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적 인도(3) - 교회와 예배가 없어 졌다 : 그 대책은?
담당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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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16 16:09
1970년대의 산업 발전과 함께 한국 교회에 주일이 사라 졌다. 주일은 돈을 사용하지 않고 공부와 일을 24 시간 차단한다.
1980년대가 되자 주일의 2 회 예배가 1 회로 줄고 그 1 회 예배를 1, 2, 3부로 쪼갰다. 예배 단일성은 소리 없이 사라 졌다.
주일은 신앙의 울타리고 예배는 주일과 7일의 기둥인데 담장이 걷혔고 기둥을 모두 뽑거나, 장대 한두 개로 받쳐 놓았다.
이렇게 되면 저절로 폐가가 되어 탈선 청소년이나 도둑 개 고양이의 소굴이 된다. 구약의 성전도 이렇게 되자 없애 버렸다.
산업 사회를 거쳐 사회가 고도로 발전하게 되자 주일과 예배의 기본을 다져 놓지 않은 한국 교회는 모조리 휩쓸려 버렸다.
교계가 먼저 휘둘리면 약간의 시차를 두고 공회들도 그렇게 된다. 그 다음에는 이 곳에도 쓰나미는 밀어 닥칠 수밖에 없다.
공회는 일제와 6.25의 점령과 해방 후 조국 안에서 발생한 별별 환란과 핍박이 휩쓸 때마다 생존했고 오히려 발전해 왔다.
이런 평화의 극단적인 상황에서 교회가 안으로부터 내려 앉는 상황을 심각히 인식하며 다시 공회적 대처를 살펴야 할 때다.
(공회 신앙이란)
기준에 따라 공회 신앙을 설명하려면 참 많다. 아마 거의 모든 사안에서 주변 모든 교회와 거의 다 다를 정도다. 물론 기준을 조금 넓게 잡아 버리면 우리는 전통의 정통 교회이므로 다를 것이 없다. 그런데 조금 내면을 들여다 보면 성격과 방향과 내용은 너무 다르다. 생물학적으로 '인간'이라 한다면 현재 거의 80 억에 이르는 인간들이 있다. 그 80 억을 시력 청력 지력 성격 행동 등으로 분류하면 한도 없이 달라 진다. 단 1 명도 같을 수는 없다. 그런데 춘향적인 절개를 여성의 기준으로 잡아 버린다면 현재 그런 여성은 80 억 중에 1 명이 있을지.. 없다 할 수도 없겠지만 있다고 단정하려면 주저 할 것이다. 공회를 설명하면서 공회는 다르다 라고 할 때마다 폭 넓은 이해와 다양한 기준을 늘 기억해 주기 바란다.
(지금의 연구 방향)
공회는 현장에 필요 없는 공리는 피한다. 그렇지만 그 언젠가 적용이 될 이치는 지나 치다 할 만큼 따진다. 미리 살펴 놓아야 대처가 되며 이 것이 실행이며 심은 대로 거두고 행한 대로 갚으시는 신앙의 세계를 알기 때문이다. 교회가 사라 지고 있다. 세계적 현상이다. 세계 교회는 선교도 해야 하나 이제는 선교보다 기존 교회를 지켜 내는 것이 더 시급하다. 예배가 사라 지고 있다. 예배의 감격을 추구하며 이 복잡한 2022 년에도 모든 교회에는 예배가 넘쳐 난다. 그러나 분석해 보면 예배는 급격히 없어 지고 있다. 주일이 없어 진 지는 오래 되었다. 주일이라는 울타리를 걷어 버리면 교회와 예배를 해체하는 것은 순식간이다. 무엇이 주일인가? 주일에 돈을 쓰지 않고 일과 공부를 하지 않으며 개인 일정을 잡지 않는 것이 초보적 주일이다. 1 년이고 10 년이고 그냥 평생 그렇게 지키는 것은 좋은 신앙이라기 보다 신앙의 초보라도 주일을 두고 지켜야 한다. 예배라는 것은 한 교회가 가장 건전했을 때 꼭 필요하다고 정해 놓은 예배를 고수하는 것이다. 이런 일은 좋은 교회라거나 훌륭한 교회로 표현할 정도는 아니고 교회라면 그냥 초보적으로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교회와 예배가 가속도로 사라 지는 상황이란, 인구의 소멸이나 일반 사회의 좋은 면들이 사라 지는 것과 같아서 먼저 사라 지는 곳도 있고 뒤에 사라 지는 곳도 있지만 일단 대세가 잡히고 나면 버텨 봐야 마침내 같은 신세가 된다. 다른 곳이 먼저 사라 지고 우리는 아직 여유가 있을 때, 이 때 근본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소리 없이 휩쓸려 간다. 자신도 그렇게 될 터인데 아직 자신은 괜찮다고 남을 비판하는 것, 이 것이 율법적 정죄가 되고 주변을 보면서 자기를 미리 단속하기 위해 살피고 따지고 노력한다면 율법적 정죄처럼 보이는데 실제로는 복음적 생명 운동이 된다.
