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톡 금식? 말은 좋은데, 말로 그치지 않았으면

남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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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판에는 이 홈에 올려진 글 중에 이곳에서 따로 소개하고 싶은 글도 포함됩니다. 

카톡 금식? 말은 좋은데, 말로 그치지 않았으면

담당 0 1
평생을 시골 바닷가에 묻혀 살아 왔는데
세월이 세상을 여러 번 뒤집고 나니 이래 저래 교계의 한 중심에 서게 되었다. 연락 오는 결과를 가지고 말을 할 때 그렇다.
서울의 강남 오피스텔 하나에만 살면서 밖을 나가지 않고 자기가 은둔이라 하면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듣기에는 어색하다.
남해안 바닷가 시골의 교회가 어느 순간 산업 단지의 외곽이 되었고 지금은 전국의 개발에 따라 이제 일반 도심 외곽이다.

교계에 저명한 기독교 병원장님이 오랜 시간 개인적으로 형 동생을 하자며 카톡을 매주 보내 오며 극진히 최선을 다했다.
실제로 한국 교계의 손꼽는 의료인과 신학교 졸업장 하나도 김 목사님이 거부해서 받지 못한 공회의 낙오 목회자 사이다.
병원장님은 장로님이고 매주 월요일 아침이 되면 성구와 함께 말씀을 전해 온다. 그 분은 설교를 하고 나는 깍듯이 듣는다.
내가 아니라 그 분이 먼저 시작한 것이다.



내가 자진해서 의사에게 매주 월요일 출근하는 시간에 건강 이야기를 풀며 세월을 보내면 이런 것은 사실 실례에 속한다.
장로가 목사에게 한 주간이 시작 되는 월요일에 말씀을 청한다면? 나는 내 교인이 아니면 말씀을 부탁해도 전하지 않는다.
나는 어느 자리에 가도 내가 목사라고 내가 기도하거나 말씀을 시작하지 않는다. 상대방이 원해도 먼저 위치를 생각한다.
장로님이 늘 말씀을 전했고 나는 늘 감사히 잘 받았다. 누구든지 전하려 한다면 돌들이 소리를 질러도 나는 귀를 기울인다.

헤아리기 어려운 세월 동안 빠짐 없이 말씀을 보내 오던 분이 어느 날 '카톡 금식'을 한다면서 이후에는 글을 적지 않았다.
여러 면으로 홀가분했다. 노선이 다르고 생각하는 기준과 가치가 많이 다르니 그 동안 사실 동문서답이 될 수밖에 없었다.
언제는 늘 전한다 하시다가 이제는 '금식'을 하신다. 표현이 멋 있다. 그런데 그 표현 속에 담은 뜻까지 멋 있다면 참 좋겠다.
국내 손꼽는 병원장님, 얼마나 바쁘겠는가? 접해야 할 의학 정보와 회의와 보고와 환자 진료 자료가 얼마나 차고 넘칠까?



아무리 바빠도 아무리 중요해도 일단 신앙의 사람은 하나님과 연결이 먼저다. 하나님과의 연결에는 묵상 명상 이상이 없다.
말씀을 따라 마음을 정리하고 말씀 속에 역사하는 성령의 감화와 감동을 느끼려면 고요함이 필요하다. 안팎을 끊어야 한다.
잡음도 소음도 보고도 회의도, 심지어 의료인의 사명에 속하는 환자의 생명과 치명적인 건강 문제까지도 미룰 때가 있다.
수술에 몰입 해도 주변 사람은 익숙한 시술을 보고 주님은 주님을 향한 눈동자에 티가 없는 진심을 보실 수 있게 해야 한다.

카톡 금식, 좋은 단어를 접했다. 그렇다. 과거는 먹을 것이 없어 금식 기도인지 먹고자 하는 욕심을 꺾는 금식인지 모르겠다.
오늘은 음식이 차고 넘치니 모두가 체중에 성인병에 심혈관 문제로 온 국민이 체중 조절에 나섰다. 말하자면 금식이 되겠다.
그런데 영양 제한은 들어 봐도 지식 금식이란 말은 듣기 어렵다. 지금 학벌 졸업장 자격증의 범람은 노아 홍수를 넘어 섰다.
유치원 아이에게 제 부모가 결혼 후에나 알게 된 것을 동영상으로 주입 시키고 있다. 이런 지식은 금식이 필요하지 않을까?


문화도 놀이도 운동도 가족 여행도 외식도 그 어떤 것도, 사람이 좋아 할 수 있는 모든 모든 것은 모두 금식이 필요할 듯하다.
없어서 죽을까 싶어 생존 차원에서 인류는 최근까지 사력을 다했다. 그리고 주님 오실 때가 닥치자 이제는 모두 홍수 속이다.
용모도 금식을 시키고, 유행에 맞고 어디 가도 괜찮아 보이는 옷차림도 금식을 좀 시키고, 발언조차 금식이 필요해 보인다.
교단도 다르고 신앙 본질과 길이 아주 다른데 그 병원장님의 교단은 장로 위에 목사를 세워 놓았다면 조심이 필요해 보였다.

나는 그 분께 이 노선은 목사와 장로와 주교생이 꼭 같다는 개혁주의의 만인제사장설은 설이 아니라 교리로 삼는다고 했다.
그래서 마음 놓고 말씀을 전해 달라 했다. 이 것이 내 양심이다. 또한 상대에게 말 조심을 부탁하는 것은 내가 할 금식이다.
내가 조심 할 것이 있고 상대방에게 조심을 부탁해서 안 되는 것도 있다. 이렇게 따져 보면 나는 무례하지는 않은 듯하다.
공회는 상대방에게 먼저 비판하는 것을 늘 조심해 왔다. 그런데 오히려 상대방이 공회를 향해 무례하다며 먼저 못을 박는다.

그렇다. 선공이 최선의 방어다. 최근 어느 장관처럼 교계도 상대방에게 먼저 비판을 쏟아 놓고 본다. 프레임이라고 한다.
공회는 방어에 바빴다. 사실 방어조차 제대로 해 본 적도 없다. 방어도 어린 신앙을 위해 최소한에 그쳤다. 이 것이 공회다.
그래서 공회가 한 번 발언을 시작하면 세상이든 타 교단이든 누구든 제대로 입을 벌리는 것을 보지 못했다. 당연한 듯하다.
공회의 원래 노선은 교회도 공회도 개인도 세상 모든 것은 물론 신앙의 세계 안에서조차 최대한 줄이고 금식을 해 왔었다.

금식을 많이 하여 생활화가 되면 몸이 가볍다. 비쩍 말라 보여도 건강검진을 해 보면 거의 모든 수치가 참으로 좋게 나온다.
번들번들 좋아 보이는 이들은 의사들 눈에 만성병 창고처럼 보인다. 만사 금식이 필요하다는 뜻을 전해 본다. 공회 노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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