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본질적 평준화가 미친 신앙의 평준화

남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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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판에는 이 홈에 올려진 글 중에 이곳에서 따로 소개하고 싶은 글도 포함됩니다. 

세상의 본질적 평준화가 미친 신앙의 평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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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계의 내면이 드러 난 소식)
이 번 주간에 교계는 순복음교회의 조용기 목사님 장례가 제일 중심 소식이 된 듯하다.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인물이다. 미국 LA의 로버트 슐러 목사님을 목표로 삼아 평생을 전력했고 슐러를 넘어 섰다. 슐러는 파탄이 났으나 조 목사님은 교계의 부러움을 사기에 별 문제가 없어 보인다. 15일에 진행 된 장례 예배를 접하며 교계의 평준화가 심각하게 진행 되었음을 느꼈다. 그리고 세상의 평준화와 비교를 피할 수 없었다. 일단 한국 교계에 설교와 목회와 지도력과 각 교회를 통해 제일 유명한 분들의 음성을 각각 1분 정도라도 들어 보면 좋겠다. 검색 기능이 좋아서 테이프를 넘겨 가면 된다.


김삼환 김장환 오정현 오정호 이동원 이영훈 목사 등 교계 지도자들, 조용기 목사 빈소에서 장례예식(2021/09/15) - YouTube


 


 


김삼환 김장환 오정현 오정호 이동원 이영훈 목사 등 교계 지도자들, 조용기 목사 빈소에서 장례예식(2021/09/15)





(교계의 평준화 현상)
* 교계의 최고 실력가들
오랜 만에 교계 소식의 깊은 내면을 들여다 보게 되었다. 우선 조 목사님의 장례에 순서를 맡은 분들은 한국 교회가 이론 없이 인정할 수 있는 최고의 실력자들이다. 몇만 명 수십만 명의 교인을 지도하는 분들이다. 설교가 너무 좋아서 교인들이 모든 불편을 감수하고 모여 들었고, 목회가 탁월하여 사회와 교계와 반대 단체들이 총력 저지를 해도 전혀 흔들림이 없으며, 지도력이 너무 뛰어 나기 때문에 세계 기독교 역사를 통해 한 기간에 이렇게 많은 초대형 교회들이 존재하는 기이한 현상을 보여 주고 있다. 이 분들은 최소한 보이는 면으로 볼 때 한국 교회의 간판들이며 기둥들이다. 현재 서부교회는 그런 교회들이 지교회 하나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로 초라하다.

* 준비 없이 진행 된 설교
조 목사님의 장례는 예고가 없었다. 15일의 장례 일정은 우리가 흔하게 접하는 갑작스런 행사다. 시골 교회나 개척 교회나 초대형 교회를 막론하고 갑자기 별세 소식을 들으면 장례 예배를 드리게 된다. 우선 장소가 장례식장이 되면 한 교회가 사전에 원하는 대로 장소와 시간과 진행을 자유하기 어렵다. 특히 지금은 코로나 방역 때문에 비상 시국이다. 상기 동영상 모습은 우리가 흔하게 보는, 준비나 주변의 도움 없이 진행 되는 예배다. 일반 교계 행사는 실무진들의 일사분란하고 체계적이며 철저한 사전의 조율과 시설과 진행 인원들이 준비하고 진행한다. 이 번 예배 모습은 갑자기 만나 현장에서 간단히 순서를 맡고 바로 진행을 하는 모습이다. 화장과 단장을 하지 않은 여성의 원래 얼굴 모습이다. 분장과 조명이 없는 배우가 아는 친구들을 집안 거실에서 맞은 모습이다.

이 분들의 평소 설교나 예배 인도는 사전에 철저히 준비 되고 잘 기획이 되었다. 그 말은 이 분들의 깊은 속 내면은 잘 드러 나지 않았다. 물론 준비도 실력이다. 마25장의 슬기로운 다섯 처녀의 성공은 준비가 전부였다. 준비를 탓한다면 무지한 사람이다. 다만 그런 준비로 한 고비 한 단계 한 차원을 거듭하게 되면 그 다음 단계의 준비와 결과는 달라 져야 한다. 초교 1학년을 잘 준비하여 통과했다면 다음에는 2학년이라야 하고 3, 4, 5, 6학년을 지나면 중학교에 입학을 해야 한다. 현재 중1학년의 과정은 준비를 잘 하여 지난 날처럼 또 최우수생으로 진급을 하면 된다. 그런데 중1학년에게 사전 준비 없는 평소의 모습으로 갑자기 초교 3학년 시험 문제를 받아 들었을 때 점수가 시원치 않으면 이 학생의 준비 자체는 우수해도 이 학생 속에 쌓여 가고 만들어 진 내면의 학습력은 갑작스런 이런 시험의 점수로 평가를 할 수 있다.

* 한국 교회의 평준화를 보았다.
한국의 어느 장례식장에 가도 교회가 진행하는 장례 예배는 흔하다. 그리고 거의 같다. 음성이 조금 나아 보이고 약간 약해 보이는 정도가 전부다. 설교를 조금 길게 하거나 기도가 조금 짧은 그 정도다. 전국 어느 대학병원이나 대학병원의 모습은 거의 같듯이, 전국 어느 치과든 거의 비슷하듯이, 전국 마트든 거의 같듯이, 전국의 어느 장례식 예배도 그 표현 그 순서 그 찬송 그 설교 내용 그 진행은 거의 같다. 개척 교회든 시골 교회든, 초대형 교회라 해도 장례식장에서는 다를 수가 없다. 코로나 상황이 아니었다면 순복음교회 본당에서 장례가 진행 될 수 있고 그렇게 했다면 평소 초대형교회들의 설교나 행사가 전국의 흔한 일반 교회와 격차가 많았던 것처럼 모든 면에서 그러했을 것으로 보인다.



