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우파.. 생활 속의 표현 하나도 조심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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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14 13:26
전도서 10:2, 지혜자의 마음은 오른 편에 있고 우매자의 마음은 왼편에 있느니라
마태복음 25:33,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데살로니가전서 5:22,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
여기의 좌우는 인체 해부학을 기준으로 좌우를 말하지 않는다. 오른 쪽이 갖는 자연과 사회 그리고 성경의 사용을 말한다.
자연과 사회가 사용하는 좌우 표시는 수 없이 많다. 그런데 하필 성경이 그렇게 말을 한다면 뭔가 그 말에는 섬짓해야 한다.
장난이라도 '지뢰밭'이라는 표시가 있으면 조심하는 것이 맞다. '명견'이라고 되어 있다면 조심하는 것이 지혜며 신앙이다.
이런 말씀 때문에 교인이라면 이 곳을 방문하는 분이라면 최소한 '좌측' '좌파'는 당연하고 '진보' '사회주의'도 경계해야 한다.
공회는 역사적으로 정통의 전통 교회에게 늘 진보 좌파적이라고 비판을 받았다. 그렇다고 우리는 그런 표현은 담지 않았다.
공회는 역사적으로 진보 자유주의 신학들에게는 늘 '극보수'라는 말을 들었다. 그렇지만 우리는 우리를 보수라 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냥 신앙주의다. 내 부모 내 조국 내 생명이라도 성경만 옳고 성경에 틀리면 늘 틀렸다는 입장이다. 실제 그러했다.
다만 분석적으로 어느 한 부분만을 두고는 '이 것은 바꾸지 말고 지키자' 할 것이 있다. 그 부분에 대해서만은 우리는 보수다.
우리는 2백 년 3백 년 된 찬송을 두고 세월이 갈수록 더 좋다. 그래서 바꾸지 않는다. 이 이유 때문에 우리를 보수인 줄 안다.
우리는 2백 년이 된 주일학교 제도가 명확히 잘못 되었을 때 세계 교회와 세계 주일학교 역사에도 불구하고 단 번에 바꿨다.
우리를 보고 급진 개혁이니 극단적 좌파니 비판을 했으나 우리 자체는 그냥 성경 딱 그대로다. 신앙주의지 좌파가 아니었다.
고칠 것이 있으면 우리는 '개선'하자고 한다. 아무리 고치자고 해도 우리는 '개악'은 안 된다고 주장했다. 고초를 많이 겪었다.
우리는 무조건 지키자는 것은 일단 싫다. 판단이 서지 않아서 임시 머물 수는 있다. 과거에 했다고 무조건 하는 것은 아니다.
이 곳에 방문한 분들 중에 신앙은 공회 신앙인데 뼈속 깊이 좌측에 계신 분들이 있다. 좌는 성경의 표현에서도 좋지가 않다.
어느 국어학자께서 평생 진보 좌파를 자랑스럽게 표현했다. 국어학자이기 전에 신앙가는 성경을 먼저 참고해야 옳을 듯하다.
불신자도 억센 놈 옆에 있으면 벼락 맞는다고 했다. 성경에 정면 맞서면 천벌을 피하기 어렵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적는다.
전도서 10:20, '심중에라도 왕을 저주하지 말며 침방에서라도 부자를 저주하지 말라'고 하셨다.
역사적으로 왕을 이렇게 표현하면 왕당파라고 한다. 수구파며 보수파며 발전과 인권을 막는 원수라고 생각했다.
틀린 것은 고치려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부모의 잘못을 자식이 고칠 때는 방법만은 조심해야 한다. 그런 것이 있다.
부자를 저주하지 말라 했다. 근대화 과정에 공산주의자들이 가장 싫어 했던 성구다. 고치려 노력해도 조심은 해야 한다.
마태복음 25:33,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데살로니가전서 5:22,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
여기의 좌우는 인체 해부학을 기준으로 좌우를 말하지 않는다. 오른 쪽이 갖는 자연과 사회 그리고 성경의 사용을 말한다.
자연과 사회가 사용하는 좌우 표시는 수 없이 많다. 그런데 하필 성경이 그렇게 말을 한다면 뭔가 그 말에는 섬짓해야 한다.
장난이라도 '지뢰밭'이라는 표시가 있으면 조심하는 것이 맞다. '명견'이라고 되어 있다면 조심하는 것이 지혜며 신앙이다.
이런 말씀 때문에 교인이라면 이 곳을 방문하는 분이라면 최소한 '좌측' '좌파'는 당연하고 '진보' '사회주의'도 경계해야 한다.
공회는 역사적으로 정통의 전통 교회에게 늘 진보 좌파적이라고 비판을 받았다. 그렇다고 우리는 그런 표현은 담지 않았다.
공회는 역사적으로 진보 자유주의 신학들에게는 늘 '극보수'라는 말을 들었다. 그렇지만 우리는 우리를 보수라 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냥 신앙주의다. 내 부모 내 조국 내 생명이라도 성경만 옳고 성경에 틀리면 늘 틀렸다는 입장이다. 실제 그러했다.
다만 분석적으로 어느 한 부분만을 두고는 '이 것은 바꾸지 말고 지키자' 할 것이 있다. 그 부분에 대해서만은 우리는 보수다.
우리는 2백 년 3백 년 된 찬송을 두고 세월이 갈수록 더 좋다. 그래서 바꾸지 않는다. 이 이유 때문에 우리를 보수인 줄 안다.
우리는 2백 년이 된 주일학교 제도가 명확히 잘못 되었을 때 세계 교회와 세계 주일학교 역사에도 불구하고 단 번에 바꿨다.
우리를 보고 급진 개혁이니 극단적 좌파니 비판을 했으나 우리 자체는 그냥 성경 딱 그대로다. 신앙주의지 좌파가 아니었다.
고칠 것이 있으면 우리는 '개선'하자고 한다. 아무리 고치자고 해도 우리는 '개악'은 안 된다고 주장했다. 고초를 많이 겪었다.
우리는 무조건 지키자는 것은 일단 싫다. 판단이 서지 않아서 임시 머물 수는 있다. 과거에 했다고 무조건 하는 것은 아니다.
이 곳에 방문한 분들 중에 신앙은 공회 신앙인데 뼈속 깊이 좌측에 계신 분들이 있다. 좌는 성경의 표현에서도 좋지가 않다.
어느 국어학자께서 평생 진보 좌파를 자랑스럽게 표현했다. 국어학자이기 전에 신앙가는 성경을 먼저 참고해야 옳을 듯하다.
불신자도 억센 놈 옆에 있으면 벼락 맞는다고 했다. 성경에 정면 맞서면 천벌을 피하기 어렵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적는다.
전도서 10:20, '심중에라도 왕을 저주하지 말며 침방에서라도 부자를 저주하지 말라'고 하셨다.
역사적으로 왕을 이렇게 표현하면 왕당파라고 한다. 수구파며 보수파며 발전과 인권을 막는 원수라고 생각했다.
틀린 것은 고치려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부모의 잘못을 자식이 고칠 때는 방법만은 조심해야 한다. 그런 것이 있다.
부자를 저주하지 말라 했다. 근대화 과정에 공산주의자들이 가장 싫어 했던 성구다. 고치려 노력해도 조심은 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