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 않는 죄, 잘못 하는 죄
담당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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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02 17:06
(조직과 책임자)
공무를 맡으면 일을 하다 실수를 하는 것보다 차라리 일을 하지 않고 버틴다. 공무원이 대표적인 예다. 보통 공공직이라 한다.
교회든 어느 조직이든 인원이 많아 지면 책임자를 세우게 된다. 그리고 대규모일수록 책임자가 많아 질수록 움직이지 않는다.
일단 공무를 맡는 사람은, 그 조직 안에서 최소한 중간은 간다. 중산층이 하한선이다. 잘 하면 올라 간다. 최소한 중간은 된다.
이런 구조에서는 실력이 뛰어 나면 어렵지 않게 최상으로 올라 간다. 성격이 원만하거나 실력이 평범하면 움직이지 않게 된다.
공직 중에서도 최고 책임자가 되면 명예심이든 의욕이든 자기가 최종 결정을 하기 때문에 신 나게 휘두른다. 대개 지나 친다.
박정희처럼 전체를 위해 사명감을 가진 사람이 실력과 의욕까지 겸비하면 세계 역사에 남을 일을 한다. 김일성은 그 반대다.
그러나 김일성 밑에나 박정희 밑에나 일반 공직자들은 떠밀려서 움직일 수는 있지만 공직이란 세월이 지나 가면 모두가 같다.
미국도 한국도 교회도 학교도 범죄 단체도 심지어 그 순수하다는 시민단체도 그렇다. 공직에 대해 기대를 하는 만큼 속는다.
(성과와 실수)
공직을 처음 맡는 사람은 멋 모르고 열심을 낸다. 그리고 세월 속에 선배들처럼 된다. 세월 속에도 열의가 뜨거운 사람도 있다.
이들의 열의 때문에 10 가지 일 중에 5~6 가지는 좋게 된다. 2~3 가지는 기대처럼 되지 않는다. 그러나 1~2 가지는 일을 낸다.
대충 하지 않고 열심을 낸 덕분에 10 중에 절반 이상에 성과가 있다면 1~2 가지의 손실은 감수할 수 있다. 칭찬 받을 사람이다.
그런데 성과를 낸 것은 이상하게도 그냥 평범해 보인다. 남의 장점이란 그렇게 쉽게 잊혀 진다. 그리고 잘못한 것은 부각 된다.
더 노력함으로 100억 원을 벌어 줬다면 더 노력을 하다가 10억 원 손해를 본 경우에 총 결산을 통해 90억 원을 칭찬해야 맞다.
그런데 10억 원의 손실은 100억 원의 수익을 덮고도 남는다. 국가적으로는 역적처럼 되고 교회로서는 아주 큰 죄인처럼 된다.
주변에 이런 사례가 있거나 뉴스를 통해 이런 소식을 접하면서 그리고 선배에서 차분히 설명을 듣게 되면 손쉽게 몸을 사린다.
교회의 경우는 공직에 따라 대우가 아주 낮은 편이다. 그런데 비판이 들어 오게 되면 견디기 어렵다. 순식간에 사람이 바뀐다.
(책임과 대우)
공무원은 임기와 은퇴 후가 보장 되어 있다. 그러니 움직일 필요가 없다. 성과만큼 대우 받는 것도 없다. 책임은 확실히 있다.
교회는 대우조차 없다. 교회의 성과는 신앙의 당연한 것으로 생각한다. 인정 받는 정도가 전부다. 그 대신 책임은 참 무겁다.
교회를 자기 몸처럼 생각하지 않으면 교회의 부목이나 월급 받는 일반 책임자들은 공무원보다 더욱 자기 몸을 사리게 된다.
서부교회는 월급 받는 직원이 수십 명이다. 교인은 10분의 1로 줄어도 30년 전과 차이가 없다. 위에서 아래까지 모두 그렇다.
교회 역사를 통해 가장 효율적이었던 서부교회가 백영희 사후 순간적으로 가장 비효율적인 조직으로 바뀌고 버티는 이유는,
서부교회 내의 장점에 그 원인이 있다. 한 번 사람을 쓰면 먼저 버리지 않는 인사 원칙이다. 백영희 사후 단점으로 바뀌었다.
교회는 직원을 자르지 않는다는 원칙은 사용자의 원칙인데 현재 서부교회 월급 받는 이들은 모두가 노동자 자세요 인식이다.
교회의 노동권은 교회에 도움이 되지 않으면 교회가 붙들어도 내가 나가야 한다. 사용자의 책임은 끝까지 가 보자는 것이다.
백 목사님이 38년을 길러 놓은 서부교회, 이 조직이란 38년을 나눠 먹어도 여전히 그럴 여력이 있다. 참으로 위대한 분이다.
그리고 그 위대한 분에게서 많이 배운 사람일수록 직원을 자르지 않는다는 사용자의 책임 의식을 노동권으로 활용하고 있다.
