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회와 고신에 스며 든 '거창'이라는 염병, SFC와 복음병원을 중심으로
담당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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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2 10:24
(들려 오는 주변 소식, 우리의 소식이다.)
인터넷과 휴대폰을 사용하면서부터 세상 소식을 차단 할 길이 없다. 피하려 해도 주요 뉴스의 제목만은 눈에 스쳐 간다. 그 뉴스 중에 아는 제목이 나오면 바로 파악이 된다. '고신의 SFC 폐지 문제' '고신의 복음병원 설립자' 문제가 그러하다. SFC 복음병원이라는 단어만 나오면 내게는 '거창고 전영창의 설립과 교권 투쟁'과 '고신의 정체성'이 자동으로 그려진다. 이 단어들은 늘 내게 연상 작용을 하는데 이번에는 'SFC 폐지' 안과 '복음병원의 설립자' 문제가 되니 더욱 느낌이 많다.
나는 공회의 역사를 주력하다 보니 공회가 거쳐 가고 얽힌 이야기에는 남 모를 또는 남이 잊었을 역사적 기억들이 많다. 어떻게 알았는지 이 문제가 나오면 여러 곳에서 연락이 온다. 나는 이해 관계인이 아니니 아는 대로 거침없이 발언한다. 복음병원의 설립자 문제는 이미 거론이 많이 되었다. 이번에는 SFC의 존폐 문제로 뜨겁다. 공회도 피할 수 없는 역사다. 설립자 A가 동쪽으로 시작했는데, B가 나서서 남쪽으로 방향을 틀고, 세월이 지나니 C와 D가 서쪽으로 나갈 수도 있다.
공회의 예배에 대해 요즘 유독 여러 자료가 많이 접해 진다. SFC 변질사처럼, 복음병원의 변질사처럼, 공회의 변질사도 꼭 같다. 우리를 보면 우리가 보인다. 우리보다 한 걸음 앞에 간 고신을 보면 우리가 더 잘 보인다. 최소한 참고할 자료로 중요하다. 사실 우리는 다른 교단이 무엇을 고민하는지도 사실 잘 모르는 듯하다. 공회와 고신은 타 교단들이 모르거나 이상하게 느낄 흐름이 있다. 강단에 올라 갈 때 떨면서 올라간다. 무릎 꿇고 준비한다. 이런 자세가 원래 모든 교단에 있었다. 넓은 순서로 없어졌다.
(교단이나 교회 내의 '지역' 문제)
지금도 고신 교단에서는 출신을 따지지 말고 오로지 복음 운동에만 매진하는 것이 신앙이라고 할 분들이 아직 계실 듯하다. 보통의 교단은 출신 지역을 내 걸고 단결 대회를 하고 정치권처럼 자연스럽고 과시적이나 고신은 여기에 아직 서툴거나 죄책감이 있다. 공회는 아예 범죄 정도로 알고 있다. 알고 보니 동향이고, 동향이라 안면이 있어 친할 수는 있어도 친인척 지역 연대는 없다. 복음과 교회가 중요하지 친인척 친구 친지 출신 고향에 유착 된다는 것은 예전의 고신이 지금의 공회만큼 철저히 배격했다.
'거창'이라는 단어만은 고신과 공회에서는 특별하다. 고신 내 거창은 고신의 주력 지역들 중에 하나지 독보적이지는 않다. 그러나 거창고와 전영창이라는 단어만 나오면 고신 내 거창 출신들은 고신의 정체성 앞에 그 두 단어를 먼저 갖다 놓는다. 고신 역사와 전통과 정체성이 거창고 전영창 앞에서는 함몰이 된다. 국내 모 지역 사람들의 입에서 전영창 선생님 말만 나오면 그렇듯. 공회는 거창을 지역으로 놓고 단결이나 우호적 표시를 내면 현행범 정도로 친다. 그러니 교회 문제를 가지고 지역 출신이 사적으로 움직이면 더욱 그렇다.
거창고 출신은 공회 내에서는 표를 전혀 내지 않는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활동하다 거창고가 나오면 금새 ‘거고인’이 된다. 해병전우회와 고대동문회와 호남향우회를 두고 국내 3대 최고의 공고한 집단이라 한다. 하지만 거창고에 비하지는 못할 듯하다. 거창고와 전영창의 내면을 살펴보면 알려졌듯이 위대한 점도 수 없이 많으나 그 명성만큼 모순과 흑역사는 더욱 많다. 청소년기에 접하다 보니 그런 걸까? 이 곳 출신들의 평생의 정체성은 그 학교와 그 인물과 반대에 속했음에도 속은 변치 않는다.
