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것을 낡은 부대에.. 공회들에 대한 애절한 마음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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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25 17:35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외부 자료를 인용할 때마다 늘 마5:37의 말씀을 떠올리며 진행한다. 우리의 판단은 옳고 그른 것을 찾아 가는 과정이다. 최종 판단을 피했다 해도 속으로 확정을 지우면 하나님 자리에 앉는 문제가 생긴다. 확질하다고 외쳐도 그 속에 최종 판단을 유보하면서 옳은 것과 아닌 것을 따지는 과정이면 자라 가는 과정이며 형제를 살리는 복음 운동이고 자기를 고치는 회개가 된다.
<2022년 7월 24일, 부산 서부교회 주일학교 주일 오전 예배>

<옳다! 과연 옳다!>
예배의 순서와 설교의 모든 내용은 백 목사님 생전을 그대로 지키고 있다. 백 목사님 사후 33년을 채우는 이 시점에도 이렇게 지켜 낸다는 것은 정말 대단하다. 주일학생을 상대로 장년반의 예배 찬송만 사용하고, 묵도와 기도는 물론 설교 내용이 토씨 하나까지 장년반의 설교를 요약한 고강도 교훈이다. 백 목사님은 갔으나 그 뜻을 살리고 지키는 서부교회에 찬탄을 보낸다. 이 면은 '정말 옳다! 정말 잘 한다!' 과연 서부교회의 저력은 확실하다.
<아닌 것은? 아니다!>
80년대 내내 국내외 언론과 교계가 서부교회를 방문하고 세계 최대의 주일학교를 만든 비결을 물을 때마다 서부교회와 백영희 목사님은 '율동이나 시청각으로 아동을 즐겁게 하는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장년반 찬송을 그대로 사용하면 말씀만 가르쳤다'고 설명했다. 80년대에 저 정도 율동을 했다면 먹혔을 듯하다. 지금은 저 수준 가지고는 '율동'의 효력은 없을 듯하다. 이 노선의 원칙을 모르기 때문에 율동을 애매하게 끌어 왔다. 너무 심하면 과거와 비교가 되며 자책감이 있을 것이고, 이대로 주저 앉기에는 세계 최대의 주일학교라는 명색에 너무 죄송하다. 그래서 한 명의 학생이라도 더 데려 오기 위해 죄 되지 않으면 어떤 방법이라도 사용해 보는 것이리라.
문제는,
이 정도의 율동으로 요즘 아이들에게 출석을 유도할 수 있을까? 그 재미 없는 공립의 초등학교도, 아이들 몇 명을 데리고 있는 골목의 작은 학원도, 요즘 아이들에게 관심을 끌고 교회로 데려 올 수 있는 여건을 만드려면 화끈해야 한다. 요즘의 평균도 아니라 이 정도라면 수십 년 전에 타 교단이 초기 형태로 해 봤던 것이다. 그들이 볼 때는 그들의 수십 년 전의 헌 가죽 부대를 사용한다고 볼 듯하다. 서부교회 주교 운영론은 새 술이었다.
<공회의 오늘 고민을 담은 장면>
대구공회의 대부분과 서울공회 전부는 백 목사님 사후 마음 먹고 교계의 최신 유행을 다 따라 해 봤다. 부흥이라도 되었던가? 그 것이 교인을 유인할 수 있는 요소였다면 대구공회와 서울공회의 오늘은 대단했을 것이다. 원래 노선과 교훈은 보석 같고 수정 같다. 담는 그릇이 엉망이어서 포장만 조금 바꾼다고 했다. 잠실동교회와 서울공회 쪽은 합동 측에서조차 너무 자유주의라고 탄식을 한다. 그들은 공회라는 명칭조차 버렸으니 그냥 두고, 대구공회의 경우 다채로운 타 교단의 방법으로 부흥한 곳이 없지는 않다. 한두 곳은 있다고 보인다. 화끈하게 도입하면서도 설교의 핵심과 충성은 공회성을 유지하려는 노력이 보인다. 이 곳을 비판할 마음은 없다. 죽도 밥도 아닌 상태를 만든 곳을 향해서는 할 말이 있다. 어느 쪽을 택할 것인가? 수24:5, 오늘 날 택해야 할 듯하다. 양 쪽에서 갈팡질팡하는 것은 애만 타고 일은 되지 않는다. 양 쪽을 적당히 섞으면 낡은 가죽 부대가 터지면서 다 버린다.
