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를 몰아 가는 율동, 난무의 망극함

남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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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판에는 이 홈에 올려진 글 중에 이곳에서 따로 소개하고 싶은 글도 포함됩니다. 

교회를 몰아 가는 율동, 난무의 망극함

담당 0 5
(교회의 춤)
시149:3에 '춤 추며' 찬양하라 했다. 150:4에 '소고 치며 춤 추어' 찬양하라 했다. 춤을 추며 찬송하는 것이 성경이어서 한단다.
주일 성수는 성경에 없어서 주일을 모두가 버렸을까? 성경을 부페처럼 가려 사용하면 악용이다. 성경의 춤은 주로 왜곡한다.
그렇게 건전하고 경건하다는 최고의 보수적인 교회들마저 시대의 춤 바람에 맞서지 못하고 심지어 공회에도 그런 곳이 있다.

해석은 각자가 한다. 자유다. 그대신 자유의 결과는 각자 책임 진다. 예배당에서 박수만 쳐도 이단이라던 건전한 때가 있었다.
지금은 박수를 치고 손을 흔들고 몸을 흔들고 드럼 소리가 나오고 강단에 올라 가서 쥐약 먹은 발광을 해야 성령이라고 한다.
공회는 말씀을 듣고 그 말씀으로 깨닫고, 그 깨달음이 마음을 장악하고 그 마음이 흔들릴 때 몸이 흔들린다면 춤이라고 한다.



(1970년대 주현교회)
김현봉 목사님 직계였다가 이병규 목사님 측과 나뉜 전북 이리의 주현교회 이교부는 70년대 강단에서 옷을 벗고 춤을 췄다.
한국교회의 이단 비판서에는 거의 빠짐 없이 나온다. 옷을 벗고 춤을 췄으면 정신이 나갔으니 정신과 환자의 행위는 무죄다.
지금 한국교회의 강단에 난무하는 춤 바람은 정신과 치료를 받을 상황은 아닐 것이니 맨 정신의 죄는 무죄가 아니라 유죄다.

남의 춤 바람은 정죄하고 자기 춤 바람은 성신의 바람인가, 순복음교회가 처음 방언으로 회원을 모으자 일제히 정죄를 했다.
지금은 방언 하지 않는 교단은 없는 듯하다. 그래도 공회는 아무리 막 나간다 해도 방언한다는 교회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신앙의 사람에게 신앙이 빠져 나가면 신앙이 있던 자리에 그 사람의 믿기 전이나 신앙 외적 본능, 과거, 무의식이 차지 한다.

춤 바람이 나면 그는 원래 흥이 많은 사람인데 발산할 기회를 신앙이 눌러 놓았으나 신앙이 흐트러 지면서 분출 된 것이다.
이런 현상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기는 것은 아니다. 원래 흥이 없었다 해도 세월 속에 계속 스며 들었다 나오는 경우도 있다.
들어 간 것이 있으니 나오는 법이다. 한 가지 주목하는 원인은 열등감이나 갈급이다. 그렇게 하고 싶었던 욕구의 분출이다.



(공회의 부채춤)
이제는 모두 없어 졌을 듯하여 적는다. 백 목사님 사후 10여 년이 지나면서 공회 내 가장 철저하다는 교회들에서 발생했다.
50대 또는 60대의 그 교회 최고 신앙의 여성들, 그 분들은 백 목사님 생전에 기도와 전도에만 주력하던 교회 주력들이었다.
그런데 한복을 입고 본당의 강단에 올라가 부채춤을 추는 사진들이 사이트에 게재 되었다. 얼마나 부채춤에 목이 탔었을까?

어릴 때 장난감에 갈급하던 가난 한 집 아이가 나중에 돈을 만지게 되면 나이에 맞지 않는 아이들 장난감을 병적으로 가지고
어릴 때 놀러 가는 친구 집이 부러웠던 사람이 결혼을 하면 처자식을 태우고 전국을 병적으로 돌아 다닌다. 열등감인 것이다.
자라는 과정에 무엇이 그 인격 깊이 자국을 남겼을까? 뒤에 행동을 보면 묻어 둔 내면을 읽을 수 있다. 결국 드러 나게 된다.

