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찮은 현실, 그 속에 있는 무한 - 공회 교회들의 속화를 보며
담당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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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28 10:54
(공회의 예배 모습)
사람의 겉은 속과 다르다. 다르다 해도 한 눈에 보이는 것이 있다. 얼굴은 얼골이었다. 속에 것이 얼추 드러 나 있다는 뜻이다.
교회도 겉과 속은 다르다. 다르다 해도 예배당과 조직과 예배의 겉 흐름을 보면 그 속에 감출 수 없는 것이 드러 나는 법이다.
초대교회로부터 개혁교회, 한국의 건전했던 선교 초기의 교회. 재건 고신을 비롯해서 최소한 건전하다는 교회들은 비슷했다.
공회 교회는 건전한 모습이 그래도 제일 오래 가는 듯해서 감사하다. 검소한 예배당과 조용한 예배, 속에는 신앙이 들끓었다.
재건이나 고신이나 공회 교회는 1950년대까지는 지향점과 가치처럼 파악하기 어려운 것이 달랐지 외부 모습은 거의 같았다.
고신이 1961년 타 교단과 합하는 과정을 거치며 이후 주일부터 시작하여 모든 면으로 현대화를 했다. 재건이 뒤를 따라 갔다.
1980년대가 되면서 고신과 재건과 합동과 통합은 장로교라는 간판도 같지만 설교도 찬송도 예배 분위기까지 거의 같아졌다.
공회만 변화에 휩쓸리지 않았다. 고신이나 재건의 예전 모습을 아는 중진들은 우리도 예전에는 저랬다며 반가운 인사를 했다.
(백영희 사후의 공회)
백 목사님을 적을 때 보통 '백 목사님' 또는 '목사님'으로 적는다. 역사적이거나 이론적으로 표시할 때는 '백영희'라고 한다.
이 문제 때문에 백도영 막내 아들 목사님이 감히 함부로 불렀다고 화를 낸 적이 있었다. 나는 칼빈도 그냥 칼빈이라 한다.
선교사들은 성경을 번역할 때 '예수'라고 했다. 찬송가에도 거의 '예수'로만 되어 있다. 나는 백영희를 역사적 인물로 본다.
백영희 사후, 서부교회와 총공회 전체 교인들 중에서 교계처럼 남녀가 섞어 앉고 율동도 하고 멋 있는 성가대를 운영하고
그리고 교회가 봄 가을로 단체 여행도 다니고 교회의 간부들이 회의를 할 때 식당에서도 하고 호텔에도 가고 싶은 분들이
남정교회와 대구공회를 형성했다. 일부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는데 딱 한 눈에 표시가 날 만큼 모든 면에서 표시가 났다.
공회는 이대로 안 된다. 개혁을 해야 한다. 전도를 위해서라도 그래야 한다... 수 많은 주장이 나왔고 파격적으로 바꿨다.
그 때 남정교회를 중심으로 대구공회를 형성한 분들 중에서 그런 주장을 강하게 한 분들이 서정교회와 서울공회이다.
서울공회의 중심은 잠실동교회다. 서울 공회 교회들의 사이트나 현장을 방문한 분들은 공회 모습이 전혀 없다고 한다.
남정교회와 대구공회는 초창기에 기존을 바꾸기 위해서는 하지 않은 노력이 없으나 양심이 있고 노선 때문에 중단했다.
남정교회와 대구공회는 이미 바꿔 버린 것을 되돌리지는 못해도 더 이상의 속화는 자제하는 듯하다. 참으로 어려운데...
오르막을 올라 가는 것은 그야 말로 한 번에 딱 한 걸음만 올라 갈 수 있다. 가끔 성령이 붙들고 한꺼번에 올리는 수도 있다.
그런데 대개는 내려 가는 것이 쉽고 편하다. 마음만 먹어도 밑으로 쭈욱 내려 간다. 한 발을 뗐으나 여러 걸음이 연속 된다.
잠깐 사이 한참을 내려 오게 된다. 너무 많이 내려 왔다고 생각이 들어도 돌아 서기가 어렵다. 한 번 풀어 지면 주저 앉는다.
마음은 뻔해도 어떻게 다시 올라가... 그냥 주저 앉는다. 이 것이 신앙이다. 그래서 내려 가는 것을 타락 탈선 속화라고 한다.