구한 말, 개항의 마지막 기회에 조선의 자존심과 유교의 가치관의 끝자락을 붙들다가 식민지가 되고 결국 이 나라는 스스로 바꾼 것보다 더 급격하게 외부 세력에 의해 안팎이 개조 되었다. 일본처럼 자기들이 스스로 계산하고 취사선택을 했어야 한다. 공회가 확실히 좋은가? 왜 좋은지도 모르고 남들이 좋다니까 좋다고 떠들었고 좋다고 떠들었기 때문에 자기가 한 말에 붙들려 앵무새처럼 이 노선이 좋다고만 말하다 보니 세월이 가고 주변 모두가 흔들어 버리니 결국은 바뀌어 버린다. 자기는 바뀌지 않았다고 강변을 하는데 이미 바꿀 것은 다 바꾸었다. 자세가 어중간하니 시골 식모가 도심 아가씨 흉내 낸 모양이다. 참 딱하다. 차라리 시골 모습 그대로 서울 바닥을 자신 있게 활보를 하면 '청순'을 애모하던 누구의 눈에 들 기회라도 있지 않을까?
이전에는 공회 교회들이 극비에만 붙여 오던 것을 일부 공개를 하는 바람에 자연스럽게 공회 곳곳을 살필 수 있게 되었다. 알려고 하면 모두 제공은 받고 있으나 일반 공개가 되기 전에는 제공한 분들의 입장 때문에 표시를 내지 않는 편이다. 주신 현실의 범위 안에서 말을 하면 눅12:3에서 너희가 어두운데서 말한 모든 것이 광명한데서 들리고 너희가 골방에서 귀에 대고 말한 것이 집 위에서 전파되리라 하셨다. 옳으면 복음으로 전해 지고 잘못 된 것은 덮고 가룬다 해도 하나님이 밝히게 된다. 옳은 것은 옳다 아닌 것은 아니라 할 뿐이다.
외부 자료를 인용할 때마다 늘 마5:37의 말씀을 떠올리며 진행한다. 우리의 판단은 옳고 그른 것을 찾아 가는 과정이다. 최종 판단을 피했다 해도 속으로 확정을 지우면 하나님 자리에 앉는 문제가 생긴다. 확질하다고 외쳐도 그 속에 최종 판단을 유보하면서 옳은 것과 아닌 것을 따지는 과정이면 자라 가는 과정이며 형제를 살리는 복음 운동이고 자기를 고치는 회개가 된다.
<2022년 7월 24일, 부산 서부교회 주일학교 주일 오전 예배>

<옳다! 과연 옳다!>
예배의 순서와 설교의 모든 내용은 백 목사님 생전을 그대로 지키고 있다. 백 목사님 사후 33년을 채우는 이 시점에도 이렇게 지켜 낸다는 것은 정말 대단하다. 주일학생을 상대로 장년반의 예배 찬송만 사용하고, 묵도와 기도는 물론 설교 내용이 토씨 하나까지 장년반의 설교를 요약한 고강도 교훈이다. 백 목사님은 갔으나 그 뜻을 살리고 지키는 서부교회에 찬탄을 보낸다. 이 면은 '정말 옳다! 정말 잘 한다!' 과연 서부교회의 저력은 확실하다.
<아닌 것은? 아니다!>
80년대 내내 국내외 언론과 교계가 서부교회를 방문하고 세계 최대의 주일학교를 만든 비결을 물을 때마다 서부교회와 백영희 목사님은 '율동이나 시청각으로 아동을 즐겁게 하는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장년반 찬송을 그대로 사용하면 말씀만 가르쳤다'고 설명했다. 80년대에 저 정도 율동을 했다면 먹혔을 듯하다. 지금은 저 수준 가지고는 '율동'의 효력은 없을 듯하다. 이 노선의 원칙을 모르기 때문에 율동을 애매하게 끌어 왔다. 너무 심하면 과거와 비교가 되며 자책감이 있을 것이고, 이대로 주저 앉기에는 세계 최대의 주일학교라는 명색에 너무 죄송하다. 그래서 한 명의 학생이라도 더 데려 오기 위해 죄 되지 않으면 어떤 방법이라도 사용해 보는 것이리라.
