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밖으로 결혼을 추진할 때 - 2

남단에서      


e1e0ddd457e37c9a55be686de71c57a2_1734778424_6055.png

이 게시판에는 이 홈에 올려진 글 중에 이곳에서 따로 소개하고 싶은 글도 포함됩니다. 

교회 밖으로 결혼을 추진할 때 - 2

담당 0 7
(1편의 글 : 1. 교회 내 추진이 좋다. 그러나 교회 내 추진만이 답이라 할 수는 없다.)



2. 교회 밖으로 결혼을 추진할 때
교회 내에서 신앙과 교회 출석을 함께 할 수 있는 분과 결혼을 추진하는 것이 가장 좋다. 그러나 그런 추진이 신앙의 유일이며 무조건 최상은 아니다. 앞에 1편 글에서 간단히 살펴 봤다. 교회는 1명만의 교회가 아니기 때문에 교인 전체의 일반적인 현상을 두고 전체에게 신앙의 원칙만 일단 안내한다. 말하자면 진리적 내용이다. 누구에게나 해당이 된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주시는 현실과 성령의 인도는 전혀 달라 질 수 있다. 개인적 현실을 강조하면 상황에 따라 뭐든지 바꿀 수 있는 신앙이 되는데 이렇게 되면 진리가 없는 제 멋대로 신앙이 된다. 또 전체를 위해 주신 원칙만을 무조건 전부인 줄 알면 개별적으로 따로 인도하는 성령을 무시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죽은 신앙, 석고화 된 신앙, 기계적 신앙이 되어 버린다. 신앙의 생명이 고사해 버린다. 일반적으로, 한 교회 내에서 하나의 신앙을 가진 두 사람이 한 가정을 이루는 것이 맞다. 그런데 그런 형편을 주지 않는다면




(때를 기다리는 경우)
1년이든 10년이든 중년이 되어 재혼 상대를 기다리든 심지어 50대가 넘어 가며 노년을 함께 할 사람을 찾든 주님이 주시는 사람이라는 확신이 들 때까지 마치 20세 미혼처럼 상대방을 자기 신앙의 원칙에 따라 기다리는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경우 꼭 기억할 것은 누구든 처음의 마음은 이상적으로 가질 수 있다. 문제는 끝까지 그렇게 갈 수 있느냐는 것이다. 중간에 마음이 바뀌면 약1:8에서 두 마음을 품어 아무 것도 얻을 수 없게 되거나 행8장의 아나니아 삽비라처럼 헌신이란 훗날 변하지 않을 범위에서 하는 것이 좋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고전7:1에서 타락 한 인간에게 음행 때문에 결혼 제도를 주셨고 마5:28에서 음행은 마음의 죄도 육체의 죄와 같다고 했으니 고전7:9에서 자기 절제가 어려우면 일찍 결혼하는 것이 맞다. 본인이 가장 잘 안다. 마음으로 죄를 지으면서 신앙의 가정을 위해 결혼을 미룬다는 것은 오판이다.


(교회 밖에 부탁하는 경우)
가족이나 교인 중에서 다른 교회나 불신자일라 해도 결혼을 추진해 볼 수 있다. 자유롭게 교제를 하는 것은 곤란하고, 그렇다고 옛날 식으로 누구의 소개만으로 하기도 불안하다는 점에서, 기본적으로 나의 신앙을 어느 정도 지켜 본 사람이 나의 신앙을 어느 정도 감안하고 소개한다면, 일단 만나 보는 것은 좋다. 평소 주변에서 나를 볼 때 일이 있으면 교회를 가기 않고고 일이 없으면 교회를 가는 정도로 봤다면 그런 나를 소개할 만한 사람을 생각할 것이고, 평소 신앙에 주력하는 사람이었다면 주변에서도 함께 교회를 다니지 않을지라도 나의 신앙 생활을 양해하는 사람을 소개할 듯하다.

