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려 있는 복들, 쏟아 지는 이 기회들
(담당)
0
3
2021.09.20 05:43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는다는 마10:41은 오늘도 유효하며, 그 말이 정말 맞는 말씀일까?
문익환 계열의 기장측, 자유주의 신학에서는 '그냥 그렇다는 말'이라는 정도이고 이 곳은 우리는 정말 그대로라고 믿는다.
손양원 정도라면 의인의 이름을 붙이는 것은 어렵지 않다. 도둑은 도둑질이 들켰을 때를 생각하고 의인으로 생각할 듯하다.
이 나라를 주저 앉히려는 이 나라 종북들까지도, 발각 될 때를 생각하여 평소 손양원을 의인 만드는데 앞 장 서는 듯하다.
우리는 원래부터 그 분의 말씀 순종과 주님의 뜻으로 주님과 동행하며 천국을 소망하는 것이 좋아서 의인으로 알고 있었다.
손 목사님이 의인이라는 이유 중에 하나는 그 분의 넓은 품과 지혜와 신앙이라면 자녀들을 모두 위대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맡은 교인과 전국의 교회를 돌아 보느라고 자녀를 챙기지 못했고 이 과정에 자녀들은 태풍에 찢긴 가지가 되었다.
그래서 한국 교회가 모두 아는 것처럼 또 애양원을 방문하거나 자녀 분들을 직접 접하는 분들이 느끼는 것처럼 문제가 많다.
자녀들의 모습이 좋지 않다는 말은 함부로 하기 어려우나 언론에 직접 공개 된 것이 많고 그 분들의 자서전에도 나와 있다.
이런 모습을 볼 때 반응은 2가지다. 삼상8장에서 사무엘의 두 아들들이 뇌물을 받는 모습을 본 이스라엘의 반응과 같다.
복이 없어 망할 수밖에 없는 이들은
* 사무엘은 위대했다. 그러나 자식 농사는 실패했다. 그런데 그런 자식을 알면서도 사사로 세운 것은 사무엘의 노망이다.
* 사무엘의 결정이 이러 하니 이제 하나님과 그 종을 믿고 따른다는 것은 희망이 없다. 이방인 세상처러 그렇게 살겠다.
* 그리고 불신자 세상의 돌아 가는 법과 제도와 추세를 흉내 내어 교회를 통째로 세상으로 만들어 버리는 경우가 있다.
이런 이들은 손양원의 자녀들을 접하며 그들이 가진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손양원의 신앙과 반대 길로 걸어 간다.
복을 받아 더 복을 받는 사람들은
* 사무엘은 위대했다. 백성을 위해 전력하다 보니 자녀를 더 잘 돌 보지 못했다. 그런데도 그 자녀들이 전국에서 최고였다.
* 자녀들이 사무엘 정도되지 않은 것은 사무엘이 백성을 위해 돌 보지 못한 것이니 자녀들의 모자란 점은 백성들의 몫이다.
* 자녀들이 뇌물을 받는 죄인들이나 자녀들보다 나은 사람이 없어 사사로 세웠고 자녀들의 뇌물죄는 백성이 막으면 된다.
이런 이들은 사무엘이 아버지로서 해야 할 일을 대신 하는 입장이니 이런 백성은 사무엘의 아들들의 아버지가 되는 것이다.
손양원은 돌아 가셨지만, 오늘 만일 그 자녀들이 성장 과정 때문에 문제가 있고 그래서 우리 눈에도 그 잘못이 보인다면
이는 손양원이 교회를 위해 자신을 다 쏟는 과정에서 생긴 빈 틈이다. 그 빈 틈을 채우려 노력하는 사람? 그가 손양원이다.
그렇다면 애양원은 손 목사님을 앞 세워 돈과 관광객과 위상을 추구하는 일 대신에 손 목사님이 못 다한 일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자녀들과 맞서고 비판한다면 손양원과두 아들들을 처형한 이들을 이어 오늘의 그 때 처형자가 되어 버린다.
손 목사님의 자녀들이 부친의 신앙을 본 받을 수 있도록 협조나 도움이 되었다면 그 부분만큼은 오늘의 손양원이 된다.
백영희 목사님의 자녀 7남매는 부친의 설교는 그들만의 사유 재산이라고 했다. 세상 나라는 자녀들의 말이 맞다고 했다.
