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로역정, 이 노선으로 다시 적는다면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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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30 14:35
(독서의 함정)
독서는 모두가 강조한다. 독서를 하는 사람은 독서 경험 때문에 강조하고 독서가 모자라면 열등감 때문에 더 강조하는 듯하다.
나는 신앙이 없을 때도 체질적으로 글을 읽지 않았다. 신앙을 안 뒤부터는 성경만 주력했고 다른 책은 더욱 읽지 않게 되었다.
유일하게 백영희 설교록은 많이 읽었다. 모르는 부분이 없다 할 정도다. 그 이유는 성경을 있는 대로 잘 소개하였기 때문이다.
최근 공회들 중에 교계의 속화 과정을 전혀 걷지 않을 것처럼 기대한 교회들조차 닮아 가는 모습 때문에 천로역정을 생각했다.
천로역정 때문에 독서 문제를 적었다. 학교 다닐 때 인문학에 중요한 도서로 늘 거론이 되어 존 번연의 천로역정을 기억한다.
이런 책이 소개 되면 독서력이 있는 친구들은 고등학교 때부터 벌써 읽었다는 말이 들린다. 대학을 가게 되면 당연히 읽는다.
특히 신앙에 열심 있는 이들은 필독서가 되며 나처럼 신학을 정식으로 하게 되면 이 책을 읽지 않았다는 말은 할 수가 없다.
그렇다 해도 나는 학점에 손해를 보고 졸업을 하지 못해도 성경 외의 책은 대략 그림만 그리지 꼬박꼬박 읽어 내지를 않는다.
(천로역정)
백 목사님은 성경 외에 글과 지식은 아예 없다 할 정도다. 그런 분도 설교 중에 천로역정에 대해서는 한 번씩 언급을 했었다.
그 분의 평생에 성경 외의 책을 인용한다는 것은 거의 없었다. 철저히 무식하거나 철저한 반지식론자로 인식 될 인물이다.
그런 분도 언급할 책이면 분명히 읽어야 할 책일 듯하다. 그 분은 50년대 고려신학교를 거치며 불가피하게 접했을 듯하다.
나는 이런 책도 대충 어떠하다는 몇 줄짜리 설명으로 대신한다. 그런데 한 구절씩 전해지는 내용이 그렇게 깊게 새겨 졌다.
무거운 죄의 짐을 지고 천국을 향해 걸어 가는 어느 성도, 그가 그 길을 걷는 도중에 별별 유혹도 위협도 좌절도 겪었다 한다.
어떤 분의 인용에서는 좌우에 사자가 삼키려 하는데 자세히 보니 줄에 묶여 좌우로 비켜 가지만 않으면 문제가 없다고 했다.
이런 부분은 성경을 있는 그대로 읽고 그대로 믿고 그대로 현실에서 살아 보지 않고는 적어 낼 수 없는 부분이다. 전적 맞다.
공회 교회들이 교계의 혼선 탈선 속화 타락을 탄식하며 바르게 걸어 가려고 출발했는데 오히려 다시 그들을 따라 가는가?
천로역정이 말하는 천국을 향한 길, 그 길을 조금 축소해서 공회의 노선을 두고 천로역정 식으로 잠깐 그려 본다. 마음으로.
이 노선이 좋와서 함께 하던 분들 중에는 한국 교회사에 이름을 남긴 유명 신학자 목회자 지도자 또 성자 성녀들이 있었다.
박윤선 이인재와 같은 분들은 그들의 측근이 전해 준 말 때문에 오해를 했다. 그 과정에 사모님들의 소리 없는 역할도 컸다.
무엇보다 개혁교회의 고전에 선입견이 강하게 형성 되어 그 고전을 따라 자라 가는 생명의 움 돋는 모습을 수용하지 못했다.
대개는 먹고 사는 처자식의 가정 문제 때문에 떠났다. 지금도 이 노선은 월 80 ~ 95만원으로 사택의 경제를 해결하라 한다.
아이들은 의무교육 기간에 사교육 없이 공부를 시키는 것이 전부다. 자녀 교육을 모두 포기하라는 말인데 누가 가겠는가?
