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과 10월의 교회력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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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21 18:06
(기념일로 알 수 있는 것)
부활절 추수감사절 성탄절은 교회력에 특별하다. 4월 18일이 특별하면 불교인이다. 달력으로 보면 사람의 속이 보인다.
교회력 중에서도 어느 날이 특별한지 살펴 보면 신앙의 노선과 내용이 보인다. 이 곳은 8월 27일, 순교일이 늘 특별하다.
현재 이 연구소의 주소지가 되어 있고 운영비나 운영 인력을 가장 많이 제공하고 있는 여수의 신풍은 9.28. 10.21.이다.
인민군이 총 퇴각을 하던 9월 28일에 손양원을 처형했다. 2 년 전의 반란 사건에 두 아들이 10월 21일에 순교를 당했다.
(3.1 운동에 대한 유감)
나는 3.1 운동을 어릴 때부터 좋지 않게 기억한다. 전국에 그 많은 사람이 정말 독립을 원했다면 몽둥이를 들어야 했다.
양떼가 데모하면 늑대가 좋아 하지 싫어할까? 그러니 당해도 싸다 말이 나온다. 양이라 해도 많으니 떠받을 수는 있다.
나이 들면서 이제는 생각이 바뀌었다. 3.1 운동에 나선 이들이야 정말 순수한 애국자들인데 이들을 전부 공개를 시켰다.
일본이 얼마나 좋았을까? 3.1 운동에 나선 이들이 암약을 했어야 했다. 모두가 드러 났으니 이후 독립 운동은 사라 졌다.
독립 운동이란 철저히 비밀에 붙이고 때를 기다렸다 한꺼번에 분출을 해서 끝장을 봐야 하는데 아이들 장난 수준이었다.
겉으로는 애국이지만 결과적으로는 매국이 아닐까 싶다. 우리끼리야 장하다 하지만 국제정치적으로 보면 한심한 일이다.
3.1 운동에는 교회가 대거 나섰다. 중심에 섰다. 그리고 한국 교회는 둘로 나뉘어 진다. 민족주의와 순수 신앙주의가 된다.
3.1 운동 후에 정말 신앙가들은 다시는 독립 운동에 나서지 않고 오직 신앙 투쟁만 했다. 신사참배 거부로 이름을 남긴다.
손양원은 부친 때문에 어린 나이지만 3.1 운동의 여파로 학교를 중단한다. 이 때의 경험이 훗날 신앙에만 전념케 만든다.
오직 주님만을 위해! 이 것이 손양원의 평생이다. 남들은 친일처럼 반일처럼 반민족처럼 애국처럼 보았으나 모두 오해다.
9월 28일에 손양원을 처형하고 10월 21일에 두 아들을 처형한 이들을 나쁘게 보지 말자는 운동이 지역에는 넘치고 있다.
교회가 제일 앞에 섰고 손양원과 두 아들을 기념한다는 곳들이 더욱 난리들이다. 그 마음은 모르겠다. 결과적으로 그렇다.
(어느 날에 설치는가?)
초상에 미소가 번지면 역적이거나 며느리거나 불효자다. 초상에 함께 죽지 못해 고통하면 효자거나 충신일 것으로 본다.
자기는 자기를 볼 수 없다. 남들이 보면 쉽게 눈에 띄인다. 우리의 눈은 남을 더 잘 본다. 백 목사님 장례가 행복했던 이들..
그들에게 그런 말을 하자 펄펄 뛰며 난리였다. 불과 몇 달 가지 않아서 결과가 훤히 나왔다. 세월의 재판정, 아주 정확하다.
주일만 손을 꼽아 기다리는가, 또 주일이 벌써 왔는가? 그 마음 자세는 본인이 더 잘 알 듯하다. 날을 가지고 살펴 보았다.
부활절 추수감사절 성탄절은 교회력에 특별하다. 4월 18일이 특별하면 불교인이다. 달력으로 보면 사람의 속이 보인다.
교회력 중에서도 어느 날이 특별한지 살펴 보면 신앙의 노선과 내용이 보인다. 이 곳은 8월 27일, 순교일이 늘 특별하다.
현재 이 연구소의 주소지가 되어 있고 운영비나 운영 인력을 가장 많이 제공하고 있는 여수의 신풍은 9.28. 10.21.이다.
인민군이 총 퇴각을 하던 9월 28일에 손양원을 처형했다. 2 년 전의 반란 사건에 두 아들이 10월 21일에 순교를 당했다.
(3.1 운동에 대한 유감)
나는 3.1 운동을 어릴 때부터 좋지 않게 기억한다. 전국에 그 많은 사람이 정말 독립을 원했다면 몽둥이를 들어야 했다.
양떼가 데모하면 늑대가 좋아 하지 싫어할까? 그러니 당해도 싸다 말이 나온다. 양이라 해도 많으니 떠받을 수는 있다.
나이 들면서 이제는 생각이 바뀌었다. 3.1 운동에 나선 이들이야 정말 순수한 애국자들인데 이들을 전부 공개를 시켰다.
일본이 얼마나 좋았을까? 3.1 운동에 나선 이들이 암약을 했어야 했다. 모두가 드러 났으니 이후 독립 운동은 사라 졌다.
독립 운동이란 철저히 비밀에 붙이고 때를 기다렸다 한꺼번에 분출을 해서 끝장을 봐야 하는데 아이들 장난 수준이었다.
겉으로는 애국이지만 결과적으로는 매국이 아닐까 싶다. 우리끼리야 장하다 하지만 국제정치적으로 보면 한심한 일이다.
3.1 운동에는 교회가 대거 나섰다. 중심에 섰다. 그리고 한국 교회는 둘로 나뉘어 진다. 민족주의와 순수 신앙주의가 된다.
3.1 운동 후에 정말 신앙가들은 다시는 독립 운동에 나서지 않고 오직 신앙 투쟁만 했다. 신사참배 거부로 이름을 남긴다.
손양원은 부친 때문에 어린 나이지만 3.1 운동의 여파로 학교를 중단한다. 이 때의 경험이 훗날 신앙에만 전념케 만든다.
오직 주님만을 위해! 이 것이 손양원의 평생이다. 남들은 친일처럼 반일처럼 반민족처럼 애국처럼 보았으나 모두 오해다.
9월 28일에 손양원을 처형하고 10월 21일에 두 아들을 처형한 이들을 나쁘게 보지 말자는 운동이 지역에는 넘치고 있다.
교회가 제일 앞에 섰고 손양원과 두 아들을 기념한다는 곳들이 더욱 난리들이다. 그 마음은 모르겠다. 결과적으로 그렇다.
(어느 날에 설치는가?)
초상에 미소가 번지면 역적이거나 며느리거나 불효자다. 초상에 함께 죽지 못해 고통하면 효자거나 충신일 것으로 본다.
자기는 자기를 볼 수 없다. 남들이 보면 쉽게 눈에 띄인다. 우리의 눈은 남을 더 잘 본다. 백 목사님 장례가 행복했던 이들..
그들에게 그런 말을 하자 펄펄 뛰며 난리였다. 불과 몇 달 가지 않아서 결과가 훤히 나왔다. 세월의 재판정, 아주 정확하다.
주일만 손을 꼽아 기다리는가, 또 주일이 벌써 왔는가? 그 마음 자세는 본인이 더 잘 알 듯하다. 날을 가지고 살펴 보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