(고신과 거창고, 한상동과 전영창)
차라리 남과 북을 한 자리에 갖다 놓지 고신과 거창고는 한 자리에 앉을 수가 없다. 양 측이 서로 나뉜 것은 본질적 필연적이다. 해방과 6.25라는 세상 상황이 이 둘을 1947년과 1951년에 부산에서 만나게 했고 얽히게 했다. 하지만 함께 갈 수 없는 이질이다. 고신은 거창고의 진학을 막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고, 학교를 다니며 고신인들은 학교를 비판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고신의 교인은 거창고를 통해 반 고신 교육과 체질이 된다. 그렇게 되면 고신으로 돌아가지 않아야 하는데 고신에 그대로 있다. 양립할 수 없는 ‘거창고’와 ‘고신’, 그리고 ‘전영창’과 ‘한상동’. 거창고를 통해 거창고의 정신을 평생 이어 가고 있는 이들은 고신에 대해 갈수록 적대적이다. 그런데 고신에 있는 거창고 출신들은 죽을 때까지 거창고와 전영창을 고신과 별개로 별도의 스승으로 삼는다. 그렇다면 거창고는 고신과 한상동 때문에 머리 아픈 일은 별로 없고, 사실 대결까지 갈 것도 없이 일방적으로 고신과 한상동을 제압했다. 고신은 고신의 정체성 기준으로 보면 거창고와 전영창은 적색경보의 대상인데 고신 안에서 거창고와 전영창은 날로 번창한다.
공회 안에도 이런 현상은 꼭 같이 존재한다. 공회를 비판하되 건설구원을 비판하면 공회 내에서는 이단 시 해야 정상이다. 그런데 백 목사님 면전에서 대 놓고 건설구원을 강조하며 율법주의가 된다고 떠든 이가 현재 부산공회의 최고 중심이다. 그런데 그를 추대하고 따르는 이들의 개인 신앙을 보면 철저히 건설구원을 강조한다. 하기야 먹고 살기에 좋을 수는 있다. 개인적으로 보면, 분명히 율법주의라고 비판한 인물을 적대해야하고 적대적이라야 하는데 그이 앞에만 서면 녹아 없어진다.
(SFC와 복음병원)
고신이 진리 운동에 더하여 외부적으로 내세우는 가장 큰 업적은 경쟁력 크게 2 가지다.
첫째, 수백 개 한국 교단 중 고신은 규모가 크지 않으나 유일하게 교단이 직영하는 대학병원을 가지고 있다. 복음병원이다. 둘째, 규모는 CCC나 IVF만 못하나 고신 교회가 철저히 중심이 된 SFC 학생 운동이 있다. 이 운동은 가장 뜨거웠고 교계의 인물도 길러냈다. 대학은 지금 최정상급의 몇 곳 외에는 모두 불안하다. 그러나 대학병원만은 갈수록 더욱 영향력이 크다. 한 교단이 직영의 대학병원을 가졌다는 것은 모두가 부러워한다. 대학병원의 교수라는 그 어마어마한 직책이 몇 개인가? 또 의사가 되려는 학생들을 선발하고 교육하며 의사로 만드는 그 과정이 어떠한가? 한국의 최고 최대를 견주는 합동 교단, 통합 교단, 감리교단, 침례교단, 개혁 교단, 백석 교단들은 고신을 아주 무시한다. 그러나 복음병원이라는 대학 병원 이야기만 나오면 마냥 부럽기만 하다.
SFC, 고신이 가진 학생회는 고신이라는 교단과 교단 산하의 교회들이 직접 운영한다. SFC보다 훨씬 좋아 보이는 CCC나 IVF 등은 아무리 잘 나가 봐야 자기 교회 자기 교단과 상관이 없다. 오히려 그들이 활발해 질수록 합동, 통합, 감리교, 침례교의 기둥이 될 청년들이 그 쪽으로 옮겨 가거나 몸만 교단에 두고 마음은 그 쪽 사람이 되어 버린다. CCC와 IVF가 잘 되면 잘 될수록 교단과 소속 교회들은 허술해 진다. 그렇다고 뚜렷하게 수 많은 대학생들을 끌고 다니는 그 단체를 비판할 수도 없으니 속만 끓는다. 그럴 때마다 고신이 부럽다. 고신의 SFC는 전국의 대학에서 활동하는 그 결과가 거의 고신 교단과 고신 교회들에게 직접 전도가 되고 또 고신의 기둥들로 자라 나왔기 때문이다. CCC나 IVF가 아무리 큰 역할을 했다 해도 그들은 신앙적으로 반 고신적이다. 모두가 진보 쪽으로 움직인다. 고신의 SFC는 실제 CCC나 IVF와 별반 다르지는 않으나 SFC의 말과 표시만은 고신의 철저한 신앙 운동을 표방한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한국 교계의 보수 정통에 빛나는 인물들을 수 없이 배출했다. 지금은 타 교단에 가 있거나 고신과 전혀 상관없이 활동을 한다 해도 한국의 제대로 된 보수 정통의 교계 인물을 손꼽다 보면 저절로 SFC는 명문이며 최고 출신이라는 표시가 난다.
