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원과 신학교..
담당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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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21 17:06
(양성원의 정체성)
양성원이란 목회자를 기르는 곳이다. 보통 이렇게 설명을 한다. 맞는 말이다. 그리고 틀리는 말이다. 기준에 따라 다르다.
이 번 글도 이 글을 적고 나면 80년대를 알거나 설교록을 아는 이들은 모두가 당연하다고 할 듯하다. 알고 있었던 것처럼.
공회는 쉽다. 그런데 생각이 잘못 되면 참 어렵다. 빙빙 돌고돌다 결국 어디론가 가 버린다. 우주 미아가 된 로켓처럼 된다.
양성원이란 정확히 말하면 '신학'을 가르치지 않으며, '신학교'로 운영을 하지 않는다는 전제를 붙인 목회자 양성 기관이다.
신학을 가르치지 않는다는 말은 양성원이라는 이름을 아무리 고수해도 신학을 가르치고 신학 체계가 들어 오면 신학교다.
신학교로 운영하지 않는다는 말은 양성원이라는 기관을 세상의 학교 체계로 바꾸지 않는다는 뜻이다. 양면을 갖춰야 한다.
(공회 별 양성원)
총공회 안에는 양성원을 4 곳에서 운영한다. 류정현 목사님이 부공1의 양성원을 운영한다고 했다. 실제 하는지는 모르겠다.
대구공회가 가장 견실하게 체계화가 되어 잘 운영이 되고 있다. 부공2는 서부교회 옆에서 서영호 목사님이 주로 맡고 있다.
부공3은 이 곳의 소식 게시판을 통해 또 과거에는 양성원 사이트를 두고 늘 세부 모든 것을 공개해 왔다. 다시 준비하고 있다.
류 목사님은 양성원을 양성원으로 운영할 줄로 기대했다. 그런데 백순희 사모님에 관한 글을 발표하면서 신학을 쏟아 냈다.
그 곳은 원래 학생 수도 거의 없다. 외부에서 양성원을 문의해 오면 각 양성원에 소개를 했다. 그리고 각 양성원을 파악했다.
부공1은 학생이 올까 싶어 어찌나 경계를 하는지 질문조차 하지 못한다고 했다. 우리가 파악하기로도 실제 양성원이 없다.
부공2와 대구공회는 양성원을 활발하게 운영한다. 학생을 소개해 보면 부공2나 대구공회는 경계를 하면서 안내는 했다 한다.
학생이 별로 없다, 기대하지 말라, 아주 어려워 따라 오겠느냐는 등으로 자꾸 반복하다 보니 우리에게 왜 소개했냐고 묻는다.
부공3은 정말 따라 오기가 어렵다. 부공3보다는 부공2나 대구공회가 좀 쉽다. 그래서 배려 차원에서 안내를 했다. 진심이다.
부공3은 내부보다 늘 외부인이 진지하게 참석해 왔다. 다른 공회에 소개 해도 갈 수 없고 오로지 이 곳만을 원하는 이들이다.
이러다 보니 부공3 양성원은 부공1보다 못할 것이라고 했는데 갈수록 잘 운영이 되고 있다. 양성원의 본질을 지금 소개한다.
외부인이 양성원에 관심을 가진다면 일반 신학에 대해 아는 분들이 그 신학을 실망하고 왔다. 양성원 본질에 충실하면 된다.
(신학이 싫은 양성원)
신학은 국내의 대학급 정상적 신학교만 50여 개가 넘는다. 정원을 채우지 못해서 누구라도 다 받는다. 교수진도 훌륭하다.
대부분 교수들이 미국 영국 화란 독일에서 정규 박사 학위를 받았고 과거와 달리 국내의 학부도 서울대 연고대가 흔하다.
교수들이 기본적으로 어떤 학문도 해 낼 학구적 자질이 있고 해외에서 세계적 학위 과정을 다 거쳤으니 신학을 할 수 있다.
양성원은 부공3의 교수들 빼고는 역시 해외에서 정통 신학교를 거친 분들이다. 문제는 그들의 신학이 그렇다는 뜻이 된다.
양성원은 신학을 가르치지 않는다. 그런데 신학을 정식으로 하고 나면 참 이상해 진다. 기어코 신학을 가르치려 들게 된다.
칼잡이가 평화시에도 손이 근질거려 뒷산에 볏짚이라도 베어 봐야 하고, 복싱을 배우면 주먹질을 하지 않고 견디지 못한다.
