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동이라는 이름이 가지는 2가지 의미로 본 어느 학술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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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14 00:00
고신대에서 한상동기념 강좌가 개최되고 고신교회 부흥을 위해 합동측 사랑의교회 옥한흠목사님 후임자를 강사로 초빙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강좌의 내용을 소개하는 다음 내용은 비록 간단한 몇 문장이지만 문맥에 포함된 내용이 너무 복잡해서 다시 한번 읽고 이 글을 적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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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화면/연구실/일반자료/1511번, [소식] 고신, 한상동기념강좌 - 창조적예배의 역동성(오정현) 04/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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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신은 이미 기독교사에서 비판이나 평가의 주대상에서 멀어진 지 오래 되었습니다. 급격하게 기독교계의 무대 중앙에서 변방으로 소외되고 있습니다. 그냥 일반 교계의 수많은 운동 중에 하나일 뿐입니다. 과거 1950년대와 1960년대가 그들에게는 전성기였습니다. 교계의 풍향을 쥘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곳은 교계 내에서 고신이라는 이름의 비중이 줄어도는데 특별하게 아쉬움을 가지는 편입니다.
이번 글은 '한상동기념강좌'라는 고신측의 행사에 하필이면 고신의 출발정신을 사정없이 비판하고 부인하는 옥한흠목사님의 직계인 '사랑의교회' 후임자를 초빙해서 고신 교회의 부흥을 들으려 했다는 점에 대한 탄식입니다. 모신 강사의 입에서 나올 내용은 회의를 참석하지 않아도 모두들 알고 있을 한국교회의 상식입니다. 다만 한번 더 모셔서 실감있게 들으려 했을 것입니다.
고신의 생성으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고신이라는 교회의 정체성을 가지고는 교회 부흥은 멀어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 강의 내용일 것입니다. 고신처럼 그렇게 주장하고 그런 노선으로 걸어가면 교회가 쪼그라 앉으니까 총신처럼 통크게 넓게 믿으라는 내용이 강의의 핵심입니다. 그 강사가 그렇게 강의할 줄 알고 모셨으니까, 강사는 양심껏 강의를 잘하고 갔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번 행사가 혹시 고신측도 이제 고신의 과거 노선을 버리고 일반 교계의 실적 위주 노선으로 입장을 바꾸겠다는 내부 입장 정리가 있었는가 하는 짐작을 가능하게 합니다.
고신이 그렇게 노선의 근본적인 방향을 바꾸기로 했다고 쳐도, 왜 하필 '한상동기념강좌'라는 이름으로 그렇게 했을까? 하기야 공산주의를 청산하고 자본주의로 변신을 하려면 자본주의의 장점에 대한 강의를 레닌연구소에서 개최하는 것도 그 나름대로 큰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한상동이라는 이름은 아직까지 고신 안에서는 진리를 따르려면 천하 어느 누구와도 타협을 하지 않아야 하고 마지막에는 감옥 속에 외롭게 죽어도 신앙노선을 지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교인의 숫자가 중요하다면 누구 것이든 상관치 않겠다는 노선으로 노선 변경을 확고하게 했다는 뜻을 밝히려고, 한상동기념 강좌라는 이름에다 숫적 부흥을 위해서는 과거 고신이 애착했던 전통과 정통 그리고 보수노선을 탈피하자는 강의를 고의로 개최한 것인가?
아니면, 고신이 한상동의 이름이 가지고 있는 2가지 의미 중에 지금까지 하나만 인정하고 대내외에 사용했는데 이제 그 이름이 가지는 두번째 의미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일까? 그렇다면 넓은 의미의 고신에서는 변신이라 할 것도 없고 그냥 너무도 당연하게 알고 있던 고신다운 강좌를 개최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한상동이라는 이름은 고신의 다른 이름일 수 있습니다.
