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회의 '교역자 기도실' - 1970년부터

남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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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판에는 이 홈에 올려진 글 중에 이곳에서 따로 소개하고 싶은 글도 포함됩니다. 

공회의 '교역자 기도실' - 1970년부터

담당a 2 7
새벽의 꿈 속에 공회 출생의 70대 장로님이 나를 보고 '기도실 생활을 하는가?' 근심스럽게 물었다. 열심히 해명을 해 드렸다.
그렇다 해도 못내 아쉽다. 어느 질문을 받는다 해도 신앙 세계에서 어느 누가 자신 있게 답하겠는가? 지난 세월을 돌아 봤다.


공회의 특색은 많다. 신앙 세계에서는 당연한 것인데 다들 세상으로 몰려 가며 내 버렸고 우리만 지키다 보니 다르게 보인다.
우선 성경 읽기다. 타 교단은 성경을 단순히 읽기만 하는 수준을 넘어 서서 성경에 없는 것을 두루 돌아 본다. 넓어 지게 된다.
우리는 연경까지 가고 다른 교단은 신학으로 발전한다. 우리는 그 발전을 탈선 오염으로 보고 그들은 지평을 넓힌다고 본다.
서로 좋은 것을 가지려고 다 노력하게 된다. 근본적인 지식 하나가 문제이고 그 이후는 각자 역량에 따라 갈 길을 가게 된다.

성경 다음에 공회 특색은 기도다. 다른 교회들의 기도는 거의 비슷해 보인다. 공회 기도는 누가 봐도 분위기부터 아주 다르다.
간결한 설교처럼 진행된다. 이 것이 공회 기도의 외형이고 일반이다. 그 기도 속에 성령이 흔들어 주시면 당연히 과격해 진다.
공회 기도가 과격해 지면 다른 교회와 격렬이 달라 진다. 순복음교회의 격렬과 다를 수밖에 없다. 말씀에 붙들리기 때문이다.
공회 기도는 기본적으로 산기도다. 산이 없는 오늘은 골방 기도다. 1970년, 백 목사님은 모든 목회자에게 기도실을 부탁했다.


1970년 8월 4일의 결정이었고, 당시는 기도실을 만들 여력이 없어 시간이 걸렸다. 어려운 교회는 주변의 교회가 돕기도 했다.
목사님은 뭐든 약간 애매하게 부탁을 한다. 홍순철처럼 말이 떨어 지면 어떤 표현과 분위기든 바로 해 버리는 분들이 있다.
어떤 분들은 목사님의 진심을 파악하기 어려워 시간이 걸리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 해도 파악을 하면 꼭 이루어 내는 분이다.
어떤 분들은 알면서도 버틴다. 목사님을 따라 가려면 세상과 가정과 자기를 버려야 하는데 체질적으로 되지 않는 분도 있다.

1971년 가을 학기에 이진헌 목사님이 창동교회로 부임을 했다. 나사렛 교단의 부산 수정교회라는 좋은 목회지를 포기했다.
그리고 대구의 동성로교회를 거쳐 거제동교회를 개척했고 창동교회로 부임을 한다. 이 때부터 교회는 공회 공기를 맞게 된다.
부임하면서 공회의 주일학교는 학년의 담임제가 아니라 반사별 고정제라고 했다. 수십 명의 주일학교가 수백명이 되었다.
어느 날 양혜원에 기도실을 짓는다고 했다. 양혜원에는 추교경 목사님이 계셨다. 양혜원 창동 창북 그리고 한 개가 더 있었다.

목사님 아들들은 기도실을 짓는데 다녀 왔다 했다. 4인치 블럭으로 가로 세로 2미터 정도에 지붕 하나 씌우는 것이 전부다.
바닥에 군불 떼는 아궁이야 기본이던 시절이다. 참으로 간단하다. 양혜원 마을에서 직접 보이지 않는 남 쪽 언덕에 있었다.
이후 목회자들은 새벽 예배를 인도하러 올 때 기도실에서 밤을 맞고 새벽 3시 30분?에 주남선 목사님의 묘지를 넘어서 온다.
참으로 신선했다. 한 밤에 공동묘지를 늘 오가는 분들이다. 전국의 공회 교회가 해를 두고 꾸준히 기도실을 마련해 나갔다.