(고신이 시작한 거창고... 참으로 우습다)
그런데, 참 우습게도 이 복음병원과 SFC의 출발은 고신을 평생 싫어했고 비판했고 고신과 가장 극단적으로 대치하며 살아 간 인물이 시작을 했다. 거창고의 전영창, 한국 사회의 참으로 나쁜 운동이나 조직에서 그의 역할은 지대했다. 그 나쁜 운동이나 조직이라는 것이 애매할 수 있는데, 고신이 현재도 진행하고 있는 각종 혈투의 대상인 차별금지법이니 학생들의 주사파나 진보적 교육 운동 문제니 신학적으로 고신이 펄쩍 뛸 만한 논리나 활동에 거창고와 전영창의 짙은 그림자가 빠지는 곳은 거의 없다 할 정도다. 그가 그렇게까지 된 이유 중에 하나가 1947년과 1951년의 몇 년을 부산에서 고신의 한상동 한명동 등과 실제 부딪혀 봤고 그들의 골수에 사무친 생각과 행동과 처리들을 겪어 봤기 때문이다. 전영창에게 고신이란 해체 시키고 혁파하고 개조할 대상이지 어느 하나도 그대로 쓸 만한 부분이 없었다. 전영창의 평생은 늘 그러했다. 그 정도였으니 고신의 주창자며 고신의 오늘을 거의 만들어 놓은 한상동 한명동이라는 걸출한 신앙인들이 전영창과 거창고를 알지 못했을까? 그들로서 전영창이라는 인물은 아예 상종하지 못할 대상이었다. 그래서 가차 없이 쳐 내버렸고 그의 흔적을 철저히 지워 버렸다. 그렇다고 고대사회가 아닌데 깨끗하게 지워지기야 하겠는가? 손양원조차 최대치로 지워 나간 고신이니 전영창 지우기는 어렵지 않았다.
SFC와 복음병원을 설립한 전영창은 고신에게 내쳐 질 때 분을 삭이지 못한 채로 미국의 세인트루이스에 있는 컨콜디아 신학교로 갔고, 1956년에 나올 때, 곧 미국으로 돌아 갈 린튼 스승이 대전의 한남대학 부학장이라는 직책을 그에게 맡기고 싶어 초청한 자리에서 ‘머리가 굵은 대학생을 바꾸기는 어려우니 어려서부터 제대로 길러서 국가와 민족에게 좋은 인물이 되도록 초중등 기독교 교육을 원한다’며 이를 거절한다.
그리고 마침 거창에서 1953년에 설립은 했으나 운영이 어려워 후임을 찾는다는 소식을 접하고 그리로 간다. 그 설립자는 바로 고신이었다. 설립자의 이름은 주경중이라는 거창읍교회 교인이었으나 그 부친이 고신의 설립자 주남선 목사님이다. 시설은 호주 선교부 것이다. 거창의 주남선 이름은 그 이름 자체로 교회든 선교부든 심지어 공무원이든 무조건 후원하고 따르는 정도다. 주경중 그 자체의 신앙은 일반적이다. 그러나 부친 주 목사님 때문에 고아원 사업을 했고 또 이어지는 교육 사업을 했거나 하겠다 하면 시설과 행정 지원은 저절로 따라 오는 정도다. 넓게 말하면 고신의 것이고,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주남선의 것이며,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주남선 목사님의 큰 아들이 시작한 학교가 거창고다.
