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을 부러워 한 인물, 목사님 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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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28 12:47
(세습이 부러운 공회)
공회의 특별한 점은 많다. 늘 많다고 말했다. 교계는 세습을 비판해 놓고도 세습을 한다. 공회는 세습을 부럽게 칭송한다.
나와 정반대의 길을 가며 우리에게 극단적으로 박해를 한 백태영 목사님, 그 분의 세습도 우리는 비판해 본 적이 없었다.
이 곳이 그 분을 비판한 것은 그 분의 신앙 노선 때문이다. 세습 자체는 문제가 없다. 그 교회의 세습은 오히려 훌륭했다.
그 교회에서 이 쪽에 온 분들이 모두 세습을 비판했으나 나는 늘 그 세습은 당연했고 반대한 사람들이 비겁하다고 했다.
백태영은 공회가 잘못 됐다고 했다. 그리고 교계로 방향을 잡았다. 아들은 교계 깊히 진출했고 공회를 완전히 탈피했다.
그들의 방향 설정이 틀렸지 그들이 부모 자녀를 이어 가며 잠실동교회를 서울의 중심에 세웠으니 교계적으로 성공했다.
김정일을 부러워 한 사람이 있었다. 자신은 총공회와 서부교회를 북한처럼 일사분란하게 장악하여 운영하겠다고 했다.
나는 세습 자체는 좋은 것이라고 했다. 좋은 세습으로 성공하면 세습이 좋은 것이나 북한처럼 되면 세습이 나쁘다고 했다.
백 목사님 가족 중에 동생들인 백영익 백태영과 사돈이 되는 신도범은 일반 교인들에게 백영희 사후 후계자일 듯 했다.
그런데 서영준 막내 사위가 후계자가 되자 동생들이 견제를 시작했다. 동생 세습은 되고 자녀 세습은 안 된다는 말일까?
잠실동을 세습할 때는 아들이 실력이 있기 때문에 된다고 했다. 서 목사님은 실력이 되지 않는다는 말인가. 더 탁월한데..
잠실동을 비판하는 이유는 세습 때문이 아니라 과거 했던 언행과 반대가 되는 이런 구체적인 면 때문이다. 그런 식이다.
순복음교회나 충현교회가 대표단을 서부교회에 보낼 때마다 목사님께 아들이 목사인지 물었다. 목사님은 부끄러워 했다.
아들들을 목사로 만드려는 노력은 필사적이었다. 문제는 교계처럼 아들이라고 목사를 만들지 않는다. 실력이 돼야 했다.
자녀들은 목사가 되면 훌륭한 목사가 될 분들이었다. 그런데 자녀들의 문제는 아버지 같은 목사만 목사니 자신이 없었다.
목사다운 목사가 되고 그 목사가 서부교회와 공회의 지도자다운 지도자가 되면 자녀라도 맡긴다. 그렇지 않으면 안 된다.
(김정일을 부러워 했던, 가족)
사직동교회의 탈퇴를 처리하던 1988년 3월, 백영희의 가족이니 동생이든 조카든 자녀든 그 중에 1인이 내게 말을 했다.
김정일이 부럽다고, 그 ㄴ이 훌륭하고 위대하다고, 이유를 물론하고 정권을 잡았으니 된 것이 아니냐고 나를 떠 보았다.
나야 그 때나 지금이나, 백 목사님 이름을 팔며 사직동교회 옥상 콘크리트를 깨고 들어 가자는 사람에게도 할 말은 했다.
나는 세습 자체는 좋다고 했다. 나는 여기까지다. 실력 없는 사람은 목사님이 남이든 자녀든 세우지 않는다. 기회는 준다.
그래서 이 인물은 사직동교회 사건을 해결함으로 후계자의 실력을 보이려 했고 목표를 위해서는 수단 방법이 없었다.
원래 그랬다. 사직동교회 사건은 유배 된 처지와 같던 그에게 그가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을 보여 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그리고 나는 그가 볼 때 수족처럼 쓸 수 있는 인재였다. 내게 온갖 공을 다 들였다. 그런데 전체가 모인 자리에서 박대했다.
이 정도가 되면 내 얼굴을 다시 보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2년 후 장례 때 다시 앞 날을 도모하자고 했다. 내 대답은 같았다.
이왕이면 목사님 가족 중에 후계자가 나오면 좋다. 목사님의 소원이고 우리의 소원이다. 다만 실력과 신앙이 있어야 한다.
당시 목사님의 후임을 생각하던 분은 동생과 자녀 등 가까운 가족 중에 7명은 바로 손 꼽을 수 있다. 나는 내 길을 걸었다.
그 길이 어떤 때는 가족 중 이 분에게, 어떤 때는 저 분에게 가깝게 보였을 듯하다. 그 때마다 누구의 수족이니 말이 들렸다.
