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남북조가 걸어 간 모습에서 본 오늘, 그 해결

남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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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판에는 이 홈에 올려진 글 중에 이곳에서 따로 소개하고 싶은 글도 포함됩니다. 

이스라엘의 남북조가 걸어 간 모습에서 본 오늘, 그 해결

담당 0 7
(열왕기상을 읽는 법)
* 공회로 읽어 보는 다윗과 솔로몬
다윗이 하나님의 나라를 절정까지 끌어 올렸다. 공회의 70년대와 같다. 솔로몬은 다윗의 준비 위에 왕이 되고 이스라엘은 절정의 시기를 갖는다. 백향목이 뽕나무처럼 많고, 은을 돌처럼 흔하게 여겼디고 했다. 공회의 80년대를 돌아 보면 참으로 그러했다. 성경에 기록으로나 존재할 만한 일화와 복이 소복했다. 이 시기가 백 목사님의 생전이고 서부교회가 예루살렘으로 공회가 온 이스라엘 나라로 보면 딱 맞아 진다. 어느 교단 어느 교회도 성경의 기록으로 들여다 보면 다소의 차이는 있고 종류의 차이는 있으나 성경의 기록이 해당 되지 않는 신앙의 세계란 없다. 이 곳은 백영희목회 연구소이므로 이 노선을 기준으로 돌아 볼 뿐이지 이 곳이 그러니 다른 곳은 그러지 않았다는 말은 아니다. 반론이나 훼방이 제기 될 때를 대비하여 가끔 사족처럼 보이는 토를 달아 놓는다. 불행한 사람이 지뢰를 밟을까 싶어 지뢰 표시를 하는 셈이다.

* 80년대에 발생한 공회의 흑역사
한 교단이나 한 교회에 한 사람이 다윗이 되고, 다음 사람이 솔로몬처럼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신약은 시공을 초월하여 전개 되는 신령한 신앙의 세계여서 전개의 방식은 다를 수 있다. 공회 역사가 70년대를 다윗처럼 80년대를 바르고 복 된 솔로몬의 시대로 이어 질 때 공회 내에서는 이미 솔로몬이 실수한 노선이 만들어 지고 있었다. 흔히 목사님 사후에 문제가 생겼다고 하지만 아무리 늦게 잡아도 80년대가 시작 되면서 미국에서 돌아 온 백태영 송용조 서영호의 열기는 솔로몬 후기에 발생하는 솔로몬의 잘못과 이를 기회 삼아 출발하던 여로보암의 노선들이 공회 안에 확고하게 자리를 잡는다.

어디 꼭 80년대 초에 귀국한 분들의 성향 때문이겠는가? 모두의 속에 들어 있는 옛사람이 결집하고 있었으니 남 탓하는 것은 옳지 않다. 드러 나는 흐름으로 설명하며 오늘 우리 내부를 보는 것이다. 공회의 절정기와 그 절정기를 마련하는 과정에는 혹독하다 할 정도로 서부교회와 전국의 공회 교회들은 타 교단과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전도를 했고 심방을 했고 집회를 다녔고 성경 읽기와 주일 지키기에다 교회가 어디 사진을 찍거나 예배 외에 따라 어디서 만나고 다닌다는 것은 고3 수험 준비생이 시내 뒷골목을 배회하는 정도로 여겼다. 이렇게 지나온 세월이 쌓이다 보니 서부교회와 공회의 발전과 신앙에 좋은 일은 넘치고 있었다. 바로 이 틈을 비집고 들어 온 귀신은 '그런데 이 정도로 했고 또 실적이 올라 갔다면 야유회를 가든 관광을 하든 식사 한 번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런 생각을 던져 넣었다. 공회 외의 교회는 이미 그런 분위기가 대세가 되었을 때니 주변과 접하며 그런 것에 눈을 뜨는 이들이 있었다.

공회의 충성과 신앙에다 교계의 좋아 보이는 그런 모임이나 기회를 조금만 허락하면 그림 같이 좋을 듯했다. 1987년부터 탈퇴하는 교회들과 1989년 이후 서울공회 대구공회 부산공회2 부산공회1이 되는 순서에 따라 이런 면은 세월 속에 타고 들어 갔다. 이제 적어도 20여 년에 많게는 30 년을 넘겨 버렸으니 사실 자체를 가지고는 논란할 것이 없을 듯하다. 연구소가 운영하는 이 곳의 교회들은 아직 그렇게 해 본 적이 없다. 아주 사소해 보이나 이런 틈에 비집고 들어 오는 운동을 그냥 두면 둑에 새는 물과 같아서 댐이 무너 지고 쌓아 둔 것이 사라 진다. 마음껏 해도 되는 세상인데도 필사적으로 틀어 막고 있는 것은 그 시작은 별 것이 아니나 그 뒷감당이 문제가 되어 그렇다.