꿈에 이 때를 두고 그 교회 장로님과 대화가 있었다. 기도실 생활을 하냐고 물으셨다. 우리 주변 모두가 그렇게 한다고 했다.
당연하니 그렇게 답을 하면서 속으로 헤아려 봤다. 이 교회 저 교회 또 저 교회는 그렇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교회도 있다.
그 교회는 따로 그런 장소를 가질 여건이 아니다. 나는? 가면 되는 곳이 있다. 전국에 제일 좋은 곳이다. 그런데 가지 않는다.
대신 새벽 예배를 마치면 바로 오전 내내 숲 속에 있다. 창밖이 숲이다. 그 숲을 쳐다 보고 있으면 옛날 기도실들이 생각난다.

기도실은 될 수 있으면 가까운 지역끼리 한 곳에 모아 놓았다. 흩어 지면 산 속에서 낮잠이나 자든 잘못 된 것을 막는 조처다.
좀 무리가 된다 해도 한 곳에 모이고 둘이라도 모이다 보니 부산 기도실, 거창 기도실, 호남 기도실, 남해 기도실이 생겨 났다.
그리고 70년대와 80년대는 전국의 어느 교회든 공회 목회자는 설교 심방 식사의 최소한 시간을 두고는 산에서 기도만 했다.
성경을 읽어도 설교를 준비해도 산 속의 기도실에서 하다 보니 기도하다 성경을 찾고 성경을 읽다 바로 기도하게 되어 진다.

공회만 그런 것이 아니다. 김현봉 목사님의 아현 계열이 그렇다. 공회는 덕유산에서 시작하다 보니 유독 좀 더 심한 편이다.
산사람이 산을 찾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지 이상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 산이라는 분위기가 이스라엘로 보면 광야와 같다.
장소로 보면 산이나 광야를 찾게 되는 것이 주님을 가까이 하는 모습일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마음 속도 그러냐는 것이다.
모든 생각, 지식, 정보, 생활이 위로 주님과 더 가까운가 아니면 주변 세상과 섞이며 가깝고 그 속에서 물이 들고 있는가?


공회 목회자는 불가피하지 않으면 목회자조차 만나지 않는다. 동료는 더 경계한다. 어울리기 시작하면 문제는 생긴 것이다.
정치 목사, 행정 목사는 자기 교회를 두고 다른 교회를 살린다고 다닌다. 어머니가 밖으로 돌면 가정은 엉망이 되는 것이다.
어떤 양반집 아낙도 업소에 계속 드나 들면 물이 드는 것과 같다. 오늘은 천하가 모두 업소가 되어 있다. 물고기 속과 같다.
평생 마음 속으로 기도실 생활만 하는 목사로 존경하던 분들이 있었다. 목사님 사후에 정치하느라고 다 엉망진창이 되었다.

대구공회에 한두 분, 부공2에도 한두 분은 아직도 그렇지 않은 듯하다. 모이지 않는다는 욕이 여기까지 들린다니 다행이다.
이런 말을 듣는 정도의 인물이라면 하나님만 상대하고 맡은 자기 교인을 돌아 보는 일에만 전력할 듯하다. 그래야 목회자다.
그렇게 하다 보면 사회성 문제는 필히 따르게 된다. 그런 분이 만일 사회성까지 갖추면 백영희에 근접한다. 이해가 필요하다.
다 갖추기가 어렵지만 노력은 해야 한다. TV 화면에 나오는 중들이 중 노릇을 하겠는가? 밖으로 도는 목사가 목사겠는가.
목회자가 주님과 교회만 대면하면 얼굴 보기가 어려워야 한다. 위원회, 행정위 대표.. 전국을 돌아 다니면 ㄸ에 구르는 것이다.
교인 2022.09.15 12:52  
공회 공기를 맞게 된다 .뜻이 무엇인지요
서기 2022.09.15 20:10  
문단 5 > 라인 2 끝에 '이 때부터 교회는 공회 공기를 맞게 된다.' > '공회의 분위기로 전환 된다.'라는 뜻으로, 항상 공회 분위기였던 교회였으나 이 때부터 부산의 분위기가 아주 강하게 느껴 졌다'... 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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