나는 세월이 지나야 알 것이라고 했고, 그 누구도 끊어 질 리가 없다는 분과도 나뉘었고 절대 합하지 않을 분과도 함께 했다.
신앙의 노선에 옳으면 나는 누구와도 한 몸이 된다. 신앙의 노선으로 하나가 될 수 없다면 나는 부모든 처자식과도 나뉜다.
신앙의 기본이 그렇지 않은가? 나만 그런가.. 나는 일단 그렇게 살아 왔다. 괜히 주변 그들의 기준으로 이 말 저 말을 했다.
그러나 세월을 통해 나는 한 길만 걸어 왔다. 목사님 생전도 사후도, 생전과 사후의 가족들과 이런저런 모든 관계에서도...
목사님은 이렇게 하라고 가르쳤다. 김정일을 부러워 했던 분도 이 노선으로만 살겠다고 돌아 서면 나는 바로 전폭 협조했다.
그러나 그렇게 돌아 선 사람은 다시 이용만 하고 버린다는 말을 수 없이 들었다. 유다가 주님을 팔 줄 알면서도 떡은 먹였다.
이 노선을 위해 살겠다고 말하면 나는 지금도 또 받아 준다. 그러나 속였던 과거가 있을 때는 그 과거를 꼭 해소하게 만든다.
신앙은 간디의 무저항주의나 WCC의 덮어 놓고 하나 되는 포용주의가 아니다. 꺼져 가는 심지라도 있으면 살리려고 애쓴다.
창원에는 내게 사람을 아끼지 않는다는 말을 하는 지도자가 있다. 그는 사람을 아끼지 않았고 나는 사람을 아껴 온 듯 하다.
그런지 아닌지는 평소 먼저 말을 해 버리는 사람, 또 많은 사람에게 미리 말하는 사람의 말이 옳은 것이 아니다. 보면 안다.
세월이 지나 가면 더더욱 잘 안다. 사람을 아끼지 않는다 한 분은 자기의 공회 명단에 내 이름이 없다. 내게는 그 분이 있다.
더 말을 할 것이나 있나? 명단에서 빼면 종교계에서는 살인이다. 나는 스스로 공표하고 나가는 이들의 이름도 흔적은 둔다.
사람 사랑이야 주체사상 이상이 없다. 인간중심이 주체사항의 중심이다. 역사상 주체사상 이상의 인간학살이 있었던가?
(우리는 집회 장소에 다른 공회 장소를 마련했다.)
모든 공회 교회들이 모두 와서 함께 하는 날을 소망했다. 강사나 일정이나 방법이 맞지 않으면 일정을 조절하면 충분하다.
이 의견을 내자 집회 장소를 조성하는데 소위 가장 크게 공로를 세웠다는 분이 펄펄 뛰며 난동을 시작했다. 전국적으로 ..
대구공회 교회들도 부산공회1, 2 교회들도 어디라도 어느 교회라도 모두 수용할 수 있다. 문제는 부공3 내부가 문제였다.
개척부터 건축까지 도움만 받고 집회 장소에 1원도 보태지 않다가 타 공회까지 모시겠다 하자 갑자기 전원일치를 말했다.
부산공회2는 이말출 노트를 천하에 전하겠다는 조건으로 노트를 받아 놓고 핵심 몇 명만 몰래 보겠다고 버텨 왔는데
모두가 다 공개를 하자고 하자 부공2의 교권을 쥔 인물이 전원일치를 내세우며 자기 하나 반대하니 공개는 금지라 했다.
전원일치라는 단어도 모르다가 배운 이들이 그 전원일치로 써 먹을 때는 죽고 망하고 죄 짓는 데만 사용한다. 불행이다.
이런 폐단 때문에 공회 내용을 전하고 알리려다 한 번씩 망설인다. 못 되고 나쁘게만 써 먹는 것은 분명한데도 전해야 하나?
이런 모순이 닥칠 때마다 망설인 세월도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늘 같았다. 여호와증인이 생겨도 성경은 꾸준하게 전한다.
공회의 좋은 것까지 나쁘게 악용을 하고 심지어 전해 준 사람을 십자가에 못을 박아도 알면서라도 전할 것은 전하게 된다.
부산공회2가 출발 할 때 서류로 가장 많이 준비한 사람은 연구소와 모든 자료를 함께 가지자고 굳게 약속했다. 그 표정...
지금도 기억한다. 얼굴이 사각적으로 각이 졌다. 굳은 사람이다. 그 눈은 지금도 초롱초롱하다. 검도를 한 무인이라던가...
그래도 교권이 눈 앞에 다가 오면 그 때부터 사람은 변한다. 그 교권 그 돈 그 명예에 손해가 갈 정도면 물어뜯는 개가 된다.
