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보수는 극단적 진보가 된다 - 천주교와 성공회, 공회도

남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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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판에는 이 홈에 올려진 글 중에 이곳에서 따로 소개하고 싶은 글도 포함됩니다. 

잘못된 보수는 극단적 진보가 된다 - 천주교와 성공회, 공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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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회의 보수와 진보에 대한 기준)

공회는 보수를 위한 보수는 아예 거부한다. 지켜야 좋고 지킬 이유가 있을 때 지키는 것은 당연하다. 공회의 보수는 합리적 보수이며 생명을 가진 보수여서 우리 사회나 최근 교계의 보수화 경향과는 아주 다르다. 공회의 역사는 세계 기독교 역사까지는 일단 놔 두고 한국 교회사만 가지고 볼 때 이 정도의 파격적 진보는 정통 기독교 안에서는 없었다. 교회가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면 생존을 위해 노력하게 되어 있고 더 나은 발전을 향해 추구를 하는 것이 본능이다. 이런 점에서 공회는 보수와 진보에 매몰 된 적이 없고 더 나은 생존과 더 나은 발전을 위해 지켜야 할 것과 고쳐야 할 것만 늘 주력했다. 무엇이 더 나은가? 그 기준은 늘 성경이었다. 성경만 가지고 애매할 때는 신앙의 유익이었다. 그 유익은 당장의 유익이 아니라 그 결정의 훗날, 그 뒤의 훗날까지 고려해서 유익과 손해를 살폈다.


사회적인 보수와 진보의 기준은 오늘 교계에도 그대로 적용 된다. 교회가 타락을 하다 보니 기본 개념까지 다 같아 져 버렸다. 진보 교단은 진보 정당을 지지하고 보수 교단은 보수 정당을 지지하는 상황이다. 공회는 사안에 따라 늘 다르다. 이승만 정권은 보수 중에 보수였다. 공회는 그 정권의 애국적인 면은 늘 극찬했다. 그러나 교회를 정치에 이용하는 것은 철저히 비판했다. 당시 보수 교단들은 정권의 혜택에 호황기를 누렸다. 공회는 미국의 구호품 옷 한 벌도 마다 했다. 6.25 전쟁 후 유엔군 철수를 모든 보수 교단들이 반대할 때 공회는 고신 안에서 고신 전체에게 교회가 교회의 이름으로 그런 행동을 하면 신사참배보다 더 나쁜 일이라고 비판을 했다. 고신이 공회를 제명하지 않고 견딜 수가 없었다. 공회의 보수는 성경과 신앙의 유익을 위해 지켜야 할 이유가 있고 지킬 때 더 낫다는 확실한 판단이 설 때만 해당 된다. 만일 바꾸는 것이 정말 좋다면 어떤 불편과 손해를 감수해도 즉각 바꾼다. 우리는 이런 것을 넓은 의미의 회개라고 하거나 자라 가는 성장이라고 한다. 하지 않을 이유가 없고 눈치를 보며 계산을 하면서 더디가 할 이유가 없다.


(역사의 최고 보수는 천주교와 성공회다)

천주교는 2천 년을 고수한다고 말한다. 성공회도 2천 년을 주장하나 천주교와 분리 된 시점을 기준으로 잡는다 해도 최소 5백 년이다. 천주교는 세상과 종교와 교회 안을 통틀어 봐도 이렇게 철저하게 1인의 독재로 교인의 의사를 100% 무시하는 경우가 없다. 어느 왕정, 어느 공산 독재 국가와 비교해도 철저히 자신들의 방식을 고수했다. 단어 하나하나도 아예 손대지 못한다. 성공회는 영국의 국교를 말한다. 영국은 세상적으로 모든 면에서 지독하게 보수적이다. 옛 것을 지켜 내는 것을 보면 경이롭다. 사회적인 분위기가 이러하니 성공회 역시 천주교와 나란히 놓아 볼 때 일란성 쌍둥이다. 호적에 이름만 다르지 겉 모양을 보고 구별하기는 참 어렵다. 천주교와 성공회는 공통적으로 바꾸지를 않는다. 그 어떤 것도.