(세상의 평준화에 주목한다.)
미개하던 시절의 격차는 별로 나지 않았다. 올림픽 금메달을 받는 세계 최고의 창 던지기 선수가 동네마다 사냥을 잘한다는 일반 사냥꾼에 비해 10배를 사냥하기는 어려웠을 듯하다. 농사를 잘 짓는다는 사람과 일반 농사꾼의 소출이 몇 배가 나기는 어렵다. 돌을 갈아 연장을 만들고 농사를 짓는다면 얼마나 차이가 나겠는가? 한 가정의 가족이 아무리 힘이 좋고 숫자가 많다 해도 다른 일반 가정보다 10배 이상을 경작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세상이 발전하는 과정에 기술과 자본이 축척 되며 평균의 사람과 실력 있는 사람의 격차는 10배 100배 1000배로 많아 졌다. 1백 년 전의 우리 나라 부자는 천석꾼이라 했다. 일반 가정이 3-4석은 추수한다. 그 100백 300배가 되면 경남의 거창군 전체에서 2-3명만 해당 되는 최고 부자였다. 같은 시기에 호남의 평야에는 만석꾼이 있었다. 이 정도 격차가 전부였다. 해방 직후 국내 최고의 부자와 전국 각지의 지방 부자의 격차는 크지 않았다. 천석꾼과 만석꾼 정도였다. 그러나 70년대를 거치며 중소기업과 대기업으로 차이가 났다. 80년대를 거치며 중소기업과 재벌로 차이가 바뀌었다. 발전을 따라 잡은 50년대 중소기업은 오늘날 삼성 현재처럼 세계적 재벌이 되었다. 이제는 비교의 의미가 없다. 하늘과 땅의 차이다. 자동차가 나오기 전까지는 일반 성인이 부산과 서울을 10일에 주파했다. 마라톤 선수라 해도 5일에 가기 어려웠을 듯하다. 오늘은 걸어 가면 10일이고 비행기를 타면 1시간 이내가 된다.

전국의 교실에 잘 가르치는 교사와 못 가르치는 교사의 차이도 그리 크지 않았다. 지금은 국내 최고의 교사가 EBS나 동영상에서 한 번 가르치면 전국의 10만 교사가 다 힘을 합한다 해도 그 교육의 결과를 따라 잡지 못한다. 의사도 그렇다. 그래서 국민은 학교든 진료든 뭐든지 온라인으로 가자 하고 전문직종 종사자들은 목숨 걸고 반대를 한다. 몇 명 외에는 다 죽기 때문이다. 세상의 격차가 이렇게 감당하지 못하게 나 버렸다. 그런데, 이 과정에 우리는 또 하나의 국면을 맞고 있다. 한량 없이 커질 듯한 격차는 그야 말로 선천적이거나 운이 좋은 몇 사람에만 해당이 되고 이제는 아반테 소형 차량이나 벤츠 최고급 차량이나 도로에 내놓으면 얼핏 봐서는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 시골 노무자도 요즘은 우습게 벤츠를 타고 다닌다. 재벌의 양복이나 내 양복의 차이도 예술가 정도라면 모를까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 한 없이 벌어 지던 격차가 최종적으로는 더 먹어 봐야 그 것이고, 덜 먹어 봐야 그 것으로 귀결 되고 있다. 해 아래 새 것이 없다는 뜻이며 성경은 이미 더 벌어 봐야 남는 것이 없고 다 비슷하다 했다.


(예전의 차이, 지금의 차이)
예전의 국내 유명 목회자의 설교를 들어 보면 교인이 저런 교회 가지 누가 숨 막히는 교회를 갈까 라고 생각했다. 초대형교회는 어떤 욕을 들어도 그 곳이 잘 되는 이유가 있었다. 어느 날 10만 목회자가 다 신학대학원을 나오고 휴대폰으로 인터넷으로 넘치는 도서를 통해 그리고 동영상으로 연습까지 하고 작은 예배당의 음향 기기까지 따라 가다 보니

설교의 내용도 설교의 실력도 이제는 거의 같아 져 버린 듯하다. 그래도 차이는 많을 줄 알았다. 상기 동영상을 보니 이제는 전국의 대부분 목회자의 설교 실력은 거의 평준화가 되었다고 느껴 진다. 신학서도 같고, 주석도 같고, 가르친 선생들도 비슷하다. 중의 설법도 천주교의 미사 표현도 기독교의 설교 내용도 그리고 사회 활동가들의 상담 내용도 다 비슷하다. 모두가 치유를 한다고 한다. 마지막에 둥글게 둥글게 다 같아 져 버렸다. 그런데 왜 초대형교회에 모이는가? 이미 쌓아 놓은 역량으로 요즘 모두가 가고 싶어 지는 분위기, 시설, 운영방법이 절정으로 주어 진다. 동네 구멍 가게와 초화화 백화점이 다른 것과 같다. 그런데 미세한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둔감한 사람에게는 전부가 같아 졌다. 나처럼 대충 사는 사람에게는 모두가 같아 졌다. 아반떼 내 차나 지나 가는 캐딜락이나 포르쉐나 내 눈에는 같다. 기능도 같을 듯하다. 나는 운전을 잘 한다. 운전자를 돕는 기능이 아무리 많아도 나는 별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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