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통한 하나님의 인도(1) - 교계와 비교 : 주교 같은 오늘의 공회 대책

남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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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판에는 이 홈에 올려진 글 중에 이곳에서 따로 소개하고 싶은 글도 포함됩니다. 

시대를 통한 하나님의 인도(1) - 교계와 비교 : 주교 같은 오늘의 공회 대책

담당 0 13
(자연의 양심, 신앙의 양심)
타락한 우리에게 첫 말씀이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라 하셨다.
그러나 광야 40 년에는 자고 나면 진 밖에 나가 줏어 담으면 되고 잡초를 뽑고 흙을 갈아 엎지 않는다 하여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시기였다. 일시 그런 때를 주시면 그 전과 오늘까지를 비교하도록 하셨다. 또 다른 뜻이 있었다. 유교의 농경 사회를 수백 년 살아 온 한국인들은 밭에 풀을 뽑지 않으면 남이라도 욕을 했다. 그리고 마지막 죽을 때까지 일을 해야 양심이 편했다. 아직도 시골의 70대까지는 이런 자연의 양심이 남아 있다.

신앙의 세계에는 기본적으로 전도와 심방과 예배에 대한 양심이라는 것이 있다. 내가 믿어 좋은 이 복음을 나 혼자 가진다는 것은 뭔가 불편하다. 내가 맡은 신앙의 식구의 형편을 돌아 보지 않는다는 것은 아이를 팽개 치고 시내를 다니는 것처럼 정상적인 모성애로서는 마음이 편치 않다. 교회가 기본적으로 정해 놓은 교인의 최소한 의무가 있다. 공회는 5 가지 정도로 요약하고 주교 공과로도 가르친다. 주일과 예배, 성경과 연경, 기도와 묵상, 전도와 심방, 연보와 경제 정도이다. 공회 기준으로 이 5 가지를 돌아 보면 신앙에 전문가나 전념가로 보일 정도다. 주일은 1 년 전부, 예배는 매일의 새벽과 집회까지를 포함한다. 목회자면 몰라도 일반 생활을 하는 교인으로서는 한두 번은 몰라도 평생 그렇게 한다는 것은 어렵다. 그 어려운 생활을 평소처럼 하게 되면 우리는 공회 교인이라고 한다. 고신의 97세 원로 목회자 한 분이 서울의 제일 요지에 좋은 교회를 개척해서 성공하고 지금도 총명하게 건강하게 사시는데, 최삼경 목사님이 그 분을 존경하면서도 그 분이 공회에서 탈퇴를 했기 때문에 그 분에게 공회를 비판하자 그 분이 최삼경에게 '총공회 교인? 그들 발바닥에라도 따라 가면 다행이라!'는 말씀을 던진 이야기를 직접 들어 봤다.

(공회 교회의 자책감)
백 목사님 설교에 은혜를 받고, 이 세상에 비교할 설교나 신앙 노선이 없겠다고 굳게 마음을 먹는다면, 우리는 이 노선을 비로소 안다고 친다. 그리고 공회의 교회에 소속을 두고 출석을 하거나 목회를 하면 우리는 비로소 공회인이라고 한다. 이 공회인들은 남에게 쉽게 꺼내 보이지 않는 내심의 자책이 있다. 자식이 어리면 정상적 부모는 자식의 성공을 위해 압박감을 가지는데 결국 성공할 가능성이 없게 되면 자책감이나 열등감을 갖게 된다. 유교적 인식이 강한 분들은 죽은 조상님들의 낯을 어떻게 뵙까 라면서 고통스러워 한다. 그런 불신자의 모습을 대할 때마다 공회인에게는 내가 잡은 이 좋은 길, 그런데 이 길에 다른 사람을 하나라도 더 데려다 놓아야 하는 사명감이 있다. 그 사명감은 항상 압박감과 붙어 있다. 두 감정은 나뉠 수가 없으니 손바닥과 손등의 관계다. 이런 자세라는 것은 자기가 속한 교단이나 교회에 대하여 자부심을 가졌다면 모두가 그런 마음을 가지는 것이 정상이다.

