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적 인도(6) - 사회 발전과 국가 정책 : 과외 금지, 만화 방영의 파괴력

남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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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판에는 이 홈에 올려진 글 중에 이곳에서 따로 소개하고 싶은 글도 포함됩니다. 

시대적 인도(6) - 사회 발전과 국가 정책 : 과외 금지, 만화 방영의 파괴력

담당b 0 14
(80년대의 사회 발전, 오늘을 짐작케 한다.)
현장을 뛰어 본 사람들만 아는 문제다. 사회가 발달하면서 교회를 향해 던지는 각종 파편은 교회를 박해하던 때와 양상이 다르다. 고대 사회로부터 근대까지 이어 진 박해의 역사는 교회의 활동을 우선 위축을 시킨다. 로마 제국이나 천주교나 공산 국가의 사례를 보면 뿌리를 다 뽑아 낸 듯이 보인다. 그러나 돌아 서면 불길은 더욱 거세게 타오른다. 비록 대부분의 교인은 넘어 지지만 곳곳에 순교나 고난의 피와 땀이 뿌려 지고 그 영양분을 품은 복음의 씨앗이 돌아 오는 봄을 맞으면 지난 날 핍박으로 잃었던 교세와 비교를 하기 어렵게 마구 우후죽순으로 돋아 난다. 그러나 신앙이 평안하고 사회가 배려를 하고 나면 우선 보이는 것은 교회의 발전처럼 보이는데 돌아 서면 신앙의 생명이 모두 죽어서 세상의 거름이 되고 복음의 씨는 움조차 나지 않는다.

1970년대의 군사 정권과 1980년대의 군사 정권은 대체로 비슷하게 보는 듯하다. 그렇지 않다. 차원과 방향이 아주 다르다. 70년대는 무조건 눌러 버렸다. 덕분에 우리 사회는 발전이 고도화 되며, 향후 선진국이 될 수 있는 여건을 잔뜩 품고 있었다. 1980년, 정권을 잡은 5공은 군사 독재지만 70년대의 따뜻한 국민의 눈총이 아니어서 불안했다. 같은 독재라도 70년대에는 대부분 국민이 우호적이고 기대에 찼고 눈에 보이는 발전 때문에 지지를 보냈다. 80년대가 되자 이미 배 고픔을 벗어 나 버렸다. 그리고 공부한 사람이 많아 지고 언론이 계속해서 주입을 시키는 바람에 이제 국민의 시선이 따가와 졌다. 정권을 위해 한 편으로는 억압을 하면서 다른 한 편으로는 칼라 방송의 시대를 펼쳐 놓았다. 정권을 잡은 1980년에 바로 시행에 들어 갔다. 그리고 1982년에 프로 야구와 프로 씨름을 연이어 출발 시키게 되고, 같은 해에 두발과 교복을 자율로 돌렸고, 밤 10시부터 새벽 4시까지 통행을 금지하던 제한도 풀어 버렸다. 대통령만 반대하지 않으면 온 사회는 흥청망청 놀며 좋은 시절을 즐겼다. 국민의 시선을 돌려 놓은 것이다.

박 대통령에 이어 다시 권총으로 정권을 잡은 5 공으로서는 생존의 비법이며 민족 중흥의 묘수였지만, 엉뚱하게 서부교회의 주일학교는 직격탄을 맞았다. 우선 사회의 발전? 문화 생활? 여가 활용? 이런 선진형 생활은 한국 교회의 뿌리를 흔들었지만 그 것은 아직 급하게 드러 나지 않았다. 그러나 서부교회처럼 주교생 거의 전부를 불신 가정에서 쓸어 담는 공회 주교에는 바로 치명적인 장애가 되었다.



(70년대가 완벽했던 이유)
전국의 도심과 대로는 발전을 거듭했으나 서울의 한 중심 어디라도 조금 높은 곳을 따라 뒷골목을 타면 판자촌에 아이들이 소복했다. 서울의 구도심만 서울이던 시절 서울의 중심은 청와대 앞에 정부종합청사였고 이 곳에 붙은 사직동교회가 공회 교회다. 그 교회 앞은 재벌 집과 대사관들이 있고 중산층 밀집 지역이나 그 교회 바로 등에 인왕산을 낀 사방의 판자촌은 부산의 어느 판자촌 못지 않았다. 사직동교회는 청와대 앞에서 1 천 명 주일학생을 유지했다. 하물며 부산에 몰린 전국 최대 피난민의 판자촌 일대인 서부교회 주변이었겠는가?