정규 신학교에서 신학을 하면 몇 가지 특징이 있다. 한글로 충분한데 기어코 영어 단어를 쓴다. 못 알아 듣는 학생들에게도.
심지어 자기도 서툴기 짝이 없는데 성경의 원어처럼 현대 학자 누구도 접근할 수 없는 히브리어 헬라어 원어를 입에 담는다.
헬라어 히브리어에 미국 내 권위자로 정평이 있고 NIV 번역위원으로 활동한 분들을 직접 겪어 봤다. 원어 세계가 쉽지 않다.
아마 교계에 공회처럼 신학이 싫다. 신학을 왜 할까, 신학이란 하는 순간에 신앙을 손해 본다는 이런 말을 하는 곳이 있을까?
신학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공회는 실제로 신학을 부정한다. 어떤 신학? 현재 신학 체계의 그런 신학을 말한다.
무엇이든 배우고 나면 그 것을 가지고 써 먹으려 든다. 가르칠 것이 있고 가르치면 안 되는 것이 있다. 신학은 안 되는 것이다.
신학을 해 보면 아는 것이 하나 있다. 신학을 해 봐야 별 수도 없고 신학이란 신앙에 아주 방해가 된다. 신학을 해 봐야 안다.
그런데 이미 해 버린 사람은 신학의 세계를 뻔히 알면서 남들에게는 신학이 다는 아니나 신학이 가끔 필요한 듯이 써 먹는다.
신학 한 사람이 신학을 치켜 올리면 신학을 한 자기도 따라 올라 간다. 자기가 올라 가기 위해 남들을 고생 시킨다. 헛고생을..
다른 교회들은 아예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거의 없으니 그렇다 치지만 공회는 배웠고 알았다. 그런데도 묘하게 써 먹게 된다.
하던 도둑질을 한다는 말이 이런 것이다. 배운 도둑질은 써 먹게 된다는 말도 있다. 고신의 1세대들은 그래도 좀 알고 있었다.
신학교를 입학 할 때는 성령에 뜨거운 불길 때문이나 신학 3년에 신앙을 팔고 성령의 불은 어느 틈에 모두 식어 져 벼렸다고.
이런 말을 할 때 고신이 한국 교회를 살릴 촛대였다. 그러던 고신이 자가 배출한 신학자들이 하나씩 늘게 되자 다 바뀌었다.
신학을 못해서 탈이고 신학을 하게 되면 고신의 교리 연구나 신앙 노선의 논쟁에 늘 선생이 되어 버린다. 고신은 이미 없다.
그 고신 안에서 신학을 경계 하던 세력 일부가 고신에서 겨우 빠져 나왔고 공회 안에서 이어 지고 있다. 공회는 신학이 밉다.
(신학교가 싫은 공회)
주일학교? 학교라는 말은 싫지만 250년이 넘어 버리고 입에 익어 져 버렸기 때문에 학교라는 말은 공회가 손 대지 않았다.
반사? 반마다 있는 담임이며 교사라는 단어다. 그런데 예배당처럼 연보처럼 한국 교회가 주교에만 사용한 교사가 반사다.
반사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래도 선배가 썼고 우리가 처음 믿을 때부터 써 왔기 때문에 '반사' 단어를 고수하고 있다.
신학교? 신학 하는 학교라.. 신학도 싫고 학교도 싫지만 교계가 한 몸으로 함께 가야 하는데 어디 내 마음대로 다 될 수 있나?
신학교라는 단어도 싫고 신학도 싫었지만, 교계와 함께 하기 위해 신학교라는 표현은 공회가 주교처럼 반사처럼 사용했다.
그런데 우리가 말하는 이 신학교는 50년대 고려신학교의 신학교다. 이 신학교는 무허가다. 무허가 신학교라면 쓸 만 했다.
그런데 그 신학교가 어느 날 교육부가 인준하는 학교가 되어 정식 신학교가 되었다 한다. 신학교 인준이 아니라 기타 학교다.
각종 학교가 많은데 그 중에 하나 신학교도 그런 차원으로 인정을 했다. 정확히 말하면 몰래 가르치는 곳은 아니라는 정도다.
그런 기타 학교는 종류가 참 많다. 그런데 교육부가 마치 미국의 신학교인 Seminary를 인정한 것처럼 오랜 세월을 써 먹었다.
