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착한 이리는 없다. 세상은 우리에게 맹수다.
담당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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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02 14:23
김동연 경기도 지사 때문에 경기도에 계시는 공회 교인들의 질문이 있었다. 세상을 읽는 신앙의 시야 때문에 적어 본다.
김동연, 그의 이력을 보니
상고 출신의 60대로 80년대 행정 고시를 합격하고 재정부 계통에서 평생 일을 했다. 군부 때부터 여야 온갖 정부에서 일했다.
이 번 선거에 여야 양 쪽에서 서로 끌어 들이려다 현재는 야당에서 경기지사가 되었다. 이 정도를 기본으로 삼고 설명해 본다.
신앙의 사람은 신앙사를 읽을 때와 마찬 가지로 세상을 읽을 때 항상 양 면을 봐야 한다.
좋을 때는 좋지 않을 때를 봐야 하고, 좋지 않을 환경이 펼쳐 질 때는 좋은 면을 넘겨 봐야 한다. 둘은 항상 맞물려 돌아 간다.
현재 여당은 보수 쪽이다. 자유 민주주의와 종교 자유를 지원한다. 교회는 우선 좋아 보인다. 그 뒤에 오는 위험을 봐야 한다.
현재 야당은 좌익 쪽이다. 통제를 통해 개인 자유와 신앙 자유를 억압한다. 지난 5 년 교회가 당했으나 큰 유익이 함께 왔다.
김동연, 그 인물 때문이 아니라 그런 성향의 인물을 두고 일반적으로 알아야 할 것을 적어 본다.
여당 안에 확실히 여당 편인데도 야당 식으로 활동하는 사람이 있다. 여당 안에 잘못을 고치고 더 잘 하자는 뜻을 가진 경우,
또한 야당 안에 확실히 야당인데도 늘 여당 편을 드는 듯한 사람이 있다. 야당의 내부를 정말 잘 고쳐 더 좋게 하자는 경우다.
우선 자기 편 안에서 자기 지도부를 무조건 지지해야 얻는 것이 많다. 그러나 한 편 안에서 고언하는 사람은 대개 양심가다.
옛날로 갈수록 양심가들은 간첩인지 암 세포인지 사실 알기도 어렵고 일단 박해를 당했다. 지금은 오히려 더 큰 인기를 끈다.
그런데 이런 내부의 양심가들이 그들의 정말 양심과 진심이 자기 조직을 위한다 해도 결과적으로 전체에 위협이 될 수 있다.
김동연, 이런 인물은 자기 스스로 군부 독재 밑에서 출세를 했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정권 교체에 살아 남았다.
그렇다면 이런 인물이란 자기를 위해서 선악과 누구 편을 가리지 않고 생존을 위해 살아 온 사람이다. 현재는 야당에 있다.
이런 사람이 야당에 있다면 평생 야당으로만 살아 온 사람보다는 덜 야당적이다. 여당 쪽으로서는 생 야당보다 나아 보인다.
우리 편이 아니고 저 쪽 편에 사람이라면, 그 중에서 우리와 가까운 사람이 우선은 우리에게 유리해 보인다. 경기도의 현재다.
이 사람이 갈팡질팡 하며 여야와 보수 진보와 자유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오가며 정책을 펼치고 교회에 영향을 끼칠 것이다.
지난 2 년처럼 다시 코로나가 발생한다면 과거 2 년 이재명 식의 교회 탄압은 없을 듯하다. 그렇다고 방치하지도 않을 듯하다.
이런 상황에서 신앙의 자유를 갖고 싶은 이들은 이재명 식의 최악이 아니고 차악이 되는 김동연에게 호감을 가질 수 있다.
앞에서 밀고 내려 오는 인민군보다 남한 안에서 활동하는 내부 좌파가 실은 더 위험하다. 현재 우리 나라 상황이 그렇다.
공회에도 교계에도 또 우리 사회 전체를 봐서도 선명하게 우리 편과 저 쪽 편으로 나뉘는 것이 우선 대처하기는 더 쉽다.
우선 우리에게 우호적인 것처럼 보이는데 그 속에 들어 앉아 있는 바탕이 저 쪽이 된다면 그 누구에게나 더 위협적이 된다.
이재명 식 코로나 상황에서 경기도 지역의 교회는 서울보다 피해가 더 컸다. 정권의 결정에 따라 경기도는 극단적이었다.
서울은 뉴스의 관심을 받는 곳이어서 더 큰 싸움이 벌어 진 듯하나 경기도는 그냥 다 전멸을 해서 소리가 없었던 듯하다.
이제 극단적 이재명 식 대신에 조금 합리적으로 나올 김동연 식의 5 년, 김동연이 문제가 아니라 이런 식의 상대방을 두고,
교회가 이리 떼 중에 착한 이리와 흉악한 이리가 있다고 이분법으로 나누는 순간 이리의 저녁 식탁을 피할 길은 없게 된다.
세상은 그냥 세상이다. 교회를 지지한다고 보이는 현재 윤석열 정부와 보수 여당도 그 내면을 들여다 보면 교회 탄압이다.
야당이 집권 하던 시절 너무 혹독한 말이 나오다 보니 덜 혹독한 현재 여당이 교회 우호 세력처럼 교회와 하나가 되어 있다.
좋은 늑대는 없다. 착한 이라도 없다. 맹수란 그 본질이 사냥이다. 사냥하는 때와 방식이 다를 뿐이다. 교회는 그냥? 양이다.
주님께 붙들려 여든 야든 말씀으로만 상대하면 주님이 지켜 주시고 구슬리는 오른 쪽의 이리 떼에게 의탁하면? 역시 망한다.
김동연, 그의 이력을 보니
상고 출신의 60대로 80년대 행정 고시를 합격하고 재정부 계통에서 평생 일을 했다. 군부 때부터 여야 온갖 정부에서 일했다.