세상 불신 나라가 아무리 맞다 하고 대법원 판결을 거듭거듭 내린다 해도 성경으로는 틀렸고 백영희도 탄식할 일이다.
여기서 그 자녀들의 잘못을 돕는 이들, 마음으로 그들의 재산이 되어 설교 전파가 막아 지도록 마음 먹은 이들이 있다.
이들이 손양원과 두 아들과 백영희를 처형하고 싶었던 그 시대 그들을 이어 오늘의 그들의 후손이니 오늘의 가인이 된다.
백영희 자손이 해야 할 이 노선의 교훈과 자료의 보존과 연구와 전파를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오늘의 백영희가 된다.
오늘의 백영희가 된 그들이 바로 백영희 7남매의 아버지가 된다. 어떤가? 오늘의 손양원이 되고 오늘의 백영희가 되는 길!
이 주장이 공연한 말처럼, 허황된 꿈처럼, 어린 아이를 세뇌 시키는 북한의 수령 체제 선전과 교육처럼 그런 것일까?
아니면 마10:41의 말씀에도 맞고 또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자연과 인간의 사리에 맞고 당연한 논리로 들릴까?
나는 이 노선이 좋다. 나는 평생 백영희를 연구한다. 나는 이 노선을 백영희 신앙 노선을 내걸다가 전과자도 되어 봤다.
그런데도 오늘도 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 이런 논리 구성을 나는 그 분에게 배웠기 때문이다. 내가 백영희 되는 방법을...
내가 손양원 되는 방법을, 내가 지난 날의 모든 의인과 선지자와 나란히 설 수 있는 이런 횡재를 나는 그 분에게 배웠다.
이런 구체적 이유가 있기 때문에 백영희 신앙 연구를 하고 있다. 우리는 역사 이후 가장 많은 의인과 선지자를 가지고 있다.
우리 훗날의 후배는 더 많이 가질 수는 있으나 의인과 선지자가 더 나올 것 같지는 않다. 말세의 현상 때문에 그러 하다.
적어도 오늘 나와 이 글을 읽는 이들은 역사 어느 시대보다 많은 의인과 선지자를 가지고 있다. 누적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보면 오늘 우리처럼 기본적으로 최대의 복을 가진 시대는 없다. 아벨 이후 모든 의인과 선지자의 누적을 말한다.
문익환 계열의 기장측, 자유주의 신학에서는 '그냥 그렇다는 말'이라는 정도이고 이 곳은 우리는 정말 그대로라고 믿는다.
손양원 정도라면 의인의 이름을 붙이는 것은 어렵지 않다. 도둑은 도둑질이 들켰을 때를 생각하고 의인으로 생각할 듯하다.
이 나라를 주저 앉히려는 이 나라 종북들까지도, 발각 될 때를 생각하여 평소 손양원을 의인 만드는데 앞 장 서는 듯하다.
우리는 원래부터 그 분의 말씀 순종과 주님의 뜻으로 주님과 동행하며 천국을 소망하는 것이 좋아서 의인으로 알고 있었다.
손 목사님이 의인이라는 이유 중에 하나는 그 분의 넓은 품과 지혜와 신앙이라면 자녀들을 모두 위대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맡은 교인과 전국의 교회를 돌아 보느라고 자녀를 챙기지 못했고 이 과정에 자녀들은 태풍에 찢긴 가지가 되었다.
그래서 한국 교회가 모두 아는 것처럼 또 애양원을 방문하거나 자녀 분들을 직접 접하는 분들이 느끼는 것처럼 문제가 많다.
자녀들의 모습이 좋지 않다는 말은 함부로 하기 어려우나 언론에 직접 공개 된 것이 많고 그 분들의 자서전에도 나와 있다.
이런 모습을 볼 때 반응은 2가지다. 삼상8장에서 사무엘의 두 아들들이 뇌물을 받는 모습을 본 이스라엘의 반응과 같다.
복이 없어 망할 수밖에 없는 이들은
* 사무엘은 위대했다. 그러나 자식 농사는 실패했다. 그런데 그런 자식을 알면서도 사사로 세운 것은 사무엘의 노망이다.
* 사무엘의 결정이 이러 하니 이제 하나님과 그 종을 믿고 따른다는 것은 희망이 없다. 이방인 세상처러 그렇게 살겠다.