전영창은 고신이 아직 독립 교단이 되기 전 부산에서 태동기를 거치고 있을 때 주남선을 접촉했기 때문에 한상동 한명동과는 다른 것을 알고 있었다. 1956년에 귀국 후 미국의 남장로교가 추진하는 한남대학과 운영이 되지 않아 내버려지는 거창고를 사이에 두고 그는 양 쪽의 영향력과 성향과 자신과의 관계를 매우 잘 파악했다. 비록 거창고가 고신의 것이지만 그렇다 해도 법적으로는 주경중의 사립학교로 시작했기에 인수를 받게 된다. 그리고 고신의 부산은 아니지만 또 다른 고신의 거창이라는 호랑이 굴로 들어가서 고신이 아니라 전영창이 마음에 품고 있는 진보의 꿈을 마음껏 펼치고 싶었다. 그는 원래 골수적으로 진보다. 좌파도 아니고 우파도 아니다. 그는 바르게 배웠고 바른 뜻으로 살고 싶되 혼자가 아니라 주변 전체를 이끌 사람이다. 바른 신앙가며 바른 교육가며 바른 실천가다. 다만 그의 성향은 죽는 날까지 진보일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불을 붙여 놓은 것은 고신에서 밀려 한을 가지고 갔던 미국의 2차 유학 기간이 바로 '세인트루이스에 있는 컨콜디아'였다. 그는 원래 좌파까지 가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 기간을 거치며 그는 필연적으로 진보의 끝에서 더 나아가 그가 원치 않았던 좋지 못한 좌파, 아주 나쁜 좌파의 열매를 그의 독보적 활동과 성과 끝에 주렁주렁 열리도록 했다. 김동길 김진홍이라는 이런 인물들과 같은 부류였다. 이들은 훗날 철이 들며 그들의 젊은 날의 생각과 행동을 완전히 바꾸었다. 전영창은 1976년에 사망하게 되며 이렇게 전향할 기회를 잃어 버렸다. 그래서 김동길 김진홍 밑에서 배운 이들은 좌파로 나간 이들도 있겠지만 순수한 진보에서 어중간이 머물다가 다시 오늘을 기준으로 보면 그들처럼 보수로 돌아 왔지만, 거창고의 경우는 70년대의 순수한 진보가 스승 없이 80년대를 관통하며 주사파나 종북 그 이상으로 가 버렸다. 그럴 수 있는 조짐과 씨앗은 1976년 이전의 생전에 전영창 스스로 마음껏 청소년과 젊은이들의 사상에 가라지를 대거 뿌려 놓았기 때문이다.
고신은 전영창의 거창고를 설립했다. 고신은 좋은 환경과 뒷받침에도 불구하고 폐교 외에 도리가 없어 넘겨 버렸다. 전영창은 고신의 SFC와 복음병원을 창시자다. 그러나 고신은 전영창을 밀어 냈고 그의 이름은 지우고 성공을 했다. 전영창은 SFC와 복음병원을 출발 시킨 직후 고신이 버린 거창고로 갔고 폐교 직전에서 한국 교육의 전설을 만들었다. 고신은 SFC와 복음병원을 전영창에게 빼앗고 고신의 것으로 만든 다음 이후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여 오늘이 되었다. 이렇게 이제 눈에 보이는 사실로 보면 전영창은 무엇을 해도 성취를 해 내는 사람이다. 또 될 것을 선별할 줄 안다. 그는 한국의 정치계에 박정희 같은 인물이고, 한국의 재계에 이병철 정주영 박태준 같은 인물이다. 분명히 탁월하다. 고신이 포기한 거창고를 한국의 교육계에 전설을 만들어 오늘 한국의 교육 생태계, 본질은 두고, 그 결과를 만들었다. 고신은 전영창이 두고 간 불씨만을 살려서 이렇게 크게 성공했다. 전영창이 직접 이어 갔더라면 상상 이상일 듯하다. 물론 그 폭발적 성공의 내용은 반 고신, 비 신앙, 오늘의 고신의 이상과 정체성과는 전혀 다른 것이 되었을 것으로 본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1956년까지 공부한 세인트루이스의 신학 시절'의 유무에 따라 아주 달라진다. 일반적으로 한국 교계는 세인트루이스를 잘 알아야 하는데도 실은 잘 모르는 듯하다. 특히 전영창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인터넷과 휴대폰을 사용하면서부터 세상 소식을 차단 할 길이 없다. 피하려 해도 주요 뉴스의 제목만은 눈에 스쳐 간다. 그 뉴스 중에 아는 제목이 나오면 바로 파악이 된다. '고신의 SFC 폐지 문제' '고신의 복음병원 설립자' 문제가 그러하다. SFC 복음병원이라는 단어만 나오면 내게는 '거창고 전영창의 설립과 교권 투쟁'과 '고신의 정체성'이 자동으로 그려진다. 이 단어들은 늘 내게 연상 작용을 하는데 이번에는 'SFC 폐지' 안과 '복음병원의 설립자' 문제가 되니 더욱 느낌이 많다.
