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륜의 소멸기, 봄을 위한 겨울잠 - 밤을 맞은 교회의 자세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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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24 19:20
(한국의 교회 약사)
한국 교회가 선교 되던 19세기 말, 삭막한 불모지에 선교사들은 씨를 뿌렸다. 그들도 누구도 소망은 가졌으나 기대는 없었다.
선교의 초기가 지나던 20세기 초, 평양 대부흥이라는 이름으로 전국을 달군 성령의 역사는 어느 교회사도 모두 인정을 한다.
일제 말 한국 교회는 그대로 소멸 되는 듯 했으나 1945년의 해방과 함께 과거와 전혀 다른 모습의 다른 교회가 등장을 했다.
봄에 솟는 새움의 웅진이었다. 1950년의 전쟁에 북한 교회처럼 끝 날 줄 알았는데 이 번에는 세계가 놀랄 교회가 선보였다.
80년대를 지나며 세계 주요 교파의 최대 교회들은 한국에 있었고 신앙 신학 교회 여러 면에서 한국교회는 세계 정상이었다.
바로 이 때부터 불길한 이야기들이 돌았다. 교회사의 흐름을 볼 때 한국 교회는 이제 쇠퇴기를 걸을 것이라는 걱정들이었다.
한국 교회는 한국 사회의 경제 발전처럼 그 끝을 모르며 진행 될 줄 알았다. 21세기가 되면서 이제는 모두가 아는 현실이다.
이제 개척이란 극히 예외적이며 어느 교회도 그 외형은 번듯하고 내면은 교회인지 사회단체인지 구별이 되지 않을 정도이다.
(침륜인가, 잠복인가)
신앙의 세계는 한 번 내려 앉으면 히10:39 말씀처럼 다시는 일어 서지 못하는 침륜에 빠져 끝장이 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세계 교회사를 통해 시대를 감당하며 교계의 중심에 섰던 교회가 지금까지 하나도 끝까지 버티지 못하고 다 침륜에 빠졌다.
초대교회도 지금은 그 곳에서 찾을 수 없고, 칼빈의 제네바 교회도 애양원교회도 서부교회도 주소지에 팻말만 남아 있다.
역사에 사라 진 교회는 침륜이지만 애양원교회나 서부교회는 다음 사명을 위해 준비를 하는 잠복기인지 알 수가 있겠는가?
뿌려 진 씨앗이 솥에서 삶겼다면 봄을 기다릴 것은 없다. 우선 그 속에 생명성을 보면 알 수 있다. 신앙의 노선이 생명이다.
애양원교회는 통합이다. WCC다. 진리로 따지지 말고 교회 간판만 붙이면 공산당의 선전 도구인 봉수대 교회도 환영한다.
이런 경우는 손양원의 신앙이 이어 지지 않고 확실히 단절이 되었다고 보인다. 그렇다면 봄을 기다리는 잠복기는 아니다.
서부교회는 외부에서 보면 건물도 주소도 교인도 그대로다. 그러나 백영희의 신앙의 본질을 아는 사람은 없어 졌다고 한다.
역사의 교회들은 교회의 존재를 외부에서 볼 수 있도록 형성해 왔다. 칼빈의 교회도 당회라는 구성체를 중심으로 삼았었다.
초대교회야 천주교 시기를 통해 다시 살필 필요도 없이 되었다. 애양원교회도 당회 체계다. 교리도 행정도 이미 달라 졌다.
백영희의 이 노선은 어떤가. 백영희는 1959년 고신에서 새로 출발하면서 처음부터 '공회'라는 교회의 존재 형식을 지향했다.
신앙의 성향으로 교회와 노선의 본질을 삼고 교회의 형태조차 처음부터 신앙의 결집체로 만들었지 보이는 교회를 배제했다.
서부교인은 교회의 주소지와 그 교인과 그 건물을 서부교회 정체성인 줄 안다. 백영희 노선은 그 곳의 밖에는 없다고 본다.
이 정도가 되면 바로 천주교가 되는 것이다. 보통의 장로교는 목사와 장로가 교회의 정체성이다. 불교로 바꿔도 될 정도다.
공회는 역사 전체를 살펴 봤고 교계를 겪어 봤고 그 이전에 성경으로 교회론을 살피고 시작했다. 신앙, 그 자체가 교회이다.