단체로는 고신, 인물로는 한상동이라고 할 수 있는 정도입니다. 고신이라는 이름은 원래 크게 말할 때는 출옥성도들의 모임이라 하지만 좁게 말한다면 한상동과 주남선의 주도로 진행된 역사이고, 더 엄밀하게 말한다면 한상동이라는 이름에서 찾아야 합니다. 주남선목사님은 기도하는 분이고 교인을 살피는 분이지 교회 정치에 대하여는 아는 바도 없고 체질도 아닙니다. 한목사님이 유교적 겸양 표시로 주목사님을 함께 앉히거나 아니면 앞세웠을 뿐입니다.
한상동이라는 한국교회사의 이름은 크게 2가지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천하가 똘똘 뭉쳐 하나로 나가도 말씀에 어긋나면 죽어도 따를 수 없다는 비타협 순교 정신의 표상이 그 첫째입니다. 이렇게 주장할 때는 그가 신사참배를 하든 말든 교계를 향해 자신이 어떤 영향력도 행사할 수 없는 무명시절이었습니다. 신사참배를 반대하던 시절과 해방 후 고신을 뿌리 내리던 1950년대 초기까지에 해당되는 한상동이라는 이름의 의미입니다.
그 이름이 갖는 또 하나의 의미는, 아무리 옳아도 큰 이권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올 때는 과감하게 정치적 흥정과 타협을 통해 순식간에 몇 번이든 변심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표상입니다. 이렇게 처신할 때는 자신의 영향력이 교계 전체에 판도를 바꿀 수 있을 때였습니다. 교회 이름으로 소송을 할 때 고소파와 반소파 사이에서 끝없이 대세를 지켜보다가 결국 고소파가 대세를 이루자 반소파를 제거하게 되고, 이어 총신측과 합동하며 대권을 잡다가 장기 집권에 실패하자 환원했던 1950년대 중반 이후 1970년대까지의 그분 모습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이번 강좌는 한상동목사님의 주도로 내려오고 정착된 고신이 한목사님의 이름 중에서 두번째 의미를 오늘 고신이 걸어갈 주제로 삼겠다는 의지의 표현인가? 그렇다면 총신 아니라 기장이나 기장보다 더 넓은 곳을 불러다가 배워도 또 따라가도 적어도 모순이라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만일 이번 강좌를 두고
고신의 원래 노선에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거나 한상동목사님의 이름에도 걸맞는 강좌라고 한다면 한상동이라는 이름이 갖는 의미 중 두번째를 아는 사람들에게는 이해가 될 것이고
만일 이번 강좌가 아주 모순이라고 한다면
하필 '한상동기념강좌'로 개최한 것은 완전히 이성을 잃은 정도가 되었다고 말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 정도 심리 상태라면 오늘의 고신 사태는 필연이지 외부의 누구 탓으로 돌릴 일이 아닐 것입니다.
만일 고신이 정체성의 의미를 알고 있다면
한목사님의 이름이 갖는 2가지 양 극단의 처신 중에서 어느 것으로 고신 전체의 정체성을 갖는지 고신은 스스로 한번쯤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양서류처럼 박쥐처럼 편리하게 둘 중에 하나를 번갈아가며 택하는 것이 고신의 정체성이라면 그 역시 그렇게 정체성을 표현해도 되지만 아마 이는 장사를 하는 단체가 아니고 신앙단체라는 이름을 가지는 이상 여간 내세우기가 어려울 것이니다.
고신을 이렇게 한번씩 유심히 주목하는 것은
고신의 진짜 고신, 고신의 참 모습을 오늘까지 잇고 있는 공회의 노선이 최근 그렇게 되고 있기 때문에 가장 가깝게 참고할 교단을 보며 백영희노선을 보기 위함입니다.
이번 한상동기념강좌에 초빙된 주강사는, 참고로 옥한흠목사님을 계대하는 사랑의 교회 담임목회자입니다. 옥한흠목사님은 고신과 총신과 통합이라는 교파의 벽을 허물고 초교파운동을 하자는 선봉에 있고 고신 내에 이 운동에 동참하는 이들을 향해 몇 년 전 고신의 지도부는 고신의 존재의미를 걸고 이를 큰 미혹이라고 투쟁을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