예배당을 필요 없이 높이 높이 멋 있게 치장하고 과도하게 올려 세우는 교회는 어릴 때든 목회 초기든 그 속에 한이 맺혔다.
목사 앞에 슬슬 기던 전도사가 목사 되면 안수 받는 그 순간 갑자기 천상의 신선이 된 행동을 한다. 부공2 90년대 이야기다.
창12장에 아브라함은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났다. 그 때는 공간적 이주다. 오늘은 믿기 전에 가진 내면을 버리란 말씀이다.

부채춤에 한이 맺힌 이들, 할 수 있는데 못했든 할 줄을 몰랐든 여성으로 그 부채춤에 한이 맺힌 한풀이를 교회에서 했다.
교회 강단이 한풀이 하는 굿판인가. 이렇게 말하면 일반 교인은 강단의 목사 설교는 그 목사의 한풀이가 아니냐 반문한다.
말씀으로 살지 못한 한탄, 말씀으로 살자는 한풀이면 좋은 설교다. 평소 개인 취향과 성향을 말씀에 담으면 한풀이 설교다.



(목회자의 성장 과정)
정상급의 교회가 목사를 초빙하고 해외의 최고 수준 신학교가 학생을 선발할 때 배경을 보는 이유는 이런 경험 때문이다.
우선 급할 때는 자기를 조심 시켜 문제가 없으나 어느 순간이 되면 쌓여 있던 내면과 과거와 그 사람의 밑바닥이 나온다.
거지 출신은 얻어 먹는 거지 습관이 나오고 회개한 조폭은 어느 순간 주먹을 내민다. 그래서 사람을 들여다 보는 것이다.

공회는 나부터 대부분이 사회의 낙오자들이거나 어디 앉기도 곤란한 미천한 출신들이다. 백 목사님 생전은 잡혀 있었다.
그러나 그 지도력이 어느 날 묘소에 들어 가자 꽃밭에 활짝 핀 온갖 화초들처럼 모두의 과거 모습들이 한꺼번에 분출했다.
가관이었다. 백 목사님 생전에는 그 지도력이 모두를 희게 덮었다. 눈이 녹자 원래 모습이 나왔다. 최근 부공3도 그렇다.

이런 모습에 환멸을 느끼게 되면 귀신이 이 틈을 타서 목회자의 지난 날이 귀족 출신 명문가에 점잖은 사람을 찾게 한다.
얼굴만 봐도 인자함이 넘치는 사람, 그 말 그 행동 그 모습만 봐도 사람이 폭 녹을 인품 학벌 배경을 갖춘 사람을 찾는다.
백 목사님 사후의 공회 교회들의 후임 초빙을 보면 한결 같다. 문제는 이들은 말씀에 자신을 변화 시킨 것이라 그런가...

말씀이 바꿔 놓은 인품이 아니라면 거지나 부자나, 병자나 건강자나, 무식자나 유식자나 다를 것이 있을까? 실은 같다.
그런데 이왕이면 저질보다는 고급이 좋아 보인다. 이 고급도 교회가 경계할 세상 것인데 고급스러운 것은 거룩해 보인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목사님 사후에 출신과 성장 과정이 좋아 보이는 분들은 출세 코스를 달렸다. 실체를 알 때는 늦었다.



(공회의 보배들)
공회의 전반적 수준은 엉망이지만 곳곳에 귀한 분들은 있다. 세상 기준으로만 귀해서 귀한 것이 아니라 실제 귀한 분들..
송종섭 목사님은 이 노선의 핵심 지식을 빼고는 모든 면을 다 갖춘 분이다. 그 핵심 지식 면은 그 분의 충성이 대신 했다.
그는 잘난 체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수수했다. 그 분은 출신이 고급이다. 그런데 그렇게 천한 곳을 자연스래 거쳤다.

