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원 높은 사랑 : 에덴보다 이후의 사랑이 크다.
담당a
0
8
2022.09.02 08:58
(연단의 사랑)
신학의 최종 논점은 늘 존재론이지 싶다. 하나님은 누구시며 우리는 누군가? 세상은 무엇이며 영계는 실존인가? 이런 문제다.
존재론과 맞물리면서 바로 이어 지는 문제는, 왜 불택자와 지옥을 만들었으며 사랑의 하나님이 왜 매를 드는가? 늘 논란이다.
간단히.. 실력 있는 부모라면 밥을 주고 옷을 입히는 사랑보다 글을 가르치고 언행을 다듬는 사랑이 더 힘이 들고 큰 사랑이다.
그보다 큰 사랑은 매를 들고 밥을 굶기면서까지 인격자를 만드려고 혹독한 시련을 준다면 부모가 주는 제일 큰 사랑일 듯하다.
사람은 값싼 동정심이나 인정 사정 때문에 자녀를 잘 다듬어 내지 못한다. 혹 그렇게 만들어 냈다면 체질적으로 냉정할 듯하다.
하나님은 정확무오한 완전자다. 사랑으로도 완전하고 우리를 만들어 가는 목표 달성에도 완전하다. 원하는 대로 만들어 낸다.
이 순간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들은 이 면을 기억하면 좋겠다. 견디기 어려운 과정에 있다면 더욱 생각해야 할 사안이다.
(연단의 정도)
하나님의 연단은 크게 2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사명을 크게 맡길 모세나 다윗이나 요셉에 대한 연단은 정말 혹독했다.
반면에 아합이나 히스기야나 게하시 같은 인물은 맡길 사명보다는 사람을 만들기 위해 강한 매를 들었다. 더욱 혹독했다.
사람을 만들기 위해 매를 드는 경우는 그 연단의 내용이나 강도를 짐작해 볼 수는 있다. 다윗을 고칠 때 아주 강하게 했다.
밧세바 문제가 있었다. 이 면을 고치기 위해 장남 암논의 패륜에 압살롬의 반역과 패륜에 아도니야의 망극한 일이 있었다.
다윗의 이성 문제를 고치기 위해 자녀들의 이성 문제가 있었다. 사람을 만들 때 징계나 시련의 내용은 이렇게 연관이 있다.
그리고 어느 정도의 시련이 갈 것인가? 그 것은 그 사람이 얼마나 강한가 또는 강퍅한가에 달려 있다. 억세면 매가 세진다.
가루 반죽으로 과자를 만들 때는 사람의 부드러운 손 끝으로 거의 해결한다. 도구가 필요해도 가볍고 얇은 것이면 충분하다.
나무로 인형을 만들거나 가구를 만들게 되면 날카로운 칼을 쓴다. 망치 대패도 사용 된다. 더 강하면 더 강하게 몰아 붙인다.
철 기계나 도구를 만들면 기본적으로 쇠를 녹일 수 있는 1500도 이상의 용광로까지 동원 된다. 때려 치는 소리가 끔찍하다.
쇠도 구리처럼 무르면 용광로의 온도도 대폭 낮아 진다. 미리 굽신거리는데 굳이 미운 마음으로 죽으라고 때리지는 않는다.
로켓에 사용할 부품이면 무슨 잘못이 있어서가 아니라 너무 혹독하게 만들 듯하다. 이 것은 그 위치와 사명이 특별해서다.
고장 난 차량을 고치며 어느 부품이 문제인지 어느 정도 문제인지를 보면 기술자가 어느 정도로 손을 볼런지 짐작이 된다.
강하게 버틸수록 많이 맞고 세게 맞고 처참해 진다. 백 목사님은 낙엽 구르는 소리만 들어도 민감하게 놀라며 돌아 봤다.
교회에, 가족에, 주변에, 교인에게, 또는 시대에 무슨 일이라 해도 늘 자신과 이 복음을 향한 주님의 시선을 읽으며 조심했다.