(참고할 자료를 소개한다.)
어느 신학자가 모든 종교의 진행을 4 단계로 요약했다. 종교란 걸출한 한 인물이 시작하거나 중흥을 시킨다. 이 것이 1 단계이며 '인물'이 중심이 된다. 이 인물 때문에 사람들이 몰려 들면서 하나의 흐름이 보인다. 2 단계로서 '운동'이 나타 난다. 운동에서 그치면 쉽게 사라 진다. 그런데 그 운동을 가지고 하나의 시스템이 만들어 지면 체계적인 단체가 된다. 이 것은 3 단계로서 이제 자동 기계처럼 알아서 돌아 간다. 이 단계에서는 사람도 운동도 필요가 없다. 오히려 거추장스러울 수도 있다. 대기업, 역사성을 가진 연구소나 정당도 포함 된다. 문선명이 죽었으나 통일교가 유지 되고 있다면 통일교는 3 단계까지 진출했다는 뜻이 된다. 인물도 운동도 체계화도 모두 역사로만 남게 되면 4 단계인 '유물'이 된다. 유고는 유물로만 남아 있다.
2020년대 현재의 한국 교회를 두고 '열정적으로 참여하던 부흥회나 금요일마다 열심히 참석하던 구역예배, 한여름 무더위보다 뜨거웠던 여름성경학교와 여름 수련회 등이 오늘날 추억 속으로 사라져가고 있다. 여름성경학교만이 아니라 주일학교 자체가 50%의 교회에서 사라졌다고 보고되고 있다.'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금요일 밤마다 뜨거운 기도와 찬양으로 밤을 새우던 철야 기도회가 언젠가부터 심야 기도회로 바뀌고 이제는 특별한 교인들만 참여하는 특별기도회'로 변모하고 있다며 개탄하는 현직 목회자들이 있다. '주일 저녁이면 전 교인이 참석하여 찬양하고 말씀을 들으며 헌신을 다짐하던 저녁 예배가 오후 예배로 바뀌고 그마저도 절반은 참석하지 않는 분위기가 되더니 몇몇 대형교회가 앞서서 오후 예배를 폐지하면서부터 주일이면 새벽부터 밤까지 교회에서 함께 지내던 전통은 거의 사라져버렸다.'라는 위기감을 토로하고 있다.
합동의 최광희 박사님은 이런 현상을 두고 슬퍼하거나 더욱 헌신하라고 독려하는 방법이 아니라 근본적인 대처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 곳의 글을 조금이라도 읽어 본 분들이라면 이 곳은 어느 학자의 주장을 거의 소개하지 않는다. 최근 이 곳에서 너무 심각하게 느끼는 이야기를 우리와 같은 시대를 함께 하면서 우리의 마음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 적고 있어 실명으로 소개한다. 최 목사님은 한 단계가 그 다음 단계로 넘어 가는 시점을 '변곡점'이라 하고 그런 시점이 오기 전에 대처를 하라고 외친다. 전적 동감이다. 옛날을 노래하지 말고 빨리 파악하고 미리 준비하면서 대처하자는 뜻인데 공회는 이런 면을 마25장의 슬기로운 다섯 처녀로 늘 가르쳐 왔다.
(공회의 대처법)
공회는 1970년에 교역자 시무 신임투표를 제도화 했다. 오늘 가장 개혁적인 교회조차 여전히 시도를 하지 못하는데 공회는 교회가 발전만 하던 반 세기 이전에 교회를 망치는 것은 교역자이며 교인들이 차마 막아 설 수가 없으니 매 2년 4분의 1만 반대해도 목회자를 쫓아 내는 비밀 투표를 시행해 왔다. 인물이 운동을 하고 체계화로 나가면서 이제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나 공회는 시작하는 첫 순간이 '인물'이라는 1 단계에서부터 미리 대처를 한다. 만사 그렇게 하는 것이 공회다. 오히려 운동이란 저절로 따라 오는 것이지 만드려 하지 않는다. 3 단계의 체계화라는 것은 그 자체를 공회는 그 교회의 종말로 본다. 체계가 인물과 복음 운동을 삼키고 죽인다고 생각한다. 체계화라는 것을 '인물'이 시작한 '운동'을 계승하고 발전을 시킨다고 보는 것이 공회 외의 교회다. 공회는 4 단계를 죽은 교회로 보지 않고 3 단계를 골동품으로 본다. 그냥 유적으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살려고 노력하는 '인물'을 미리 꺾어 버리고, 그 인물로 인해서 일어 나는 '운동'을 꺼버린다고 본다.