공회는 어떤 교회보다 그 깊이와 차원이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명감과 압박감이 더욱 강하다. 여기에다 1970년대와 80년대의 20여 년간 공회의 모든 목회자와 교인들에게 당시 주일학생을 한량 없이 맡겨 주시는 시대적 인도가 있었고 백 목사님은 평소의 장년반 전도는 물론 어린 학생을 전도하도록 힘껏 몰아 붙였다. 그 분의 설교에 은혜를 받아 그러하든, 은혜와 상관 없이 그 설교에 담긴 부탁 때문에 학생을 전도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꼈든, 공회의 모든 목회자와 교인은 골목골목 학생들을 몰아 왔고, 그 아이들은 곧 이어 중고등 학생이 되었고, 그들은 거대한 물결처럼 장년반의 일반 예배와 집회에까지 몰려 들면서 공회는 불과 몇십 개 교회인데 회원 10만 명을 확보하게 되었다. 엄청난 부흥의 기세에 놀란 전국의 교단들과 유명한 교회가 견학을 왔고 순복음교회조차 대표단이 방문을 했었다. 백영희 목사님의 설교가 구구절절 감동적이었고 성경과 교리에 다 맞는 말씀이었고 또 골목으로 나가 보면 따라 오는 아이들의 숫자와 눈망울을 보면서 그 아이들을 데려 오는 반사들이 오히려 감동을 받고 온 몸에 전율을 느꼈으니 세계교회사에 유례가 없는 기적을 공회인, 우리들은 모두가 함께 봤다. 바로 이 경험이 아직도 어제 일처럼 기억 되는 공회인들은 늘 잠재 의식 속에 전도에 대한 사명과  압박감이 평생 남아 있기 때문에 '몰려 드는, 끌어다 예배당을 채우는' 문제가 나오면 늘 그 때를 추억하며 자기의 오늘을 비교하게 되어 있다.




(1991년의 주일학교 소개 책자)
1982년 백 목사님이 돌아 가실 뻔했던 적이 있었다. 그 직전에 목사님은 현재 우리에게 마음껏 아이들을 모아 놓고 가르칠 수 있는 이런 때가 어느 날 갑자기 없어 질 수 있으니 지금 주실 때 한 아이라도 방심 말고 더 노력해서 인도하라고 했고, 동시에 이제는 교회를 가자 라는 노력에서 하나라도 제대로 가르치는 방향으로 전환을 해야 한다고 촉구를 했다. 내 기억에 그 말을 알아 듣는 이들은 없었다. 한 교회에 반사가 6백 명이고 보조 반사 4백 명을 더하면 총 1천 명인데 어떻게 그들을 다 알 수가 있을까? 그렇지만 1천 명 반사 중에서도 가장 훌륭한 분들은 거의 다 안다. 그들 중에 없었다는 기억이다. 다윗처럼 숨은 보배는 항상 따로 있는 법이나 일반적으로 또 혼자 주변을 보면 느낀 것이다. 나는 직책상 그 중심에 있었기 때문에 사실은 거의 파악이 되고 있었다. 모두가 골목에만 나가면 아이들이 소복하니 데려 오는 것만으로 숨이 가빴고 따라 오는 그 숫자 때문에 모두가 취해 있었고 바빴었고 다른 생각을 할 틈이 없었다. 그래서 목사님은 더욱 강조를 했었다. 지금은 주시는 때다, 그런데 앞으로 주시는 것을 멈출 것이다, 바로 지금이 데려 오면서도 속으로는 하나하나 말씀을 심어 놓아야 할 시급한 때라고 가르쳤다. 목사님은 데려 오기도 하고 또 말씀으로 심어 놓을 수 있다. 양면을 다 할 수 있는 분이나 우리 일반 교인들은 비록 1천 명 반사 중에 정상급이라 해도 두 가지를 다 하기는 어렵다.




