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룻 비둘기, 잿만당 넘지 못한다.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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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30 15:22
생전에 이 곳 연구소를 향해 백영희 목사님의 하신 말씀이 있다. '하루 비둘기 잿만당 넘어 가지 못한다.'
계통은 이어 나가고 있으나 실력이 너무 떨어진다는 말로 평생 마음에 새기고 좀 나은 사람이 되어 보자며 자신을 독려했다.
우리의 평생, 또 하나의 새로운 지도자를 주실 때까지 오늘을 지키며 기다리는 우리들에 대한 '한계'와 '소망'을 담고 있다.
우선 좋은 이야기부터 되새기며 우리가 낙망에 이르지 않도록 응원을 해 본다. 이 곳을 오시는 모든 분들 때문에 그러하다.
1. 하룻 비둘기
사람으로 말하면 '어린 아이'를 '하룻 비둘기'라고 한다. 새가 부화 되고 날개짓을 하려면 2-3주는 있어야 한다. 날개짓을 하기 전까지는 사람 눈에 띄지 않는다. 둥지 밖으로 날기 위해 날개짓을 할 때 '하룻 비둘기'가 된다. 하룻 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 라는 말과도 같다. 이제 뛰기는 한다. 그런데 호랑이 뭔지도 모를 어린 때다.
연구소와 이 노선의 현재 앞에 서 있는 인물이 서부교회 주일학교를 맡았을 때 '휙 날아 버릴 줄' 알았는데 막상 시켜 보니 '하룻 비둘기'라.. 뭘 한다고 설치기는 하는데 결과가 없다 라는 표현이었다. 평가의 차원이 너무 높고 예리했으며 그 분의 입에서 나온 표현은 세월을 통해 모두 입증이 되었다는 점에서 우리는 이 표현을 평생 마음에 품고 우리의 과제로 삼고 있다. 우선 하룻 비둘기의 좋은 면을 말한다면 부화까지의 어려운 과정을 넘어 섰다는 뜻이다. 건네 받은 생명을 잃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그리고 둥지 안에서도 죽는 경우가 많은데 그 생존의 위험한 고비를 또 넘겼다는 뜻이다. 그리고 둥지에서 이제 첫 날개짓을 했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대단하다. 그런데 '잿만당 넘어 가지 못한다'는 표현에는 못났다는 뜻을 담고 있으나 일단 잿만당을 넘어 가지 못해서 그렇지 부화와 첫 비행을 거쳤고 이제 주변을 날아 다닌다는 성장을 전제로 한다.
생명을 가졌다는 것, 그 생명이 활동을 한다는 것, 그리고 그 생명이 자라 가는 과정이라는 것은 교회의 역사적 계통에 섰다는 뜻이다. 여기서 잠깐 멈추고 이 의미를 돌아 본다. 여기까지만 가지고 돌아 본다면 천에 하나, 만에 하나도 사실 닿기 어려운 선을 건너고 있다는 것이니 이 어찌 작은 일이겠는가? 대단하다. 귀하다. 그 분이 '생명성' '계통성' 그의 사후를 이어 갈 '사명성'을 인정했다는 표현으로 우리는 감사할 뿐이다. 어디 우리 실력이었겠는가? 우리의 자세만은 바르다고 인정했다. 그렇다 생명을 가진 신앙이 바른 계통에 서서 자라 간다면 앞으로 뭐가 될지 모른다. 그래서 '소망'을 말하는 것이다.
2. 안타까운 우리
언젠가 자라면 되지 않을까? 그렇다. 언젠가 자랄 수만 있다면 좋다. 그런데 그 때까지는 당대를 감당할 실력이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사명은 크고 살려야 할 교회와 교인은 무수한데 혼자만 겨우 생존하고 혼자만 그 주변을 품고 있으니 천하는 어떻게 되는가? 매 순간의 소중한 기회는 다시 회수할 수가 없다. 그 분은 우리에게 그 분의 사후를 맡겼다. 그리고 그 분이 열어 놓고 가르쳐 놓고 그 분이 우리의 손에 쥐어 준 모든 자료와 기회를 우리가 쥐고 죄악 세상과 그 세상에게 물들어 무너 지는 공회와 교계에 붙들리지 않고 창공을 펄펄 날며 인간이 알고 인간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그 좁은 범위, 작은 인간의 못난 지식과 선입견과 공간을 확 넘어 서서 새로운 세계를 열기를 바랐다.