그렇다고 돈 문제로 간다고 말하기는 참 어렵다. 이럴 때 '명분'이라는 것을 사용한다. 갑자기 사상 문제를 지적하고 나선다.
그렇다면 들어 올 때는 그런 사상 문제를 왜 말하지 않았던가? 왜 그 사상이 옳다고 들어 왔던가? 반론을 하면 바로 끝 난다.
그러나 이 어려운 길을 들어 온 당시의 고난과 결심과 동지적 동행을 생각해 보면 미안한 마음뿐이다. 그 동안 고생만 하고.
일반 교인은 직장다운 직장을 포기하거나 주일 계명을 포기해야 한다. 어떤 분은 주일이란 제도가 원래 틀렸다며 비판한다.
직장을 위해 주일을 원래 지킬 필요가 없는 것이라고 주장을 할 정도니, 필요하다면 주님도 은 30에 매매하지 않겠는가?
1998년부터 개설 된 이 사이트의 지난 날 최고의 글을 적었던 분의 경우다. 그 분은 다른 분에게 과제까지 내 주던 분이다.
학습력이 좋으면 빠르게 배우고 빠르게 써먹을 수 있다. 그러나 말씀에 자기를 맡겨 자기를 버리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이 노선에서 천국 소망을 하나씩 쌓아 가는 분들, 자기 내면에 꺾을 것을 찾고 부인할 것을 찾아 싸우는 것이 공회 신앙이다.
남에게 스스로 그 내면과 싸우라는 말은 말하기가 쉽다. 자기가 자기를 꺾어 보면 그 세계가 얼마나 어려운지 느끼게 된다.
이제 다시 묻는다. 공회의 최고 건전하던 교회, 원래 노선을 틀림 없이 지킨다는 교인들.. 왜 세월 속에 모두 허물어 졌는가..
독서는 모두가 강조한다. 독서를 하는 사람은 독서 경험 때문에 강조하고 독서가 모자라면 열등감 때문에 더 강조하는 듯하다.
나는 신앙이 없을 때도 체질적으로 글을 읽지 않았다. 신앙을 안 뒤부터는 성경만 주력했고 다른 책은 더욱 읽지 않게 되었다.
유일하게 백영희 설교록은 많이 읽었다. 모르는 부분이 없다 할 정도다. 그 이유는 성경을 있는 대로 잘 소개하였기 때문이다.
최근 공회들 중에 교계의 속화 과정을 전혀 걷지 않을 것처럼 기대한 교회들조차 닮아 가는 모습 때문에 천로역정을 생각했다.
천로역정 때문에 독서 문제를 적었다. 학교 다닐 때 인문학에 중요한 도서로 늘 거론이 되어 존 번연의 천로역정을 기억한다.
이런 책이 소개 되면 독서력이 있는 친구들은 고등학교 때부터 벌써 읽었다는 말이 들린다. 대학을 가게 되면 당연히 읽는다.
특히 신앙에 열심 있는 이들은 필독서가 되며 나처럼 신학을 정식으로 하게 되면 이 책을 읽지 않았다는 말은 할 수가 없다.
그렇다 해도 나는 학점에 손해를 보고 졸업을 하지 못해도 성경 외의 책은 대략 그림만 그리지 꼬박꼬박 읽어 내지를 않는다.
(천로역정)
백 목사님은 성경 외에 글과 지식은 아예 없다 할 정도다. 그런 분도 설교 중에 천로역정에 대해서는 한 번씩 언급을 했었다.
그 분의 평생에 성경 외의 책을 인용한다는 것은 거의 없었다. 철저히 무식하거나 철저한 반지식론자로 인식 될 인물이다.
그런 분도 언급할 책이면 분명히 읽어야 할 책일 듯하다. 그 분은 50년대 고려신학교를 거치며 불가피하게 접했을 듯하다.
나는 이런 책도 대충 어떠하다는 몇 줄짜리 설명으로 대신한다. 그런데 한 구절씩 전해지는 내용이 그렇게 깊게 새겨 졌다.
무거운 죄의 짐을 지고 천국을 향해 걸어 가는 어느 성도, 그가 그 길을 걷는 도중에 별별 유혹도 위협도 좌절도 겪었다 한다.