나의 신앙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소개를 했다면 그 사람에게 나는 이 정도의 신앙을 가졌으니 이런 상황을 양해 할 수 있는지 물어 봐 달라 해도 되고, 직접 만나 자기를 그렇게 소개하면 된다. 사람이 마음에 든다고 자기 신앙을 표시내지 않고 만났다가 어느 순간 자기도 모르게 결혼이 진행 되면서 자기 신앙을 뒤에 드러 내게 되면 피차 어려운 일이 생긴다. 그렇다고 처음 만나는 사람이 마음에 들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장황하게 자기 신앙의 꿈을 펼치거나 자기 신앙의 내면을 다 소개할 것은 없다. '나는 믿는 사람이다. 요즘 같은 세상에 교회라도 다녀야 나를 단속할 수 있을 듯하다.', 더 나아가 '나는 원래 믿는 사람이다. 신앙 생활이 그래도 이 정도의 나를 지켜 줬다. 그래서 결혼을 해도 신앙 생활을 이전처럼 해야 이 모습을 지켜 나갈 듯하다.' 이 정도로 제시해 본다면 상대방의 추진 가능성을 알 수 있을 듯하다.

아예 안 될 사람은 신앙 포기를 조건으로 추진하자고 하거나 자기는 이해하기 어렵다 할 정도로 나올 것이다. 그럴 때 과거라면 아예 포기하는 것이 서로에게 좋았다. 요즘은 사람마다 자기 개성과 자기 철학과 자기 내면의 세계를 결혼이라는 것에 모두 없애 버리지 않는 것이 지성이라고 생각했다... 라고 말을 한다면 일단 대화는 가능할 듯하다. 나도 상대방의 불신 또는 무신을 반대하지 않겠다. 그 대신 나의 신앙도 존중 받고 싶다. 음악가와 미술가가 결혼을 하게 될 때 미술로 합하거나 음악으로 전공을 합하는 것은 너무 극단적일 듯하다. 음악과 미술을 우선 병행하고 서로 존중하면 좋지 않을까? 그리고 살아 가면서 미술적인 소질이 많은데 음악가로만 살아 온 사람이 음악가와 결혼을 하면서 부부로서 음악으로 합하면 더 나을 듯하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해도 되지 않을까?

신앙과 불신앙 사이에 결혼 추진도 이렇게 비교를 하며 이해를 구하여 보면 현재 우리 사회의 일반적인 사람은 별로 반대할 것 같지는 않으며, 오히려 이런 대화 중에 '나도 믿어 볼 마음은 가졌다.' '나도 교회를 다니려 했는데 교회 다니는 친구들이 놀러 다니는 듯해서 가지 않았다' 등으로 긍정적인 사람도 적지 않다. 또 '교회 가는 것은 반대하지 않는다. 그런데 제사 문제로 큰 집에 분쟁을 보면서 이 것은 심하다고 생각했다'는 속 마음이 나오기도 한다. 이럴 때는 '제사는 가족 모임이니 주일을 피하고 또 절하는 것을 피하고, 돌아 가신 부모님을 생각하며 가족이 좋은 분위기로 모여 대화하는 가족 모임으로 가지면 충분하지 않는가? 요즘 광복절 제헌절의 국가 행사도 뜻만 알자는 추세다.

요즘 환갑 잔치 하는 가정이 있나? 요즘 61세라고 환갑 잔치하면 환자 취급 받는다. 지금은 팔순 잔치는 되어야 예전 환갑 잔치 비슷하지 않을까? 일본 사람들이 죽은 조상을 신사에 신으로 모셔 놓고 참배하는 것은 우리 나라 전 국민이 욕을 하지 않느냐? 그들이 단순히 그들의 순국 선열에 대해 정성을 드린다는 것이면 누가 뭐라 하나, 나라마다 다 하는데, 일본은 국가를 위해 죽으면 귀신이 되어 신사에 안치가 되고 자자손손에게 신으로 대접을 받는다고 저렇게 종교적으로 모시니 일본의 신사참배는 언제든지 이웃 나라를 치고 들어 갈 때 가미가제 특공대 식으로 막 갈 준비가 되어 반대하는 것이 아닌가, 돌아 가신 부모님이 정말 음식을 드시러 오는가? 정말 그런가? 정말 그런 것이 아니면 가족이 분쟁하면서 한복을 입고 옛날식 음식을 차려 놓고... 복숭은 귀신이 도망 간다고 올려 놓지도 않고... 한 밤 중에 해야 귀신이 오지 해가 있을 때 제사를 지내면 귀신이 오지 않는다... 이 것은 부모님을 위한다고 말은 해도 돌아 가신 부모님을 귀신 만드는 일이 아닐까... 주일이고 예배고 제사 문제고 연보 문제까지도 이렇게 하나씩 풀어 가다 보면 요즘 분위기에서 함께 신앙 생활을 하도록 즉각 전도하는 것은 어렵다 해도 결혼을 추진하는 과정에 상대방이 어느 정도 마음에 들면 제사나 신앙 문제 때문에 중단이 될 일은 거의 없다고 본다. 만일 중단이 되면 당연히 일찍 포기하는 것이 좋다. 전도를 위해 계속 만나는 것은 결혼을 전제하고 만나는 이런 분위기에서는 좀 곤란하다. 간단히 양해를 구해서 쉽게 이해가 되면 추진을 하고 설명이 중복이 되며 논쟁으로 나갈 정도가 되면 그렇게 되기 전에 멈추는 것이 맞다.