이 면을 기준으로 보면 우리는 못난 그 자체가 큰 죄다. 세상의 못난 것은 타고 난 자기를 탓하면 되고 환경을 탓해도 된다. 그러나 신앙의 세계에서는 타고 난 못난 것도 또 자기의 원래 능력으로 넘어 설 수 없는 세계도 다 넘어 설 수가 있다. 가능할까? 백영희, 그의 평생이 그러했다. 그는 매 걸음이 그를 둘러 싸고 있던 당시의 잿만당을 뛰어 넘으며 평생을 질주 했다. 그래서 그의 세계는 그냥 위대한 그런 분들의 사례와 단순히 비교하거나 그 중에 하나로 포함하기 곤란하다. 그런 그가 우리에게 기대했다는 것도 좀 우습다. 중국 어디의 무슨 고려개혁이라든가 공회라든가 그런 위대한 분들에게 기대를 하고 맡겼더라면 지금쯤 우주 어디에 새로운 세계를 만들었을 터인데 살고 있는 동네조차 비추지 못하는 우리에게 그의 모든 것을 맡겨 놓았다.
3. 잿만당을 날아 넘어 간 분이 그립다.
백 목사님이 우리에게 부탁한 것은 실수였을까? 홍순철이라는 이름을 기억할 때마다 또는 이런 낙망적인 상황이 올 때마다 우리는 홍순철이라는 이름을 꺼내 든다. 그는 불신 가정에서 출발했다. 초중학교 시절을 기억하는 분들이 별로 없다. 그의 고교 시절조차 기억하는 분들이 별로 없다. 그 때는 교인들이 몇백 명 수준이었기 때문에 모두가 잘 알고 지낼 때다. 모르기야 했겠는가? 그렇게까지 그럴 분인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가 대학을 입학하면서 그는 주일학교 부장을 찾아 반사를 지원했다. 그리고 그 순간 그는 세계기독교의 주일학교라는 거대한 잿만당 안에서 놀던 서부교회 주일학교의 범위를 새로 열어 젖혔다. 딴 세계로 날아 가 버렸다. 그가 잿만당을 넘어 가 버리는 모습을 본 백영희는 그의 과거를 본 듯했고 그의 월권과 그의 당돌하면서 용납할 수 없는 모든 언행을 전폭 지원했다. 그러자 그를 따라 텃새만 부리던 반사들이 함께 철새처럼 잿만당을 넘어 어느 먼 나라로 가는 기러기떼를 형성했다. 서부교회 주일학교의 새 출발의 첫 순간을 풍경화로 그려 본다면 대략 이렇다.
그는 결혼하지 않은 파송의 첫 사례였다. 백 목사님은 어떤 성자 성녀라도 돈과 이성은 믿지 않는다. 홍순철에게는 그런 수준으로 제한하지 않았다. 결혼을 하지 않고 부산 거제동교회로 목회를 출발했다. 이후 청량리교회 그리고 제천 남천교회에서 35 세로 주님 앞에 섰다. 그의 모든 걸음은 매 순간 잿만당을 한 순간에 그리고 주저 없이 넘어 섰다. 우리는 주일학교 학생 또는 이후 학생 시절에 홍순철의 이름을 전해 들었다.
4. 또 한 분도 기대가 되었다.
1977년, 홍순철을 보낸 백영희 목사님은 서영준 목사님이 홍 목사님만은 못할지라도 대체하거나 넘어 설 인물로 기대를 했다. 그리고 1987년까지 10여 년 확실하게 잘 자라 갔다. 홍 목사님 정도는 아니지만 옆에 있는 백명희 사모님 때문에 백영희 다음을 넉넉히 감당할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1987년 8월 15일의 조국 해방일에 하나님은 39세의 그를 데려 가셨다. 그리고 공회의 출애굽은 가나안이 아니라 애굽으로 회군을 하는 상황을 펼쳐 주셨다. 출애굽기에서 여호수아까지를 읽어 보면 광야에서 전진 후진은 거듭 했으나 애굽으로 돌아 간 적은 없었는데 1987년 이후의 공회는 1989년의 백영희 장례식 이후 대부분 애굽으로 그냥 회군을 해 버렸다. 잠실동교회가 중심이 된 서울공회는 애굽에 있었던 때가 재미 있었고 고기 가마 옆에서 먹었고 죽으면 묻을 곳이 있다 한 그 소원대로 그렇게 되었다. 일반 교계 깊숙히 자리를 잡았다. 이제는 그들이 나오고자 해도 나올 수가 없을 듯하다. 대구공회도 서울공회를 따라 처음에는 함께 돌아 가다가 현재 홍해를 다시 건너 가지는 않고 원래 가려던 가나안을 향하는 듯하다. 감사한 일이다. 방향만 잡으면 따라 잡는 것이야 순식간이다. 부산공회들은 대구공회와 서울공회의 회군을 비판하며 열심히 직진을 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현재 그들의 주소지를 보니 가나안과 갈수록 멀어 지고 있다.