이 번 선거에 여야 양 쪽에서 서로 끌어 들이려다 현재는 야당에서 경기지사가 되었다. 이 정도를 기본으로 삼고 설명해 본다.
신앙의 사람은 신앙사를 읽을 때와 마찬 가지로 세상을 읽을 때 항상 양 면을 봐야 한다.
좋을 때는 좋지 않을 때를 봐야 하고, 좋지 않을 환경이 펼쳐 질 때는 좋은 면을 넘겨 봐야 한다. 둘은 항상 맞물려 돌아 간다.
현재 여당은 보수 쪽이다. 자유 민주주의와 종교 자유를 지원한다. 교회는 우선 좋아 보인다. 그 뒤에 오는 위험을 봐야 한다.
현재 야당은 좌익 쪽이다. 통제를 통해 개인 자유와 신앙 자유를 억압한다. 지난 5 년 교회가 당했으나 큰 유익이 함께 왔다.
김동연, 그 인물 때문이 아니라 그런 성향의 인물을 두고 일반적으로 알아야 할 것을 적어 본다.
여당 안에 확실히 여당 편인데도 야당 식으로 활동하는 사람이 있다. 여당 안에 잘못을 고치고 더 잘 하자는 뜻을 가진 경우,
또한 야당 안에 확실히 야당인데도 늘 여당 편을 드는 듯한 사람이 있다. 야당의 내부를 정말 잘 고쳐 더 좋게 하자는 경우다.
우선 자기 편 안에서 자기 지도부를 무조건 지지해야 얻는 것이 많다. 그러나 한 편 안에서 고언하는 사람은 대개 양심가다.
옛날로 갈수록 양심가들은 간첩인지 암 세포인지 사실 알기도 어렵고 일단 박해를 당했다. 지금은 오히려 더 큰 인기를 끈다.
그런데 이런 내부의 양심가들이 그들의 정말 양심과 진심이 자기 조직을 위한다 해도 결과적으로 전체에 위협이 될 수 있다.
김동연, 이런 인물은 자기 스스로 군부 독재 밑에서 출세를 했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정권 교체에 살아 남았다.
그렇다면 이런 인물이란 자기를 위해서 선악과 누구 편을 가리지 않고 생존을 위해 살아 온 사람이다. 현재는 야당에 있다.
이런 사람이 야당에 있다면 평생 야당으로만 살아 온 사람보다는 덜 야당적이다. 여당 쪽으로서는 생 야당보다 나아 보인다.
우리 편이 아니고 저 쪽 편에 사람이라면, 그 중에서 우리와 가까운 사람이 우선은 우리에게 유리해 보인다. 경기도의 현재다.
이 사람이 갈팡질팡 하며 여야와 보수 진보와 자유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오가며 정책을 펼치고 교회에 영향을 끼칠 것이다.
지난 2 년처럼 다시 코로나가 발생한다면 과거 2 년 이재명 식의 교회 탄압은 없을 듯하다. 그렇다고 방치하지도 않을 듯하다.
이런 상황에서 신앙의 자유를 갖고 싶은 이들은 이재명 식의 최악이 아니고 차악이 되는 김동연에게 호감을 가질 수 있다.
앞에서 밀고 내려 오는 인민군보다 남한 안에서 활동하는 내부 좌파가 실은 더 위험하다. 현재 우리 나라 상황이 그렇다.
공회에도 교계에도 또 우리 사회 전체를 봐서도 선명하게 우리 편과 저 쪽 편으로 나뉘는 것이 우선 대처하기는 더 쉽다.
우선 우리에게 우호적인 것처럼 보이는데 그 속에 들어 앉아 있는 바탕이 저 쪽이 된다면 그 누구에게나 더 위협적이 된다.
이재명 식 코로나 상황에서 경기도 지역의 교회는 서울보다 피해가 더 컸다. 정권의 결정에 따라 경기도는 극단적이었다.
서울은 뉴스의 관심을 받는 곳이어서 더 큰 싸움이 벌어 진 듯하나 경기도는 그냥 다 전멸을 해서 소리가 없었던 듯하다.
이제 극단적 이재명 식 대신에 조금 합리적으로 나올 김동연 식의 5 년, 김동연이 문제가 아니라 이런 식의 상대방을 두고,
교회가 이리 떼 중에 착한 이리와 흉악한 이리가 있다고 이분법으로 나누는 순간 이리의 저녁 식탁을 피할 길은 없게 된다.
세상은 그냥 세상이다. 교회를 지지한다고 보이는 현재 윤석열 정부와 보수 여당도 그 내면을 들여다 보면 교회 탄압이다.
야당이 집권 하던 시절 너무 혹독한 말이 나오다 보니 덜 혹독한 현재 여당이 교회 우호 세력처럼 교회와 하나가 되어 있다.
좋은 늑대는 없다. 착한 이라도 없다. 맹수란 그 본질이 사냥이다. 사냥하는 때와 방식이 다를 뿐이다. 교회는 그냥? 양이다.
주님께 붙들려 여든 야든 말씀으로만 상대하면 주님이 지켜 주시고 구슬리는 오른 쪽의 이리 떼에게 의탁하면? 역시 망한다.

얼마나 냉정하였으면,ㆍ
좌우를 떠나서
.그런데 요즘 천벌 발언들을 보면
일리가 있으나, 설교라고 하기엔,
가르치는것과 전하는 것이 구분이 어렵다.
그래서 내것이라 당당한가 보다.
좀더 연하자면 두길뿐이니
호랑이새끼처럼 던져버린다.
그렇게 배웠으니 당연 해야한다.
그래놓고 약속은 방편일뿐,
결국은 진실인것을 느낀다.
후회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