그렇다면 최근 우리 주변에 보수와 진보로 정권이 바뀌면서 정신을 차릴 수 없도록 법과 행정과 정치와 언론과 사건이 격변하며 사회 전체가 늘 출렁거리고 있다. 이 것은 세계적으로도 마찬 가지다. 가장 바뀌지 않는 국가는 북한이지만 한 순간에 어떻게 될지 그 끝을 예측하지 못하는 상황이니 보수여서 보수가 아니라 천 길 낭떠러지에 매달린 것처럼 필사적으로 이전 것을 쥐고 있다. 이슬람 국가의 폐쇄 보수성도 가히 엽기적이지만 이런 여파는 피하지 못한다. 조금이라도 민주니 인권이니 정상적인 국가라는 말을 듣는 곳은 어디든 늘 출렁거리고 있다. 언론이 늘 바람을 세차게 불어 대며 부추기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천주교와 성공회는 가장 자유로운 국가들의 사회 곳곳에 독버섯처럼 퍼져 그들의 존재감을 높이고 있다. 옛 것을 가장 잘 지킨다는 것을 자랑하며 고색창연에 아주 독보적이다.


그들의 역사를 통해 그들이 고수해 온 보수를 들여다 보면 이 것은 없어 져도 수백 년 전에 없어 졌어야 마땅한 것뿐이다. 그냥 박물관에 옮겨 그대로 보존을 한다면 동의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것이 고대국가도 아니고, 중세 봉건 왕조도 아니고, 심지어 근대를 거쳐 오늘처럼 초현대 사회의 중심에 버티고 서서 오늘도 살아서 움직이며 지시를 하고 영향력을 팍팍 끼치는 상황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것은 모순치고도 너무 큰 모순이고 뭐가 고장이 나도 보통의 고장 난 상태는 아니다.


(천주교와 성공회가 부추기는 사회적 진보)

그런데 수천 년을 무조건 지켜 내고 있다는 이 천주교와 성공회는, 한국을 기준으로, 가는 곳마다 우리 사회에 가장 진보적인 분야와 인물들에게 후원자가 되고 든든한 배경이 되고 있다. 호랑이가 토끼 마을에 원로가 되어 토끼 마을의 토끼답게 살자는 진보측을 지원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 사회의 진보 좌파는 옳든 그르든 덮어 놓고 일단 바꾸고 보자는 이들이다. 내일 죽을 터이니 오늘이라도 마음껏 다 먹고 보자는 막가파 식인데, 죽어도 수천 년 내려 온 전통을 생활 속에서 단 하나도 바꿀 수 없다며 과거를 고수하는 종교, 기독교라 하기에 참 곤란한 성공회와 우리와는 벌써 종교를 달리 한 천주교가 왜 그들 울타리 밖인 그들의 사회에 나가서는 무조건 진보만을 부추기고 있을까? 그들이 오늘의 초현대 사회 안에서도 존재감을 유지하고 영향력을 가지려는 심리적 실리적 목적은 명확하다. 그 실리를 위해 그들과 정반대의 가치인 진보를 부추겨 세상 전부를 정신 없는 난장판을 만들어야 철통 같이 단결 된 그들이 그들의 이권을 지키는데 유리할 것은 분명하다.


이들의 내부에 생명력이 있었다면 우리가 옛 것을 잘 지키는 것이 우리의 신앙이니 우리가 힘이 닿는 대로 온 세상에 옛 것을 지키는 빛이 되자고 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평양에 가서는 평양은 평양답게 종교를 지금도 탄압하라고 격려하고 일본에 가서는 천황 중심이 되어 더욱 보수적이 되라고 해야 하고, 한국에 온 천주교 신부들과 성공회 간부들은 한국의 진보 좌파를 뿌리 뽑아 가며 보수 정권을 유지하라고 떠들어야 한다. 다른 나라는 일단 제쳐 두고 한국의 천주교화 성공회는 한국 사회와 정치계에까지 맹목적인 진보만 지지하고 나섰다. 그들 속에 생명이 있다면 좌우를 분별하고 뭔가 모순이라며 지도부에게 이의라도 제기해야 한다. 그들은 그들 내부를 향해서는 죽도록 무조건 입 닥치고 시키는 대로만 하라고 가르치고 그렇게 분위기를 만들어 놓고 그들의 사회에게는 밑에서 무조건 반항만 하면 양심 세력이라며 옹호를 한다. 정의구현사제단? 이들처럼 위선적인 단체가 있을까? 이들이 천주교 교황과 추기경과 대주교들에게 진보 좌파적 언행을 하는 사례를 본 적이 있는가? 천주교 눈에 들보를 두고 불신 세상의 티끌을 치워 밝히 보게 하겠다고 설친 세월이 참 길고도 많았다.


(공회 내의 보수 세력들)

이 곳은 세상을 무척 떠나 버려 세상이 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주님만 바라 보자는 쪽이다. 염세주의는 이단이어서 배척하지만 다른 교회나 세상이 이 곳을 보면 염세주의 절반까지 물이 든 것으로 볼 듯하다. 이 번 글도 세상과 천주교와 성공회의 보수와 진보를 두고 발언하는 것이 아니다. 듣지 않을 수 없이 들리는 천주교와 성공회 소식, 그들은 여전히 수천 년을 오롯이 옛 것만 고수하면서 어떤 변화도 용납하지 않으나 그들의 사회에게는 바꾸고 또 바꾸어 과거를 무조건 잊고 죽을 낭떠러지라도 뛰어 내려 보라는 모습을 통해 공회의 우리 내부를 살피는 것이다.