* 그리고 불신자 세상의 돌아 가는 법과 제도와 추세를 흉내 내어 교회를 통째로 세상으로 만들어 버리는 경우가 있다.
이런 이들은 손양원의 자녀들을 접하며 그들이 가진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손양원의 신앙과 반대 길로 걸어 간다.
복을 받아 더 복을 받는 사람들은
* 사무엘은 위대했다. 백성을 위해 전력하다 보니 자녀를 더 잘 돌 보지 못했다. 그런데도 그 자녀들이 전국에서 최고였다.
* 자녀들이 사무엘 정도되지 않은 것은 사무엘이 백성을 위해 돌 보지 못한 것이니 자녀들의 모자란 점은 백성들의 몫이다.
* 자녀들이 뇌물을 받는 죄인들이나 자녀들보다 나은 사람이 없어 사사로 세웠고 자녀들의 뇌물죄는 백성이 막으면 된다.
이런 이들은 사무엘이 아버지로서 해야 할 일을 대신 하는 입장이니 이런 백성은 사무엘의 아들들의 아버지가 되는 것이다.
손양원은 돌아 가셨지만, 오늘 만일 그 자녀들이 성장 과정 때문에 문제가 있고 그래서 우리 눈에도 그 잘못이 보인다면
이는 손양원이 교회를 위해 자신을 다 쏟는 과정에서 생긴 빈 틈이다. 그 빈 틈을 채우려 노력하는 사람? 그가 손양원이다.
그렇다면 애양원은 손 목사님을 앞 세워 돈과 관광객과 위상을 추구하는 일 대신에 손 목사님이 못 다한 일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자녀들과 맞서고 비판한다면 손양원과두 아들들을 처형한 이들을 이어 오늘의 그 때 처형자가 되어 버린다.
손 목사님의 자녀들이 부친의 신앙을 본 받을 수 있도록 협조나 도움이 되었다면 그 부분만큼은 오늘의 손양원이 된다.
백영희 목사님의 자녀 7남매는 부친의 설교는 그들만의 사유 재산이라고 했다. 세상 나라는 자녀들의 말이 맞다고 했다.
세상 불신 나라가 아무리 맞다 하고 대법원 판결을 거듭거듭 내린다 해도 성경으로는 틀렸고 백영희도 탄식할 일이다.
여기서 그 자녀들의 잘못을 돕는 이들, 마음으로 그들의 재산이 되어 설교 전파가 막아 지도록 마음 먹은 이들이 있다.
이들이 손양원과 두 아들과 백영희를 처형하고 싶었던 그 시대 그들을 이어 오늘의 그들의 후손이니 오늘의 가인이 된다.
백영희 자손이 해야 할 이 노선의 교훈과 자료의 보존과 연구와 전파를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오늘의 백영희가 된다.
오늘의 백영희가 된 그들이 바로 백영희 7남매의 아버지가 된다. 어떤가? 오늘의 손양원이 되고 오늘의 백영희가 되는 길!
이 주장이 공연한 말처럼, 허황된 꿈처럼, 어린 아이를 세뇌 시키는 북한의 수령 체제 선전과 교육처럼 그런 것일까?
아니면 마10:41의 말씀에도 맞고 또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자연과 인간의 사리에 맞고 당연한 논리로 들릴까?
나는 이 노선이 좋다. 나는 평생 백영희를 연구한다. 나는 이 노선을 백영희 신앙 노선을 내걸다가 전과자도 되어 봤다.
그런데도 오늘도 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 이런 논리 구성을 나는 그 분에게 배웠기 때문이다. 내가 백영희 되는 방법을...
내가 손양원 되는 방법을, 내가 지난 날의 모든 의인과 선지자와 나란히 설 수 있는 이런 횡재를 나는 그 분에게 배웠다.
이런 구체적 이유가 있기 때문에 백영희 신앙 연구를 하고 있다. 우리는 역사 이후 가장 많은 의인과 선지자를 가지고 있다.
우리 훗날의 후배는 더 많이 가질 수는 있으나 의인과 선지자가 더 나올 것 같지는 않다. 말세의 현상 때문에 그러 하다.
적어도 오늘 나와 이 글을 읽는 이들은 역사 어느 시대보다 많은 의인과 선지자를 가지고 있다. 누적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보면 오늘 우리처럼 기본적으로 최대의 복을 가진 시대는 없다. 아벨 이후 모든 의인과 선지자의 누적을 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