70년대에는 TV가 없던 시절이었다. 중산층은 한 집씩 들여 왔지만 판자촌에는 아예 없다. 돈이 없어 만화방에 들어 앉지도 못한다. 학교는 학생이 미어 터져 정규 수업을 마치면 돌려 보내기 바쁘다. 부모들은 모두 돈을 벌러 새벽부터 밤까지 집을 비운다. 아이들은 대책 없이 골목을 채우고 마냥 떠들고 논다. 여기에 반사 1 명이 들어 가면 모두가 쳐다 본다. 그리고 홀린 듯이 따라 온다. 주일 아침 6시면 부모들은 일터에 가느라 정신도 없다. 교회로 데려 간다고 골목을 설치고 다니면 뭐라도 배우면 좋다며 보낸다. 지나 가며 고맙다고 눈 인사만 한다. 그리고 주일 아침이어서 비록 가난해도 정성껏 차려 입은 옷을 보며 교회 선생님으로 대우한다. 어느 골목이든 그렇지 않은 가정도 있다. 그러나 이미 그 골목의 대세가 교회로 가는 아침 분위기에 떠들썩 하다. 일을 가는 부모가 막을 도리가 없다. 교회를 반대하는 가정도 아이들이 가려고 들면 묵인을 한다.



(80년대가 되자)
칼라 TV가 판자촌에까지 밀고 들어 왔다. 비 새는 판자촌에 살아도 칼라 TV 없는 가정은 거의 없었다. 많다 보니 꼭 없는 가정은 주변에 일 나간 친구 집에 가서 TV 앞에 앉아 있는다. 은하철도 999 라는 주일 아침 8시 만화영화는 모든 아읻르을 TV 화면 바로 앞에 붙들어 놓았다. 여자 아이들은 비교적 덜했다. 아주 어린 아이들은 별 상관이 없다. 그러나 남자 초등학생들을 화면에서 떼 내는 수는 없다. 교회의 장년반은 여반이 어느 교회나 2-3배다. 주교로 가면 그 비율이 1.5 : 1 정도였던 듯하다. 여학생이 많다. 그렇다고 압도적이지는 않다. TV 만화 영화가 방영이 되면서 100 명을 기준으로 3 - 40 여 명이 TV 화면에 붙들리는 상황이다. 화면이 끝 나면 뛰어 오는 아이들은 예배 중간에 들어 온다. 멀리서 오는 아이들은 거의 끝 날 때 들어 온다. 교회 가기가 애매하거나 싫증이 막 난 아이들은 화면에 붙들렸다가 그 것으로 끝이다.

부산의 모든 교회들이 다 함께 노력을 하게 된 것도 약간의 영향은 있었으나 큰 영향은 없었다. 인구의 변화와 도시의 주거 개발에 따라 판자촌이 집단 이주가 되는 등의 모두 비슷하게 영향을 미쳤다. 한 가지 요소라면 큰 문제가 없다. 인구의 변화, 판자촌의 집단 이주에 TV 만화 영화... 이 괴물은 만화 영화에 나오는 괴물처럼 주교로 데려 가려는 주인공인 반사를 통째로 삼킬 기세였다. 돌아 보면 주인공에게는 초인적인 무슨 파워가 있어 극적으로 해결이 되지만 서부주교에게는 시대적 사명로 인도하는 하나님의 인도 외에는 달리 찾아 볼 도리가 없다. 물론 당시의 반사들 눈에는 백 목사님의 지도만이 보였다.


(더해 지는 압박 : 반사들의 직업)
5공 정권은 총으로 잡고 온갖 스포츠나 칼라 TV 등으로 세상을 그들 원하는 대로 잘 끌어 가고 있었으나 대학은 교수들이 불을 질러 댔고 20세 초반의 학생들은 멋도 모르고 사방에 방화를 하고도 남는다. 이들을 압박하기 위해 정부는 대학생 과외 금지를 통해 돈 줄을 차단했고 대학 3학 년 진학을 위해 종합고사를 따로 설치하고 있었는데, 대학생이 거의 없는 서부교회는 이런 조처에 무풍인 줄 알았으나 의외로 주력 반사들 중에 과외로 생계를 유지하는 이들이 너무 많았다. 일일이 열거를 하지 못한다.

70년대의 과외는 판자집 수준을 막 벗어 나는 집에 방만 넓으면 빼곡하게 앉혀 놓고 주산을 가르치든 뭐든 할 수 있었다. 서부교회 반사는 기본적으로 저소득층이다. 대학은 가고 싶어도 교회의 분위기 때문에 어렵다. 당시는 정원이 적어 입시도 어려웠다. 수요 금요 예배까지 다 참석하다 보면 원래도 시원찮은 성적에 대학 입학은 실력으로도 들어 가기 어려웠다. 그런데 성실했고, 또 과외로 만나는 학생들을 교회로 데려 오기 좋으니 주교 전도에 아주 좋은 기회였다. 1980년 7월, 전격적으로 이 땅 위에 어떤 과외도 금지였고 5공 정권이 정권 차원에서 단속을 했기 때문에 하루 아침에 서부교회 반사들은 반사 생활에 가장 이상적인 과외 직업을 일시에 잃었다. 시간 많고, 학생들을 대규모로 접할 수 있고, 쉽게 돈을 벌어 교회에 충성할 수가 있었는데 이제 모두 노동이나 장사로 나가야 했다. 이 환경마저도 이 문제 하나였으면 대처가 가능했으나 앞에서 말한 여러 가지가 1980년과 1981년 사이에 한꺼번에 쏟아 졌다.



