 뒷 이야기가 그렇다.
정주영이 집권했다면 기독교 안의 판세에 그 측근은 역할했을 것이고, 공회가 타 교단과 같았으면 신세를 졌을 것이다.
공회와 교계의 다른 점은, 세상의 기회가 쥐어 진다 해도 교회와 세상을 구별하면서 교회의 자기 관리를 잘 한다는 것이다.
즉, 세상의 기회가 없어서 쥐지 못하고 속으로 세상이 그립다면 공회가 아니고 또 기회가 온다고 쥔다면 공회가 아니다.
한 교인의 취업에 장사에 진학에까지 이런 일은 흔하다. 최근 국가적 교계적 종심 끝에 또 한 번 접촉이 지나 가고 있다.
스쳐 지나 가는 인연이라도 있다면, 또는 인연은 없으나 남에게 있는 듯 보이면 대박처럼 터뜨리고 광고로 도배를 한다.
그 것이 세상이고 그 것이 교계고 그 것이 모든 교단과 교회들이다. 공회만은 그렇지 않다.
해방 후 정부가 처음 구성 될 때 해방 전의 기독교 역할 때문에 기독교 지도자들은 출발하는 우리 사회 곳곳에서 환영 받았다.
그 기회를 통해 기독교 인물은 사회 진출을 했고 교회들은 혜택을 엄청 봤다. 심지어 구호물자의 배분까지. 고신도 포함된다.
그 시절 구호품의 옷 하나 문제에도 손절하고 스스로를 관리한 것은 아마 우리뿐일 듯하다. 이 말이 쉬운 말이 아니다.
세상과 교회를 오늘 구별하지 못하면 그가 마련할 하늘 나라의 모든 사명은 전부 세상에 묻어 버려야 한다.
두 인물이 위대하며 나라를 위해 큰 일을 한 것은 같으나 상극이었다. 여러 과정을 거친 후 정 회장은 전경련을 맡았다.
그러면서 정권과 직접 겪은 경험 때문에 정권을 잡지 않고는 경제도 없고 또 경제를 거쳤으니 국가 운영도 해 보고 싶었다.
여기까지는 언론에 공개 된 내용이다.
1992년의 대통령 선거는 군인들이 집권한 1960년대와 70년대 그리고 80년대를 지나 이제 민간인이 정권을 잡을 차례였다.
김영삼 김대중의 절박감에 정주영 회장이 끼어 들었다. 처음에는 모두가 웃었으나 경제계의 성공처럼 될 가능성이 보였다.
당시 김영삼은 야당에서 여당으로 들어 가며 무조건 당선이 되는 줄 알았으나 보수 성향의 후보가 나서며 위기를 느꼈다.
김영삼은 당선 후 펼쳐 놓고 현대를 쥐어 박았다. 정주영은 선거에 나선 정도니 건강을 핑계로 수감을 피하기도 어렵다.
정주영은 생애 처음으로 그리고 인생의 마지막 전부를 쏟아 부은 대통령 선거의 실패와 보복을 당하며 절망하게 되었다.
대통령 선거에 낙선한 직후 누구도 알 수 없는 그의 행적과 절망적 상황에 그의 옆에는 평소와 다른 동행이 한 명 있었다.
정주영은 정권에 도전하기 위해 전경련 시절 각계를 차원 다르게 포섭하였고 기독교 쪽을 맡겨 놓은 측근이 있었다.
그의 형은 공회 목회자였고 그의 동생 둘은 사직동교회 교인이었다. 그의 조카가 목회연구소에 소위 최고 지도자였다.
그만 빼고 모친까지 그의 모든 식구가 공회 사람들이다. 기독교 최고 지도자들을 따로 뽑아 챙기는 과정에 형을 포함했다.
그의 형은 공회 안에서야 모르는 사람이 없는 골수 공회 지도자이나 공회는 바깥 활동을 하지 않고 교회도 개척 수준이었으니
교계가 그를 알 리가 없었고 더구나 대선을 준비하던 정주영 정도의 눈에는 일반적으로 언론에 등장하는 인물만 인물인데도
동생 때문에 한국 교회의 지도자 몇 명에 공회 목사님은 이름을 올렸다. 이 이름을 알아 보는 사람은 실제 그 정도가 된다지만
그 이름을 알아 본 사람은 당시 교계에서는 거의 없다고 해야 할 듯하다. 정주영은 그 명단을 가지고 특별한 모임도 가졌다.
김영삼은 당선했다. 서울에서 정치를 하기 위해 충현교회 소망교회 등으로 옮겼지만 원래 신앙은 부산 서부교회 교인이다.
공회는 그를 위해 이름 한 번 올려 본 적이 없다. 오히려 백 목사님은 설교 중에 어린 여공들을 부추긴다고 비판을 했었다.
김영삼의 당선 후 막다른 골목에 몰린 정주영, 그는 신앙과 전혀 상관 없이 살았다. 그 측근이 그를 교회로 모셨다고 한다.
서울은 보는 눈이 많아서 피하고 시선이 잘 쏠리지 않는 인천 쪽의 어디로.. 그 교회 그 위치 그 이야기는 드러 내지 않았다.
그 측근의 조카가 연구소 안에서 들려 준 이야기를 적었다.
김영삼 정권 시절, 공회는 마음 먹으면 크게 신세를 지거나 영향력을 가질 수 있었다. 노곡동의 해결 뒷 이야기가 그렇다.
정주영이 집권했다면 기독교 안의 판세에 그 측근은 역할했을 것이고, 공회가 타 교단과 같았으면 신세를 졌을 것이다.
공회와 교계의 다른 점은, 세상의 기회가 쥐어 진다 해도 교회와 세상을 구별하면서 교회의 자기 관리를 잘 한다는 것이다.
즉, 세상의 기회가 없어서 쥐지 못하고 속으로 세상이 그립다면 공회가 아니고 또 기회가 온다고 쥔다면 공회가 아니다.
한 교인의 취업에 장사에 진학에까지 이런 일은 흔하다. 최근 국가적 교계적 종심 끝에 또 한 번 접촉이 지나 가고 있다.
스쳐 지나 가는 인연이라도 있다면, 또는 인연은 없으나 남에게 있는 듯 보이면 대박처럼 터뜨리고 광고로 도배를 한다.
그 것이 세상이고 그 것이 교계고 그 것이 모든 교단과 교회들이다. 공회만은 그렇지 않다.
해방 후 정부가 처음 구성 될 때 해방 전의 기독교 역할 때문에 기독교 지도자들은 출발하는 우리 사회 곳곳에서 환영 받았다.
그 기회를 통해 기독교 인물은 사회 진출을 했고 교회들은 혜택을 엄청 봤다. 심지어 구호물자의 배분까지. 고신도 포함된다.
그 시절 구호품의 옷 하나 문제에도 손절하고 스스로를 관리한 것은 아마 우리뿐일 듯하다. 이 말이 쉬운 말이 아니다.
세상과 교회를 오늘 구별하지 못하면 그가 마련할 하늘 나라의 모든 사명은 전부 세상에 묻어 버려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