(서부교회의 안스러운 모습)
잠실동교회의 서울공회, 남정교회의 대구공회는 차례로 그렇게 된다 쳐도 부산공회는 버틸 줄 알았다. 특히 서부교회는...
최근에 서부교회의 유튜브들을 소개 받았다. 청년회, 성탄절의 주일학교, 중간반, 찬양대의 찬양 곡까지 이렇게 바뀌었나?
바뀐 모습은 한 눈에 80년대의 타 교단 모습이다. 더 잘 나가는 교단과 비교하면 70년대로 거슬러 올라 간다. 왜 역행일까?
세월이 지나 가는데 역행을 하면 퇴행성이라고 한다. 정신력이 퇴행하면 치매라 한다. 옛날에는 이 것을 노망이라고 했다.
어릴 때 장난감을 가지고 싶었는데 못 가져 본 사람, 부모가 되고 나면 다른 것은 몰라도 장난감은 대책 없이 사다 준다.
남들이 외식할 때 부럽게 쳐다 보기만 했던 사람, 돈을 벌고 나면 좋은 식당은 주변이 아니라 어디까지 찾아 다니게 된다.
성장 과정에 자가용을 타고 전국을 다니는 가정이 부러운 사람, 온갖 기회를 만들어 전국을 다닌다. 아주 병적으로 다닌다.
다른 교회 학생들 청년들 교인들이 남녀 쌍쌍히 다정히 행복하게 노래하고 즐겁게 믿는 것이 부러웠던 공회 교인들이었다.
백 목사님과 공회 분위기에 막혀 교계의 모습이 부러운 마음을 오랜 세월 눌러 놓았다. 그러나 그 생각은 없어지지 않는다.
좋은데도 그냥 눌러 놓고 무시를 하면 우리 속 깊은 곳에 차곡차곡 쌓여 간다. 이 것이 잠재의식이다. 때가 되면 드러 난다.
많이 쌓여 있을수록 급하게 크게 솟구친다. 목사님 장례가 끝나자 대구공회는 전국적으로 이런 현상이 봇물 터지듯 했다.
부산공회는 '이전 그대로 간다'는 자부심과 경쟁심 때문에 그들이 주장하는 말처럼 주님 재림 때까지 변하지 않을 듯했다.
그냥 눌러 놓으면 그 세월 그 힘만큼 나중에 반발력이 작용한다. 이해를 시켜 해체를 해야 없어 진다. 서부교회의 내면은?
초기 10년의 교권 싸움 때는 서로 선명성 때문에 누가 더 과거적인가를 놓고 서로 비판했고 서로 보여주기를 하기도 했다.
어떤 목회자는 설교록을 옆구리에 끼고 교인들에게 보란 듯이 강단 위에 올라 갔다. 설교록을 그렇게 우습게 알던 분인데...
이런 것을 쇼라고 한다. 홍보라고 한다. 정치라고 한다. 일단 그를 따르는 이들을 결집을 시키는 데는 분명히 효력이 있다.
10년을 지나 가면서 4층은 주저 앉았고 2층이 주도권을 확실하게 쥐게 되자 이제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별별 것이 나왔다.
딴따라라 수준은 교회 안에서 교회 밖에서 곳곳에서 딴따라로 나가고, 근엄한 클래식을 좋아하는 이들은 연주회로 나가고
유치원을 다녀 보지 못하고 무대에 서 볼 기회가 없었던 이들은 교회의 강단을 재롱잔치에다 십대들의 군무를 펼치고 있다.
이 것이 성령인가, 이 것이 성령의 은혜를 받은 표시인가? 그들이 그렇다니 아니라 말은 하지 못하나 마음은 아니라고 한다.
(성장 과정을 돌아 보며, 감사한다.)
서울 사람들이나 제법 살아 본 사람들에게 내가 살아 온 환경을 말하면 그 것도 이야기냐고 재미 있게 듣거나 핀잔을 준다.
나는 60년대 초반에 초등학교 1학년을 입학할 때 팬티 스타킹을 입고 갔다. 그 곳, 갇힌 그 나라에서는 단군 이래 처음이다.
서울이나 대도시나 잘 사는 가정에서는 흔했을지 모르겠다. 내가 살던 곳에서는 1개 군에 그런 이야기 들어 본 사람도 없다.
