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공3, 우리의 파송 사례 2

남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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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판에는 이 홈에 올려진 글 중에 이곳에서 따로 소개하고 싶은 글도 포함됩니다. 

부공3, 우리의 파송 사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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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공3의 출발과 그 근본 시각)
백 목사님은 생전에 부공3 우리에게 그의 사후를 부탁했다. 총공회 전부까지는 몰라도 서부교회를 맡긴다는 말은 많았다.
목사님은 1982년 이후 사후를 집중적으로 언급했고 갈수록 강하게 표현하고 특별하게 조처를 했으며 1989년은 더 심했다.
파격적인 조처가 많았다. 그리고 그 모든 방향은 명확했다. 어떤 희생에도 불구하고 노선의 명확성을 제일 순위에 두었다.
연구소는 모든 면으로 실세가 되었고 공회를 모르는 분들은 잠실동 백태영으로 눈이 갔고 아는 분들은 연구소를 주목했다.

훗날 서영호 목사님을 모시자는 김효순 구역, 이들은 목사님 생전부터 고신에 선을 넣었고 사후에는 그런 언급도 많았다.
그를 신앙의 어머니로 추존하는 맹신 목사님들은 서부교회 핵심이라고들 하나 이런 상황은 모르고 겉으로만 떠돌 뿐이다.
김효순은 목사님 생전부터 연구소를 대놓고 견제했다. 목사님 생전에는 그럴 수 없는데도 그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1989년 3월에 연구소 핵심을 내보내자 김효순 쪽은 제거라고 생각했고 내부에서는 경험 때문에 잠깐 보냈다고 생각했다.

그렇다. 이 쪽 말도 맞고 반대 편의 생각도 맞았다. 목사님은 서부교회나 총공회의 외형적 장악은 87년에 포기를 했었다.
87년 이후의 숨가쁜 모든 조처는 공회의 기본 또는 전체를 바꾸는 정도였는데 그 것은 공회의 내면을 지켜 내는 쪽이었다.
서영준의 사후 목사님은 인물을 통해 서부교회와 총공회의 외형이 지켜 지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지 않았다고 단정을 했다.
그래서 한 인물이 중심이 된 보이는 공회와 서부교회 대신 공회와 연구소의 이 노선 연구와 전파에 그의 사후를 다 맡겼다.

이렇게 본다면 그의 생전과 그의 사후 오늘까지 전개 된 공회의 모든 역사는 전부 명확하게 이해가 되고 절묘하게 다 맞다.
외형의 서부교회와 총공회가 지켜 져야 한다고 전제를 한다면 목사님 생전과 사후는 완전히 실패며 모두가 이해 불가다.
무엇보다 모두 백 목사님 사후의 보이는 서부교회를 보이는 교권으로 이어 갈 것으로 본 인물, 연구소의 핵심들의 생각은?
목사님의 최후까지 직접 배우고 목사님 사후가 되면 서부교회와 총공회는 사라 지게 된다고 미리 단정을 하고 준비를 했다.

이런 사정은 목사님 생전의 주일학교 총무, 연구소 소장, 특수반 부장 정도의 몇 명이다. 나머지는 강의를 듣고 아는 정도다.
그런데 서부교회의 가장 중요하고 목사님께 제일 가까운 세 명 중에서도 2명은 내심의 목표가 달랐다. 결국 서로 나뉘었다.
서로 비판할 것도 없이 그냥 서로 옳게 생각하고 서로 가고 싶은 대로 갈 뿐이다. 목사님께 알 대로 모두 아는 사람들이다.
몰랐다면 바뀔 수 있으나 알고 각오도 하고 사후에는 생사를 함께 했지만 모든 것이 안정이 되자 본심에 따라 갈 길을 갔다.




(부공3의 4차 파송 : 미주 교회)
공회는 선교라는 표현을 하지 않는다. 달리 표현할 길이 없을 때는 가끔 사용을 한다. 공회의 표현은 공회의 흐름이 있다.
외국에 개척을 하면 그냥 교회 개척이라 한다. 세인트루이스 하와이 교회처럼. LA에는 지금까지 4-5개 교회가 지나 갔다
1970년대에 송용조 목사님이 좀 애매하게 지나 갔고 이후 3개가 되었으나 지금은 존재를 파악하기도 애매한 면이 있다.
부공3, 이 곳의 신앙으로 이어 지는 곳은 2010년대에 출발했다. 공회 이름에서 그치지 않고 공회 원칙을 확실히 하는 교회.