이런 시대적 환경에 그래도 이 곳은 가나안을 향한 자세와 직진은 확실해 보인다. 문제는 함께 하는 숫자가 손에 꼽을 정도다. 이렇게 간다면 재림 때가 되어도 요단에 이르지 못할 듯하다. 바로 이런 상황을 미리 보고 표현한 것이 '하룻 비둘기 잿만당을 넘지 못한다' 라는 표현이다. 퍼드득 날 정도의 새는 어미새와 얼른 보면 구별하기 어렵다. 뭔가 갖출 것은 제법 다 갖췄다. 그러나 날개의 길이에 깃털의 구조와 근육의 형성이 여리다. 그래서 잡히지 않으려고 이리저리 설치기는 하는데 그렇다고 잿만당을 너머 하나님이 인도하는 다음 현실의 전혀 다른 세계로 진입할 정도는 아니다.
5. 엎드려 긍휼을 구할 뿐이다.
오늘의 우리를, 모든 객관적 평가 지표로 살펴 보면 '하룻 비둘기'는 되는 듯하다. 감사하다. 그리고 참 우리가 부족한 것은 너무 부족하다. 대구공회와 부산공회에는 참으로 괜찮은 인재들이 많다. 이 분들이면 앞에서 끌고 우리는 뒤에서 몇 가지 챙겨 드리며 잿만당을 함께 넘어 갈 수 있을 듯하다. 잠실동교회는 인물들이 있어 보이지만 원래 인물들이 아니었다. 부공1 쪽은 더더욱 그렇다. 그 분들은 유인 납치의 대상이 될 실종급 유아들이다. 우리처럼 하룻 비둘기라는 표현도 해당이 없다. 제대로 좀 괜찮게 이 노선을 잿만당 너머로 인도할 좋은 지도자들이 부산공회2와 대구공회에는 더러 많다. 평소 몇 분의 성함은 늘 반복하며 이 곳에서 소개했다. 집회를 앞 두고 또 코로나 앞뒤의 여러 상황을 두고 교계와 공회를 전반적으로 둘러 봐야 할 일이 있었다. 그러면서 한 편으로 생명의 계통에 감사하고, 한 편으로 참으로 어리고 못난 점을 자탄하게 되었다.
그냥 머리 숙여 긍휼을 구할 뿐이다.
위에서 기회를 주시면 받을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하룻 비둘기가 요동을 쳐 봐야 사냥꾼에서 잡히지 않을 정도가 전부다.
복음 운동이란 귀신에게 잡히지 않은 것을 자랑할 일이 아니다. 성령에 붙들려 인간의 수평선을 아득히 넘어야 하는 세계다.
바로 이 점 때문에 그 동안 백영희 사후에 이 노선의 흔적이라도 지키려고 몸부림 쳤던 지난 30여 년을 돌아 보면서 이제는
홍순철처럼 또는 서영준처럼 이런 소망의 인물을 주셨는지 또는 주실 수 있는지 교역자 수양회의 50년대를 향하고 싶다.
우리는, 최소한 다른 공회처럼 연륜을 가지고 옳고 바르게 자라 나오는 후배를 슬그머니 누르는 그런 일만은 하지 않는다.
남들이 가지지 않은 자료나 정보나 기회를 몰래 돌아 앉아 혼자 즐기는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만은 탈피해 왔다.
우리는, 우리를 지도할 분이 소년으로 또는 후배로 우리 앞에 나타 나면 우리는 그 앞에 제일 먼저 머리 숙여 배울 사람이다.
이런 사람들이 모인 곳을 부공3, 이 연구소라 한다. 이런 자세가 되지 않으면 몇 년 또는 1~20년이 되어도 결국 헤어 지게 된다.