나는 공회의 역사를 주력하다 보니 공회가 거쳐 가고 얽힌 이야기에는 남 모를 또는 남이 잊었을 역사적 기억들이 많다. 어떻게 알았는지 이 문제가 나오면 여러 곳에서 연락이 온다. 나는 이해 관계인이 아니니 아는 대로 거침없이 발언한다. 복음병원의 설립자 문제는 이미 거론이 많이 되었다. 이번에는 SFC의 존폐 문제로 뜨겁다. 공회도 피할 수 없는 역사다. 설립자 A가 동쪽으로 시작했는데, B가 나서서 남쪽으로 방향을 틀고, 세월이 지나니 C와 D가 서쪽으로 나갈 수도 있다.
공회의 예배에 대해 요즘 유독 여러 자료가 많이 접해 진다. SFC 변질사처럼, 복음병원의 변질사처럼, 공회의 변질사도 꼭 같다. 우리를 보면 우리가 보인다. 우리보다 한 걸음 앞에 간 고신을 보면 우리가 더 잘 보인다. 최소한 참고할 자료로 중요하다. 사실 우리는 다른 교단이 무엇을 고민하는지도 사실 잘 모르는 듯하다. 공회와 고신은 타 교단들이 모르거나 이상하게 느낄 흐름이 있다. 강단에 올라 갈 때 떨면서 올라간다. 무릎 꿇고 준비한다. 이런 자세가 원래 모든 교단에 있었다. 넓은 순서로 없어졌다.
(교단이나 교회 내의 '지역' 문제)
지금도 고신 교단에서는 출신을 따지지 말고 오로지 복음 운동에만 매진하는 것이 신앙이라고 할 분들이 아직 계실 듯하다. 보통의 교단은 출신 지역을 내 걸고 단결 대회를 하고 정치권처럼 자연스럽고 과시적이나 고신은 여기에 아직 서툴거나 죄책감이 있다. 공회는 아예 범죄 정도로 알고 있다. 알고 보니 동향이고, 동향이라 안면이 있어 친할 수는 있어도 친인척 지역 연대는 없다. 복음과 교회가 중요하지 친인척 친구 친지 출신 고향에 유착 된다는 것은 예전의 고신이 지금의 공회만큼 철저히 배격했다.
'거창'이라는 단어만은 고신과 공회에서는 특별하다. 고신 내 거창은 고신의 주력 지역들 중에 하나지 독보적이지는 않다. 그러나 거창고와 전영창이라는 단어만 나오면 고신 내 거창 출신들은 고신의 정체성 앞에 그 두 단어를 먼저 갖다 놓는다. 고신 역사와 전통과 정체성이 거창고 전영창 앞에서는 함몰이 된다. 국내 모 지역 사람들의 입에서 전영창 선생님 말만 나오면 그렇듯. 공회는 거창을 지역으로 놓고 단결이나 우호적 표시를 내면 현행범 정도로 친다. 그러니 교회 문제를 가지고 지역 출신이 사적으로 움직이면 더욱 그렇다.
거창고 출신은 공회 내에서는 표를 전혀 내지 않는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활동하다 거창고가 나오면 금새 ‘거고인’이 된다. 해병전우회와 고대동문회와 호남향우회를 두고 국내 3대 최고의 공고한 집단이라 한다. 하지만 거창고에 비하지는 못할 듯하다. 거창고와 전영창의 내면을 살펴보면 알려졌듯이 위대한 점도 수 없이 많으나 그 명성만큼 모순과 흑역사는 더욱 많다. 청소년기에 접하다 보니 그런 걸까? 이 곳 출신들의 평생의 정체성은 그 학교와 그 인물과 반대에 속했음에도 속은 변치 않는다.
(고신과 거창고, 한상동과 전영창)
차라리 남과 북을 한 자리에 갖다 놓지 고신과 거창고는 한 자리에 앉을 수가 없다. 양 측이 서로 나뉜 것은 본질적 필연적이다. 해방과 6.25라는 세상 상황이 이 둘을 1947년과 1951년에 부산에서 만나게 했고 얽히게 했다. 하지만 함께 갈 수 없는 이질이다. 고신은 거창고의 진학을 막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고, 학교를 다니며 고신인들은 학교를 비판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고신의 교인은 거창고를 통해 반 고신 교육과 체질이 된다. 그렇게 되면 고신으로 돌아가지 않아야 하는데 고신에 그대로 있다. 양립할 수 없는 ‘거창고’와 ‘고신’, 그리고 ‘전영창’과 ‘한상동’. 거창고를 통해 거창고의 정신을 평생 이어 가고 있는 이들은 고신에 대해 갈수록 적대적이다. 그런데 고신에 있는 거창고 출신들은 죽을 때까지 거창고와 전영창을 고신과 별개로 별도의 스승으로 삼는다. 그렇다면 거창고는 고신과 한상동 때문에 머리 아픈 일은 별로 없고, 사실 대결까지 갈 것도 없이 일방적으로 고신과 한상동을 제압했다. 고신은 고신의 정체성 기준으로 보면 거창고와 전영창은 적색경보의 대상인데 고신 안에서 거창고와 전영창은 날로 번창한다.