(경제의 비약적 발전)
한국의 경제는 1960년대에 기반을 쌓았다. 그러나 국민에게는 뉴스로만 듣지 생활 속에 별로 느끼지 못했다. 70년대가 되자 국가적 역량의 축척이 최소한 전국 도시민에게까지 영향을 미쳤다. 어떤 일이든 일당을 받고 일할 곳이 생겼다. 극빈층 가정의 부부가 일요일도 없이 일터로 가게 된 것이 주교 발전에 너무 좋은 분위기가 되었다. 80년대가 되니까 이제 매월 4주 중에 1, 3주는 쉬고 2, 4주는 출근을 하는 형태가 자리를 잡았다. 불신 가정의 아이들을 데려 오는데 부모가 주일 아침에 집을 지키는 것과 비우는 것은 엄청 나게 차이가 난다. 수십 명에서 1백여 명을 쓸어 담는 일을 아침 6시에서 8시 30분 사이에 번개처럼 해결해야 한다. 어린 아이, 가기 싫어서 눈치를 조금 보는 아이, TV 화면에 붙들린 아이가 섞인 상태에서 집집마다 손을 잡고 데려 나오려면 부모가 없을 때는 방문을 열어 젖히고 그냥 끌어 내면 되고, 또 이른 시간에는 집집마다 고함을 지르고 깨우면 되지만 부모가 있으면 부모의 협조 상태에 따라 달라 진다. 부모가 애매하거나 못 마땅한 집에는 조심해서 문을 노크해야 한다. 또 부모가 주일 아침에 멀리 교회를 가는 아이가 안스럽게 보이면 다음에 오라 한다.

70년대에 죽자껀 노력했고 80년대가 되니 이미 벌어 놓은 돈으로 월세가 전세로, 전세에서 아무리 작고 누추해도 자기 집을 마련하며, 판자촌에도 리모델링이 진행 되며 벽을 덧대거나 새는 지붕을 손 보는데 이 것이 주로 주일에 이루어 진다. 여기에다 대고 80년대가 되면서 2 주에 1 회를 쉬게 되니 그 날에는 아침에 목욕탕을 데려 가는 부모들이 부쩍 늘어 버렸다. 협조적인 가정은 일찍 갔다 오거나 아니면 나중에 아이가 오면 가겠다고 한다. 이렇게 되지 않는 가정이 섞인다. 그 숫자만큼 결석이 올라 가게 된다. 같은 판자촌이라 해도 부모에 따라 휴일의 사용이 달라 지는 경우가 있다. 쉬는 주일을 잡아 고향을 다녀 오거나 평소 미뤄 뒀던 출타가 있는 경우도 있다. 여기에 판자촌 극빈 가정이라도 아이들에게 어떻게 용돈이 쥐어 주면 막 생기기 시작한 1세대 게임기, 학교 앞의 문방구나 저 어디쯤 기계를 둔 곳을 찾는 아이들까지 생긴다. 집에서는 교회 간다고 나섰다가 받아 쥔 연보와 용돈을 더해서 1 시간쯤을 어디서 뭣을 하는지 일일이 찾겠는가? 반사를 하다 보면 불신 가정에서 주일까지 성수하며 자라는 학생들도 있다. 이들을 보면 사무엘과 다윗이 될 듯이 소망이 생긴다. 그렇지 않고 그냥 성실하게 나오는 학생들이 일반적이다. 반사의 노력으로만 오는 학생들, 이 학생들 때문에 반사의 노력은 거의 다 투자 된다. 발이 붙들리고 시간이 날아 간다. 그러나 오겠다는 학생 또는 올 수 있는 학생이 있다면 단 1 명이라도 놓칠 수는 없다.