서부교회의 출근 직원이 25년을 전국으로 다니며 교회와 상관 없이 개인 일만 하고 다녀도 문제가 없다. 이런 조직이 있을까?
그 어떤 공무원도 그 어느 교단의 어떤 직책도 이 정도는 없을 듯하다. 공회의 최고 장점이 잘못 사용 되면 이렇게까지 된다.
공회는 퇴직금이 없다. 매 2년 시무투표에 불신임 되면 그 즉시 목사 자격이 없어 진다. 보통 절차에 불법이 있었다며 버틴다.
타 교단은 이런 제도는 없는 대신 70세 정년 퇴임을 시킨다. 그리고 퇴직금을 교회들이 알아서 책정하고 대개 분위기가 있다.
공회 목회자 중 퇴직 몇 년 전에 미리 퇴직금을 먼저 받아 놓고 막상 퇴직을 하면서 또 퇴직금을 요구해서 받은 경우가 있다.
공부를 한 적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더욱 매진할 수도 있다. 공부를 한 적이 없기 때문에 무식해도 그 한계가 없을 수 있다.
어느 것이 더 나은지 모르겠다. 어느 것이 더 나은지 모를 상황이 되면 사람은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 방향을 바꾸게 된다.
공회 노선을 그토록 좋아 했지만 서부교회조차 시무투표를 무효화 시키고 30년을 버티고 있으니 공회를 부정하기도 한다.
시무투표 자체를 없애자는 사람도 있다. 서부교회의 지도부를 포함하여 수 없는 교인이 연명으로 폐지를 요구하기도 했다.
그들이 몰랐던 것이 있다. 성경은 정확무오하지만 성경을 가지고 여호와 증인이 나왔다. 제도는 선악이 없다. 운영에 있다.
악인은 하나님의 이름조차 자기를 위해 사용한다. 복 있는 사람은 생지옥인 세상에서 천국을 오롯이 준비하고 만들고 간다.
그렇다면 제도 자체는 아무렇게나 만들어도 될까? 더 나은 제도는 제도를 잘 사용하는 사람에게 훨씬 많은 것을 안겨 준다.
더 나쁜 제도를 더 좋게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 대신 고생을 많이 한다. 공회 외부에서 잘 믿는 사람들이 이런 경우다.
그들이 이 노선에서 이 길을 걸으면 이 길만 알고 온 이들을 단숨에 앞 설 수 있다. 책임과 대우, 잘 살펴 보면 참 복이 된다.
공무를 맡으면 일을 하다 실수를 하는 것보다 차라리 일을 하지 않고 버틴다. 공무원이 대표적인 예다. 보통 공공직이라 한다.
교회든 어느 조직이든 인원이 많아 지면 책임자를 세우게 된다. 그리고 대규모일수록 책임자가 많아 질수록 움직이지 않는다.
일단 공무를 맡는 사람은, 그 조직 안에서 최소한 중간은 간다. 중산층이 하한선이다. 잘 하면 올라 간다. 최소한 중간은 된다.
이런 구조에서는 실력이 뛰어 나면 어렵지 않게 최상으로 올라 간다. 성격이 원만하거나 실력이 평범하면 움직이지 않게 된다.
공직 중에서도 최고 책임자가 되면 명예심이든 의욕이든 자기가 최종 결정을 하기 때문에 신 나게 휘두른다. 대개 지나 친다.
박정희처럼 전체를 위해 사명감을 가진 사람이 실력과 의욕까지 겸비하면 세계 역사에 남을 일을 한다. 김일성은 그 반대다.
그러나 김일성 밑에나 박정희 밑에나 일반 공직자들은 떠밀려서 움직일 수는 있지만 공직이란 세월이 지나 가면 모두가 같다.
미국도 한국도 교회도 학교도 범죄 단체도 심지어 그 순수하다는 시민단체도 그렇다. 공직에 대해 기대를 하는 만큼 속는다.
(성과와 실수)
공직을 처음 맡는 사람은 멋 모르고 열심을 낸다. 그리고 세월 속에 선배들처럼 된다. 세월 속에도 열의가 뜨거운 사람도 있다.
이들의 열의 때문에 10 가지 일 중에 5~6 가지는 좋게 된다. 2~3 가지는 기대처럼 되지 않는다. 그러나 1~2 가지는 일을 낸다.
대충 하지 않고 열심을 낸 덕분에 10 중에 절반 이상에 성과가 있다면 1~2 가지의 손실은 감수할 수 있다. 칭찬 받을 사람이다.
그런데 성과를 낸 것은 이상하게도 그냥 평범해 보인다. 남의 장점이란 그렇게 쉽게 잊혀 진다. 그리고 잘못한 것은 부각 된다.
더 노력함으로 100억 원을 벌어 줬다면 더 노력을 하다가 10억 원 손해를 본 경우에 총 결산을 통해 90억 원을 칭찬해야 맞다.
