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단일성, 단순성 - 중간반 제도를 중심으로
담당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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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08 12:42
(기계와 생명의 유기성)
차량은 2만 여 부속품으로 조립이 된다. 부품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이다. 엔진도 차체도 바꾸면 된다. 바꾸고 나면 더 나아진다. 돈과 기술만 있다면 고장도 충돌도 세월조차도 문제가 없다. 다 바꿔도 되고 아예 다른 차로 대체해도 된다. 그렇게 할수록 더 나아진다. 그런데 생명체란 유기적으로 연결이 되어 있어 강아지의 어느 한 부속을 바꿀 수 있다 해도 더 낫게 바꿀 재주가 없다. 하나가 잘못 되면 전체에게 바로 영향을 끼친다. 전부를 다 바꿀 수도 없고 바꿨다면 다른 존재가 된다.
(교회와 신앙은 생명체)
식물은 우리에게 변동 없이 자기 위치를 지키는 생명을 가지라는 자연의 계시이고, 동물은 우리의 신앙 활동을 가르치기 위해 자연 계시로 주셨다. 교회를 두고 세상식 인권을 중시하고, 세상식 민주제를 하고, 세상식 체계화를 하면 좋은 단체라는 인식이 20세기를 지나면서 확립이 되어 버렸다. 체계화로 치면 천주교는 역사 최고의 성공 사례일 듯하다. 한국 교회가 목 놓아 노래 부르는 '개혁주의' 신앙이란 교회의 체계화를 입에 올려서도 안 되는 역사적 신앙인데 한 입으로 개혁과 체계화를 달고 사니 지극히 모순이다. 세상이 말하는 인권과 민주화라는 표현은 하나님을 배제한 무신론이니 세상식 인권과 민주라는 표현이 일상화 된 세계 교회와 한국 교회는 무신론 또는 반신론 단체들이다. 노아 홍수나 칼빈의 반대파 처형 이야기만 나오면 교계는 인권 앞에 졸아 붙는다. 민주화 문제는 이미 개혁교회가 자랑하는 명품이다. 하나님의 뜻이나 신앙의 자유성이라는 표현은 아예 설 자리도 없다. 따라서 현재 한국 교회를 비롯한 오늘의 교계는 종교 단체라고 하기조차 민망한 수준이 되었다. 이 글은 인권, 민주, 체계라는 3 가지 주제 중 '체계'화 문제만 살피고 있다.
교회와 신앙이란 기계적이지 않다. 생명은 유기적이다. 유기적이라는 말은 복잡한 듯하나 자세히 보면 아주 단순하다. 심지어 딱 하나이다. 하나님의 눈치만 본다. 그렇게 되면 신본이라고 하며 신본일 때만 신앙이라고 한다. 자라 가는 과정에 혼란을 줄이기 위해 '진리'를 주셨다. 하나님의 뜻이 진리요 이 것이 표현 되어 졌을 때 '말씀'이라고 하며 책에 적어 주셨을 때 '성경'이다. 교회와 신앙이란 오로지 하나님 한 분만이 전부여 기준이다. 그래서 단순하다. 하나님을 배제하고 나면 복잡해 진다. 하나님과 연결이 교회와 신앙의 생명이다. 우리가 어둡고 어려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잘 알 수 있도록 성경을 주셨다. 성경 하나만 들고 맞춰 보면 교회와 신앙이란 아주 간단하다. 단순하다. 명료하다. 명쾌하다.
(교회의 제도)
교회가 체계화 되면 복잡해 진다. 체계화를 하지 않고 누구 한 사람 좋도록 운영이 되면 교회가 통째로 그 사람이 머리가 되고 하나님을 대신할 수 있다. 단순성으로 보면 교회처럼 조직과 운영이 쉬운 곳도 없고, 잘못 될까 하여 통제를 하려 들면 교회처럼 복잡한 동네도 찾기가 어렵다. 모든 교회는 그 교회 혼자서 '헌법'이라는 것을 따로 가지고 있다. 이 표현을 자랑스럽게 사용하는 이들은 법이란 실무도 이론도 겪어 보지를 않았을까, 아니면 작정하고 나쁜 마음을 먹고 이런 이름을 붙였을까?
이 글은 교회의 '체계화'가 위험하다는 논지로 적고 있다. 교회는 하나님께 붙들려 움직이는 것이 신앙의 생명이니, 생명이 생명다우면 유기적인 관계가 되고 모든 것이 참 단순하고 쉽고 효율적임을 강조하고자 한다. 구체적으로 교회의 조직을 살펴 본다. 교회의 가장 중요한 조직체는 '예배'를 중심으로 이루어 진다. 공회는 교회의 예배를 한 가지로만 둔다. 젖먹이부터 노령의 교인까지, 목회자든 첫 교인이든, 예배를 나누지 않는다. 꼭 한 가지만은 예외처럼 인정해 왔다. 주일학교다. 공회의 주교는 어린 학생을 위한 전도 예배다. 정식으로 말하면 주교 학생이 친구들의 전도를 위해 그 교회 주교 예배를 출석하지만 그 학생의 실제 예배는 장년반과 그 학생의 반사와 부장 선생님까지 다 함께 참석하는 주일 오전 예배, 주일 오후 예배, 수금의 삼일 예배와 오일 예배에 새벽 예배도 4 시 30 분이 정식 새벽 예배다. 전 교인이 함께 참석하는 '단일 예배'만 교회의 조직이다.
