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의 인파, 그 사진을 볼 때마다 서부주교를 감사

남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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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의 인파, 그 사진을 볼 때마다 서부주교를 감사

담당 0 2
1970년대 말부터 서부교회의 주일학생은 매주 일요일 오전 8시 30분에 8천명이 몰린다. 들어 올 때는 그래도 분산이 되지만 예배를 마치면 일제히 좁은 입구가 미어 터진다. 거의 다 불신자 가정의 아이다. 고학년보다 저학년이 많다. 업고 지고 엉망이다. 그 넓은 예배당에 앉을 때 한 사람도 마음 편히 앉지 못하고 거의 다 무릎을 꿇거나 그 비슷하게 앉아야 한다. 2층의 계단은 정말 아찔한 곳이다. 10월 29일의 이태원 골목에 미어 터지며 150명이 죽은 인파를 보며 주일학교 그 시절을 다시 떠올린다. 사고 없이 그 시기를 모두 거쳐 나온 그 자체가 또 하나의 기적이었다.

1980년대 거창의 8월 집회도 그렇다. 1만 5천 명이 모인 산 집회, 예배가 마치면 나오는 인파는 떠밀려서 나온다. 산이다. 안전 장치가 전혀 없다. 경사가 급하다. 불신 가정의 아이들이 수천 명이 함께 했다. 이 것도 은혜다. 인파로 떠밀려 압사 사고가 없었다. 질서 의식이 있어 그런 것도 아니다. 노인과 아이들, 그 속에 거칠게 움직이는 청소년들까지..


1층 주일학교 내부. 빽빽하게 들어 찬 이 학생들이 예배 후에는 동시에 밖으로 쏟아 진다.



87.5월 대구 노곡동의 집회 숙소. 촘촘하게 앉았고 또 이 곳이 바로 숙소였다. 화재라도 있었다면 또는 한 번 잘못 밀쳤다면.



작은 은혜는 눈에 보인다. 그래서 감사를 한다.
그 은혜가 너무 크면 파악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감사조차 하지 못한다.
국가적 참화에도 불구하고 공회의 우리들에게는 지난 날 주일학교와 집회 때의 '안보'를 기도했으나 그렇게 도우신 줄은 몰랐다.


1983년 출입구가 참 좁았고 계단이 좁고 가파랐다. 8천 명이 이렇게 나온다. 성탄이나 성경학교 때는 1만 3천여 명



주일 오후에는 시내 30 곳에서 지역 별로 예배를 드린다. 한 가정 집 방 안을 채운 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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