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적 인도(9) - 20대의 주교 대형 버스 : 발전인가 후퇴인가

남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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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판에는 이 홈에 올려진 글 중에 이곳에서 따로 소개하고 싶은 글도 포함됩니다. 

시대적 인도(9) - 20대의 주교 대형 버스 : 발전인가 후퇴인가

담당 0 17
(발로 오는 교회, 차에 앉아 오는 교회)
공회의 교회 출석은 예배당의 생활 거리에 사는 것이 원칙이다. 차가 생활화 되어 거리는 다소 달라 졌으나 참 중요한 문제다.
생활 거리의 의미는 폭우 폭설 태풍의 비상 사태가 벌어 져도 갈 수 있고 차량은 새벽 4시 30분에 도착할 수 있는 안전 거리다.
서부주교의 활동은 당시로서 부산의 서 쪽 끝인 서부교회와 그 반대인 해운대까지였고 당시 시내 버스로는 1시간 거리였다.
1시간 거리는 지나 친 면도 있으나 그 곳에서도 온다면 와야 하고 올 수 있는 사정이 있다. 일반적으로는 30분 거리 정도였다.

70년대 교회 주변 학교는 30분 거리에 초등학교 8개, 애매한 곳 4개, 작은 학교 2천 명, 큰 학교 3천, 서부주교의 독무대였다.
1970년의 1천여 명, 1975년까지 2천 여 명, 이후 해마다 500 명에서 1천 명씩 올라 가며 주 평균 8천 명을 향해 올라만 갔다.
걸어서 30 분 거리에 초등학생만 1만 명이 있다면 초등 이전까지 포함하면 서부주교의 '걸어서 오는 주교' 범위는 충분했다.
반사의 활동 거리가 넓어 지면서 차량을 이용한 30분이 되었다. 영도 감천 장림이 포함 되자 걷는 주교가 차량 주교가 됐다.


걸어서 오면 '전도'다. 차량 30분의 거리가 되면 이 학생들은 '선교' 대상이 된다. 우리는 전도 때문에 선교를 피하는 편이다.
선교가 나빠 그런 것이 아니라 역량이 부족하니 생활 거리를 먼저 전도하기 때문이다. 서부주교는 담을 넘어 가고 있었다.
부산의 다른 교회들이 손을 놓고 있으니 대신 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재촉하고 일깨워 그들도 함께 동참하니 좋았다.
반면에 일단 전도하고 데려 온 학생을 평생 책임 진다는 반사의 제1원칙에서 본다면 차량 거리 학생은 평생 계속이 어렵다.

주변의 학생들은 서부주교를 다녀 보지 않은 학생이 거의 없고 세월 속에 출석할 학생들이 확정이 되자 추가 전도가 막혔다.
자연스럽게 주교는 멀리서 데려 오는 학생들의 신규 지역을 선정하고 임대 버스를 투입하여 한꺼번에 학생들을 데려 왔다.
20여 대 넘는 대형버스가 동원됐다. 80년대가 되면서 부산의 제조업체들은 출퇴근 버스를 운용했고 휴일 사용이 가능했다.
정원 규정도 없었고 당시는 회사가 차를 제공한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을 때다. 주교의 운행은 버스들로서는 대환영이다.

70년대 서부주교는 그 많은 학생을 데려 오면서 교회는 단 1대의 차량이 없었다. 업무용 차량도 교인 수송 차량도 없었다.
80년대가 되자 주교생 대부분이 시내버스와 택시라는 대중 교통을 이용했고 이제 교회가 수십 대의 차량을 집중 활용했다.
걸어서 오는 교회의 원칙이 무너 지고 차를 타고 오는 주교가 되었다. 물론 이 때도 장년반은 여전히 거의 걸어서 다녔다.
서부교회 일대는 서부 교인으로 가득 찼다. 장년반은 걸어서 오는 교회 주변, 주일학생은 차를 타고 오는 먼 곳의 학생들...

이런 현상을 좋게 표현하면 전도에서 선교로, 한 곳의 선교를 부산 전역으로 다변화 한 것이다. 타 교회는 자랑할 일이다.
해마다 주교를 졸업하고 장년반에 넘겨 진 명단은 1,200여 명이다. 만일 이들이 생활 거리에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쉽게도 주교 때는 반사를 따라 30 분 거리 정도는 쉽게 출석을 했으나 중학교에 들어 가는 순간 학교 공부에 붙들린다.
잘 기른 학생들이 중학교를 입학하면 교회를 중단하거나 주변 교회로 출석한다. 덕분에 부산 전역의 교회들은 좋아했다.

실제 주변 교회를 다님 직했던 학생들이 주변 교회가 손을 놓고 있어서 서부교회로 온 학생들이 너무 많았다. 대부분이다.
신앙 생활은 할 수 있고 또는 해야 하는데 학생도 부모도 초등학교 때는 공부에 매진하는 분위기가 없어 멀리까지 보냈다.
중학교를 들어 간다 해서 공부를 모두가 하는 것은 아니나 입학 초기에 분위기라는 것이 있다. 또 아이들도 커지고 있었다.
붙들기가 애매하게 되는 중학교, 초등학교와 다른 학습 부담, 부모도 오랫동안 허락을 했으나 이제 주변에 보내겠다 한다.

서부교인의 인식은 어느 교회나 구원은 있지만 서부교회에 대한 소속의 가치가 특별했으니 서부교회만 사실 교회였다.
그렇다고 부모들에게 그렇게 말을 할 수는 없다. 주교 내내 참으로 잘 기렀고 부모까지 협조를 하다 중간에 사라진 학생..
이들을 위해 사실 반사는 먼 거리에 그렇게 수고했고 훗날의 신앙을 기대했으나 그 주변 교회로 넘기는 마음은 착잡했다.
그 때는 안타까웠지만 그들이 훗날 교계 곳곳에서 각 교파와 교회의 중심에서 충성하도록 인도하시는 은혜는 몰랐었다.