이런 홍보는 관련 법을 모르는 이들에게는 거의 사기라 해야 한다. 고신의 거의 대부분 목회자들조차 당시 이런 법은 몰랐다.
우리 고려신학교가 드디어 교육부의 교육법에 따라 정식 신학교가 되었다고 난리였다. 전국 고신의 자부심은 하늘을 찔렀다.
사실은 총신과 비교를 할 때마다 늘 무허가 미인가 무자격 신학교 취급을 당하던 열등감이 깔려 있다 보니 그렇게 난리였다.
무허가 신학교란 세상이 허가 해 준 적이 없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세상이 무시할 학교이거나 세상이 측량할 수 없는 학교다.
신학교가 제대로라면 세상이 무시할 학교여서 미인가 무허가라 하든말든 우리는 세상이 측량할 수 없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신학교보다 중요한 교회가 구청에 등록증 없다고 무허가 나쁜 교회인가? 참 교회를 세상이 알아 볼 수나 있나? 뻔한 말이다.
무허가 신학교였던 총신이 '각종 학교'로 인가를 받고 이어 전문학교 대우를 받고 대학이 되고 대학교가 되고 대학원이 되자
고신은 총신이 이 땅 위에 유일한 경쟁 상대인지 이겨야 할 원수인지 총신의 뒤를 총총 밟아 나갔다. 고신은 총신이 아닌데.
고신은 우리는 진리다! 성경이다! 이 것만 외치면 한국 교회에 가장 좋고 하나뿐인 교회가 되고 공회는 신세만 지면 되는데,
고신이 총신과 경쟁을 하기를 레아와 경쟁한 라헬처럼 난리였고 정신 없이 세상 학제를 따라 세상 학교가 되어 가게 되자
공회는 고신이 대신 버텨 주면 좋을 자리를 고신 대신에 그 자리를 대신한 서울 고려신학교를 지켜 보며 중얼거리고 있었다.
고신이 고신의 보석을 빼서 없애자 석원태 목사님이 참으로 날래게도 또 복 되게도 그 보배를 가져 가셨네.. 재주도 참 좋다..
신학만 가지고도 위험한데 신학을 신학교라는 체계로 운영 하려는 순간, 마치 주일학교를 세상 학교처럼 운영한 꼴이 된다.
서부교회 주일학교가 왜 그렇게 세계적 기록을 올리며 세계적 주목을 받게 되었던가? 무슨 특별한 수법과 기술을 썼던가?
주일학교까지 그냥 교회답게 운영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교회가 주일학교를 세상 학교처럼 운영하면 세상 바닥이 된다.
신학교는 성경을 잘 가르치면 된다. 목회자에게 목회를 잘 가르치면 된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과목은 사실 거의 없게 된다.
어떤 교수의 강의보다 책이 더 낫다. 가끔 한 번씩 모여 질문하고 토론할 필요는 있다. 학교처럼 그렇게 배울 정도는 아니다.
그런데 죽자고 공부해서 그 어려운 신학을 끝낸 학자들이 학생들을 그냥 쉽게 놔 줄 리는 없다. 세상 대학처럼 가르치게 된다.
그런 신학자들의 보람에 만족을 시켜 주려면 기도하고 성경 읽고 전도하고 설교하고 심방할 시간에 강의실에 앉아야 한다.
앞으로 목회를 하지 않고 신학자가 될 사람이 신학을 한다면 반대하지 않겠다. 목회 할 사람에게는 신학교 체제는 곤란하다.
양성원이 양성원인 이유는 신학을 하지 않고 신학교로 운영하지 않겠다는 굳은 결의다. 고신 시절을 거치며 새긴 각오였다.
(현재 양성원들)
세세히 파악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사촌 집이 어떻게 사는지, 결혼한 형제 가정이 어떻게 사는지 굳이 조사를 해야 알 건가?
서로 멀리 살아도 들려 오는 소식 들으면 안다. 그렇겠지, 당연히 그렇게 하겠지. 글쎄 그렇게까지 그럴까? 짐작은 가능하다.
신학을 하지 않으려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는 일들을 듣는다. 인터넷 때문에 가릴 것도 없고 가룰 수도 없이 전파가 된다.
양성원은 세계 신학의 상식은 그 분야에 가장 간단하게 요약한 책 1권씩을 시간 있을 때 알아서 읽어 보라고 권하는 정도다.