공회 안에도 이런 현상은 꼭 같이 존재한다. 공회를 비판하되 건설구원을 비판하면 공회 내에서는 이단 시 해야 정상이다. 그런데 백 목사님 면전에서 대 놓고 건설구원을 강조하며 율법주의가 된다고 떠든 이가 현재 부산공회의 최고 중심이다. 그런데 그를 추대하고 따르는 이들의 개인 신앙을 보면 철저히 건설구원을 강조한다. 하기야 먹고 살기에 좋을 수는 있다. 개인적으로 보면, 분명히 율법주의라고 비판한 인물을 적대해야하고 적대적이라야 하는데 그이 앞에만 서면 녹아 없어진다.
(SFC와 복음병원)
고신이 진리 운동에 더하여 외부적으로 내세우는 가장 큰 업적은 경쟁력 크게 2 가지다.
첫째, 수백 개 한국 교단 중 고신은 규모가 크지 않으나 유일하게 교단이 직영하는 대학병원을 가지고 있다. 복음병원이다. 둘째, 규모는 CCC나 IVF만 못하나 고신 교회가 철저히 중심이 된 SFC 학생 운동이 있다. 이 운동은 가장 뜨거웠고 교계의 인물도 길러냈다. 대학은 지금 최정상급의 몇 곳 외에는 모두 불안하다. 그러나 대학병원만은 갈수록 더욱 영향력이 크다. 한 교단이 직영의 대학병원을 가졌다는 것은 모두가 부러워한다. 대학병원의 교수라는 그 어마어마한 직책이 몇 개인가? 또 의사가 되려는 학생들을 선발하고 교육하며 의사로 만드는 그 과정이 어떠한가? 한국의 최고 최대를 견주는 합동 교단, 통합 교단, 감리교단, 침례교단, 개혁 교단, 백석 교단들은 고신을 아주 무시한다. 그러나 복음병원이라는 대학 병원 이야기만 나오면 마냥 부럽기만 하다.
SFC, 고신이 가진 학생회는 고신이라는 교단과 교단 산하의 교회들이 직접 운영한다. SFC보다 훨씬 좋아 보이는 CCC나 IVF 등은 아무리 잘 나가 봐야 자기 교회 자기 교단과 상관이 없다. 오히려 그들이 활발해 질수록 합동, 통합, 감리교, 침례교의 기둥이 될 청년들이 그 쪽으로 옮겨 가거나 몸만 교단에 두고 마음은 그 쪽 사람이 되어 버린다. CCC와 IVF가 잘 되면 잘 될수록 교단과 소속 교회들은 허술해 진다. 그렇다고 뚜렷하게 수 많은 대학생들을 끌고 다니는 그 단체를 비판할 수도 없으니 속만 끓는다. 그럴 때마다 고신이 부럽다. 고신의 SFC는 전국의 대학에서 활동하는 그 결과가 거의 고신 교단과 고신 교회들에게 직접 전도가 되고 또 고신의 기둥들로 자라 나왔기 때문이다. CCC나 IVF가 아무리 큰 역할을 했다 해도 그들은 신앙적으로 반 고신적이다. 모두가 진보 쪽으로 움직인다. 고신의 SFC는 실제 CCC나 IVF와 별반 다르지는 않으나 SFC의 말과 표시만은 고신의 철저한 신앙 운동을 표방한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한국 교계의 보수 정통에 빛나는 인물들을 수 없이 배출했다. 지금은 타 교단에 가 있거나 고신과 전혀 상관없이 활동을 한다 해도 한국의 제대로 된 보수 정통의 교계 인물을 손꼽다 보면 저절로 SFC는 명문이며 최고 출신이라는 표시가 난다.