목회자는 이 예배를 인도하지만 어디까지는 '주로' 인도하는 것이지 목사만 인도자는 아니다. 목사가 없어도 공회는 교회다. 예배가 없으면 목사 1백 명이 모여도 우리는 교회라 하지 않는다. 주교는 어린 학생의 전도를 위해 운영을 하지만 주교가 없다고 그 교회가 장애 되는 것은 아니다. 중고교 학생을 따로 모은 중간반도 중고교 학생들이 한 때 갑자기 많이 모이면 설치 할 수도 있지만 공회 교회의 기본은 아니다. 신발이 없다고 장애자라 하지는 않는다. 손가락이 하나 없으면 불편하여 장애자라 한다. 그래도 사람으로 계산한다. 머리가 없으면? 사람으로 치지 않는다. 주교나 중간반은 손가락이거나 신발이지 이 것이 없다고 사람으로 치지 않는 머리 또는 몸통으로는 간주하지 않는다.
(조직의 단순성)
주일을 중심으로 한 주간을 지낸다. 주일은 오전과 오후 최소한 2 회는 출석하는 것이 신앙에 유익하다 하여 공회 교회의 주일 예배는 오전 오후 2 회다. 택일이 아니다. 신앙이 없어 1 회 출석하는 것은 그 교인의 신앙 수준이고 형편일 뿐이다. 교회는 주일에 오전 오후 2 회로 주일을 지킨다. 평일에는 수금의 삼일과 오일 예배로 그렇게 한다. 매일은 새벽 예배다. 한 마디로 전 교인이 참석할 예배는 1 가지다. 전도회도 주교도 중간반도 그 어떤 모임도 꼭 필요하면 설치하고 운용을 한다. 그러나 가장 기본은 모든 교인은 1 회 예배로 모이고 그 예배 모임이 교회라는 조직의 중심이며 전부며 필수다.
감당 못할 숫자가 밀려 오거나, 정말 불가피하게 운용을 해야 할 때는 뭐든지 한다. 그러나 조직과 운용은 그 기간도 그 숫자도 그 모든 것도 최소화로 유지한다. 생명이란 단순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돌아 보면 공회만큼 단순하면서 잘 운용 된 곳은 별로 없어 보인다. 김현봉의 아현교회 정도는 우리와 비슷했다.
차량은 2만 여 부속품으로 조립이 된다. 부품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이다. 엔진도 차체도 바꾸면 된다. 바꾸고 나면 더 나아진다. 돈과 기술만 있다면 고장도 충돌도 세월조차도 문제가 없다. 다 바꿔도 되고 아예 다른 차로 대체해도 된다. 그렇게 할수록 더 나아진다. 그런데 생명체란 유기적으로 연결이 되어 있어 강아지의 어느 한 부속을 바꿀 수 있다 해도 더 낫게 바꿀 재주가 없다. 하나가 잘못 되면 전체에게 바로 영향을 끼친다. 전부를 다 바꿀 수도 없고 바꿨다면 다른 존재가 된다.
(교회와 신앙은 생명체)
식물은 우리에게 변동 없이 자기 위치를 지키는 생명을 가지라는 자연의 계시이고, 동물은 우리의 신앙 활동을 가르치기 위해 자연 계시로 주셨다. 교회를 두고 세상식 인권을 중시하고, 세상식 민주제를 하고, 세상식 체계화를 하면 좋은 단체라는 인식이 20세기를 지나면서 확립이 되어 버렸다. 체계화로 치면 천주교는 역사 최고의 성공 사례일 듯하다. 한국 교회가 목 놓아 노래 부르는 '개혁주의' 신앙이란 교회의 체계화를 입에 올려서도 안 되는 역사적 신앙인데 한 입으로 개혁과 체계화를 달고 사니 지극히 모순이다. 세상이 말하는 인권과 민주화라는 표현은 하나님을 배제한 무신론이니 세상식 인권과 민주라는 표현이 일상화 된 세계 교회와 한국 교회는 무신론 또는 반신론 단체들이다. 노아 홍수나 칼빈의 반대파 처형 이야기만 나오면 교계는 인권 앞에 졸아 붙는다. 민주화 문제는 이미 개혁교회가 자랑하는 명품이다. 하나님의 뜻이나 신앙의 자유성이라는 표현은 아예 설 자리도 없다. 따라서 현재 한국 교회를 비롯한 오늘의 교계는 종교 단체라고 하기조차 민망한 수준이 되었다. 이 글은 인권, 민주, 체계라는 3 가지 주제 중 '체계'화 문제만 살피고 있다.