(신앙이 어느 정도 양해가 된다면)
앞에 설명한 신앙적 양해가 별 문제 없이 진행 된다면, 이제 남녀 이성으로 결혼을 추진하는 일반 문제로 넘어 가야 한다. 공회적 신앙이 서로 갖춰 졌다면 한두 번 만나면 결정까지도 하겠지만 그렇게 되기는 어렵고 또 공회 결혼의 기본 방향을 이해하지 못하는 상대에게 신앙의 기본 조건 외에 다른 것을 많이 제시하면 상대방이 압도를 당하게 되어 될 수 있는 결혼도 깨질 수 있다. 신앙에 대한 양해만 된다면, 결혼을 위해 서로 만나는 기회를 마련하되 항상 나의 마음과 행동은 내가 늘 '조심'하면 좋다. 마음에 든다고 해도 가까와 지기 위해 노력하거나, 또 가까와 지기 위해 노력을 해야 마음에 들 수 있다는 생각은 어느 새 이성의 죄가 스며 들기 쉽다. 남녀 이성의 죄는 다가 오는 바람과 같아서 철망으로 막거나 CCTV로 지켜 본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내가 상대방에게 '진지하게' 결혼을 의논하는 대화와 자세를 조심하게 되면 상대방이 너무 급하게 다가 오려 해도 함께 조절하게 되어 있다. 상대방이 급할수록 나로서는 잘 대처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함께 조심한다면 교회의 중매 결혼처럼 될 수 있다. 선생님이 있을 때 학습 분위기가 더 나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겉으로만 조용하고 마음은 엉뚱한 생각에 잠길 수 있다. 선생님이 없으면 교실은 시끄럽다. 그래도 공부를 좀 하는 학교의 쉬는 시간은 모두 예복습에 집중하느라고 연필 소리밖에 들리지 않을 수 있다. 어떤 친구는 온 반 친구들이 떠들썩 해도 아랑 곳하지 않고 혼자 공부에 몰두하기도 한다.

교회가 소개하여 중매로 만나도 세상의 교제처럼 진행할 수도 있고, 세상 교제처럼 진행이 되어도 내용은 교회 내 중매 결혼처럼 될 수 있다. 이성이란 자기를 조심할수록 더 돋보이게 되는 특성이 있다. 좋다고 해서 자기를 빠르게 쉽게 많이 내어 준다 해도 그렇게 할수록 자기의 이성이 천박해 지고 쓰레기처럼 취급 받을 수도 있다. 나를 위해서도 상대를 위해서도 그리고 이성의 성향 때문에라도 이성이 만나고 접할 때는 항상 조금 조심하는 것이 만사 좋다. 이 것이 잘 조절 될 수 있다면 교회 결혼 못지 않게 교회 밖의 결혼이 나을 수도 있다. 한 사람을 전도하게 되면서 그 집안을 모두 전도하는 결과를 맺는 경우도 많다. 그렇게 되면 성경의 사도행전을 읽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체험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사도행전을 체험한다는 말은 오늘의 자기 현실과 자기 가정에서 사도 바울이 된다는 의미다.