(북조 이스라엘과 남조 유다)
열왕기하로 들어 가면 이제 남북은 각각 자기 식대로 달려 간다. 북조 이스라엘은 12 개 지파 중에 10 개 지파가 솔로몬 직후에 공회를 따로 만들었다. 남쪽과 비슷해 보이지만 핵심 곳곳은 풀어 놓았다. 아주 다 풀어 버린 곳은 서울공회다. 하나님의 나라에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필사적으로 지킬 것을 지키자는 쪽이 대구공회다. 문제는 여로보암을 따라 일단 첫 걸음을 떼 버렸다. 1 년쯤 지켜 보면 환하게 알 수가 있었다. 몇 년이 흐른 뒤에는 모를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미 조직이 생겼고 이미 굴러 가는 관성에 붙들려 마음은 있어도 중단하거나 돌아 서는 것은 인간으로서는 어렵다. 열왕기하가 시작 되며 북조에는 공회가 그토록 막았던 통일찬송가부터 성전과 제사와 나라의 운영에 이르기까지 여로보암의 길을 벗어 나지는 못했다. 남조 유다라고 별로 달라 보이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명확하게 다른 것이 몇 가지 있다. 북조는 계통에서 벗어 났다. 심지어 엘리야와 엘리사가 북조 안에 있었다. 지금도 대구공회 안에는 그런 눈 밝은 선지자가 보인다. 그러나 엘리야 엘리사의 활동과 수고가 북조를 구하지는 못했다. 왕하 17장에 이르면 여로보함을 머리로 삼고 갈라 나온 공회 운동은 아주 세상 속에 편입이 되어 버린다.

남조 때문에 실은 적어 보고 있다. 남조는 다윗의 혈통을 굳게 지키며 단일 왕통으로 내려 왔다. 그런데 솔로몬으로부터 어떻게 하여 대대손손 '산당에 분향'만은 없애지를 않고 있는지 참 안타깝다. 이왕 북조가 나가고 남조만 남았다면 남조만이라도 철저히 성전 생활에 애착을 두면 좋겠는데 성전 안에 둔 보물을 꺼집어 내서 세상에게 넘기는 경우, 성전의 물두멍에 옆판을 떼어 내고 위치를 바꾸는 경우, 심지어 제사의 절차나 진행에 합심기도? 교제시간? 신앙고백? 연합행사... 섞으려면 화끈하게 섞으야 효력이라도 제대로 본다. 대충 대충 찍어 바르다 보면 우선은 좋아 보이는데 나중에 한복도 아니고 양복도 아닌 개량한복이 그렇게 강행을 하려다 저절로 사라 지듯, 한옥도 아니고 양옥도 아닌 것을 추진하다 석굴암과 같은 세계적인 유품을 망쳐 놓아 버리듯 된다. 아주 고도의 실력자들은 지난 날에 변형을 통해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 세계가 환호하고 모두가 인정하는 것을 만들어 놓기도 한다. 그러나 신앙의 세계에서는 칼빈이나 백영희 정도일 때 그런 경우가 나오지 우리 정도의 목수가 손을 보면 엉망이 되어 버린다.



(공회의 제도, 예배, 신앙)
선교 초기 선교사들이 만든 찬송가, 1백 년이 되어도 이 찬송에 고정하는 것이 만사 좋지 않을까? 세월이 갈수록 더욱 강하게 느낀다. 1983년에 교계가 통일 찬송가를 만드는 것은 싫었다. 그렇다고 공회 찬송을 따로 만드는 것은 목사님 때문에 사용을 했지 마음에 와 닿지는 않았다. 그런데 세월이 갈수록 감사했고 이해가 되었고 지금은 더 애착이 간다. 가사의 정확성, 신앙성, 은혜면은 말할 것도 없고 두고 갈 땅 위에 음악적인 면으로 봐도 공회 찬송은 그 수준이 너무 높다. 통일 찬송가는 개악이며 개차반이다. 통일 찬송가 뒤에 나온 것은 더욱 그렇다. 예배의 모습도 진행도 교회에 따라 조금씩 달리 할 수는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는 4시 30분의 새벽 예배, 10시와 2시의 주일 예배, 저녁 7시의 삼일 오일 예배. 5월과 8월의 첫 주일 지난 첫 월요일부터 시작하는 집회에 이르기까지 어디 하나 귀하지 않은 것이 없다. 그리고 그렇게 유지하는 곳이 거의 없어 지다 보니 이제는 공회의 예배 모습과 진행은 그 자체만 가지고도 국보처럼 될 상황이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국보라니 이 얼마나 귀한가.

통성기도는 기도의 외부를 표현했고, 합심기도는 기도의 내면을 표시했다. 선교사들의 국어 표현이 서툴러 표현을 실수한 것이 아니다. 은혜를 받아 성령에 붙들리고 만들어 놓은 것이다. 불편하고 맞지 않는다 해도 붙들고 잘 사용하는 것이 지혜다. 이런 곳을 공회라 한다. 이런 곳을 공회라 한다면 부산공회들까지도 성전의 곳곳을 너무 손을 대 버렸다. 지금은 더 나아 질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 같다. 알고 보면 거의 전부가 세상 나라 것이 북조 이스라엘로 먼저 들어 가고, 이후 남조 유다로 흘러 들어 온 것이다. 이런 것을 깨끗하게 청소를 해 버린다면 그 것이 진정한 '청교도' 신앙이다. 세계 교회사의 청교도 운동은 우리와 거리가 멀다. 공회 우리 수준은 너무 미천해서 청교도의 파악도 제대로 못한다. 그러나 우리 공회 내에 있었던 89년대의 복이 흐려 지고 흩어 진 것을 원래대로 잘 보존한다면 공회 내 청교도 신앙이 될 듯하다. 해 보다 안 되니 다시 해 보는 것을 요즘 신보수주의, 신청교도주의 등으로 부른다. 우리는 새로 할 것도 없이 해 온 그대로 나가면 된다. 몇 사람이나 뜻을 모으고 함께 나갈 수 있을까? 주님 오실 때 헤아리면 몇이나 남아 있을까? 그들이 바로 남은 자 또는 남은 자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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