책으로 읽으면 뻔한데 굳이 그 것을 가지고 강의를 할 것인가? 책을 읽어서는 어렵고 강의까지 들어야 한다면 아예 말았으면.
양성원에 모여서 굳이 강의를 해야 할 정도라면 공회만 가지고 있는 별도의 노선과 교훈, 달리 책으로 접하기 어려운 것이다.
지금은 총공회의 역사, 노선, 소개는 물론 백영희 전기와 공회 교리까지 모두 출간이 되었고 설교록 자료도 인터넷에 넘친다.
그런데도 공회 내용은 현재 우리 상황에 늘 필요하고 늘 변화에 대처할 시야와 자료가 넘친다. 이 것 때문에 모일 수는 있다.
그렇다면 이런 모임은 자연스럽게 공회가 늘 개최해 온 교역자회의 행정 외의 교훈 범위가 된다. 노소원 심의도 포함이 된다.
부공3은 공회들 중에 가장 적고 못 났지만 최소한 공회가 가야 할 길은 한 걸음씩 걸어 왔다고 보인다. 양성원도 마찬 가지다.
신학은 분야 별로 간단히 읽을 책이나 소개하고, 모이면 그 책 중에 꼭 질문할 것이나 공회와 관련하여 토론 정도면 충분하다.
그리고 부공3이니 그들 교회의 운영과 교인들의 상황을 놓고 이야기 하다 보면 목회 준비가 되고 목회적 해결을 도출해 낸다.
그러다 보니 신학은 필요가 없고, 신학은 우리 아니라도 각 공회들이 무수하게 훌륭한 신학자들을 배출하니 더할 것도 없다.
또 공회가 하지 않아도 한국 교계가 세계 교회를 상대로 세계적 신학교들을 한국 학생으로 소복하게 채우고 학자를 배출한다.
여기에 공회 양성원에서 공회 목회자를 가르칠 교수가 어디 끼일 자리가 있으며 끼어 준다 해서 어디 들어 갈 시간이 있을까?
뱉은 김에 무식하게 적어 본다.
이왕 적으려면 양심껏 적는 것이 나을 듯하다.
우리 내부의 모든 것을 이렇게 자꾸 공개를 해 대니 조용히 있으라 한다. 돌들이 소리를 지를 때는 뭐라 할 것인가? 고민이다.
양성원이란 목회자를 기르는 곳이다. 보통 이렇게 설명을 한다. 맞는 말이다. 그리고 틀리는 말이다. 기준에 따라 다르다.
이 번 글도 이 글을 적고 나면 80년대를 알거나 설교록을 아는 이들은 모두가 당연하다고 할 듯하다. 알고 있었던 것처럼.
공회는 쉽다. 그런데 생각이 잘못 되면 참 어렵다. 빙빙 돌고돌다 결국 어디론가 가 버린다. 우주 미아가 된 로켓처럼 된다.
양성원이란 정확히 말하면 '신학'을 가르치지 않으며, '신학교'로 운영을 하지 않는다는 전제를 붙인 목회자 양성 기관이다.
신학을 가르치지 않는다는 말은 양성원이라는 이름을 아무리 고수해도 신학을 가르치고 신학 체계가 들어 오면 신학교다.
신학교로 운영하지 않는다는 말은 양성원이라는 기관을 세상의 학교 체계로 바꾸지 않는다는 뜻이다. 양면을 갖춰야 한다.
(공회 별 양성원)
총공회 안에는 양성원을 4 곳에서 운영한다. 류정현 목사님이 부공1의 양성원을 운영한다고 했다. 실제 하는지는 모르겠다.
대구공회가 가장 견실하게 체계화가 되어 잘 운영이 되고 있다. 부공2는 서부교회 옆에서 서영호 목사님이 주로 맡고 있다.
부공3은 이 곳의 소식 게시판을 통해 또 과거에는 양성원 사이트를 두고 늘 세부 모든 것을 공개해 왔다. 다시 준비하고 있다.
류 목사님은 양성원을 양성원으로 운영할 줄로 기대했다. 그런데 백순희 사모님에 관한 글을 발표하면서 신학을 쏟아 냈다.
그 곳은 원래 학생 수도 거의 없다. 외부에서 양성원을 문의해 오면 각 양성원에 소개를 했다. 그리고 각 양성원을 파악했다.
부공1은 학생이 올까 싶어 어찌나 경계를 하는지 질문조차 하지 못한다고 했다. 우리가 파악하기로도 실제 양성원이 없다.