그렇다면 현재 주일에 이어 교회와 예배가 급격하게 소멸하는 상황을 대처하려면 공회가 걸어 온 지난 날의 사례를 먼저 이런 면으로 살펴 봐야 하겠다. 과거 어떻게 대처를 했는지 살피다 보면 현재 우리가 심각하게 맞고 있는 '교회와 예배'의 소멸을 맞설 가능성을 찾아 볼 수 있지 않을까? '교회와 예배'에 관한한 공회는 지난 날 주일학교를 통해 분석해 보는 것이 가장 빠르고 쉽다.
1980년대가 되자 주일의 2 회 예배가 1 회로 줄고 그 1 회 예배를 1, 2, 3부로 쪼갰다. 예배 단일성은 소리 없이 사라 졌다.
주일은 신앙의 울타리고 예배는 주일과 7일의 기둥인데 담장이 걷혔고 기둥을 모두 뽑거나, 장대 한두 개로 받쳐 놓았다.
이렇게 되면 저절로 폐가가 되어 탈선 청소년이나 도둑 개 고양이의 소굴이 된다. 구약의 성전도 이렇게 되자 없애 버렸다.
산업 사회를 거쳐 사회가 고도로 발전하게 되자 주일과 예배의 기본을 다져 놓지 않은 한국 교회는 모조리 휩쓸려 버렸다.
교계가 먼저 휘둘리면 약간의 시차를 두고 공회들도 그렇게 된다. 그 다음에는 이 곳에도 쓰나미는 밀어 닥칠 수밖에 없다.
공회는 일제와 6.25의 점령과 해방 후 조국 안에서 발생한 별별 환란과 핍박이 휩쓸 때마다 생존했고 오히려 발전해 왔다.
이런 평화의 극단적인 상황에서 교회가 안으로부터 내려 앉는 상황을 심각히 인식하며 다시 공회적 대처를 살펴야 할 때다.
(공회 신앙이란)
기준에 따라 공회 신앙을 설명하려면 참 많다. 아마 거의 모든 사안에서 주변 모든 교회와 거의 다 다를 정도다. 물론 기준을 조금 넓게 잡아 버리면 우리는 전통의 정통 교회이므로 다를 것이 없다. 그런데 조금 내면을 들여다 보면 성격과 방향과 내용은 너무 다르다. 생물학적으로 '인간'이라 한다면 현재 거의 80 억에 이르는 인간들이 있다. 그 80 억을 시력 청력 지력 성격 행동 등으로 분류하면 한도 없이 달라 진다. 단 1 명도 같을 수는 없다. 그런데 춘향적인 절개를 여성의 기준으로 잡아 버린다면 현재 그런 여성은 80 억 중에 1 명이 있을지.. 없다 할 수도 없겠지만 있다고 단정하려면 주저 할 것이다. 공회를 설명하면서 공회는 다르다 라고 할 때마다 폭 넓은 이해와 다양한 기준을 늘 기억해 주기 바란다.