계통은 이어 나가고 있으나 실력이 너무 떨어진다는 말로 평생 마음에 새기고 좀 나은 사람이 되어 보자며 자신을 독려했다.
우리의 평생, 또 하나의 새로운 지도자를 주실 때까지 오늘을 지키며 기다리는 우리들에 대한 '한계'와 '소망'을 담고 있다.
우선 좋은 이야기부터 되새기며 우리가 낙망에 이르지 않도록 응원을 해 본다. 이 곳을 오시는 모든 분들 때문에 그러하다.
1. 하룻 비둘기
사람으로 말하면 '어린 아이'를 '하룻 비둘기'라고 한다. 새가 부화 되고 날개짓을 하려면 2-3주는 있어야 한다. 날개짓을 하기 전까지는 사람 눈에 띄지 않는다. 둥지 밖으로 날기 위해 날개짓을 할 때 '하룻 비둘기'가 된다. 하룻 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 라는 말과도 같다. 이제 뛰기는 한다. 그런데 호랑이 뭔지도 모를 어린 때다.
연구소와 이 노선의 현재 앞에 서 있는 인물이 서부교회 주일학교를 맡았을 때 '휙 날아 버릴 줄' 알았는데 막상 시켜 보니 '하룻 비둘기'라.. 뭘 한다고 설치기는 하는데 결과가 없다 라는 표현이었다. 평가의 차원이 너무 높고 예리했으며 그 분의 입에서 나온 표현은 세월을 통해 모두 입증이 되었다는 점에서 우리는 이 표현을 평생 마음에 품고 우리의 과제로 삼고 있다. 우선 하룻 비둘기의 좋은 면을 말한다면 부화까지의 어려운 과정을 넘어 섰다는 뜻이다. 건네 받은 생명을 잃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그리고 둥지 안에서도 죽는 경우가 많은데 그 생존의 위험한 고비를 또 넘겼다는 뜻이다. 그리고 둥지에서 이제 첫 날개짓을 했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대단하다. 그런데 '잿만당 넘어 가지 못한다'는 표현에는 못났다는 뜻을 담고 있으나 일단 잿만당을 넘어 가지 못해서 그렇지 부화와 첫 비행을 거쳤고 이제 주변을 날아 다닌다는 성장을 전제로 한다.
생명을 가졌다는 것, 그 생명이 활동을 한다는 것, 그리고 그 생명이 자라 가는 과정이라는 것은 교회의 역사적 계통에 섰다는 뜻이다. 여기서 잠깐 멈추고 이 의미를 돌아 본다. 여기까지만 가지고 돌아 본다면 천에 하나, 만에 하나도 사실 닿기 어려운 선을 건너고 있다는 것이니 이 어찌 작은 일이겠는가? 대단하다. 귀하다. 그 분이 '생명성' '계통성' 그의 사후를 이어 갈 '사명성'을 인정했다는 표현으로 우리는 감사할 뿐이다. 어디 우리 실력이었겠는가? 우리의 자세만은 바르다고 인정했다. 그렇다 생명을 가진 신앙이 바른 계통에 서서 자라 간다면 앞으로 뭐가 될지 모른다. 그래서 '소망'을 말하는 것이다.
2. 안타까운 우리
언젠가 자라면 되지 않을까? 그렇다. 언젠가 자랄 수만 있다면 좋다. 그런데 그 때까지는 당대를 감당할 실력이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사명은 크고 살려야 할 교회와 교인은 무수한데 혼자만 겨우 생존하고 혼자만 그 주변을 품고 있으니 천하는 어떻게 되는가? 매 순간의 소중한 기회는 다시 회수할 수가 없다. 그 분은 우리에게 그 분의 사후를 맡겼다. 그리고 그 분이 열어 놓고 가르쳐 놓고 그 분이 우리의 손에 쥐어 준 모든 자료와 기회를 우리가 쥐고 죄악 세상과 그 세상에게 물들어 무너 지는 공회와 교계에 붙들리지 않고 창공을 펄펄 날며 인간이 알고 인간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그 좁은 범위, 작은 인간의 못난 지식과 선입견과 공간을 확 넘어 서서 새로운 세계를 열기를 바랐다.