어떤 분의 인용에서는 좌우에 사자가 삼키려 하는데 자세히 보니 줄에 묶여 좌우로 비켜 가지만 않으면 문제가 없다고 했다.
이런 부분은 성경을 있는 그대로 읽고 그대로 믿고 그대로 현실에서 살아 보지 않고는 적어 낼 수 없는 부분이다. 전적 맞다.
공회 교회들이 교계의 혼선 탈선 속화 타락을 탄식하며 바르게 걸어 가려고 출발했는데 오히려 다시 그들을 따라 가는가?
천로역정이 말하는 천국을 향한 길, 그 길을 조금 축소해서 공회의 노선을 두고 천로역정 식으로 잠깐 그려 본다. 마음으로.
이 노선이 좋와서 함께 하던 분들 중에는 한국 교회사에 이름을 남긴 유명 신학자 목회자 지도자 또 성자 성녀들이 있었다.
박윤선 이인재와 같은 분들은 그들의 측근이 전해 준 말 때문에 오해를 했다. 그 과정에 사모님들의 소리 없는 역할도 컸다.
무엇보다 개혁교회의 고전에 선입견이 강하게 형성 되어 그 고전을 따라 자라 가는 생명의 움 돋는 모습을 수용하지 못했다.
대개는 먹고 사는 처자식의 가정 문제 때문에 떠났다. 지금도 이 노선은 월 80 ~ 95만원으로 사택의 경제를 해결하라 한다.
아이들은 의무교육 기간에 사교육 없이 공부를 시키는 것이 전부다. 자녀 교육을 모두 포기하라는 말인데 누가 가겠는가?
그렇다고 돈 문제로 간다고 말하기는 참 어렵다. 이럴 때 '명분'이라는 것을 사용한다. 갑자기 사상 문제를 지적하고 나선다.
그렇다면 들어 올 때는 그런 사상 문제를 왜 말하지 않았던가? 왜 그 사상이 옳다고 들어 왔던가? 반론을 하면 바로 끝 난다.
그러나 이 어려운 길을 들어 온 당시의 고난과 결심과 동지적 동행을 생각해 보면 미안한 마음뿐이다. 그 동안 고생만 하고.
일반 교인은 직장다운 직장을 포기하거나 주일 계명을 포기해야 한다. 어떤 분은 주일이란 제도가 원래 틀렸다며 비판한다.
직장을 위해 주일을 원래 지킬 필요가 없는 것이라고 주장을 할 정도니, 필요하다면 주님도 은 30에 매매하지 않겠는가?
1998년부터 개설 된 이 사이트의 지난 날 최고의 글을 적었던 분의 경우다. 그 분은 다른 분에게 과제까지 내 주던 분이다.
학습력이 좋으면 빠르게 배우고 빠르게 써먹을 수 있다. 그러나 말씀에 자기를 맡겨 자기를 버리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이 노선에서 천국 소망을 하나씩 쌓아 가는 분들, 자기 내면에 꺾을 것을 찾고 부인할 것을 찾아 싸우는 것이 공회 신앙이다.
남에게 스스로 그 내면과 싸우라는 말은 말하기가 쉽다. 자기가 자기를 꺾어 보면 그 세계가 얼마나 어려운지 느끼게 된다.
이제 다시 묻는다. 공회의 최고 건전하던 교회, 원래 노선을 틀림 없이 지킨다는 교인들.. 왜 세월 속에 모두 허물어 졌는가..

생전에 사후를 준비 못한 것이 원인 중 하나겠습니다. 매주 11번의 설교를 대충 들었습니다. 사람을 안 길러 목회자를 소망하는 머리, 생명 탄생의 신생아 울음소리인 꼬리 떼고 앉은뱅이 신앙의 몸통만 남았습니다. 잡지식이 바른 판단을 흐리게 합니다. 조금씩 야금야금 신앙 양심이 화인 맞아 잠식을 당합니다. 기쁨, 감사, 충성 없는 면을 자복하고 회개하라고 주신 코로나에 돕는 은혜로 다시 시작합니다. 부모 된대로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