(지금의 연구 방향)
공회는 현장에 필요 없는 공리는 피한다. 그렇지만 그 언젠가 적용이 될 이치는 지나 치다 할 만큼 따진다. 미리 살펴 놓아야 대처가 되며 이 것이 실행이며 심은 대로 거두고 행한 대로 갚으시는 신앙의 세계를 알기 때문이다. 교회가 사라 지고 있다. 세계적 현상이다. 세계 교회는 선교도 해야 하나 이제는 선교보다 기존 교회를 지켜 내는 것이 더 시급하다. 예배가 사라 지고 있다. 예배의 감격을 추구하며 이 복잡한 2022 년에도 모든 교회에는 예배가 넘쳐 난다. 그러나 분석해 보면 예배는 급격히 없어 지고 있다. 주일이 없어 진 지는 오래 되었다. 주일이라는 울타리를 걷어 버리면 교회와 예배를 해체하는 것은 순식간이다. 무엇이 주일인가? 주일에 돈을 쓰지 않고 일과 공부를 하지 않으며 개인 일정을 잡지 않는 것이 초보적 주일이다. 1 년이고 10 년이고 그냥 평생 그렇게 지키는 것은 좋은 신앙이라기 보다 신앙의 초보라도 주일을 두고 지켜야 한다. 예배라는 것은 한 교회가 가장 건전했을 때 꼭 필요하다고 정해 놓은 예배를 고수하는 것이다. 이런 일은 좋은 교회라거나 훌륭한 교회로 표현할 정도는 아니고 교회라면 그냥 초보적으로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교회와 예배가 가속도로 사라 지는 상황이란, 인구의 소멸이나 일반 사회의 좋은 면들이 사라 지는 것과 같아서 먼저 사라 지는 곳도 있고 뒤에 사라 지는 곳도 있지만 일단 대세가 잡히고 나면 버텨 봐야 마침내 같은 신세가 된다. 다른 곳이 먼저 사라 지고 우리는 아직 여유가 있을 때, 이 때 근본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소리 없이 휩쓸려 간다. 자신도 그렇게 될 터인데 아직 자신은 괜찮다고 남을 비판하는 것, 이 것이 율법적 정죄가 되고 주변을 보면서 자기를 미리 단속하기 위해 살피고 따지고 노력한다면 율법적 정죄처럼 보이는데 실제로는 복음적 생명 운동이 된다.
(참고할 자료를 소개한다.)
어느 신학자가 모든 종교의 진행을 4 단계로 요약했다. 종교란 걸출한 한 인물이 시작하거나 중흥을 시킨다. 이 것이 1 단계이며 '인물'이 중심이 된다. 이 인물 때문에 사람들이 몰려 들면서 하나의 흐름이 보인다. 2 단계로서 '운동'이 나타 난다. 운동에서 그치면 쉽게 사라 진다. 그런데 그 운동을 가지고 하나의 시스템이 만들어 지면 체계적인 단체가 된다. 이 것은 3 단계로서 이제 자동 기계처럼 알아서 돌아 간다. 이 단계에서는 사람도 운동도 필요가 없다. 오히려 거추장스러울 수도 있다. 대기업, 역사성을 가진 연구소나 정당도 포함 된다. 문선명이 죽었으나 통일교가 유지 되고 있다면 통일교는 3 단계까지 진출했다는 뜻이 된다. 인물도 운동도 체계화도 모두 역사로만 남게 되면 4 단계인 '유물'이 된다. 유고는 유물로만 남아 있다.
2020년대 현재의 한국 교회를 두고 '열정적으로 참여하던 부흥회나 금요일마다 열심히 참석하던 구역예배, 한여름 무더위보다 뜨거웠던 여름성경학교와 여름 수련회 등이 오늘날 추억 속으로 사라져가고 있다. 여름성경학교만이 아니라 주일학교 자체가 50%의 교회에서 사라졌다고 보고되고 있다.'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금요일 밤마다 뜨거운 기도와 찬양으로 밤을 새우던 철야 기도회가 언젠가부터 심야 기도회로 바뀌고 이제는 특별한 교인들만 참여하는 특별기도회'로 변모하고 있다며 개탄하는 현직 목회자들이 있다. '주일 저녁이면 전 교인이 참석하여 찬양하고 말씀을 들으며 헌신을 다짐하던 저녁 예배가 오후 예배로 바뀌고 그마저도 절반은 참석하지 않는 분위기가 되더니 몇몇 대형교회가 앞서서 오후 예배를 폐지하면서부터 주일이면 새벽부터 밤까지 교회에서 함께 지내던 전통은 거의 사라져버렸다.'라는 위기감을 토로하고 있다.
합동의 최광희 박사님은 이런 현상을 두고 슬퍼하거나 더욱 헌신하라고 독려하는 방법이 아니라 근본적인 대처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 곳의 글을 조금이라도 읽어 본 분들이라면 이 곳은 어느 학자의 주장을 거의 소개하지 않는다. 최근 이 곳에서 너무 심각하게 느끼는 이야기를 우리와 같은 시대를 함께 하면서 우리의 마음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 적고 있어 실명으로 소개한다. 최 목사님은 한 단계가 그 다음 단계로 넘어 가는 시점을 '변곡점'이라 하고 그런 시점이 오기 전에 대처를 하라고 외친다. 전적 동감이다. 옛날을 노래하지 말고 빨리 파악하고 미리 준비하면서 대처하자는 뜻인데 공회는 이런 면을 마25장의 슬기로운 다섯 처녀로 늘 가르쳐 왔다.