한 교회에 앉아도 신앙이 다르면 교인이 아니고 설교의 내용이 달라 지면 그 교회 강단의 목사도 공회를 떠난 탕자가 된다.
(내일의 소망을 외쳐 본다.)
봄에 돋은 움이 여름을 거치면서 가을의 들판을 오곡백과로 가득 채운다. 그렇게 되면 그 다음에는 겨울이 무조건 온다.
한국교회가 이 나라에 뿌려 졌고 움이 돋았고 뜨거운 여름의 많은 위기를 거치며 마침내 만방에 오곡백과를 뿌렸었다.
이 노선도 그러했다. 그런데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면 가을에 뿌려 진 씨는 무조건 다 새 생명으로 움이 돋게 되는 것인가?
혹독한 겨울을 버티지 못하고 죽는 것이 태반이다. 식물은 버티는 경우가 많다. 동물일수록 고급일수록 생존율은 낮다.
지금은 선교도 전도도 심방도 개척도 설교도 교회의 각종 활동도 모두 세상적이 되었고 신령한 면은 다 죽은 듯이 보인다.
교파적으로만 말한다면 이 노선은 혹독한 겨울을 나기 위해 출발부터 그렇게 준비가 되었기 때문에 잠복기라고 보여 진다.
곰은 겨울잠을 자다 적을 만나면 속수무책으로 당한다. 호랑이는 먹이가 없어 겨울에 굶어 죽기 딱 좋다. 현재가 혹한기다.
공회는 교역자회 모인 숫자로 교세가 되고 정체성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그런 줄 안다. 그래서 공회도 대부분 소멸했다.
공회의 원래 신앙의 노선을 아는 곳, 그 곳에 하나면 그 하나가 내년의 봄을 기다리는 잠복기의 겨울잠을 자는 새생명이다.
그런 사람이 여러 명이면 그 여러 명이 홍수 후를 감당할 소망이다. 그런 교회가 몇 개라도 있으면 엄청난 준비라고 보인다.
6.25의 남침 기습에 1사단은 후퇴를 해도 사단을 유지하며 후퇴했다. 인천상륙작전에 북한 6사단만은 그렇게 후퇴를 했다.
이길 때는 모두가 용사이며 영웅이다. 그러나 패전을 해야 속을 안다. 패전에 편제를 지킬 수 있는 군대, 이럴 때 참 군대다.
아무리 월등한 실력을 갖춰도 별별 생각 못한 이유로 패할 수 있다. 그러나 강한 군대는 그 위기를 넘어 서고 승리를 한다.
패전할 때 수습하지 못하는 오합지졸이 어떻게 이기게 되면 대단해 보이나 그 군은 언젠가 한 번 위기에서 그냥 사라 진다.
군이 패전을 해도 지휘 계통이 있다면 아무리 적어도 다시 기회를 잡는다. 아무리 많아도 지휘가 없어 지면 없어 진 것이다.
그래서 군은 지휘를 군 자체라고 본다. 지휘권에게 전권을 주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교회는 무엇이 가장 중요할까?
공회는 처음부터 신앙의 노선, 그 보이지 않은 신령한 면을 공회로 교회로 정의했다. 그 정의를 가지고 출발한 것이 공회다.
공회는 목회자와 교인이 다 없어 져도, 예배당과 공회 간판이 다 사라 진다 해도 공회 노선만 유지 되면 공회는 이어 진다.
공회가 잘 나갈 때 이렇게 규정을 해 놓으면 일사분란이 어려워 승기에 부흥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교회들이 조직을 한다.
공회는 잘 나갈 때 승기를 놓친다 해도 교회의 속성을 꿰뚫어 봤기 때문에 조직화로 대부흥을 할 수 있을 때 이를 포기했다.
지금 시골에 한 교회와 도시의 뒷 골목에 몇 교회만 남고 교인 몇 만 남은 듯해도 이 노선은 봄을 기다리는 소망의 교회다.
세계 10대 교회였던 서부교회, 서부교회를 가진 공회, 1백 개 교회를 가진 공회조차 이 곳은 내심으로 공회라 하지 않는다.
이 노선이 무엇일까? 이 것을 알면 그 아는 사람 하나가 공회다. 그런 사람이 많으면 그 사람들이 공회다. 무엇이 공회인가?