이 면을 기준으로 보면 우리는 못난 그 자체가 큰 죄다. 세상의 못난 것은 타고 난 자기를 탓하면 되고 환경을 탓해도 된다. 그러나 신앙의 세계에서는 타고 난 못난 것도 또 자기의 원래 능력으로 넘어 설 수 없는 세계도 다 넘어 설 수가 있다. 가능할까? 백영희, 그의 평생이 그러했다. 그는 매 걸음이 그를 둘러 싸고 있던 당시의 잿만당을 뛰어 넘으며 평생을 질주 했다. 그래서 그의 세계는 그냥 위대한 그런 분들의 사례와 단순히 비교하거나 그 중에 하나로 포함하기 곤란하다. 그런 그가 우리에게 기대했다는 것도 좀 우습다. 중국 어디의 무슨 고려개혁이라든가 공회라든가 그런 위대한 분들에게 기대를 하고 맡겼더라면 지금쯤 우주 어디에 새로운 세계를 만들었을 터인데 살고 있는 동네조차 비추지 못하는 우리에게 그의 모든 것을 맡겨 놓았다.
3. 잿만당을 날아 넘어 간 분이 그립다.
백 목사님이 우리에게 부탁한 것은 실수였을까? 홍순철이라는 이름을 기억할 때마다 또는 이런 낙망적인 상황이 올 때마다 우리는 홍순철이라는 이름을 꺼내 든다. 그는 불신 가정에서 출발했다. 초중학교 시절을 기억하는 분들이 별로 없다. 그의 고교 시절조차 기억하는 분들이 별로 없다. 그 때는 교인들이 몇백 명 수준이었기 때문에 모두가 잘 알고 지낼 때다. 모르기야 했겠는가? 그렇게까지 그럴 분인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가 대학을 입학하면서 그는 주일학교 부장을 찾아 반사를 지원했다. 그리고 그 순간 그는 세계기독교의 주일학교라는 거대한 잿만당 안에서 놀던 서부교회 주일학교의 범위를 새로 열어 젖혔다. 딴 세계로 날아 가 버렸다. 그가 잿만당을 넘어 가 버리는 모습을 본 백영희는 그의 과거를 본 듯했고 그의 월권과 그의 당돌하면서 용납할 수 없는 모든 언행을 전폭 지원했다. 그러자 그를 따라 텃새만 부리던 반사들이 함께 철새처럼 잿만당을 넘어 어느 먼 나라로 가는 기러기떼를 형성했다. 서부교회 주일학교의 새 출발의 첫 순간을 풍경화로 그려 본다면 대략 이렇다.
그는 결혼하지 않은 파송의 첫 사례였다. 백 목사님은 어떤 성자 성녀라도 돈과 이성은 믿지 않는다. 홍순철에게는 그런 수준으로 제한하지 않았다. 결혼을 하지 않고 부산 거제동교회로 목회를 출발했다. 이후 청량리교회 그리고 제천 남천교회에서 35 세로 주님 앞에 섰다. 그의 모든 걸음은 매 순간 잿만당을 한 순간에 그리고 주저 없이 넘어 섰다. 우리는 주일학교 학생 또는 이후 학생 시절에 홍순철의 이름을 전해 들었다.
4. 또 한 분도 기대가 되었다.
1977년, 홍순철을 보낸 백영희 목사님은 서영준 목사님이 홍 목사님만은 못할지라도 대체하거나 넘어 설 인물로 기대를 했다. 그리고 1987년까지 10여 년 확실하게 잘 자라 갔다. 홍 목사님 정도는 아니지만 옆에 있는 백명희 사모님 때문에 백영희 다음을 넉넉히 감당할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1987년 8월 15일의 조국 해방일에 하나님은 39세의 그를 데려 가셨다. 그리고 공회의 출애굽은 가나안이 아니라 애굽으로 회군을 하는 상황을 펼쳐 주셨다. 출애굽기에서 여호수아까지를 읽어 보면 광야에서 전진 후진은 거듭 했으나 애굽으로 돌아 간 적은 없었는데 1987년 이후의 공회는 1989년의 백영희 장례식 이후 대부분 애굽으로 그냥 회군을 해 버렸다. 잠실동교회가 중심이 된 서울공회는 애굽에 있었던 때가 재미 있었고 고기 가마 옆에서 먹었고 죽으면 묻을 곳이 있다 한 그 소원대로 그렇게 되었다. 일반 교계 깊숙히 자리를 잡았다. 이제는 그들이 나오고자 해도 나올 수가 없을 듯하다. 대구공회도 서울공회를 따라 처음에는 함께 돌아 가다가 현재 홍해를 다시 건너 가지는 않고 원래 가려던 가나안을 향하는 듯하다. 감사한 일이다. 방향만 잡으면 따라 잡는 것이야 순식간이다. 부산공회들은 대구공회와 서울공회의 회군을 비판하며 열심히 직진을 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현재 그들의 주소지를 보니 가나안과 갈수록 멀어 지고 있다.