(공회의 대처법)
공회는 1970년에 교역자 시무 신임투표를 제도화 했다. 오늘 가장 개혁적인 교회조차 여전히 시도를 하지 못하는데 공회는 교회가 발전만 하던 반 세기 이전에 교회를 망치는 것은 교역자이며 교인들이 차마 막아 설 수가 없으니 매 2년 4분의 1만 반대해도 목회자를 쫓아 내는 비밀 투표를 시행해 왔다. 인물이 운동을 하고 체계화로 나가면서 이제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나 공회는 시작하는 첫 순간이 '인물'이라는 1 단계에서부터 미리 대처를 한다. 만사 그렇게 하는 것이 공회다. 오히려 운동이란 저절로 따라 오는 것이지 만드려 하지 않는다. 3 단계의 체계화라는 것은 그 자체를 공회는 그 교회의 종말로 본다. 체계가 인물과 복음 운동을 삼키고 죽인다고 생각한다. 체계화라는 것을 '인물'이 시작한 '운동'을 계승하고 발전을 시킨다고 보는 것이 공회 외의 교회다. 공회는 4 단계를 죽은 교회로 보지 않고 3 단계를 골동품으로 본다. 그냥 유적으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살려고 노력하는 '인물'을 미리 꺾어 버리고, 그 인물로 인해서 일어 나는 '운동'을 꺼버린다고 본다.
그렇다면 현재 주일에 이어 교회와 예배가 급격하게 소멸하는 상황을 대처하려면 공회가 걸어 온 지난 날의 사례를 먼저 이런 면으로 살펴 봐야 하겠다. 과거 어떻게 대처를 했는지 살피다 보면 현재 우리가 심각하게 맞고 있는 '교회와 예배'의 소멸을 맞설 가능성을 찾아 볼 수 있지 않을까? '교회와 예배'에 관한한 공회는 지난 날 주일학교를 통해 분석해 보는 것이 가장 빠르고 쉽다.
세부목록
- 시대를 통한 하나님의 인도(1) - 교계와 비교 : 주교 같은 오늘의 공회 대책
- 시대적 인도(2) - 공회 역사로 오늘을 본다 : 30년 단위의 전환점
- 시대적 인도(3) - 교회와 예배가 없어 졌다 : 그 대책은?
- 시대적 인도(4) - 서부주교의 불편한 진실 : 평정심을 잃게 한 대규모 견학
- 시대적 인도(5) - 서부주교의 80년대, 그 힘겨운 상황 : 도심 개발과 이주
- 시대적 인도(6) - 사회 발전과 국가 정책 : 과외 금지, 만화 방영의 파괴력
- 시대적 인도(7) - 80년대 서부주교의 비상 대책들 : 선을 넘고 있었다.
- 시대적 인도(8) - 끝 없는 전도, 내재 된 심각성 : 주교의 열매로 돌아 본다.
- 시대적 인도(9) - 20대의 주교 대형 버스 : 발전인가 후퇴인가
- 시대적 인도(10) - 개간과 길바닥 : 분교로 마무리 했으나

인물이 중심에 설 수는 있으나 인물이 노선에 우선 하지 않고 운동이 거세지만 노선 안에서만 의미 있다.
인물과 운동 단계에서는 공회 내면을 버렸는지 여부를 알기 어렵다. 그러나 조직화 여부로는 알 수 있다.
연구소 공회 외에는, 조직화가 공회에 어떤 의미인지 모르는 듯하다. 모두가 공회의 조직이 공회라 한다.
공회 주소록과 교역자 명부가 천국 ID인 줄 안다. 바로 이 의미와 이해도 때문에 공회가 이렇게 어지럽다.
공회는 노선으로 존재한다. 따라서 옳게 가르치는 백태영이 필요하지, 그 이름의 유무는 중요하지 않다.
공회는 노선으로 존재한다. 따라서 주교나 집회처럼 좋은 운동은 감격이지만, 그 운동이 공회는 아니다.
공회는 노선으로 존재한다. 공회가 조직화에 나서거나 조직화에 잡히면 부공2나 대공처럼 아주 겉 돈다
공회는 노선으로 존재한다. 지난 날은 연구 때문에 중요하지 문화재로 만들지는 않는다. 부공1은 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