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일처 > 일부다처 > 일부일처 : 공회의 현실관

남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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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판에는 이 홈에 올려진 글 중에 이곳에서 따로 소개하고 싶은 글도 포함됩니다. 

일부일처 > 일부다처 > 일부일처 : 공회의 현실관

담당 0 5
(교훈은 아득히 위에 두고)
공회의 기본 자세는 신앙의 목표를 성경이 가리키는 곳을 향해 끝없는 무한에 둔다.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그 이상에 둔다.
하나님의 목적, 우리를 만들고 기르고 우리를 위해 필요하여 세상과 천국과 지옥까지 만들었다. 그 목적이 대충이었을까?
그렇다고 사람이 자기 생각으로 정처 없이 떠돌며 그리스나 중국의 철학자처럼 또는 망상에 빠진 사람처럼 그릴 수도 없다.
우리에게는 성경이 있다. 하나님은 완전 영원 불변이다. 하나님처럼 온전하라 했으면 그래야 한다. 아들은 아버지를 닮는다.
우리는 피조물이고 창조주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의 본성과 영원한 모습은 영원히 하나님 아버지를 향해야 한다.
그래서 공회의 설교와 교리와 신앙의 소망은 성경이 적어 주신 그 무한을 향해 늘 사모하고 그렇게 되기를 소원하고 노력한다.


(행정은 가장 뒤에 둔다.)
신앙의 세계에서 교회가 교인을 챙기고 가정에서 가족을 챙기는 것은 행정이며 목회라고 한다. 설교나 교훈은 이론이 된다.
이론은 가장 정밀하고 높은 곳에 두고 소망을 삼지만 실제 매 현실의 처리하는 손은 가장 느리고 어린 사람을 살펴야 한다.
양떼를 이끌 때 가장 좋은 곳을 목표로 두지만 그 곳을 향해 몰아 갈 때는 가장 뒤 처진 양에게 맞춰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
이론, 목표, 지향점을 낮추면 우선은 마음의 짐이 적어 지고 마음이 편해 진다. 그러나 목표를 낮추는 순간 의지가 약해 진다.
목표는 최대한으로 잡되 실제 살피고 손을 내 미는 것은 가장 뒤에 처진 교인, 그런 식구를 감싸야 한다. 공회의 목회가 그렇다.
마19:8, 내어버림을 허락하였거니와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 하신 말씀은 원래의 목표와 실제 길러 가는 시차를 말한다.



(일부일처의 결혼)
공회의 '남녀 이성' 문제는 다른 것과 마찬 가지로 그 이상과 이론이 엄하다. 아이 문제가 아니면 부부 관계도 말리는 정도다.
성경은 처음부터 일부일처다. 본래는 그렇지만 타락한 인간의 초기 번식을 위해 타락한 인간의 일부다처를 그냥 두고 봤다.
세월 속에 사람의 숫자가 충분하게 되었을 때는 더 명확하게 근친을 금지했다. 레18장을 중심으로 곳곳에서 명확하게 했다.
자연의 양심으로 봐도, 보건 건강 사회면으로 봐도, 성경으로 봐도, 자기 자신의 손익을 계산해도 이런 문제는 어렵지 않다.
문제는 사람의 속에서 사람을 노리는 욕심이 문제다. 이 욕심을 충동 시키고 앞 세우는 귀신이 이 문제를 그냥 두지 않는다.
그래서 일부일처가 옳은 줄 알지만 또 자손의 숫자가 필요하거나 어린 시기에는 최대한 그냥 두셨기 때문에 일부다처였다.


(일부다처의 세상)
오늘은 일부일처인가 일부다처인가? 명확히 오늘은 창세 초기처럼 일부다처다. 아직 호적은 막고 있으나 실제는 만연하다.
미개하던 시절은 미개한 것을 감안해 주시며 또 첫 출발의 의미가 있는 사안에 대해서는 범위를 넓게 보고 그냥 지나 쳤다.
행17:30,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허물치 아니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을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오늘은 알지 못하여 기다리실 때일까, 오늘은 알고도 남는데 짐짓 죄를 짓는다고 보실까? 판단하기에 어렵지 않을 듯하다.
공회 노선은 나를 엄하게 다스리되 남에게 대해서는 이론적으로 옳고 그른 것은 따져도 현실적으로는 넓게 품고 이해한다.
일부다처로 돌아 간 오늘, 지난 날 그 어느 시절보다 더욱 그렇다. 일부다처만 문제가 아니라 일처다부도 넘쳐 나고 있다.


이런 상황을 넓게 이해한다면 한 사람을 책임 지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여러 사람을 거느릴 사람도 있다면 막을 도리는 없다.
공산주의처럼 획일적으로 선을 그어 두면 우선은 좋아 진다. 그러나 세월 속에 모두가 다 굶어 죽는다. 그냥 둘 수밖에 없다.
일부일처가 맞다. 그런데 일부일처에 그치지 않겠다면, 막을 수도 없고 굳이 막을 것도 없다. 그렇게 되어야 세상이 돌아간다.
한 사람도 거두지 못하는 사람, 한 사람만 겨우 거두는 사람. 이들은 일부일처를 지키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수준이 그렇다.
다처가 가능한데 한 사람만 가진다면 일부일처다. 그런 사람이 실력껏 가진다면? 그 것이 타락한 세상의 정상적 모습이다.
일처도 버거운 사람, 그런데 기회가 되면 다처를 할 사람, 그런 사람이 다처를 향해 비판을 한다면 이 사람은 비겁한 것이다.


그래서 성경으로 우리가 옳고 그른 것은 끝없이 살펴야 하지만 그 말씀으로 사람을 따져 볼 때는 자기에게는 엄할수록 좋고
남에게 대해서는 원래 원칙과 함께 그 사람의 형편을 두루 살펴야 한다. 그리고 남에게 대해서는 넉넉하게 기다리면 더 좋다.
공회의 노선은 모든 것을 이런 자세로 대한다. 이런 글을 통해 이 노선의 성향만 파악하면 나머지 문제는 알아서 해도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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