문제는,
이 정도의 율동으로 요즘 아이들에게 출석을 유도할 수 있을까? 그 재미 없는 공립의 초등학교도, 아이들 몇 명을 데리고 있는 골목의 작은 학원도, 요즘 아이들에게 관심을 끌고 교회로 데려 올 수 있는 여건을 만드려면 화끈해야 한다. 요즘의 평균도 아니라 이 정도라면 수십 년 전에 타 교단이 초기 형태로 해 봤던 것이다. 그들이 볼 때는 그들의 수십 년 전의 헌 가죽 부대를 사용한다고 볼 듯하다. 서부교회 주교 운영론은 새 술이었다.
<공회의 오늘 고민을 담은 장면>
대구공회의 대부분과 서울공회 전부는 백 목사님 사후 마음 먹고 교계의 최신 유행을 다 따라 해 봤다. 부흥이라도 되었던가? 그 것이 교인을 유인할 수 있는 요소였다면 대구공회와 서울공회의 오늘은 대단했을 것이다. 원래 노선과 교훈은 보석 같고 수정 같다. 담는 그릇이 엉망이어서 포장만 조금 바꾼다고 했다. 잠실동교회와 서울공회 쪽은 합동 측에서조차 너무 자유주의라고 탄식을 한다. 그들은 공회라는 명칭조차 버렸으니 그냥 두고, 대구공회의 경우 다채로운 타 교단의 방법으로 부흥한 곳이 없지는 않다. 한두 곳은 있다고 보인다. 화끈하게 도입하면서도 설교의 핵심과 충성은 공회성을 유지하려는 노력이 보인다. 이 곳을 비판할 마음은 없다. 죽도 밥도 아닌 상태를 만든 곳을 향해서는 할 말이 있다. 어느 쪽을 택할 것인가? 수24:5, 오늘 날 택해야 할 듯하다. 양 쪽에서 갈팡질팡하는 것은 애만 타고 일은 되지 않는다. 양 쪽을 적당히 섞으면 낡은 가죽 부대가 터지면서 다 버린다.
구한 말, 개항의 마지막 기회에 조선의 자존심과 유교의 가치관의 끝자락을 붙들다가 식민지가 되고 결국 이 나라는 스스로 바꾼 것보다 더 급격하게 외부 세력에 의해 안팎이 개조 되었다. 일본처럼 자기들이 스스로 계산하고 취사선택을 했어야 한다. 공회가 확실히 좋은가? 왜 좋은지도 모르고 남들이 좋다니까 좋다고 떠들었고 좋다고 떠들었기 때문에 자기가 한 말에 붙들려 앵무새처럼 이 노선이 좋다고만 말하다 보니 세월이 가고 주변 모두가 흔들어 버리니 결국은 바뀌어 버린다. 자기는 바뀌지 않았다고 강변을 하는데 이미 바꿀 것은 다 바꾸었다. 자세가 어중간하니 시골 식모가 도심 아가씨 흉내 낸 모양이다. 참 딱하다. 차라리 시골 모습 그대로 서울 바닥을 자신 있게 활보를 하면 '청순'을 애모하던 누구의 눈에 들 기회라도 있지 않을까?
이전에는 공회 교회들이 극비에만 붙여 오던 것을 일부 공개를 하는 바람에 자연스럽게 공회 곳곳을 살필 수 있게 되었다. 알려고 하면 모두 제공은 받고 있으나 일반 공개가 되기 전에는 제공한 분들의 입장 때문에 표시를 내지 않는 편이다. 주신 현실의 범위 안에서 말을 하면 눅12:3에서 너희가 어두운데서 말한 모든 것이 광명한데서 들리고 너희가 골방에서 귀에 대고 말한 것이 집 위에서 전파되리라 하셨다. 옳으면 복음으로 전해 지고 잘못 된 것은 덮고 가룬다 해도 하나님이 밝히게 된다. 옳은 것은 옳다 아닌 것은 아니라 할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