(세상의 발전이 얼마나 위협인지..)
1970년대의 주교 환경은 세상이 주교를 마구 도와 줬다. 80년대가 되면서 세상이 먹고 살 만하고 뭔가 여유가 막 생기기 시작하자 오늘 보면 유치하나 당시로서는 천지가 개벽이 된 듯이 생활의 풍요로움의 맛에 첫 발을 딛고 '잘 살아 보세'가 아니라 '잘 살게 되었네'가 판자촌 밀집 골목까지 밀고 들어 왔고, 이제 막 먹고 살 만하게 되자 벌써 놀고 쓰는 일이 시작이 되었다. 1 년에 설날과 추석에만 가던 목욕탕을 한 달에 2 회씩을 가고, 진학을 못해서 골목에 처진 아이들을 한둘 움직이면 초등학교 동생들을 대거 몰아 오던 경우가 사라 지고 이제 졸업을 하면 전원 중학교를 진학하고, 진학에 누락 된 아이들은 대체로 이미 이탈 된 경우여서 소리 없이 사라 진다. 오늘과 비교하면 여전히 극빈층인데, 당시로 보면 세상 좋은 꼴을 드디어 맛을 보게 된 시절이 1980년대였다. 숫자를 맞추려 들 듯이 1979년 말에 갑자기 정권을 잡은 군부는 1980년이 되자 일반 국민이 요구도 하지 않고 오히려 어리둥절 할 만한 놀 거리를 쏟아 놓고 있었다.


그리고 서부주교는 박해만이 교회의 원수가 아니라 박해보다 더 무서운 1세대 괴물을 맞고 있었다. TV 만화 방송이라는 1 세대는 이후 각종 드라마와 주말과 야간 프로그램으로 발전을 하면서 이 나라 모든 교인의 머리와 시간을 소리 없이 장악을 해 버리게 된다. 게임처럼 1세대 놀거리가 공깃돌 놀이나 재기 차기를 막 넘어 선 수준인데 오늘은 예배당에 앉혀 놓아도 시선은 밑에 쥐고 있는 휴대폰에 팔리고 있다. 그 때는 실수로 빠지는 구멍이었으나 이제는 무저갱이다. 한 번 빠지면 다시는 헤어 나지를 못한다고 한다. 1백 년 전에 이 나라에 처음 온 선교사가 세계 다른 나라와 달리 이 나라 백성들만은 술과 담배로 가정과 자신을 파탄 내고 있어서 성경에도 없는 술 담배를 세례의 조건으로 설정했다. 오늘의 술 담배는 건강을 위해 알아서 절제 수준이 되고 있다. 오늘에 술 담배 금지는 게임 금지나 드라마 시청이나 커피 금지로 바뀔 때가 됐다. 교리적 노선적 금지는 상황에 따라 쉽게 결정하지는 못하나 천주교처럼 굳어 져 버리면 박물관 전시품에 지나지 않는다. 1백 년 전에 술 담배을 금지 시켜 이 나라 한국 교회를 깨끗하게 좋게 출발을 시켜 준 것이 청교도 후손인 선교사들의 공로라면, 오늘 우리는 게임과 커피와 드라마 시청처럼 그 자체는 죄가 아니지만 사람을 매달고 질주하는 오늘의 대표적 족쇄를 끊어 줘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교회는 생명의 운동으로 항상 발전을 하게 되고 그 과정에 늘 자신을 스스로 돌아 보고 고치며 나간다 라는 개혁주의 신앙을 구현하는 것일 듯하다.


나는 70년대의 완벽한 이상적 서부주교를 가지고 80년대와 비교를 하고 있다. 여기에 그치면 기념관의 시대 별 비교다.
나는 2020년대 오늘 우리는 19990년대와 달라 진 우리가 80년대를 헤치고 발전해 나간 백영희 노년처럼 될 수 있을지?

그 길을 찾기 위해 적어 보고 있다.
연구1 2022.08.23 18:25  
실명을 적기에는 민망하고, 서부 교회나 주교의 최고 지도자들의 집에 가면 판자집 비슷한데 공간은 넓다.
돌아 가신 분만 적어 본다. 안효일 집사님도 주산 과외를 했다. 힘도 있고 실력도 있었고 마구 끌어 모았다.
과외 금지는 원래 대입 제도와 동시에 대학생의 데모를 막기 위해 나온 것인데 우리는 직격탄을 맞게 됐다.
실력만 있으면 중학교만 나오고도, 명문고 학생들을 명문대에 진학 시켜 유명했다. 실력 중심이라 좋았다. 

서부교회식, 또는 서부주교 식은 학벌 외모 평판을 일단 떼 놓는다. 그리고 단 한 가지만 본다, 실제를 본다.
여러 여건 상 서부교회는 어느 교회와 비교해도 대학생의 숫자가 적었다. 아주 희귀했다. 막는 분위기였다.
타 교회의 주교 교사는 한 눈에 그냥 대학생이나 대졸이 주류다. 서부주교는 한 눈에 노동자 장사꾼이었다.
뭘 알고 가르쳐야 않을까? 성경과 신앙을 가르치는 데는 세상 공부가 아니라 반사의 신앙 자체만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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