LA에 있던 여러 대구공회 교회 사이에 이 곳의 신앙 성향으로 초기부터 알려 진 가정에 2세 학생이 청년이 되고 결혼하며
부공3의 이 곳에 소속과 노선을 확정하고 2012년 7월 1일부터 'LA교회'라는 이름으로 출발했고 지금까지 계속 되고 있다.
거의 매년 집회를 참석해 오고 있으며 연구소의 통번역과 각종 연경 교재의 작성 과정까지 긴밀히 분담해 왔다.

국내 전국의 공회 교회도 이 노선의 원칙을 지키는 것이 거의 어려운데 그 곳의 어려움은 말할 수 없지만 입장은 단호하다.
원칙이 강하면 말만 좋고 교인이 모이고 교회의 보이는 발전은 어려워 진다. 그렇다 해도 단 한 사람이라도 이 길뿐이다.
이제 10여 년을 지나는 상황에 부공3의 미주 교회는 한 편으로 개척의 일부이며 다른 한 편으로는 이 노선의 소망이 있다.
이 노선은 국내의 역할로 그칠 수가 없는 내용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세계 교회사적 교리사적 의미를 남 다르게 생각한다.

이런 소망 이런 가능성 이런 사명 때문에 단 한 명이라도 제대로 된 교인을 소망하고 한 교인만 있어도 전력을 할 마음이다.
이미 백영희 전기에 대한 영어 번역 과정에서 소망을 발견했다. 부공1과 백 목사님의 가족이 막아서 현재는 대기 중이다.
이렇게까지 막는 역사를 볼 때 뭔가 크게 역사하게 될 소망을 본다. 가다가 막히면 그 자리에서 선다. 길이 열리면 또 간다.
모두가 가다 1명이 남으면 그 1명이 또 간다. 부공3은 공회를 그렇게 본다. 백영희 신앙 노선이라는 것이 처음부터 그렇다.


(부공3의 교인 파송)
부공3은 가장 오랜 세월, 한 길만 그대로 간다는 원칙 때문에 교회와 교인은 적다. 그러나 복음에 헌실할 분은 많은 편이다.
교회 개척을 공회의 원칙에 맞추다 보니, 타 교단이나 타 공회라면 목회자로 나갈 사람이 교인으로 대기하는 경우가 많다.
적어도 목사님 생전 기준으로 목회로 파송는 교인은 10 가정이고 목회나 신학을 거쳐 부공3 교인으로 있는 가정이 7 이다.
방역 2년의 집회 4회 참석수가 평소와 비교할 때 불신 가정 학생들로 파악 될 정도라는 것은 파송 교인이 많다는 뜻이다.

공회의 80년대를 아는 사람은 서부교회의 중간반사를 가장 어렵다고 안다. 그러나 연구소 핵심 직원들과 비교는 어렵다.
당시 중간반은 지원자가 넘쳤고 당시 연구소 직원은 생활 때문에 지원 자체가 없었다. 최저 생활의 절반 정도만 받았다.
현재 부공3의 목회자와 다른 공회 목회자의 생활과 근무 환경을 비교해 보면 쉽다. 부공3 가입은 경제 청산이 조건이다.
재산 정리가 끝나지 않으면 '전도인' 신분이다. 또 매월의 생활비가 99만원 이하이며 자녀는 초등 졸업 후 모두 독학이다.

각 공회의 출발 초기에 부공2에서 중간반 출신 목회자로 가장 성실하게 절약하던 분이 산출한 최소 생활비가 있었다.
부공3의 2배가 넘었다. 그 것이 서부교회 중간반의 경제 기준이었다. 그 외 목회자 출신들은 그보다 더 많아야 했다.
현재 부공3의 10개 교회 중 3개 교회 목회자가 반발하며 이탈한 이유도 근본적으로 목회자에 대한 짐이 무겁기 때문이다.
공회가 탈선이 되었다거나 독주 체제이고 백도영 목사님께 순종해야 한다는 등의 이유는 그들의 지난 날 행동과 반대다.