백 목사님 생전에 목사님께 실제 지적을 받고 우려를 받은 인물치고 목사님 사후에 갈수록 좋아 진 분은 그 분 한 분이다.
다른 이들은 악어의 눈물처럼 되지 않게 교만하게 보이지 않으려 한 분들은 있으나 그들의 정치적 언행은 쉽게 드러 났다.
송 목사님은 학식 언변 출신 실력 신앙 인물 건강 정치력까지 그 어느 한 곳도 흠이 없다. 가장 큰 장점은 실제로 겸손했다.

송 목사님 한 분 외에는 잘 난 사람은 겸손하려고 노력해도 그 잘 난 습관을 결국은 버리지 못하고 공회를 다 망쳐 놓았다.
못 난 사람들은 못 난 그 악질에 고질이 공회를 철저히 엉망을 만들었다. 나도 그 중에 하나다. 사람 고치기는 참 어렵다.
송 목사님은 학자 중에 학자다. 그러나 중간에 학위를 멈췄다. 그 세계를 알기 때문이다. 시도를 한 것도 공회를 위해서였다.

정말 공부가 안 되는 사람들, 공부를 포기하는 것이 참 좋겠다 싶은 분들. 그런데도 공부에 학위에 애가 탄 분들이 많았다.
지금은 모두가 부끄러워 감추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이미 공표가 되고 학위 사진을 찍었으니 이제 없앨 수도 없을 것이다.
나는 못 났지만 학위는 없다. 바빠서 가지지 못했다. 일반 학교 졸업장이 전부다. 지금까지 늘 자랑해도 자랑의 끝이 없다.

모두가 학위에 정신이 없을 때, 이미 우리 나라는 학위가 포화 상태를 넘고 있었다.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돈을 투자했다.
이 나라에 대졸 학벌이 취업에 도움 될 때가 있었다. 지금은 고졸에서 그쳐야 더 유리하여 대졸을 숨기는 경우도 흔하다.
어려서 그 시골에 시골 기준으로 지금 모두 갈급해 하는 열등감을 미리 벗어 버렸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나도 끼일 뻔했다.



(못 난 사람은 되지 말라!)
평소 목사님은 생활 속에 가까운 주변 사람에게만 가끔 한 마디씩 던진다. 무식하고 가난하고 재주 없는 것은 그럴 수 있다.
못난 사람은 되지 말라고 한다. 부채춤에 한이 맺혔다고 강단에서 부채춤을 추는 것은 못난 사람이 못난 행동을 하는 것이다.
무식한 것은 상관이 없다. 무식한 사람이 유식하게 되는 줄 알고 학위에 애를 태우는 것이다. 열등감, 그 표출이 못한 것이다.

영어를 모르면 한글 성경으로 열심히 하면 된다. 목회자가 이제 영어 배워 언제 영어 성경 덕을 보겠는가? 우스운 꼴이 된다.
영어도 서툰데 원어를 입에 담으면 원어도 불편해 한다. 듣는 사람도 눈치가 있으면 참 바늘 방석이 된다. 못난 사람이 된다.
부공3처럼 초등학교를 나와도 그냥 그대로, 중학교를 나와도 그대로, 고교만 나왔다면 그냥 그대로, 생긴 대로 있어도 된다.

초등학생도 성경 하나만 가지고 실행하며 걸어 갈 때 대졸보다 나아야 능력이지 대졸을 따서 대졸 노릇하면 무슨 신앙인가?
영어도 원어도 모르고 한글 성경만 가지고도 신령한 면을 깨닫고 가르치고 지도 해야 말씀이 언어를 초월한 능력이 아닐까?
부채춤을 밖에서 출 기회가 있으면 예술 학교를 가든지 업소를 가면 된다. 교회 강단에까지 끌어 들인다면 못난 것일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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