백 목사님 생전에도 제대로 아지 못하고 그냥 공회라는 간판에 붙어 살았으니 그 분의 사후에 공회는 모두가 비게 되었다.
이 연구소의 중요성은 바로 이 점에 있다. 앞으로 공회의 교회와 교인이 단 1명도 남지 않고 다 없어 지는 때가 온다고 하자.
이 연구소가 이미 세계를 향해 전해 놓은 이 노선의 내용이 있다. 불신자라도 어느 교파 어느 교인이라도 그 자료를 통해서,
이 노선의 내용을 알고 이 노선의 본질을 지키려 한다면 그리고 이 노선의 정체성을 가지게 된다면 그를 통해 움이 돋는다.
이렇게 본다면 초대교회는 없어 졌으나 칼빈의 개혁교회로 1천 년을 뛰어 넘어 싻을 띄웠다. 공회는 바로 이 점을 본 것이다.
그리고 공회가 출발 할 때 이런 시공을 초월한 신령한 신약의 원래 교회를 잇고 싶어 사도행전 15장을 공회 출발로 삼았다.
이 것을 이해하는 사람은 일단 모여야 한다거나 일단 많아야 한다거나 일단 조직이 있어야 한다는 말을 부끄럽게 생각한다.
'나는 독립으로' '무언의 용사로' '주님만 모시고' '어디까지든지'
백영희는 1987년 9월에 이 표어를 동천교회 이치영 당시 서부교회 특수반 책임자에게 주셨다. 학생들에게 준 선물이었다.
사실 그의 사후 그를 이을 후계자를 잃었던 바로 그 다음 달이었다. 보이는 후계자도 가질 수 있으면 좋다. 얼마든지 좋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주지 않으시면? 다른 교회들은 사람의 연구와 기획과 노력으로 발굴을 한다. 이 과정에 정치도 한다.
공회는? 주시면 받지만 주지 않고 데려 가시면? 모두가 후계자가 되면 된다. 모두가 되지 않으면 훗날 다시 움을 주신다.
바로 이 소망 때문에 공회 이 노선은 그 출발부터 그 부흥기에도 그리고 오늘도 당당하다. 말이라도 이렇다면 좋지 않은가?
한국 교회가 선교 되던 19세기 말, 삭막한 불모지에 선교사들은 씨를 뿌렸다. 그들도 누구도 소망은 가졌으나 기대는 없었다.
선교의 초기가 지나던 20세기 초, 평양 대부흥이라는 이름으로 전국을 달군 성령의 역사는 어느 교회사도 모두 인정을 한다.
일제 말 한국 교회는 그대로 소멸 되는 듯 했으나 1945년의 해방과 함께 과거와 전혀 다른 모습의 다른 교회가 등장을 했다.
봄에 솟는 새움의 웅진이었다. 1950년의 전쟁에 북한 교회처럼 끝 날 줄 알았는데 이 번에는 세계가 놀랄 교회가 선보였다.
80년대를 지나며 세계 주요 교파의 최대 교회들은 한국에 있었고 신앙 신학 교회 여러 면에서 한국교회는 세계 정상이었다.
바로 이 때부터 불길한 이야기들이 돌았다. 교회사의 흐름을 볼 때 한국 교회는 이제 쇠퇴기를 걸을 것이라는 걱정들이었다.
한국 교회는 한국 사회의 경제 발전처럼 그 끝을 모르며 진행 될 줄 알았다. 21세기가 되면서 이제는 모두가 아는 현실이다.
이제 개척이란 극히 예외적이며 어느 교회도 그 외형은 번듯하고 내면은 교회인지 사회단체인지 구별이 되지 않을 정도이다.
(침륜인가, 잠복인가)
신앙의 세계는 한 번 내려 앉으면 히10:39 말씀처럼 다시는 일어 서지 못하는 침륜에 빠져 끝장이 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세계 교회사를 통해 시대를 감당하며 교계의 중심에 섰던 교회가 지금까지 하나도 끝까지 버티지 못하고 다 침륜에 빠졌다.
초대교회도 지금은 그 곳에서 찾을 수 없고, 칼빈의 제네바 교회도 애양원교회도 서부교회도 주소지에 팻말만 남아 있다.