심지어 신앙 없는 상대와의 결혼 때문에 자기의 신앙이 더욱 살아 나고, 사도행전 외의 모든 성경 말씀이 비로서 해석이 되고 그 말씀에 담겨 진 실상을 체험하는 이들도 있다. 이런 이유가 있기 때문에 굳이 교회 외부 결혼을 반대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왜 마치 반대하는 것처럼 가르치고 그런 분위기가 많은가? 대개는 외부 결혼을 추진하는 과정에 자기가 가진 신앙조차 세상에 묻어 버리고 상대방이 가진 세상에 자기를 함몰 시켜 자기의 변변찮은 신앙을 아주 세상에 던져 주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외부 결혼은 여반에게만 허용)
신앙의 여성은 신앙의 정도에 상관 없이 본인 마음만 먹으면 남자를 신앙의 사람으로 가져 올 수 있다. 반대로 신앙의 남성은 그 어떤 신앙가라 해도 신앙 없는 여성에게 신앙을 심기 어렵고 신앙이 약한 여성을 신앙으로 강하게 만들기 어렵다. 아이는 약해도 집 채만한 황소를 끌고 다닌다. 황소는 그 힘으로는 아이 100명을 끌고 갈 수 있지만 황소란 그렇게 하지 않는다. 남성은 원래 강하다. 육체의 힘이 강하고 그 힘을 관리하는 마음이 억세다. 그래서 여성이 맞붙어 싸우려 든다면 아예 결혼을 하지 않는 편이 낫다. 싸움으로 이기려 하지 말고 잘 부탁을 하고 잘 설득을 해서 이해가 되면 남성은 여성에 대한 보호 본능 때문에 여자에게 져서가 아니라 여성을 돕기 위해 신앙의 세계로 들어 올 수 있다. 여성의 마음에 이런 소망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도우셔서 더 수월하게 되도록 해 주신다.

남성이 교회 밖에서 마음에 드는 여성을 만나 교회로 데려 오겠다고 한다면, 이 것은 아예 포기하거나 아니면 아예 세상의 딸들이 아름답기 때문에 창6:2의 노아 때처럼 세상의 홍수 속에 빠져 죽겠다고 뛰어 드는 셈이다. 교회는 역사적으로 또 오늘도 역시 남성은 적고 여성은 많다. 여성은 정말 신앙이 있다 해도 불가피하게 밖으로 결혼할 수 있다. 남성은 세상의 먹고 마시고 즐기는 일에 이미 유혹을 받아 자기 정욕을 채울 상대를 찾는 경우 교회 밖으로 추진을 하게 되어 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백 목사님 생전의 총공회와 서부교회에 세상은 물론 신앙으로 최고의 인물들이라 해도 신앙 없는 여성 또는 신앙이 있어도 곤란한 신앙을 만난 이들이 아내의 신앙을 이끌어 아내를 잘 믿게 했다는 사례는 없다. 반대로 남자가 너무 잘 난 사람이어서 믿을 리가 없다는 유명한 인물들, 아내가 속 신앙이 있고 포기하지 않으면 결국은 모두 신앙의 남편을 만들었다.

이 곳 연구소와 관련 된 사람들은 숫자가 적다. 그래도 세상 어디 내놓아도 괜찮은 사람들은 있었다. 공회적으로 가장 희망 있게 본 신앙의 사람들, 그들은 하나 같이 세상 면을 보고 결혼했고 현재 단 1명도 이 곳에 남아 있지 않다.



(3편. 다음 글에 준비 중)
(1) 게시판 검색
번호제목이름날짜
  • 3194
    목회
    2026-03-04
  • 3193
    목회
    2026-03-05
  • 3192
    목회
    2026-03-05
  • 3191
    연구
    2026-03-02
  • 3190
    연구
    2026-03-02
  • 3189
    목회
    2026-03-03
  • 3188
    연구
    2026-03-03
  • 3187
    목회
    2026-03-04
  • 3186
    목회
    2026-03-04
  • 3185
    연구
    2026-03-02
  • 3184
    목회
    2026-03-02
  • 3183
    공회
    2026-03-01
  • 3182
    공회
    2026-03-01
  • 3181
    담당
    2026-02-28
  • 3180
    담당
    2026-02-28
  • 3179
    목회
    2026-02-26
  • 3178
    목회
    2026-02-27
  • 3177
    목회
    2026-02-27
  • 3176
    목회
    2026-02-25
  • 3175
    목회
    2026-0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