범위와 방향이 달라 그렇지 우리 안에도 천주교나 성공회 식이 되겠다고 큰 소리를 친 극단적 보수파들이 있었다. 옛 것만 지키면 무조건 참 공회라는 식이다. 부산의 동대신 1가 381번지의 벽돌 하나라도 서부교회 보수를 위해 고수하겠다는 분들, 과거 은혜를 받은 대구의 노곡동과 거창의 도평 기도원에 정한 날 정한 곳에서 과거의 설교만 반복하기 위해 목사들이 각목을 들고 그들을 반대할 목사들을 뚜드리느라고 몰래 다니기도 했다. 그들은 혈기왕성했고 눈과 얼굴과 손발은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처럼 또 아침에 떠오르는 오뉴월 태양처럼 힘이 있었다. 연구소 이 곳 사무실까지 검정 007 가방에 검정 정장을 입고 검정 넥타이를 맨 짧은 머리의 14명 목사 이름을 다 적어 버리고 싶은 마음이다. 조폭 영화의 포스터에 감명을 받았을까?


이들이 무조건 보수, 맹목적 '그대로'다. 10여 년은 각목을 들고 세상 뉴스에 도배를 해 가며 설쳤고 그 후 10여 년은 입으로 떠들었다. 요즘은 어디 갔는지 주소도 흔적도 없다. 그 곳을 방문해 본 분들의 제보에 의하면 타 교단처럼 못하는 것이 없더라고 한다. 바로 천주교 꼴이다. 성공회 모습인 것이다. 이 곳은 그들을 주로 부공1이나 부공4라고 분류해 놓았다. 그들이 그런 이름을 쓸 리는 없다. 모든 공회들의 이름이 같다 보니 혼란을 피하기 위해 붙여 본 것이다. 타 교단이 하는 온갖 행동은 전부 다 하면서 왜 그들은 재림 때까지 고수하겠다며 큰 소리를 쳤을까, 그리고 그렇게 말을 한 자신들의 과거 때문에라도 바꾸고 싶은 마음이 있어도 바꾸지 않을 듯한데 왜 이렇게 모두가 바꾸느라고 난리들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부공1과 부공4 그들의 지도자들부터 원래 공회를 알지 못하고 어느 날 더 이상 갈 곳이 없게 되자 마치 세상을 다 버리고 종교에 귀의했다는 중들처럼 천주교 수도승들처럼 공회의 목회에 나섰다. 원래 세상에서 사업을 했으니 해 보지 않은 일들이 있었겠는가? 지도부를 구성했던 2명이 모두 그들의 사업의 끝이 좋지 않았다.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게 되자 백 목사님은 이제 돌아 온 탕자처럼 신앙의 새 출발을 부탁했다. 그들의 안면 체면을 살려 주느라고 과거 돈을 엄청 잘 벌었던 이야기로 소개를 했다. 거지 출신들이 유독 많은 총공회, 그 중에서도 세상의 돈이나 미국이나 학벌에 목이 말라 있던 이들이 부공1과 부공4에 집중이 되어 있다. 이들은 지도부 2명을 향해 그들 속에 평생 가지고 있던 열등감을 달래 줄 대상을 찾아 척 들어 붙어 버렸다.


백 목사님 생전에 백 목사님에게도 하지 않던 충성, 무조건 맹종에 나섰다. 목사님 생전에도 현장을 제압하기 위해 한 번씩 나서야 할 때가 있었다. 그 때는 부공3을 구성하는 쪽에서 해결을 했다. 그렇게 해야 하던 시절에 부공1과 부공4, 서부교회 4층을 구성하는 이들은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백 목사님께 대들거나 그렇게 하는 이들이 시키는 대로 공회 통장을 갖다 바쳐 오늘의 서울 공회가 저렇게 나가도록 했었다. 무엇을 지켜야 할지 모르고 무엇이 가치가 되는지를 모르고 덮어 놓고 이리 뛰고 저리 뛰어 다니다가 백 목사님 사후를 맞았으니 이들이 아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바로 이 시기에 큰 소리를 치면서 이 것이 총공회다! 라는 소리가 들리면 큰 소리일수록 이들의 시선과 마음을 사로 잡았고 이후 그 큰 소리만을 쫓아 다니며 자기들이 총공회를 지키기 위해 헌신을 하는 줄 착각했다.