우리가 다 그렇다. 서로 조심할 일이다.
공회의 특별한 점은 많다. 늘 많다고 말했다. 교계는 세습을 비판해 놓고도 세습을 한다. 공회는 세습을 부럽게 칭송한다.
나와 정반대의 길을 가며 우리에게 극단적으로 박해를 한 백태영 목사님, 그 분의 세습도 우리는 비판해 본 적이 없었다.
이 곳이 그 분을 비판한 것은 그 분의 신앙 노선 때문이다. 세습 자체는 문제가 없다. 그 교회의 세습은 오히려 훌륭했다.
그 교회에서 이 쪽에 온 분들이 모두 세습을 비판했으나 나는 늘 그 세습은 당연했고 반대한 사람들이 비겁하다고 했다.
백태영은 공회가 잘못 됐다고 했다. 그리고 교계로 방향을 잡았다. 아들은 교계 깊히 진출했고 공회를 완전히 탈피했다.
그들의 방향 설정이 틀렸지 그들이 부모 자녀를 이어 가며 잠실동교회를 서울의 중심에 세웠으니 교계적으로 성공했다.
김정일을 부러워 한 사람이 있었다. 자신은 총공회와 서부교회를 북한처럼 일사분란하게 장악하여 운영하겠다고 했다.
나는 세습 자체는 좋은 것이라고 했다. 좋은 세습으로 성공하면 세습이 좋은 것이나 북한처럼 되면 세습이 나쁘다고 했다.
백 목사님 가족 중에 동생들인 백영익 백태영과 사돈이 되는 신도범은 일반 교인들에게 백영희 사후 후계자일 듯 했다.
그런데 서영준 막내 사위가 후계자가 되자 동생들이 견제를 시작했다. 동생 세습은 되고 자녀 세습은 안 된다는 말일까?
잠실동을 세습할 때는 아들이 실력이 있기 때문에 된다고 했다. 서 목사님은 실력이 되지 않는다는 말인가. 더 탁월한데..
잠실동을 비판하는 이유는 세습 때문이 아니라 과거 했던 언행과 반대가 되는 이런 구체적인 면 때문이다. 그런 식이다.
순복음교회나 충현교회가 대표단을 서부교회에 보낼 때마다 목사님께 아들이 목사인지 물었다. 목사님은 부끄러워 했다.
아들들을 목사로 만드려는 노력은 필사적이었다. 문제는 교계처럼 아들이라고 목사를 만들지 않는다. 실력이 돼야 했다.
자녀들은 목사가 되면 훌륭한 목사가 될 분들이었다. 그런데 자녀들의 문제는 아버지 같은 목사만 목사니 자신이 없었다.
목사다운 목사가 되고 그 목사가 서부교회와 공회의 지도자다운 지도자가 되면 자녀라도 맡긴다. 그렇지 않으면 안 된다.
(김정일을 부러워 했던, 가족)
사직동교회의 탈퇴를 처리하던 1988년 3월, 백영희의 가족이니 동생이든 조카든 자녀든 그 중에 1인이 내게 말을 했다.
김정일이 부럽다고, 그 ㄴ이 훌륭하고 위대하다고, 이유를 물론하고 정권을 잡았으니 된 것이 아니냐고 나를 떠 보았다.
나야 그 때나 지금이나, 백 목사님 이름을 팔며 사직동교회 옥상 콘크리트를 깨고 들어 가자는 사람에게도 할 말은 했다.
나는 세습 자체는 좋다고 했다. 나는 여기까지다. 실력 없는 사람은 목사님이 남이든 자녀든 세우지 않는다. 기회는 준다.
그래서 이 인물은 사직동교회 사건을 해결함으로 후계자의 실력을 보이려 했고 목표를 위해서는 수단 방법이 없었다.
원래 그랬다. 사직동교회 사건은 유배 된 처지와 같던 그에게 그가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을 보여 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그리고 나는 그가 볼 때 수족처럼 쓸 수 있는 인재였다. 내게 온갖 공을 다 들였다. 그런데 전체가 모인 자리에서 박대했다.
이 정도가 되면 내 얼굴을 다시 보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2년 후 장례 때 다시 앞 날을 도모하자고 했다. 내 대답은 같았다.
이왕이면 목사님 가족 중에 후계자가 나오면 좋다. 목사님의 소원이고 우리의 소원이다. 다만 실력과 신앙이 있어야 한다.
당시 목사님의 후임을 생각하던 분은 동생과 자녀 등 가까운 가족 중에 7명은 바로 손 꼽을 수 있다. 나는 내 길을 걸었다.
그 길이 어떤 때는 가족 중 이 분에게, 어떤 때는 저 분에게 가깝게 보였을 듯하다. 그 때마다 누구의 수족이니 말이 들렸다.