(고신이 시작한 거창고... 참으로 우습다)
그런데, 참 우습게도 이 복음병원과 SFC의 출발은 고신을 평생 싫어했고 비판했고 고신과 가장 극단적으로 대치하며 살아 간 인물이 시작을 했다. 거창고의 전영창, 한국 사회의 참으로 나쁜 운동이나 조직에서 그의 역할은 지대했다. 그 나쁜 운동이나 조직이라는 것이 애매할 수 있는데, 고신이 현재도 진행하고 있는 각종 혈투의 대상인 차별금지법이니 학생들의 주사파나 진보적 교육 운동 문제니 신학적으로 고신이 펄쩍 뛸 만한 논리나 활동에 거창고와 전영창의 짙은 그림자가 빠지는 곳은 거의 없다 할 정도다. 그가 그렇게까지 된 이유 중에 하나가 1947년과 1951년의 몇 년을 부산에서 고신의 한상동 한명동 등과 실제 부딪혀 봤고 그들의 골수에 사무친 생각과 행동과 처리들을 겪어 봤기 때문이다. 전영창에게 고신이란 해체 시키고 혁파하고 개조할 대상이지 어느 하나도 그대로 쓸 만한 부분이 없었다. 전영창의 평생은 늘 그러했다. 그 정도였으니 고신의 주창자며 고신의 오늘을 거의 만들어 놓은 한상동 한명동이라는 걸출한 신앙인들이 전영창과 거창고를 알지 못했을까? 그들로서 전영창이라는 인물은 아예 상종하지 못할 대상이었다. 그래서 가차 없이 쳐 내버렸고 그의 흔적을 철저히 지워 버렸다. 그렇다고 고대사회가 아닌데 깨끗하게 지워지기야 하겠는가? 손양원조차 최대치로 지워 나간 고신이니 전영창 지우기는 어렵지 않았다.
SFC와 복음병원을 설립한 전영창은 고신에게 내쳐 질 때 분을 삭이지 못한 채로 미국의 세인트루이스에 있는 컨콜디아 신학교로 갔고, 1956년에 나올 때, 곧 미국으로 돌아 갈 린튼 스승이 대전의 한남대학 부학장이라는 직책을 그에게 맡기고 싶어 초청한 자리에서 ‘머리가 굵은 대학생을 바꾸기는 어려우니 어려서부터 제대로 길러서 국가와 민족에게 좋은 인물이 되도록 초중등 기독교 교육을 원한다’며 이를 거절한다.
그리고 마침 거창에서 1953년에 설립은 했으나 운영이 어려워 후임을 찾는다는 소식을 접하고 그리로 간다. 그 설립자는 바로 고신이었다. 설립자의 이름은 주경중이라는 거창읍교회 교인이었으나 그 부친이 고신의 설립자 주남선 목사님이다. 시설은 호주 선교부 것이다. 거창의 주남선 이름은 그 이름 자체로 교회든 선교부든 심지어 공무원이든 무조건 후원하고 따르는 정도다. 주경중 그 자체의 신앙은 일반적이다. 그러나 부친 주 목사님 때문에 고아원 사업을 했고 또 이어지는 교육 사업을 했거나 하겠다 하면 시설과 행정 지원은 저절로 따라 오는 정도다. 넓게 말하면 고신의 것이고,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주남선의 것이며,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주남선 목사님의 큰 아들이 시작한 학교가 거창고다.
전영창은 고신이 아직 독립 교단이 되기 전 부산에서 태동기를 거치고 있을 때 주남선을 접촉했기 때문에 한상동 한명동과는 다른 것을 알고 있었다. 1956년에 귀국 후 미국의 남장로교가 추진하는 한남대학과 운영이 되지 않아 내버려지는 거창고를 사이에 두고 그는 양 쪽의 영향력과 성향과 자신과의 관계를 매우 잘 파악했다. 비록 거창고가 고신의 것이지만 그렇다 해도 법적으로는 주경중의 사립학교로 시작했기에 인수를 받게 된다. 그리고 고신의 부산은 아니지만 또 다른 고신의 거창이라는 호랑이 굴로 들어가서 고신이 아니라 전영창이 마음에 품고 있는 진보의 꿈을 마음껏 펼치고 싶었다. 그는 원래 골수적으로 진보다. 좌파도 아니고 우파도 아니다. 그는 바르게 배웠고 바른 뜻으로 살고 싶되 혼자가 아니라 주변 전체를 이끌 사람이다. 바른 신앙가며 바른 교육가며 바른 실천가다. 다만 그의 성향은 죽는 날까지 진보일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불을 붙여 놓은 것은 고신에서 밀려 한을 가지고 갔던 미국의 2차 유학 기간이 바로 '세인트루이스에 있는 컨콜디아'였다. 그는 원래 좌파까지 가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 기간을 거치며 그는 필연적으로 진보의 끝에서 더 나아가 그가 원치 않았던 좋지 못한 좌파, 아주 나쁜 좌파의 열매를 그의 독보적 활동과 성과 끝에 주렁주렁 열리도록 했다. 김동길 김진홍이라는 이런 인물들과 같은 부류였다. 이들은 훗날 철이 들며 그들의 젊은 날의 생각과 행동을 완전히 바꾸었다. 전영창은 1976년에 사망하게 되며 이렇게 전향할 기회를 잃어 버렸다. 그래서 김동길 김진홍 밑에서 배운 이들은 좌파로 나간 이들도 있겠지만 순수한 진보에서 어중간이 머물다가 다시 오늘을 기준으로 보면 그들처럼 보수로 돌아 왔지만, 거창고의 경우는 70년대의 순수한 진보가 스승 없이 80년대를 관통하며 주사파나 종북 그 이상으로 가 버렸다. 그럴 수 있는 조짐과 씨앗은 1976년 이전의 생전에 전영창 스스로 마음껏 청소년과 젊은이들의 사상에 가라지를 대거 뿌려 놓았기 때문이다.