부공2와 대구공회는 양성원을 활발하게 운영한다. 학생을 소개해 보면 부공2나 대구공회는 경계를 하면서 안내는 했다 한다.
학생이 별로 없다, 기대하지 말라, 아주 어려워 따라 오겠느냐는 등으로 자꾸 반복하다 보니 우리에게 왜 소개했냐고 묻는다.
부공3은 정말 따라 오기가 어렵다. 부공3보다는 부공2나 대구공회가 좀 쉽다. 그래서 배려 차원에서 안내를 했다. 진심이다.
부공3은 내부보다 늘 외부인이 진지하게 참석해 왔다. 다른 공회에 소개 해도 갈 수 없고 오로지 이 곳만을 원하는 이들이다.
이러다 보니 부공3 양성원은 부공1보다 못할 것이라고 했는데 갈수록 잘 운영이 되고 있다. 양성원의 본질을 지금 소개한다.
외부인이 양성원에 관심을 가진다면 일반 신학에 대해 아는 분들이 그 신학을 실망하고 왔다. 양성원 본질에 충실하면 된다.
(신학이 싫은 양성원)
신학은 국내의 대학급 정상적 신학교만 50여 개가 넘는다. 정원을 채우지 못해서 누구라도 다 받는다. 교수진도 훌륭하다.
대부분 교수들이 미국 영국 화란 독일에서 정규 박사 학위를 받았고 과거와 달리 국내의 학부도 서울대 연고대가 흔하다.
교수들이 기본적으로 어떤 학문도 해 낼 학구적 자질이 있고 해외에서 세계적 학위 과정을 다 거쳤으니 신학을 할 수 있다.
양성원은 부공3의 교수들 빼고는 역시 해외에서 정통 신학교를 거친 분들이다. 문제는 그들의 신학이 그렇다는 뜻이 된다.
양성원은 신학을 가르치지 않는다. 그런데 신학을 정식으로 하고 나면 참 이상해 진다. 기어코 신학을 가르치려 들게 된다.
칼잡이가 평화시에도 손이 근질거려 뒷산에 볏짚이라도 베어 봐야 하고, 복싱을 배우면 주먹질을 하지 않고 견디지 못한다.
정규 신학교에서 신학을 하면 몇 가지 특징이 있다. 한글로 충분한데 기어코 영어 단어를 쓴다. 못 알아 듣는 학생들에게도.
심지어 자기도 서툴기 짝이 없는데 성경의 원어처럼 현대 학자 누구도 접근할 수 없는 히브리어 헬라어 원어를 입에 담는다.
헬라어 히브리어에 미국 내 권위자로 정평이 있고 NIV 번역위원으로 활동한 분들을 직접 겪어 봤다. 원어 세계가 쉽지 않다.
아마 교계에 공회처럼 신학이 싫다. 신학을 왜 할까, 신학이란 하는 순간에 신앙을 손해 본다는 이런 말을 하는 곳이 있을까?
신학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공회는 실제로 신학을 부정한다. 어떤 신학? 현재 신학 체계의 그런 신학을 말한다.
무엇이든 배우고 나면 그 것을 가지고 써 먹으려 든다. 가르칠 것이 있고 가르치면 안 되는 것이 있다. 신학은 안 되는 것이다.
신학을 해 보면 아는 것이 하나 있다. 신학을 해 봐야 별 수도 없고 신학이란 신앙에 아주 방해가 된다. 신학을 해 봐야 안다.
그런데 이미 해 버린 사람은 신학의 세계를 뻔히 알면서 남들에게는 신학이 다는 아니나 신학이 가끔 필요한 듯이 써 먹는다.
신학 한 사람이 신학을 치켜 올리면 신학을 한 자기도 따라 올라 간다. 자기가 올라 가기 위해 남들을 고생 시킨다. 헛고생을..
다른 교회들은 아예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거의 없으니 그렇다 치지만 공회는 배웠고 알았다. 그런데도 묘하게 써 먹게 된다.
하던 도둑질을 한다는 말이 이런 것이다. 배운 도둑질은 써 먹게 된다는 말도 있다. 고신의 1세대들은 그래도 좀 알고 있었다.
신학교를 입학 할 때는 성령에 뜨거운 불길 때문이나 신학 3년에 신앙을 팔고 성령의 불은 어느 틈에 모두 식어 져 벼렸다고.