이런 시대적 환경에 그래도 이 곳은 가나안을 향한 자세와 직진은 확실해 보인다. 문제는 함께 하는 숫자가 손에 꼽을 정도다. 이렇게 간다면 재림 때가 되어도 요단에 이르지 못할 듯하다. 바로 이런 상황을 미리 보고 표현한 것이 '하룻 비둘기 잿만당을 넘지 못한다' 라는 표현이다. 퍼드득 날 정도의 새는 어미새와 얼른 보면 구별하기 어렵다. 뭔가 갖출 것은 제법 다 갖췄다. 그러나 날개의 길이에 깃털의 구조와 근육의 형성이 여리다. 그래서 잡히지 않으려고 이리저리 설치기는 하는데 그렇다고 잿만당을 너머 하나님이 인도하는 다음 현실의 전혀 다른 세계로 진입할 정도는 아니다.
5. 엎드려 긍휼을 구할 뿐이다.
오늘의 우리를, 모든 객관적 평가 지표로 살펴 보면 '하룻 비둘기'는 되는 듯하다. 감사하다. 그리고 참 우리가 부족한 것은 너무 부족하다. 대구공회와 부산공회에는 참으로 괜찮은 인재들이 많다. 이 분들이면 앞에서 끌고 우리는 뒤에서 몇 가지 챙겨 드리며 잿만당을 함께 넘어 갈 수 있을 듯하다. 잠실동교회는 인물들이 있어 보이지만 원래 인물들이 아니었다. 부공1 쪽은 더더욱 그렇다. 그 분들은 유인 납치의 대상이 될 실종급 유아들이다. 우리처럼 하룻 비둘기라는 표현도 해당이 없다. 제대로 좀 괜찮게 이 노선을 잿만당 너머로 인도할 좋은 지도자들이 부산공회2와 대구공회에는 더러 많다. 평소 몇 분의 성함은 늘 반복하며 이 곳에서 소개했다. 집회를 앞 두고 또 코로나 앞뒤의 여러 상황을 두고 교계와 공회를 전반적으로 둘러 봐야 할 일이 있었다. 그러면서 한 편으로 생명의 계통에 감사하고, 한 편으로 참으로 어리고 못난 점을 자탄하게 되었다.
그냥 머리 숙여 긍휼을 구할 뿐이다.
위에서 기회를 주시면 받을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하룻 비둘기가 요동을 쳐 봐야 사냥꾼에서 잡히지 않을 정도가 전부다.
복음 운동이란 귀신에게 잡히지 않은 것을 자랑할 일이 아니다. 성령에 붙들려 인간의 수평선을 아득히 넘어야 하는 세계다.
바로 이 점 때문에 그 동안 백영희 사후에 이 노선의 흔적이라도 지키려고 몸부림 쳤던 지난 30여 년을 돌아 보면서 이제는
홍순철처럼 또는 서영준처럼 이런 소망의 인물을 주셨는지 또는 주실 수 있는지 교역자 수양회의 50년대를 향하고 싶다.
우리는, 최소한 다른 공회처럼 연륜을 가지고 옳고 바르게 자라 나오는 후배를 슬그머니 누르는 그런 일만은 하지 않는다.
남들이 가지지 않은 자료나 정보나 기회를 몰래 돌아 앉아 혼자 즐기는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만은 탈피해 왔다.
우리는, 우리를 지도할 분이 소년으로 또는 후배로 우리 앞에 나타 나면 우리는 그 앞에 제일 먼저 머리 숙여 배울 사람이다.
이런 사람들이 모인 곳을 부공3, 이 연구소라 한다. 이런 자세가 되지 않으면 몇 년 또는 1~20년이 되어도 결국 헤어 지게 된다.

오늘은 봄인가 여름인가 가을인가.. 겨울일 듯하다.
시대를 감당한 종들도 늘 한 길을 걸었으나 주님 주시는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었다는 점을 생각하고
이 곳의 모두가 오늘을 탄식 대신에 할 일만 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