역사에 사라 진 교회는 침륜이지만 애양원교회나 서부교회는 다음 사명을 위해 준비를 하는 잠복기인지 알 수가 있겠는가?
뿌려 진 씨앗이 솥에서 삶겼다면 봄을 기다릴 것은 없다. 우선 그 속에 생명성을 보면 알 수 있다. 신앙의 노선이 생명이다.
애양원교회는 통합이다. WCC다. 진리로 따지지 말고 교회 간판만 붙이면 공산당의 선전 도구인 봉수대 교회도 환영한다.
이런 경우는 손양원의 신앙이 이어 지지 않고 확실히 단절이 되었다고 보인다. 그렇다면 봄을 기다리는 잠복기는 아니다.
서부교회는 외부에서 보면 건물도 주소도 교인도 그대로다. 그러나 백영희의 신앙의 본질을 아는 사람은 없어 졌다고 한다.
역사의 교회들은 교회의 존재를 외부에서 볼 수 있도록 형성해 왔다. 칼빈의 교회도 당회라는 구성체를 중심으로 삼았었다.
초대교회야 천주교 시기를 통해 다시 살필 필요도 없이 되었다. 애양원교회도 당회 체계다. 교리도 행정도 이미 달라 졌다.
백영희의 이 노선은 어떤가. 백영희는 1959년 고신에서 새로 출발하면서 처음부터 '공회'라는 교회의 존재 형식을 지향했다.
신앙의 성향으로 교회와 노선의 본질을 삼고 교회의 형태조차 처음부터 신앙의 결집체로 만들었지 보이는 교회를 배제했다.
서부교인은 교회의 주소지와 그 교인과 그 건물을 서부교회 정체성인 줄 안다. 백영희 노선은 그 곳의 밖에는 없다고 본다.
이 정도가 되면 바로 천주교가 되는 것이다. 보통의 장로교는 목사와 장로가 교회의 정체성이다. 불교로 바꿔도 될 정도다.
공회는 역사 전체를 살펴 봤고 교계를 겪어 봤고 그 이전에 성경으로 교회론을 살피고 시작했다. 신앙, 그 자체가 교회이다.
한 교회에 앉아도 신앙이 다르면 교인이 아니고 설교의 내용이 달라 지면 그 교회 강단의 목사도 공회를 떠난 탕자가 된다.
(내일의 소망을 외쳐 본다.)
봄에 돋은 움이 여름을 거치면서 가을의 들판을 오곡백과로 가득 채운다. 그렇게 되면 그 다음에는 겨울이 무조건 온다.
한국교회가 이 나라에 뿌려 졌고 움이 돋았고 뜨거운 여름의 많은 위기를 거치며 마침내 만방에 오곡백과를 뿌렸었다.
이 노선도 그러했다. 그런데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면 가을에 뿌려 진 씨는 무조건 다 새 생명으로 움이 돋게 되는 것인가?
혹독한 겨울을 버티지 못하고 죽는 것이 태반이다. 식물은 버티는 경우가 많다. 동물일수록 고급일수록 생존율은 낮다.
지금은 선교도 전도도 심방도 개척도 설교도 교회의 각종 활동도 모두 세상적이 되었고 신령한 면은 다 죽은 듯이 보인다.
교파적으로만 말한다면 이 노선은 혹독한 겨울을 나기 위해 출발부터 그렇게 준비가 되었기 때문에 잠복기라고 보여 진다.
곰은 겨울잠을 자다 적을 만나면 속수무책으로 당한다. 호랑이는 먹이가 없어 겨울에 굶어 죽기 딱 좋다. 현재가 혹한기다.
공회는 교역자회 모인 숫자로 교세가 되고 정체성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그런 줄 안다. 그래서 공회도 대부분 소멸했다.
공회의 원래 신앙의 노선을 아는 곳, 그 곳에 하나면 그 하나가 내년의 봄을 기다리는 잠복기의 겨울잠을 자는 새생명이다.
그런 사람이 여러 명이면 그 여러 명이 홍수 후를 감당할 소망이다. 그런 교회가 몇 개라도 있으면 엄청난 준비라고 보인다.
6.25의 남침 기습에 1사단은 후퇴를 해도 사단을 유지하며 후퇴했다. 인천상륙작전에 북한 6사단만은 그렇게 후퇴를 했다.