고신은 전영창의 거창고를 설립했다. 고신은 좋은 환경과 뒷받침에도 불구하고 폐교 외에 도리가 없어 넘겨 버렸다. 전영창은 고신의 SFC와 복음병원을 창시자다. 그러나 고신은 전영창을 밀어 냈고 그의 이름은 지우고 성공을 했다. 전영창은 SFC와 복음병원을 출발 시킨 직후 고신이 버린 거창고로 갔고 폐교 직전에서 한국 교육의 전설을 만들었다. 고신은 SFC와 복음병원을 전영창에게 빼앗고 고신의 것으로 만든 다음 이후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여 오늘이 되었다. 이렇게 이제 눈에 보이는 사실로 보면 전영창은 무엇을 해도 성취를 해 내는 사람이다. 또 될 것을 선별할 줄 안다. 그는 한국의 정치계에 박정희 같은 인물이고, 한국의 재계에 이병철 정주영 박태준 같은 인물이다. 분명히 탁월하다. 고신이 포기한 거창고를 한국의 교육계에 전설을 만들어 오늘 한국의 교육 생태계, 본질은 두고, 그 결과를 만들었다. 고신은 전영창이 두고 간 불씨만을 살려서 이렇게 크게 성공했다. 전영창이 직접 이어 갔더라면 상상 이상일 듯하다. 물론 그 폭발적 성공의 내용은 반 고신, 비 신앙, 오늘의 고신의 이상과 정체성과는 전혀 다른 것이 되었을 것으로 본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1956년까지 공부한 세인트루이스의 신학 시절'의 유무에 따라 아주 달라진다. 일반적으로 한국 교계는 세인트루이스를 잘 알아야 하는데도 실은 잘 모르는 듯하다. 특히 전영창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너희가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니라 그런즉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하는 말이 옳도다 내가 너희로 노력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내었노니 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그들의 노력한 것에 참예하였느니라
사과나무를 심기는 할아버지가 심고 그 열매를 따 먹기는 손주가 따 먹는다는 말이 있듯이 누구는 전도만 하고 누구는 그 전도한 사람을 데려와 길러 일군이 되게 하고,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전도와 기도, 눈물의 노력과 희생이 있었다. 여러 교단, 교파, 다양한 진영 사람들 각자 자기대로는 열심히 했는데 지나고 보니 절대주권의 하나님이 다양한 노선들의 합력을 통해 한 사람을 길러가신다. 사람이 했다. 우리가, 우리 교단이, 우리 진영이 했다는 말을 꺼내지도 못하게, 자기 의를 자랑치 못하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 것일까?
주님의 생전 마지막 기도처럼 믿는 자들이 다 하나되게 하사 전적 하나님이 다 홀로 하신 것임을 시인하는 자가 복있는 참된 겸손일 것이다. 궁극에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하시려고 모든 것들을 합력하게 하사 선을 이루시게 하심을 깨닫는 자가 진정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확실하게 믿는 자일 것이다. 단일교회, 누구 중심으로 무엇 중심으로 하나되게 하시는 것일까? 정통의 바른 노선이란 결국 결국 진리와 영감으로 또한 사활 대속으로 하나되기를 힘쓰는 자의 것이다. 쌍방간에 피 터지게 싸우고 법정 공방, 노선 다툼에 이혼, 서로 갈라서도 결국 전해지는 것은 예수요 복음 전파인 것이다.
앞선 자, 선생, 스승의 글에 아멘으로 화답할 수 있는 지면을 주심에 늘 감사하다.
저는 개인적으로 거창고의 정치색(진보좌파, 반미)에 대하여 부정적입니다. 지금 거창고는 전영창 우상화에 미쳐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