1998년부터 이 사이트를 운영하게 되자 전국 곳곳의 교단과 교회 안에서 이 노선적 신앙으로 활동하는 분들을 알게 됐다.
그 곳에서 어느 위치에 있든지 서부주교와 중간반 시절 때문에 주변에서 일반 신앙 그 이상이라는 평가는 받는 듯하다.
공회가 너무 엄하여 탈퇴한 교회도 많은데 넓게 쉽게 믿으려 나갔지만 그들 주변에서는 대단하다는 평가를 받는 것과 같다.
지금 이 글은, 걸어서 오는 주교를 고수했다면 단기간에는 손실이 많아도 장기적으로 교회는 너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다.

그런데 서부교회만을 기준으로 본다면 차량으로 오는 출석수를 포기하고 걸어 오는 학생을 중심으로 간 것이 나았겠지만
더 큰 면으로 보면 마치 주교의 방향을 차량 거리까지 포함하다 교회 자체가 손해 본 대신 한국 교회 전체로 보면 유익이다.
한국 교계의 지역 별 신앙을 보면 부산은 확실하게 교계의 보수 정통의 본산이다. 공회가 아니라 해도 고신과 재건이 있다.
부산의 전반적 성향도 그렇다. 현재 보수 정통 교회의 교계적 최고 원로들을 살펴 보면 부산을 거친 경우가 확실하게 많다.

한국 교회의 중심부 부산에서 어린 시절 서부교회를 다녀 보지 않은 경우가 없거나 최소한 주변에서 지켜 보게 한 주교다.
이 의미가 그 때는 이렇게 중하게 될 줄 몰랐다. 인간의 방법론을 넘어 선 신령한 분이었으니 당시 성령으로 결정을 했고
오늘 돌아 보니 그 때 서부교회만을 중심으로 볼 때 차량 거리의 전도가 손해처럼 느꼈으나 결국 더 큰 면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 문제를 가지고 주일이 없어 진 오늘 이제 교회와 예배까지 없어 지는 상태에서 어떤 면을 봐야 할 것인가.

오늘은 오늘 걸어 갈 길을 걸어 갈 수 있는 데까지 걸어 가는 것이 신앙의 원칙이고, 이 것이 공회의 한결 같은 신앙이다.
그런데 오늘 보면 비록 죄는 아니나 분명히 문제가 있어 보이는 결정을 할 때가 있다. 왜 그랬냐는 반론을 받는 수가 많다.
백 목사님의 평생을 연구해 보면 그의 모든 결정과 걸음에도 흠과 점은 있지만 크게 보면, 그리고 거의 전부는 옳았었다.
인간으로서는 그렇게 될 수가 없다. 그가 그렇게 매 달린 주님, 그 주님의 뜻을 찾으려 전력한 그 결과 주님이 인도를 했다.

그가 옳은 결정을 한 것은 옳기 때문에 옳다고 입증이 되었다. 주교의 학년과 반의 칸막이를 없앤 것이 바로 그런 것이다.
그가 결정한 것 중에 가장 가깝게 모셨다는 분들이 그의 실책이라는 부분도 적지 않다. 그런데 세월 속에 다시 보니 옳았다.
비판한 사람들이 하나만 알았고 둘과 셋과 그 이상을 몰랐던 것이다. 그렇다면 백영희 찬양을 위해 적고 있는 글일까?
그가 옳게 한 것은 옳았다고 하는 것이 냉정한 평가다. 그 옳은 것이 너무 많았다면 너무 많았다고 말을 해야 양심적이다.

그의 실책이 좋은 결과를 가져 왔다면 그 당시 실책을 비판하지 않고 우연히 훗날 좋아 진 것까지 예찬을 해야 할까?
그의 실책이 훗날 좋아 졌다면 당연히 그의 지난 날은 비판을 받아야 하고 훗날 잘 된 것은 운이든 은혜라고 해야 한다.
그런데 그는 옳지 않게 보이는 것까지 늘 인간적으로 최선을 다해 계산과 판단까지 해 놓고 최종 시행은 주님께 맡겼다.
바로 이 점을 오늘 우리가 꼭 새겨 보자는 것이 이 글의 요점이다. 그는 자신이 급사하고 교회와 공회의 혼란을 알앟다.

그리고 대처를 철저히 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후계 결정인데도 다른 조처는 다 해 놓고도 후계는 발표하지 않았다.
이 바람에 누구도 누구도 또 누구도 자기가 후계자라고 평생 자랑하고 누구는 후계에 올려 주지 않는다고 고소도 했다.
그러나 목사님은 자신의 최종 순간 후계자를 마음에 두고는 있었으나 끝 내 발표하지 않았다. 오히려 버린 듯 조처했다.
그 버린 듯 조처한 것은 그가 후계자면 주님이 들어 올릴 것이고 목사님이 임명하면 인간적 도움이 더해 지기 때문이다.


주일은 없어 졌고, 교회와 예배가 지구의 기후 재앙보다 훨씬 빠르게 전개 되어 현재 상황은 7 년 대환란 중이라 보인다.
오늘의 주일, 오늘의 교회, 오늘의 예배를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공회는 명확히 본질을 파악하고 있어 문제가 별 없다.
그런데 노선과 교리와 신앙의 사리와 판단으로 결정하고 대처하는 것은 이 번 코로나 대처처럼 하등 어려울 것이 없다.
문제는 주님과 평생을 동행한 목사님은 매사를 결정할 때 주님께 물어 시행했으나 오늘 우리는 이런 수준이 아니라는 것이다.
공회 2022.08.22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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