1학년에 입학을 하자 바로 포크댄스를 가르친다면 남녀 쌍쌍이 팔짱을 끼게 했다. 나는 짝지에게 작은 막대기를 잡게 했다.
2학년이 되자 전교생으로 오케스트라를 만들고 시내 극장을 통째로 빌려 시민들을 상대로 학예회를 펼쳤다. 미국식이란다.
서울 사람이 보면 유치했을지라도 온 시내는 떠들썩 했다. 지금 제주도에서 유명한 인물이 된 분의 회고 글에도 적고 있다.
이 학교는 미국식 교육을 시도했고 미션 스쿨이었다. 그 바람에 교회가 탈선하면 앞으로 나갈 방향을 미리 볼 수 있었다.
어린 나이부터 뭐든지 순종적이지 않고 반항적인 나쁜 인성 때문에 10대 안팎에 교회들의 율동과 각종 행사는 겪어 봤다.
나는 불신자로 살았을지라도 종교 단체가 율동을 하고 연주회를 하고 재롱잔치를 벌인다면 체질적으로 비판했을 듯하다.
이런 선천적인 체질이 어릴 때부터 요즘 공회들이 은혜롭다면서 하는 각종 타 교단의 지난 날의 모습을 미리 겪어 봤다.
그리고 그렇게 하고 나면 그 여파가 무엇인지 많은 동창 동문을 통해 내가 겪지 않고도 그들을 잘 들여다 볼 수가 있었다.
내가 살아 오면 접한 세계는 지극히 작은 범위다. 어느 시골 몇 명이 전부다. 한 사람이 한꺼번에 얼마나 많이 겪겠는가?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각자에게 혼자 접하는 환경을 조성하면서 그 사람에게 '현실'이라는 이름으로 주신다. 현실인 것이다.
그 현실은 잠깐 지나 간다. 그래서 수 많은 사람 중에 어느 한 사람이 잠깐 겪어 본 것이 현실이니 현실이란 하찮은 것이다.
바로 이 지극히 작게 지나 가는 하찮은 현실에 하나님은 그 사람의 평생에 필요한 것을 늘 접하게 하신다. 이 것이 현실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 공회는 '현실'은 우리가 싸워 이길 극복의 대상이면서 그 현실에는 우리가 준비할 '천국'으로 상대한다.
공회의 건전하다고 소문 난 교회들, 저 교회 교인들과 그 목사님이라면 누가 뭐라 해도 변치 않을 것이고 하는 경우가 있다.
그 교회들, 그 목사님들, 그 교인들, 내가 알기로 부산공회3 아닌 곳에는 단 한 곳도 남지 않고 모두가 다 변질이 된 듯하다.
바로 이런 구체적인 이유가 있기 때문에 비록 부족과 잘못은 한도 없이 많으나 최소한 노선을 두고는 나는 늘 감사하고 있다.
교회를 유치원으로 만들고 교회의 행사를 유치원의 재롱잔치를 하면서 만족하는 교인들, 두고 보는 목사가 아닌 것을...
얼마나 그런 것을 애모하고 마음 속에 그리며 그리며 그려 왔기에 총공회, 그 중에서 가장 보수적이라는 정통 공회에 속한,
그 중에서 제일 중심이라는 교회, 그 교인들 중에 가장 핵심이라는 이들이 그들의 가장 깊은 속에 든 것을 모두 펼치고 있다.
나 보기에는 모두가 정화조 뚜껑을 열고 분칠하는 모습이다. 이런 내가 미쳤는가, 그들이 정상인가? 가치 판단은 자유다.
그들은 지금 은혜가 넘치고 있어 백 목사님 생전보다 더 나은 교회가 되었다고 자축하는 듯하다. 나는 생지옥을 보고 있다.
사람의 겉은 속과 다르다. 다르다 해도 한 눈에 보이는 것이 있다. 얼굴은 얼골이었다. 속에 것이 얼추 드러 나 있다는 뜻이다.
교회도 겉과 속은 다르다. 다르다 해도 예배당과 조직과 예배의 겉 흐름을 보면 그 속에 감출 수 없는 것이 드러 나는 법이다.
초대교회로부터 개혁교회, 한국의 건전했던 선교 초기의 교회. 재건 고신을 비롯해서 최소한 건전하다는 교회들은 비슷했다.