이 시점에 서부교회를 지키겠다며 각목을 들었던 서부교회 중간반, 서부교회 4층은 모두 어디에 있는가? 일부는 조기에 깨달아 지금 복된 길을 걷는 분들도 두어 명이 보인다. 그러나 각목을 들고 살기 넘치며 다니던 3-400명, 한 때는 5-600명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지 나는 외치고 있다.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이렇게 될 것이면 큰 소리나 치지 말든가, 큰 소리를 쳤고 전국을 뒤흔들었다면 지금 혼자라도 떠들든가.. 이 것도 저 것도 잘못이라고 깨달았으면 회개라도 하든가... 죽도 아니고 밥도 아니다. 보수도 아니고 진보도 아니다. 그냥 눈 먼 망아지 온 들판을 달려 본 것이다. 열등감을 감추고 설쳐 본 것이다.


알면 언제라도 할 수 있다. 한 걸음이라도 앞을 향해 나갈 수 있다. 모르면? 옳은 것을 지켰다 해도 그 것은 실수였다. 상황이 바뀌고 조금만 지나면 엉뚱한 소리를 하고 엉뚱한 곳에 가 있을 것이다. 부산공회1, 부산공회4. 여러 분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매년 5월만 되면 대구의 노곡동을 거머 쥐고 호령한 것이 지리산문을 장악하고 통행세를 받아 내던 중들 이상으로 위엄스러웠었다. 2019년 5월에 어느 요망한 인간의 말 한 마디에 스스로 노곡동 전부를 헐고 밤중에 도망 간 야밤 도주범처럼 했다. 얼마나 놀랐기에 과거에는 목숨 걸고 그 장소 그 시설 그 통행을 지키겠다며 각목을 들었던 분들.. 알면 지키고 모르면 쥐어 줘도 가지지 못한다. 그래서 이 노선은 조용히 성경을 먼저 살펴 본다. 교회의 역사도 살펴 본다. 공회의 지난 날도 설교록의 정확성도 우리 스스로 먼저 조사를 해 본다. 해 보고, 옳다면 그리고 좋다면 그리고 더 이상이 없다면, 그 때부터는 전할 수 있다.


우리보다 열심이 있고 우리보다 훌륭한 이들이 따져 보지 않고 설치다 실패한 사례를 5월의 집회를 앞 두고 참으로 아쉬워 적어 봤다. 그와 동시에 지금 우리 내부, 이 연구소의 부공3 안에 우리는 과연 알고 함께 하는 이가 몇 명이나 될까? 늘 이 점을 반복하며 강조를 해도 그냥 이 연구소의 지난 날에 이룬 여러 좋은 실적만 보면서 함께 하는 이들이 대부분이 아닐까? 모르면 가질 수 없는 세계, 이런 세계를 진리의 세계라고 한다. 공회는 진리의 세계에 주목을 했었다. 이 연구소의 초기부터 함께 하며 자칭 이 연구소와 이 공회에 공로가 가장 많거나 제일 신앙이 있다는 분들이 몇 년 전부터 이 곳을 허물기 위해 한 사람은 앞에서 광분하고 두 사람은 상관이 없다면서 뒤로는 혈맹의 관계로 함께 하고 있다. 이들이 이 곳에서 출발할 때 왜 이 곳에 핵심이 되고 왜 이런 글에 늘 열렬히 찬성을 했던가? 지금은 어떤 계기로 갑자기 비수를 앞에서 휘둘고 뒤에서 챙겨 주는 사람이 되었는가? 한 분은 교역자회를 주도해 주지 않아서 그랬다고 한다. 참 말 같지도 않다. 한 분은 부부는 돈 주머니를 하나만 찬다는 말에 숨어서 기회를 엿보고 있다. 그 분은 주머니를 처음부터 따로 차고 여기서 출발을 했다. 세월 속에 해결하리라는 기대로 기다려 드렸다. 한 분은 공회의 재산이 자기 개인 것이라며 매매 계약서에 이름을 들이 밀고 있다. 앞에 말한 14명보다 더하지 덜하지는 않은 듯하다. 앞으로 세월이 진행하면 과거 탈선한 이런 분들은 역사가 되지만 새로운 세월에는 또 다시 새로운 탙선이 나온다. 앞에 탈선과 뒤에 탙선은 대개 다른 계통인 줄 알지만 알고 보면 하나다. 모르는 보수는 극단적 진보로 돌변한다. 옳은 진보가 아니라 극악한 진보가 된다. 이들의 공통점이 자기들의 지난 날과 자기들의 오늘이 다르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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