이런 말을 할 때 고신이 한국 교회를 살릴 촛대였다. 그러던 고신이 자가 배출한 신학자들이 하나씩 늘게 되자 다 바뀌었다.
신학을 못해서 탈이고 신학을 하게 되면 고신의 교리 연구나 신앙 노선의 논쟁에 늘 선생이 되어 버린다. 고신은 이미 없다.
그 고신 안에서 신학을 경계 하던 세력 일부가 고신에서 겨우 빠져 나왔고 공회 안에서 이어 지고 있다. 공회는 신학이 밉다.
(신학교가 싫은 공회)
주일학교? 학교라는 말은 싫지만 250년이 넘어 버리고 입에 익어 져 버렸기 때문에 학교라는 말은 공회가 손 대지 않았다.
반사? 반마다 있는 담임이며 교사라는 단어다. 그런데 예배당처럼 연보처럼 한국 교회가 주교에만 사용한 교사가 반사다.
반사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래도 선배가 썼고 우리가 처음 믿을 때부터 써 왔기 때문에 '반사' 단어를 고수하고 있다.
신학교? 신학 하는 학교라.. 신학도 싫고 학교도 싫지만 교계가 한 몸으로 함께 가야 하는데 어디 내 마음대로 다 될 수 있나?
신학교라는 단어도 싫고 신학도 싫었지만, 교계와 함께 하기 위해 신학교라는 표현은 공회가 주교처럼 반사처럼 사용했다.
그런데 우리가 말하는 이 신학교는 50년대 고려신학교의 신학교다. 이 신학교는 무허가다. 무허가 신학교라면 쓸 만 했다.
그런데 그 신학교가 어느 날 교육부가 인준하는 학교가 되어 정식 신학교가 되었다 한다. 신학교 인준이 아니라 기타 학교다.
각종 학교가 많은데 그 중에 하나 신학교도 그런 차원으로 인정을 했다. 정확히 말하면 몰래 가르치는 곳은 아니라는 정도다.
그런 기타 학교는 종류가 참 많다. 그런데 교육부가 마치 미국의 신학교인 Seminary를 인정한 것처럼 오랜 세월을 써 먹었다.
이런 홍보는 관련 법을 모르는 이들에게는 거의 사기라 해야 한다. 고신의 거의 대부분 목회자들조차 당시 이런 법은 몰랐다.
우리 고려신학교가 드디어 교육부의 교육법에 따라 정식 신학교가 되었다고 난리였다. 전국 고신의 자부심은 하늘을 찔렀다.
사실은 총신과 비교를 할 때마다 늘 무허가 미인가 무자격 신학교 취급을 당하던 열등감이 깔려 있다 보니 그렇게 난리였다.
무허가 신학교란 세상이 허가 해 준 적이 없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세상이 무시할 학교이거나 세상이 측량할 수 없는 학교다.
신학교가 제대로라면 세상이 무시할 학교여서 미인가 무허가라 하든말든 우리는 세상이 측량할 수 없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신학교보다 중요한 교회가 구청에 등록증 없다고 무허가 나쁜 교회인가? 참 교회를 세상이 알아 볼 수나 있나? 뻔한 말이다.
무허가 신학교였던 총신이 '각종 학교'로 인가를 받고 이어 전문학교 대우를 받고 대학이 되고 대학교가 되고 대학원이 되자
고신은 총신이 이 땅 위에 유일한 경쟁 상대인지 이겨야 할 원수인지 총신의 뒤를 총총 밟아 나갔다. 고신은 총신이 아닌데.
고신은 우리는 진리다! 성경이다! 이 것만 외치면 한국 교회에 가장 좋고 하나뿐인 교회가 되고 공회는 신세만 지면 되는데,
고신이 총신과 경쟁을 하기를 레아와 경쟁한 라헬처럼 난리였고 정신 없이 세상 학제를 따라 세상 학교가 되어 가게 되자
공회는 고신이 대신 버텨 주면 좋을 자리를 고신 대신에 그 자리를 대신한 서울 고려신학교를 지켜 보며 중얼거리고 있었다.
고신이 고신의 보석을 빼서 없애자 석원태 목사님이 참으로 날래게도 또 복 되게도 그 보배를 가져 가셨네.. 재주도 참 좋다..
신학만 가지고도 위험한데 신학을 신학교라는 체계로 운영 하려는 순간, 마치 주일학교를 세상 학교처럼 운영한 꼴이 된다.