공회 교회는 건전한 모습이 그래도 제일 오래 가는 듯해서 감사하다. 검소한 예배당과 조용한 예배, 속에는 신앙이 들끓었다.
재건이나 고신이나 공회 교회는 1950년대까지는 지향점과 가치처럼 파악하기 어려운 것이 달랐지 외부 모습은 거의 같았다.
고신이 1961년 타 교단과 합하는 과정을 거치며 이후 주일부터 시작하여 모든 면으로 현대화를 했다. 재건이 뒤를 따라 갔다.
1980년대가 되면서 고신과 재건과 합동과 통합은 장로교라는 간판도 같지만 설교도 찬송도 예배 분위기까지 거의 같아졌다.
공회만 변화에 휩쓸리지 않았다. 고신이나 재건의 예전 모습을 아는 중진들은 우리도 예전에는 저랬다며 반가운 인사를 했다.
(백영희 사후의 공회)
백 목사님을 적을 때 보통 '백 목사님' 또는 '목사님'으로 적는다. 역사적이거나 이론적으로 표시할 때는 '백영희'라고 한다.
이 문제 때문에 백도영 막내 아들 목사님이 감히 함부로 불렀다고 화를 낸 적이 있었다. 나는 칼빈도 그냥 칼빈이라 한다.
선교사들은 성경을 번역할 때 '예수'라고 했다. 찬송가에도 거의 '예수'로만 되어 있다. 나는 백영희를 역사적 인물로 본다.
백영희 사후, 서부교회와 총공회 전체 교인들 중에서 교계처럼 남녀가 섞어 앉고 율동도 하고 멋 있는 성가대를 운영하고
그리고 교회가 봄 가을로 단체 여행도 다니고 교회의 간부들이 회의를 할 때 식당에서도 하고 호텔에도 가고 싶은 분들이
남정교회와 대구공회를 형성했다. 일부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는데 딱 한 눈에 표시가 날 만큼 모든 면에서 표시가 났다.
공회는 이대로 안 된다. 개혁을 해야 한다. 전도를 위해서라도 그래야 한다... 수 많은 주장이 나왔고 파격적으로 바꿨다.
그 때 남정교회를 중심으로 대구공회를 형성한 분들 중에서 그런 주장을 강하게 한 분들이 서정교회와 서울공회이다.
서울공회의 중심은 잠실동교회다. 서울 공회 교회들의 사이트나 현장을 방문한 분들은 공회 모습이 전혀 없다고 한다.
남정교회와 대구공회는 초창기에 기존을 바꾸기 위해서는 하지 않은 노력이 없으나 양심이 있고 노선 때문에 중단했다.
남정교회와 대구공회는 이미 바꿔 버린 것을 되돌리지는 못해도 더 이상의 속화는 자제하는 듯하다. 참으로 어려운데...
오르막을 올라 가는 것은 그야 말로 한 번에 딱 한 걸음만 올라 갈 수 있다. 가끔 성령이 붙들고 한꺼번에 올리는 수도 있다.
그런데 대개는 내려 가는 것이 쉽고 편하다. 마음만 먹어도 밑으로 쭈욱 내려 간다. 한 발을 뗐으나 여러 걸음이 연속 된다.
잠깐 사이 한참을 내려 오게 된다. 너무 많이 내려 왔다고 생각이 들어도 돌아 서기가 어렵다. 한 번 풀어 지면 주저 앉는다.
마음은 뻔해도 어떻게 다시 올라가... 그냥 주저 앉는다. 이 것이 신앙이다. 그래서 내려 가는 것을 타락 탈선 속화라고 한다.
(서부교회의 안스러운 모습)
잠실동교회의 서울공회, 남정교회의 대구공회는 차례로 그렇게 된다 쳐도 부산공회는 버틸 줄 알았다. 특히 서부교회는...
최근에 서부교회의 유튜브들을 소개 받았다. 청년회, 성탄절의 주일학교, 중간반, 찬양대의 찬양 곡까지 이렇게 바뀌었나?
바뀐 모습은 한 눈에 80년대의 타 교단 모습이다. 더 잘 나가는 교단과 비교하면 70년대로 거슬러 올라 간다. 왜 역행일까?
세월이 지나 가는데 역행을 하면 퇴행성이라고 한다. 정신력이 퇴행하면 치매라 한다. 옛날에는 이 것을 노망이라고 했다.