(다음 세대로 넘어 가는 새로운 인도)

1989년 목사님이 돌아 가셨고 1990년 초반까지 그 분 사후의 노선 선택 때문에 전국의 교회들도 또 서부교회도 아무 것을 돌아 볼 여지가 없었다. 1990년 9월이 접어 들며 나는 정말 모든 짐을 벗고 홀가분하게 한 달을 빼어 깊은 산 속에 들어 갈 수가 있었다. 한 달을 작정하고 모든 연락을 차단하고 갔는데 한 주간만에 해결이 되었고 참 가벼운 마음으로 감사를 안고 내려 왔다. 그리고 나는 공회의 주일학교를 역사적으로 남길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그 기록은 70년대와 80년대의 서부교회 주일학교에 관한 것이며 이미 1990년에는 그런 상황이 막 바뀌면서 이전에 생각 못한 환경을 맞아야 했다. 새로운 환경을 맞기 위해 우선 지난 날을 요약해 봤다. 우리는 어떻게 해 왔던가? 그리고 그런 언행만 해도 되는가, 아니면 그런 과거 속에 주신 하나님의 인도와 우리의 충성의 본질은 무엇이었던가? 성과 또는 우리의 활동이라는 표면만 보지 않고 그 속에 본질을 파악할 수 있다면 달라 지는 환경에 80년대 식의 주교 운집은 유지하지 못해도 그 시기에 교계가 흉내를 낼 수 없는 신앙의 내용은 이어 갈 수 있고 그 신앙의 내용이 유지 된다면 달리 주실 환경에 또 다른 능력과 영광의 길을 걸어 갈 수가 있다고 생각했다. 1990년 가을에 정리한 원고는 1991년 초에 출간이 되었다. 그리고 1990년대가 깊어 지면서 한국 교계의 전도 환경은 광야 40년의 생활과 가나안에 들어 간 이후의 생활처럼 명확하게 달라 졌다. 80년대까지를 중심으로 요약한 책은 1991년에 출간했고 이 책을 전편이라 한다면 그 후편이 될 '서부교회 주일학교'라는 책을 1997년에 발간했다. 그리고 이 2 권의 책을 도서로만 남기지 않고 연구소가 운영하는 부공3의 우리는 80년대까지 80년대 환경의 주일학교에 중심을 걸어 갔듯이 90년대 이후도 이 노선의 우리만이 갈 수 있는 또 다른 길을 걸어 가고 있다. 

광야의 만나 환경을 가나안 입성 후에도 유지하려 한다면 곤란하다. 그 것은 능력도 신앙도 아니다. 하나님을 시험하는 죄가 된다. 그 대신 광야 40 년에는 진 밖에 나가 거두어 오면 되는 만나 외에 방법을 생각하면 강퍅이 된다. 시대를 따라 다르게 인도하는 과제를 알지 못하게 되면 엄청 난 고난을 겪고 시련을 거쳐야 한다. 세대주의 신학은 시대를 동강 내고 따로 보지만 우리는 변치 않는 하나의 진리로만 적용한다. 그렇다고 그 모습이 같다는 것은 아니다. 지금 우리는 2020년대를 살고 있다. 1991년에 요약해 본 1980년대와 그 이전의 주일학교란 그 시절에 의미가 있었다. 과거 추억이 아니라 이후 다른 환경에서 또 헤쳐  나가야 할 길이 있기 때문이다. 1997년에 기록한 내용은 이 곳의 공회가 2020년까지를 이어 올 수 있게 했다. 그리고 2022년이라는 최근의 상황은 이제 2020년 이전까지와 또 다른 시대를 주시며 공회와 각 교회와 우리 각자에게 또 다른 인도를 보여 주고 계신다. 이런 내용으로 이어 보려 한다. 이 내용으로 또 하나의 정리가 되고 어디 있든 이 노선의 가치를 알고 실제 걸어 가고 싶은 분들에게 참고가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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