서부교회 주일학교가 왜 그렇게 세계적 기록을 올리며 세계적 주목을 받게 되었던가? 무슨 특별한 수법과 기술을 썼던가?
주일학교까지 그냥 교회답게 운영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교회가 주일학교를 세상 학교처럼 운영하면 세상 바닥이 된다.
신학교는 성경을 잘 가르치면 된다. 목회자에게 목회를 잘 가르치면 된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과목은 사실 거의 없게 된다.
어떤 교수의 강의보다 책이 더 낫다. 가끔 한 번씩 모여 질문하고 토론할 필요는 있다. 학교처럼 그렇게 배울 정도는 아니다.
그런데 죽자고 공부해서 그 어려운 신학을 끝낸 학자들이 학생들을 그냥 쉽게 놔 줄 리는 없다. 세상 대학처럼 가르치게 된다.
그런 신학자들의 보람에 만족을 시켜 주려면 기도하고 성경 읽고 전도하고 설교하고 심방할 시간에 강의실에 앉아야 한다.
앞으로 목회를 하지 않고 신학자가 될 사람이 신학을 한다면 반대하지 않겠다. 목회 할 사람에게는 신학교 체제는 곤란하다.
양성원이 양성원인 이유는 신학을 하지 않고 신학교로 운영하지 않겠다는 굳은 결의다. 고신 시절을 거치며 새긴 각오였다.
(현재 양성원들)
세세히 파악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사촌 집이 어떻게 사는지, 결혼한 형제 가정이 어떻게 사는지 굳이 조사를 해야 알 건가?
서로 멀리 살아도 들려 오는 소식 들으면 안다. 그렇겠지, 당연히 그렇게 하겠지. 글쎄 그렇게까지 그럴까? 짐작은 가능하다.
신학을 하지 않으려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는 일들을 듣는다. 인터넷 때문에 가릴 것도 없고 가룰 수도 없이 전파가 된다.
양성원은 세계 신학의 상식은 그 분야에 가장 간단하게 요약한 책 1권씩을 시간 있을 때 알아서 읽어 보라고 권하는 정도다.
책으로 읽으면 뻔한데 굳이 그 것을 가지고 강의를 할 것인가? 책을 읽어서는 어렵고 강의까지 들어야 한다면 아예 말았으면.
양성원에 모여서 굳이 강의를 해야 할 정도라면 공회만 가지고 있는 별도의 노선과 교훈, 달리 책으로 접하기 어려운 것이다.
지금은 총공회의 역사, 노선, 소개는 물론 백영희 전기와 공회 교리까지 모두 출간이 되었고 설교록 자료도 인터넷에 넘친다.
그런데도 공회 내용은 현재 우리 상황에 늘 필요하고 늘 변화에 대처할 시야와 자료가 넘친다. 이 것 때문에 모일 수는 있다.
그렇다면 이런 모임은 자연스럽게 공회가 늘 개최해 온 교역자회의 행정 외의 교훈 범위가 된다. 노소원 심의도 포함이 된다.
부공3은 공회들 중에 가장 적고 못 났지만 최소한 공회가 가야 할 길은 한 걸음씩 걸어 왔다고 보인다. 양성원도 마찬 가지다.
신학은 분야 별로 간단히 읽을 책이나 소개하고, 모이면 그 책 중에 꼭 질문할 것이나 공회와 관련하여 토론 정도면 충분하다.
그리고 부공3이니 그들 교회의 운영과 교인들의 상황을 놓고 이야기 하다 보면 목회 준비가 되고 목회적 해결을 도출해 낸다.
그러다 보니 신학은 필요가 없고, 신학은 우리 아니라도 각 공회들이 무수하게 훌륭한 신학자들을 배출하니 더할 것도 없다.
또 공회가 하지 않아도 한국 교계가 세계 교회를 상대로 세계적 신학교들을 한국 학생으로 소복하게 채우고 학자를 배출한다.
여기에 공회 양성원에서 공회 목회자를 가르칠 교수가 어디 끼일 자리가 있으며 끼어 준다 해서 어디 들어 갈 시간이 있을까?
뱉은 김에 무식하게 적어 본다.
이왕 적으려면 양심껏 적는 것이 나을 듯하다.
우리 내부의 모든 것을 이렇게 자꾸 공개를 해 대니 조용히 있으라 한다. 돌들이 소리를 지를 때는 뭐라 할 것인가? 고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