어릴 때 장난감을 가지고 싶었는데 못 가져 본 사람, 부모가 되고 나면 다른 것은 몰라도 장난감은 대책 없이 사다 준다.
남들이 외식할 때 부럽게 쳐다 보기만 했던 사람, 돈을 벌고 나면 좋은 식당은 주변이 아니라 어디까지 찾아 다니게 된다.
성장 과정에 자가용을 타고 전국을 다니는 가정이 부러운 사람, 온갖 기회를 만들어 전국을 다닌다. 아주 병적으로 다닌다.
다른 교회 학생들 청년들 교인들이 남녀 쌍쌍히 다정히 행복하게 노래하고 즐겁게 믿는 것이 부러웠던 공회 교인들이었다.
백 목사님과 공회 분위기에 막혀 교계의 모습이 부러운 마음을 오랜 세월 눌러 놓았다. 그러나 그 생각은 없어지지 않는다.
좋은데도 그냥 눌러 놓고 무시를 하면 우리 속 깊은 곳에 차곡차곡 쌓여 간다. 이 것이 잠재의식이다. 때가 되면 드러 난다.
많이 쌓여 있을수록 급하게 크게 솟구친다. 목사님 장례가 끝나자 대구공회는 전국적으로 이런 현상이 봇물 터지듯 했다.
부산공회는 '이전 그대로 간다'는 자부심과 경쟁심 때문에 그들이 주장하는 말처럼 주님 재림 때까지 변하지 않을 듯했다.
그냥 눌러 놓으면 그 세월 그 힘만큼 나중에 반발력이 작용한다. 이해를 시켜 해체를 해야 없어 진다. 서부교회의 내면은?
초기 10년의 교권 싸움 때는 서로 선명성 때문에 누가 더 과거적인가를 놓고 서로 비판했고 서로 보여주기를 하기도 했다.
어떤 목회자는 설교록을 옆구리에 끼고 교인들에게 보란 듯이 강단 위에 올라 갔다. 설교록을 그렇게 우습게 알던 분인데...
이런 것을 쇼라고 한다. 홍보라고 한다. 정치라고 한다. 일단 그를 따르는 이들을 결집을 시키는 데는 분명히 효력이 있다.
10년을 지나 가면서 4층은 주저 앉았고 2층이 주도권을 확실하게 쥐게 되자 이제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별별 것이 나왔다.
딴따라라 수준은 교회 안에서 교회 밖에서 곳곳에서 딴따라로 나가고, 근엄한 클래식을 좋아하는 이들은 연주회로 나가고
유치원을 다녀 보지 못하고 무대에 서 볼 기회가 없었던 이들은 교회의 강단을 재롱잔치에다 십대들의 군무를 펼치고 있다.
이 것이 성령인가, 이 것이 성령의 은혜를 받은 표시인가? 그들이 그렇다니 아니라 말은 하지 못하나 마음은 아니라고 한다.
(성장 과정을 돌아 보며, 감사한다.)
서울 사람들이나 제법 살아 본 사람들에게 내가 살아 온 환경을 말하면 그 것도 이야기냐고 재미 있게 듣거나 핀잔을 준다.
나는 60년대 초반에 초등학교 1학년을 입학할 때 팬티 스타킹을 입고 갔다. 그 곳, 갇힌 그 나라에서는 단군 이래 처음이다.
서울이나 대도시나 잘 사는 가정에서는 흔했을지 모르겠다. 내가 살던 곳에서는 1개 군에 그런 이야기 들어 본 사람도 없다.
1학년에 입학을 하자 바로 포크댄스를 가르친다면 남녀 쌍쌍이 팔짱을 끼게 했다. 나는 짝지에게 작은 막대기를 잡게 했다.
2학년이 되자 전교생으로 오케스트라를 만들고 시내 극장을 통째로 빌려 시민들을 상대로 학예회를 펼쳤다. 미국식이란다.
서울 사람이 보면 유치했을지라도 온 시내는 떠들썩 했다. 지금 제주도에서 유명한 인물이 된 분의 회고 글에도 적고 있다.
이 학교는 미국식 교육을 시도했고 미션 스쿨이었다. 그 바람에 교회가 탈선하면 앞으로 나갈 방향을 미리 볼 수 있었다.
어린 나이부터 뭐든지 순종적이지 않고 반항적인 나쁜 인성 때문에 10대 안팎에 교회들의 율동과 각종 행사는 겪어 봤다.