교회와 신앙이란 기계적이지 않다. 생명은 유기적이다. 유기적이라는 말은 복잡한 듯하나 자세히 보면 아주 단순하다. 심지어 딱 하나이다. 하나님의 눈치만 본다. 그렇게 되면 신본이라고 하며 신본일 때만 신앙이라고 한다. 자라 가는 과정에 혼란을 줄이기 위해 '진리'를 주셨다. 하나님의 뜻이 진리요 이 것이 표현 되어 졌을 때 '말씀'이라고 하며 책에 적어 주셨을 때 '성경'이다. 교회와 신앙이란 오로지 하나님 한 분만이 전부여 기준이다. 그래서 단순하다. 하나님을 배제하고 나면 복잡해 진다. 하나님과 연결이 교회와 신앙의 생명이다. 우리가 어둡고 어려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잘 알 수 있도록 성경을 주셨다. 성경 하나만 들고 맞춰 보면 교회와 신앙이란 아주 간단하다. 단순하다. 명료하다. 명쾌하다.
(교회의 제도)
교회가 체계화 되면 복잡해 진다. 체계화를 하지 않고 누구 한 사람 좋도록 운영이 되면 교회가 통째로 그 사람이 머리가 되고 하나님을 대신할 수 있다. 단순성으로 보면 교회처럼 조직과 운영이 쉬운 곳도 없고, 잘못 될까 하여 통제를 하려 들면 교회처럼 복잡한 동네도 찾기가 어렵다. 모든 교회는 그 교회 혼자서 '헌법'이라는 것을 따로 가지고 있다. 이 표현을 자랑스럽게 사용하는 이들은 법이란 실무도 이론도 겪어 보지를 않았을까, 아니면 작정하고 나쁜 마음을 먹고 이런 이름을 붙였을까?
이 글은 교회의 '체계화'가 위험하다는 논지로 적고 있다. 교회는 하나님께 붙들려 움직이는 것이 신앙의 생명이니, 생명이 생명다우면 유기적인 관계가 되고 모든 것이 참 단순하고 쉽고 효율적임을 강조하고자 한다. 구체적으로 교회의 조직을 살펴 본다. 교회의 가장 중요한 조직체는 '예배'를 중심으로 이루어 진다. 공회는 교회의 예배를 한 가지로만 둔다. 젖먹이부터 노령의 교인까지, 목회자든 첫 교인이든, 예배를 나누지 않는다. 꼭 한 가지만은 예외처럼 인정해 왔다. 주일학교다. 공회의 주교는 어린 학생을 위한 전도 예배다. 정식으로 말하면 주교 학생이 친구들의 전도를 위해 그 교회 주교 예배를 출석하지만 그 학생의 실제 예배는 장년반과 그 학생의 반사와 부장 선생님까지 다 함께 참석하는 주일 오전 예배, 주일 오후 예배, 수금의 삼일 예배와 오일 예배에 새벽 예배도 4 시 30 분이 정식 새벽 예배다. 전 교인이 함께 참석하는 '단일 예배'만 교회의 조직이다.
목회자는 이 예배를 인도하지만 어디까지는 '주로' 인도하는 것이지 목사만 인도자는 아니다. 목사가 없어도 공회는 교회다. 예배가 없으면 목사 1백 명이 모여도 우리는 교회라 하지 않는다. 주교는 어린 학생의 전도를 위해 운영을 하지만 주교가 없다고 그 교회가 장애 되는 것은 아니다. 중고교 학생을 따로 모은 중간반도 중고교 학생들이 한 때 갑자기 많이 모이면 설치 할 수도 있지만 공회 교회의 기본은 아니다. 신발이 없다고 장애자라 하지는 않는다. 손가락이 하나 없으면 불편하여 장애자라 한다. 그래도 사람으로 계산한다. 머리가 없으면? 사람으로 치지 않는다. 주교나 중간반은 손가락이거나 신발이지 이 것이 없다고 사람으로 치지 않는 머리 또는 몸통으로는 간주하지 않는다.
(조직의 단순성)
주일을 중심으로 한 주간을 지낸다. 주일은 오전과 오후 최소한 2 회는 출석하는 것이 신앙에 유익하다 하여 공회 교회의 주일 예배는 오전 오후 2 회다. 택일이 아니다. 신앙이 없어 1 회 출석하는 것은 그 교인의 신앙 수준이고 형편일 뿐이다. 교회는 주일에 오전 오후 2 회로 주일을 지킨다. 평일에는 수금의 삼일과 오일 예배로 그렇게 한다. 매일은 새벽 예배다. 한 마디로 전 교인이 참석할 예배는 1 가지다. 전도회도 주교도 중간반도 그 어떤 모임도 꼭 필요하면 설치하고 운용을 한다. 그러나 가장 기본은 모든 교인은 1 회 예배로 모이고 그 예배 모임이 교회라는 조직의 중심이며 전부며 필수다.
감당 못할 숫자가 밀려 오거나, 정말 불가피하게 운용을 해야 할 때는 뭐든지 한다. 그러나 조직과 운용은 그 기간도 그 숫자도 그 모든 것도 최소화로 유지한다. 생명이란 단순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돌아 보면 공회만큼 단순하면서 잘 운용 된 곳은 별로 없어 보인다. 김현봉의 아현교회 정도는 우리와 비슷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