신앙의 노선, 그 선택에 관한 문제를 두고 하나님이 매를 들거나 또는 버려 둘 때는 그 분량과 참상이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신학의 최종 논점은 늘 존재론이지 싶다. 하나님은 누구시며 우리는 누군가? 세상은 무엇이며 영계는 실존인가? 이런 문제다.
존재론과 맞물리면서 바로 이어 지는 문제는, 왜 불택자와 지옥을 만들었으며 사랑의 하나님이 왜 매를 드는가? 늘 논란이다.
간단히.. 실력 있는 부모라면 밥을 주고 옷을 입히는 사랑보다 글을 가르치고 언행을 다듬는 사랑이 더 힘이 들고 큰 사랑이다.
그보다 큰 사랑은 매를 들고 밥을 굶기면서까지 인격자를 만드려고 혹독한 시련을 준다면 부모가 주는 제일 큰 사랑일 듯하다.
사람은 값싼 동정심이나 인정 사정 때문에 자녀를 잘 다듬어 내지 못한다. 혹 그렇게 만들어 냈다면 체질적으로 냉정할 듯하다.
하나님은 정확무오한 완전자다. 사랑으로도 완전하고 우리를 만들어 가는 목표 달성에도 완전하다. 원하는 대로 만들어 낸다.
이 순간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들은 이 면을 기억하면 좋겠다. 견디기 어려운 과정에 있다면 더욱 생각해야 할 사안이다.
(연단의 정도)
하나님의 연단은 크게 2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사명을 크게 맡길 모세나 다윗이나 요셉에 대한 연단은 정말 혹독했다.
반면에 아합이나 히스기야나 게하시 같은 인물은 맡길 사명보다는 사람을 만들기 위해 강한 매를 들었다. 더욱 혹독했다.
사람을 만들기 위해 매를 드는 경우는 그 연단의 내용이나 강도를 짐작해 볼 수는 있다. 다윗을 고칠 때 아주 강하게 했다.
밧세바 문제가 있었다. 이 면을 고치기 위해 장남 암논의 패륜에 압살롬의 반역과 패륜에 아도니야의 망극한 일이 있었다.
다윗의 이성 문제를 고치기 위해 자녀들의 이성 문제가 있었다. 사람을 만들 때 징계나 시련의 내용은 이렇게 연관이 있다.
그리고 어느 정도의 시련이 갈 것인가? 그 것은 그 사람이 얼마나 강한가 또는 강퍅한가에 달려 있다. 억세면 매가 세진다.
가루 반죽으로 과자를 만들 때는 사람의 부드러운 손 끝으로 거의 해결한다. 도구가 필요해도 가볍고 얇은 것이면 충분하다.
나무로 인형을 만들거나 가구를 만들게 되면 날카로운 칼을 쓴다. 망치 대패도 사용 된다. 더 강하면 더 강하게 몰아 붙인다.
철 기계나 도구를 만들면 기본적으로 쇠를 녹일 수 있는 1500도 이상의 용광로까지 동원 된다. 때려 치는 소리가 끔찍하다.
쇠도 구리처럼 무르면 용광로의 온도도 대폭 낮아 진다. 미리 굽신거리는데 굳이 미운 마음으로 죽으라고 때리지는 않는다.
로켓에 사용할 부품이면 무슨 잘못이 있어서가 아니라 너무 혹독하게 만들 듯하다. 이 것은 그 위치와 사명이 특별해서다.
고장 난 차량을 고치며 어느 부품이 문제인지 어느 정도 문제인지를 보면 기술자가 어느 정도로 손을 볼런지 짐작이 된다.
강하게 버틸수록 많이 맞고 세게 맞고 처참해 진다. 백 목사님은 낙엽 구르는 소리만 들어도 민감하게 놀라며 돌아 봤다.
교회에, 가족에, 주변에, 교인에게, 또는 시대에 무슨 일이라 해도 늘 자신과 이 복음을 향한 주님의 시선을 읽으며 조심했다.
신앙의 노선, 그 선택에 관한 문제를 두고 하나님이 매를 들거나 또는 버려 둘 때는 그 분량과 참상이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