그런데 10억 원의 손실은 100억 원의 수익을 덮고도 남는다. 국가적으로는 역적처럼 되고 교회로서는 아주 큰 죄인처럼 된다.
주변에 이런 사례가 있거나 뉴스를 통해 이런 소식을 접하면서 그리고 선배에서 차분히 설명을 듣게 되면 손쉽게 몸을 사린다.
교회의 경우는 공직에 따라 대우가 아주 낮은 편이다. 그런데 비판이 들어 오게 되면 견디기 어렵다. 순식간에 사람이 바뀐다.
(책임과 대우)
공무원은 임기와 은퇴 후가 보장 되어 있다. 그러니 움직일 필요가 없다. 성과만큼 대우 받는 것도 없다. 책임은 확실히 있다.
교회는 대우조차 없다. 교회의 성과는 신앙의 당연한 것으로 생각한다. 인정 받는 정도가 전부다. 그 대신 책임은 참 무겁다.
교회를 자기 몸처럼 생각하지 않으면 교회의 부목이나 월급 받는 일반 책임자들은 공무원보다 더욱 자기 몸을 사리게 된다.
서부교회는 월급 받는 직원이 수십 명이다. 교인은 10분의 1로 줄어도 30년 전과 차이가 없다. 위에서 아래까지 모두 그렇다.
교회 역사를 통해 가장 효율적이었던 서부교회가 백영희 사후 순간적으로 가장 비효율적인 조직으로 바뀌고 버티는 이유는,
서부교회 내의 장점에 그 원인이 있다. 한 번 사람을 쓰면 먼저 버리지 않는 인사 원칙이다. 백영희 사후 단점으로 바뀌었다.
교회는 직원을 자르지 않는다는 원칙은 사용자의 원칙인데 현재 서부교회 월급 받는 이들은 모두가 노동자 자세요 인식이다.
교회의 노동권은 교회에 도움이 되지 않으면 교회가 붙들어도 내가 나가야 한다. 사용자의 책임은 끝까지 가 보자는 것이다.
백 목사님이 38년을 길러 놓은 서부교회, 이 조직이란 38년을 나눠 먹어도 여전히 그럴 여력이 있다. 참으로 위대한 분이다.
그리고 그 위대한 분에게서 많이 배운 사람일수록 직원을 자르지 않는다는 사용자의 책임 의식을 노동권으로 활용하고 있다.
서부교회의 출근 직원이 25년을 전국으로 다니며 교회와 상관 없이 개인 일만 하고 다녀도 문제가 없다. 이런 조직이 있을까?
그 어떤 공무원도 그 어느 교단의 어떤 직책도 이 정도는 없을 듯하다. 공회의 최고 장점이 잘못 사용 되면 이렇게까지 된다.
공회는 퇴직금이 없다. 매 2년 시무투표에 불신임 되면 그 즉시 목사 자격이 없어 진다. 보통 절차에 불법이 있었다며 버틴다.
타 교단은 이런 제도는 없는 대신 70세 정년 퇴임을 시킨다. 그리고 퇴직금을 교회들이 알아서 책정하고 대개 분위기가 있다.
공회 목회자 중 퇴직 몇 년 전에 미리 퇴직금을 먼저 받아 놓고 막상 퇴직을 하면서 또 퇴직금을 요구해서 받은 경우가 있다.
공부를 한 적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더욱 매진할 수도 있다. 공부를 한 적이 없기 때문에 무식해도 그 한계가 없을 수 있다.
어느 것이 더 나은지 모르겠다. 어느 것이 더 나은지 모를 상황이 되면 사람은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 방향을 바꾸게 된다.
공회 노선을 그토록 좋아 했지만 서부교회조차 시무투표를 무효화 시키고 30년을 버티고 있으니 공회를 부정하기도 한다.
시무투표 자체를 없애자는 사람도 있다. 서부교회의 지도부를 포함하여 수 없는 교인이 연명으로 폐지를 요구하기도 했다.
그들이 몰랐던 것이 있다. 성경은 정확무오하지만 성경을 가지고 여호와 증인이 나왔다. 제도는 선악이 없다. 운영에 있다.
악인은 하나님의 이름조차 자기를 위해 사용한다. 복 있는 사람은 생지옥인 세상에서 천국을 오롯이 준비하고 만들고 간다.
그렇다면 제도 자체는 아무렇게나 만들어도 될까? 더 나은 제도는 제도를 잘 사용하는 사람에게 훨씬 많은 것을 안겨 준다.
더 나쁜 제도를 더 좋게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 대신 고생을 많이 한다. 공회 외부에서 잘 믿는 사람들이 이런 경우다.
그들이 이 노선에서 이 길을 걸으면 이 길만 알고 온 이들을 단숨에 앞 설 수 있다. 책임과 대우, 잘 살펴 보면 참 복이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