1998년 7월, 2명의 대학생이 서울에서 방학 2개월을 배우러 온 적이 있었다. 교인 한 가정을 이사 시켜 숙소를 마련했다.
우리가 제공할 수 있는 제일 좋은 주거였다. 아이들을 가진 부부에게 몇 달 왔다 갈 사람을 위해 이사가 된다면 파송이다.
이 노선이 어려운 줄 알면서 함께 하겠다고 한다면 우리는 우리 힘 닿는 대로는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 그 것은 많지 않다.
원래 가진 것이 적으니 그렇다. 부공3은 광고하지 않는다. 온다는 분들이 있으면 어려운 이야기만 하고 다른 곳을 권한다.

항상 서울공회를 먼저 추천한다. 서울이면 잠실동교회로 가면 편하게 은혜롭게 잘 믿고 마음에 만족할 것이라고 한다.
공회에 대한 상식을 어느 정도 가지고 굳은 의지가 있으면 그 순서에 따라 대구공회 부공2 부공1 순서로 권해 왔었다.
부공3을 꼭 원하면, 먹고 살 대책이 있는지 묻는다. 먹고 살 만한 사람은 이런 곳을 원하지 않는다. 경제 생활이 가능할까?
우리는 목회자부터 현장 노동을 거쳤다. 노동만은 자신이 있다. 전국 어디 가도 맨손으로 장사를 해서 먹고 살 수가 있다.

오는 교인에게 목회자들이 걸어 온 대로 그렇게 땀 흘려 일하고 장사를 하고 그리고 목회자처럼 아껴 살 수 있는지 묻는다.
해 보고 말하는 것이니 박하다 할 수 없을 것이고 실제 그렇게 지도를 한다. 그 외에 달리 방법도 없다. 견딜 수가 있을까?
공회의 교인이면 이런 생활과 자세가 기본이라야 한다. 자세가 이렇고 이런 부탁이 이해가 된다면 비로소 출발할 수 있다.
각오가 확실하면 어떤 교인이든 모셨고 이후 공회가 할 수 있는 일을 노력했다. 이후 결과는 다른 곳보다 나았을 듯하다.


전도 파송은 목회자만 해당이 되는가? 예수님이 개인 생활을 하지 않던 12 제자만 파송을 했던가? 70 문도 역시 파송했다.
목회자도 교회를 위해 어디든 갈 수 있어야 한다. 그 것이 정말 교회에 필요하다면. 같은 원리로 교인도 파송의 대상이다.
교인의 첫째 파송은 자기 가정이다. 자기 직장 직업이다. 학생이면 자기 책상과 학교가 파송의 1차 대상 지역이 되는 것이다.
파송이란 동남아나 아프리카로만 자꾸 생각한다. 여기에는 여행, 궁금, 현실 도피 등의 묘한 심리가 있다. 동기가 문제다.

현재 생활하고 활동하는 자기 현실은 주님이 파송한 1차 선교지며 목회지다. 그렇다면 교인과 목회자는 구별을 할 수 없다.
공회의 교리 시작과 교회 운영과 교인 지도의 첫 걸음은 이렇게 시작이 된다. 현재 생활에서 받은 말씀으로 헌신하라는 것.
가장 쉽고 가장 어렵다. 그 다음, 사람이 기획하고 설계하며 짠 계획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변경 사항이 있을 수 있다.
아무리 봐도 내가 결정한 것이 아니라 세상과 환경과 나의 현실과 다른 사람을 총동원하여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보일 때.

목회자는 이동이라 한다. 거리가 멀면 파송이고 극히 어려우면 선교가 된다. 교인도 진학 진로 결혼이 그런 경우일 수 있다.
행16:9에서 바울은 밤에 환상을 보았다. 죄악으로 어두운 세상에서 주님의 인도는 나의 부족 때문에 흐리게 보일 수 있다.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바울에게 청했다. '건너 와서 우리를 도우라' 마치 6절에서 성령은 아시아의 활동을 막고 있었다.
아시아는 지금 터키 정도가 된다. 마게도냐는 그리스다. 복음이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넘어 가는 순간이다. 성령의 인도였다.