나는 불신자로 살았을지라도 종교 단체가 율동을 하고 연주회를 하고 재롱잔치를 벌인다면 체질적으로 비판했을 듯하다.
이런 선천적인 체질이 어릴 때부터 요즘 공회들이 은혜롭다면서 하는 각종 타 교단의 지난 날의 모습을 미리 겪어 봤다.
그리고 그렇게 하고 나면 그 여파가 무엇인지 많은 동창 동문을 통해 내가 겪지 않고도 그들을 잘 들여다 볼 수가 있었다.
내가 살아 오면 접한 세계는 지극히 작은 범위다. 어느 시골 몇 명이 전부다. 한 사람이 한꺼번에 얼마나 많이 겪겠는가?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각자에게 혼자 접하는 환경을 조성하면서 그 사람에게 '현실'이라는 이름으로 주신다. 현실인 것이다.
그 현실은 잠깐 지나 간다. 그래서 수 많은 사람 중에 어느 한 사람이 잠깐 겪어 본 것이 현실이니 현실이란 하찮은 것이다.
바로 이 지극히 작게 지나 가는 하찮은 현실에 하나님은 그 사람의 평생에 필요한 것을 늘 접하게 하신다. 이 것이 현실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 공회는 '현실'은 우리가 싸워 이길 극복의 대상이면서 그 현실에는 우리가 준비할 '천국'으로 상대한다.
공회의 건전하다고 소문 난 교회들, 저 교회 교인들과 그 목사님이라면 누가 뭐라 해도 변치 않을 것이고 하는 경우가 있다.
그 교회들, 그 목사님들, 그 교인들, 내가 알기로 부산공회3 아닌 곳에는 단 한 곳도 남지 않고 모두가 다 변질이 된 듯하다.
바로 이런 구체적인 이유가 있기 때문에 비록 부족과 잘못은 한도 없이 많으나 최소한 노선을 두고는 나는 늘 감사하고 있다.
교회를 유치원으로 만들고 교회의 행사를 유치원의 재롱잔치를 하면서 만족하는 교인들, 두고 보는 목사가 아닌 것을...
얼마나 그런 것을 애모하고 마음 속에 그리며 그리며 그려 왔기에 총공회, 그 중에서 가장 보수적이라는 정통 공회에 속한,
그 중에서 제일 중심이라는 교회, 그 교인들 중에 가장 핵심이라는 이들이 그들의 가장 깊은 속에 든 것을 모두 펼치고 있다.
나 보기에는 모두가 정화조 뚜껑을 열고 분칠하는 모습이다. 이런 내가 미쳤는가, 그들이 정상인가? 가치 판단은 자유다.
그들은 지금 은혜가 넘치고 있어 백 목사님 생전보다 더 나은 교회가 되었다고 자축하는 듯하다. 나는 생지옥을 보고 있다.

천국 잔치라며 교도들이 춤을 추고 가마에 태워 과시를 했다. 그런 모습을 보면 그 사람은 무엇에 한이 맺혔는지 알 수 있다. 통일교 문선명 부부도 왕관에 옛날 왕의 옷을 입고 세계를 누볐다. 그들이 속으로 부러워했던 내면이 드러 난 것이다.
공회는 어렵게 지낸 분들이 많다. 특히 공부에 한이 진 사람도 많다. 이런 이들은 줄줄이 학위를 딴다고 정신이 없다. 지금은 그 학위를 써먹지 않을 듯 싶다. 학위를 판 사람들은 비지니스를 잘 한 사람들이다. 돈 주고 산 분들은 그렇게 돈 주고 살 것이 없고 자기가 인쇄를 하면 된다. 정식으로는 써먹지 못할 학위들이고 이왕 효력도 없다. 공회는 한이 많다. 그래서 타 교단이 몇십 년 전에 다 써먹고 이제는 철이 지났다며 버린 것에 환호를 한다. 이런 면을 보면 그래도 청정 지역인 것은 맞다. 씁쓸하다.
그런것이고 그때문에 막힌것이지 오히려,
쉬운것이고 인연은 막을 수 없지 않겠고,
결국은 지도자 한사람의 견해가 열리고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큰 영향을 끼치지 아니할수 없다.
복된 길을 바라고,지켜 볼 뿐이고 돌볼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