나는 세월이 지나야 알 것이라고 했고, 그 누구도 끊어 질 리가 없다는 분과도 나뉘었고 절대 합하지 않을 분과도 함께 했다.
신앙의 노선에 옳으면 나는 누구와도 한 몸이 된다. 신앙의 노선으로 하나가 될 수 없다면 나는 부모든 처자식과도 나뉜다.
신앙의 기본이 그렇지 않은가? 나만 그런가.. 나는 일단 그렇게 살아 왔다. 괜히 주변 그들의 기준으로 이 말 저 말을 했다.
그러나 세월을 통해 나는 한 길만 걸어 왔다. 목사님 생전도 사후도, 생전과 사후의 가족들과 이런저런 모든 관계에서도...
목사님은 이렇게 하라고 가르쳤다. 김정일을 부러워 했던 분도 이 노선으로만 살겠다고 돌아 서면 나는 바로 전폭 협조했다.
그러나 그렇게 돌아 선 사람은 다시 이용만 하고 버린다는 말을 수 없이 들었다. 유다가 주님을 팔 줄 알면서도 떡은 먹였다.
이 노선을 위해 살겠다고 말하면 나는 지금도 또 받아 준다. 그러나 속였던 과거가 있을 때는 그 과거를 꼭 해소하게 만든다.
신앙은 간디의 무저항주의나 WCC의 덮어 놓고 하나 되는 포용주의가 아니다. 꺼져 가는 심지라도 있으면 살리려고 애쓴다.
창원에는 내게 사람을 아끼지 않는다는 말을 하는 지도자가 있다. 그는 사람을 아끼지 않았고 나는 사람을 아껴 온 듯 하다.
그런지 아닌지는 평소 먼저 말을 해 버리는 사람, 또 많은 사람에게 미리 말하는 사람의 말이 옳은 것이 아니다. 보면 안다.
세월이 지나 가면 더더욱 잘 안다. 사람을 아끼지 않는다 한 분은 자기의 공회 명단에 내 이름이 없다. 내게는 그 분이 있다.
더 말을 할 것이나 있나? 명단에서 빼면 종교계에서는 살인이다. 나는 스스로 공표하고 나가는 이들의 이름도 흔적은 둔다.
사람 사랑이야 주체사상 이상이 없다. 인간중심이 주체사항의 중심이다. 역사상 주체사상 이상의 인간학살이 있었던가?
(우리는 집회 장소에 다른 공회 장소를 마련했다.)
모든 공회 교회들이 모두 와서 함께 하는 날을 소망했다. 강사나 일정이나 방법이 맞지 않으면 일정을 조절하면 충분하다.
이 의견을 내자 집회 장소를 조성하는데 소위 가장 크게 공로를 세웠다는 분이 펄펄 뛰며 난동을 시작했다. 전국적으로 ..
대구공회 교회들도 부산공회1, 2 교회들도 어디라도 어느 교회라도 모두 수용할 수 있다. 문제는 부공3 내부가 문제였다.
개척부터 건축까지 도움만 받고 집회 장소에 1원도 보태지 않다가 타 공회까지 모시겠다 하자 갑자기 전원일치를 말했다.
부산공회2는 이말출 노트를 천하에 전하겠다는 조건으로 노트를 받아 놓고 핵심 몇 명만 몰래 보겠다고 버텨 왔는데
모두가 다 공개를 하자고 하자 부공2의 교권을 쥔 인물이 전원일치를 내세우며 자기 하나 반대하니 공개는 금지라 했다.
전원일치라는 단어도 모르다가 배운 이들이 그 전원일치로 써 먹을 때는 죽고 망하고 죄 짓는 데만 사용한다. 불행이다.
이런 폐단 때문에 공회 내용을 전하고 알리려다 한 번씩 망설인다. 못 되고 나쁘게만 써 먹는 것은 분명한데도 전해야 하나?
이런 모순이 닥칠 때마다 망설인 세월도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늘 같았다. 여호와증인이 생겨도 성경은 꾸준하게 전한다.
공회의 좋은 것까지 나쁘게 악용을 하고 심지어 전해 준 사람을 십자가에 못을 박아도 알면서라도 전할 것은 전하게 된다.
부산공회2가 출발 할 때 서류로 가장 많이 준비한 사람은 연구소와 모든 자료를 함께 가지자고 굳게 약속했다. 그 표정...
지금도 기억한다. 얼굴이 사각적으로 각이 졌다. 굳은 사람이다. 그 눈은 지금도 초롱초롱하다. 검도를 한 무인이라던가...
그래도 교권이 눈 앞에 다가 오면 그 때부터 사람은 변한다. 그 교권 그 돈 그 명예에 손해가 갈 정도면 물어뜯는 개가 된다.
우리가 다 그렇다. 서로 조심할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