이길 때는 모두가 용사이며 영웅이다. 그러나 패전을 해야 속을 안다. 패전에 편제를 지킬 수 있는 군대, 이럴 때 참 군대다.
아무리 월등한 실력을 갖춰도 별별 생각 못한 이유로 패할 수 있다. 그러나 강한 군대는 그 위기를 넘어 서고 승리를 한다.
패전할 때 수습하지 못하는 오합지졸이 어떻게 이기게 되면 대단해 보이나 그 군은 언젠가 한 번 위기에서 그냥 사라 진다.
군이 패전을 해도 지휘 계통이 있다면 아무리 적어도 다시 기회를 잡는다. 아무리 많아도 지휘가 없어 지면 없어 진 것이다.
그래서 군은 지휘를 군 자체라고 본다. 지휘권에게 전권을 주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교회는 무엇이 가장 중요할까?
공회는 처음부터 신앙의 노선, 그 보이지 않은 신령한 면을 공회로 교회로 정의했다. 그 정의를 가지고 출발한 것이 공회다.
공회는 목회자와 교인이 다 없어 져도, 예배당과 공회 간판이 다 사라 진다 해도 공회 노선만 유지 되면 공회는 이어 진다.
공회가 잘 나갈 때 이렇게 규정을 해 놓으면 일사분란이 어려워 승기에 부흥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교회들이 조직을 한다.
공회는 잘 나갈 때 승기를 놓친다 해도 교회의 속성을 꿰뚫어 봤기 때문에 조직화로 대부흥을 할 수 있을 때 이를 포기했다.
지금 시골에 한 교회와 도시의 뒷 골목에 몇 교회만 남고 교인 몇 만 남은 듯해도 이 노선은 봄을 기다리는 소망의 교회다.
세계 10대 교회였던 서부교회, 서부교회를 가진 공회, 1백 개 교회를 가진 공회조차 이 곳은 내심으로 공회라 하지 않는다.
이 노선이 무엇일까? 이 것을 알면 그 아는 사람 하나가 공회다. 그런 사람이 많으면 그 사람들이 공회다. 무엇이 공회인가?
백 목사님 생전에도 제대로 아지 못하고 그냥 공회라는 간판에 붙어 살았으니 그 분의 사후에 공회는 모두가 비게 되었다.
이 연구소의 중요성은 바로 이 점에 있다. 앞으로 공회의 교회와 교인이 단 1명도 남지 않고 다 없어 지는 때가 온다고 하자.
이 연구소가 이미 세계를 향해 전해 놓은 이 노선의 내용이 있다. 불신자라도 어느 교파 어느 교인이라도 그 자료를 통해서,
이 노선의 내용을 알고 이 노선의 본질을 지키려 한다면 그리고 이 노선의 정체성을 가지게 된다면 그를 통해 움이 돋는다.
이렇게 본다면 초대교회는 없어 졌으나 칼빈의 개혁교회로 1천 년을 뛰어 넘어 싻을 띄웠다. 공회는 바로 이 점을 본 것이다.
그리고 공회가 출발 할 때 이런 시공을 초월한 신령한 신약의 원래 교회를 잇고 싶어 사도행전 15장을 공회 출발로 삼았다.
이 것을 이해하는 사람은 일단 모여야 한다거나 일단 많아야 한다거나 일단 조직이 있어야 한다는 말을 부끄럽게 생각한다.
'나는 독립으로' '무언의 용사로' '주님만 모시고' '어디까지든지'
백영희는 1987년 9월에 이 표어를 동천교회 이치영 당시 서부교회 특수반 책임자에게 주셨다. 학생들에게 준 선물이었다.
사실 그의 사후 그를 이을 후계자를 잃었던 바로 그 다음 달이었다. 보이는 후계자도 가질 수 있으면 좋다. 얼마든지 좋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주지 않으시면? 다른 교회들은 사람의 연구와 기획과 노력으로 발굴을 한다. 이 과정에 정치도 한다.
공회는? 주시면 받지만 주지 않고 데려 가시면? 모두가 후계자가 되면 된다. 모두가 되지 않으면 훗날 다시 움을 주신다.
바로 이 소망 때문에 공회 이 노선은 그 출발부터 그 부흥기에도 그리고 오늘도 당당하다. 말이라도 이렇다면 좋지 않은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