이동 명령서가 타이핑이 되고 직인이 찍히면 얼마나 개운할까? 성령.. 환상.. 활동의 어려움.. 새로운 개척지에 대한 희망...
이렇게 한꺼번에 상황이 전개가 된다. 바울은 심령이 밝고 자기를 원수인 줄 알기 때문에 자기 옛 사람에게 속지 않는다.
오늘 우리는 현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옮겨 놓고 보려는 심리가 있다. 우리는 정과 욕에 붙들린 면이 사실 너무 많다.
그런데 배운 것이 있어 신앙의 양심이 째려 보고 있어 움직이지 못하다 성령과 환상에 기댈 수 있으면 쉽게 단정을 한다.

성령은 우리 마음을 움직이며 역사를 하기 때문에 전달 과정에 옛 사람이 배달 사고를 많이 낸다. 아마 거의 대부분이다.
환상은 평소 간절하게 원한 것이 있으면 몽상이 보인다. 주관은 몽상이고 성경의 환상은 객관이다. 그런데 구별이 어렵다.
바울은 이런 혼선이 없어 늘 담대했고 결과적으로 봐도 옳았다. 오늘 나와 주변이 말하는 성령과 환상은 대개 착각이다.
자기 소원이 성령의 감동이나 환상처럼 나를 흔들 때가 많다. 이럴 때 이런 혼선에서 벗어 나는 길은 객관과 맞추면 된다.


이 점 때문에 정통의 교회는 목회자와 교인에게 죄 되지 않으면 순종하겠느냐고 물어 본다. 주관에 대한 위험 제거가 된다.
죄 되지 않으면 하나님이 주신 기관에게 순종하는 것이 옳다. 심지어 불신 정권이나 불신 부모에게도. 하물며 교회겠는가?
교역자끼리라면? 선배에게 또는 동역자들에게 순종하겠는지 물어 본다. 마7:1에서 나의 잘못은 주변이 잘 보기 때문이다.
이 모든 문제에서 늘 가장 앞에 놓는 전제는 있다. 진리 문제라면 거부해야 한다. 또한 원치 않으면 방법은 없다. 거절이다.

바로 이 자유성을 가지고 옳은 지시와 심지어 성경의 말씀까지도 비켜 갈 수 있다. 여기까지 나간 사람은 맡길 수밖에 없다.
공회는 공회의 출발 약속이 있다. 그 것은 각자의 자기 약속이다. 그 것은 자기만은 어길 수 없다. 그 것을 어길 때는 문제다.
여기까지가 공회 내에서 오랜 세월 진행했던 파송을 한꺼번에 설명했다. 진학 이주도 있었고 결혼으로 인한 이주도 있었다.
가깝지만 순종이 어려운 파송도 있었고 참으로 멀고 어려워 순종이 곤란한데도 파송에 응하면서 부공3의 역사는 내려 왔다.

한 가지! 이렇게 설명한 것이 실제라면 인간적으로 많은 오류와 문제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 없지 않았다. 참 많이 있었다.
그런데 이 노력, 이 기준, 이 추진 과정이 순수했다. 그래서 수 많은 열매가 있었다.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른다.
부공3의 오늘까지 걸음에 객관적으로 하나님이 주시지 않고는 받을 수 없었던 것을 기록하라면 많다. 그래서 확신을 한다.
10여 년 전에 받은 은혜가 너무 많아 일부를 공개하여 나눈 적이 있다. 그 자료까지 악용해서 수백 건의 고소가 들어 왔다.

도적이 읽다 보니 도적질 한 것으로 봤다. 양아치가 봤으니 착취한 것으로 보였다. 별 것이 없는데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아람 군대가 도망을 가서 길바닥에 쌓인 것이 넘치는데 성 안에는 굶주려 죽는 판이어서 함께 살자며 전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중심이 삐뚤어 지면 눈이 사시가 되고 그 눈으로 보면 격분이 생기는 법이다. 그들은 지난 날을 결산하고 있을까?
최근 또 하나의 중요한 파송 문제를 두고 기도 중이다. 인간적으로는 갈 사람도 또 가는 길도 없을 듯하다. 그래서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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