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토 친척 아비 집, 떠날 때와 찾을 때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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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21 21:58
창12:1 이하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지시하는 땅으로 가라고 했다. 주님이 가자면 가는 것이다.
그런데 그 가는 길이 본토와 친천과 아비 집을 떠나지 않고는 따라 갈 수 없다면, 베드로처럼 다 버려 두고 따라 가게 된다.
본토 자체가 싫어서 떠나면 자기 가나안을 버리는 사람이고 친척 아비 집이 싫어서 떠나면 딤전5:8의 불신자보다 악한 자다.
주님과 말씀 때문에 본토를 떠날 수밖에 없고 부모 친척을 떠날 수밖에 없을 때만 우리는 자기 환경과 사람을 가질 수 없다.
한 번씩 연구소 일 때문에 교계 지인을 찾는 경우가 있었다. 10년에 1회.. 대략 그 정도다. 찾아 오는 경우는 물론 제외하고.
한 번씩 전도 할 상황이 되면 친척뿐 아니라 과거 친구를 찾는 수가 있다. 그들은 내게 붙들리면 너무 힘들기 때문에 피한다.
학교처럼 서로 피할 수 없게 지낸 경우는 전도해 본 경우가 있다. 그런데 졸업을 한 후에 전도하려고 연락하면 극구 피한다.
교회 가자는 말에 조금이라도 여지를 주면 평생 떼 낼 수가 없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나는 그 정도로 집착하지는 않는데도..
최근 업무 때문에 초등 동창들에게 연락을 했었다. 우정 때문이 아니라 업무 때문에 50년만에 연락했으니 참 미안할 일이다.
간단하게 확인만 하는 사안이고 별 어려워 보이지 않는 일이나 사람은 반가워 하면서도 다시 연락하기가 어려운 느낌이었다.
그런데 요 며칠 급하게 다시 목회하는 고교 졸업생들을 찾을 일이 생겼다. 서로 아는 친구 중 신학을 한 사람만 10여명이다.
그들은 서로 연락하며 산다. 나만 집안이든 초중고 대학이든 내가 교회 일 때문이 아니면 연락하는 수가 없다. 미안한 일이다.
어떻게 한 곳이 연락이 되었고 현재 도움을 받고 있다. 이 곳을 들어 올 분은 아니지만 이 자리를 통해 감사를 적어 본다.
그들의 잘못이 아니라 나의 잘못이다. 함께 공부할 때 성실했더라면 그렇게까지 그러지는 않았을 터인데 대충 살아 왔다.
그리고 교회의 필요 때문에 먼저 전화를 하게 되면 그들 마음에 얼마나 의아할까, 너는 친구가 필요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들에게 이해를 구하는 것도 우습고 또 내 형편을 설명하는 것도 어색하다. 그래도 교회 때문에 일단 부탁은 해 볼 뿐이다.
용서하고, 품는 마음으로, 이해하면서 도와 주면 감사한 일이고 그렇지 않음으로 도움을 받지 못해서 교회가 어려워 진다면?
그 것은 그들의 잘못이 아니라 평소 매몰찬 면을 미리 바꾸지 못한 내 불찰이다. 주님 위해 정말 어쩔 수 없었던 일이었던가..
이렇게 물으면 그런 경우도 좀 많고 어떤 경우는 그렇지 않은 경우도 분명히 좀 있다. 그런데 공회 노선을 어떻게 설명하나?
친구라 하기는 애매하고 학교를 함께 다녔던 지인이라고 소개하고 싶다. 참으로 감사도 많고 생각 못한 이야기도 많이 했다.
부족했지만 그래도 공회 목회자로서 교회의 필요가 아닌 인간적 세상적 관계로 먼저 연락하지는 않는 원칙은 보배롭다.
이런 좋은 원칙을 지키려 한다면 목회자가 되기 전에 그들에게 미리 잘 했었어야 한다. 사실 신앙 전반에 해당 되는 이치다.
주일 아닌 날 성실하게 잘 살아야 주일을 주일답게 지낼 수 있다. 평일에 방심하다 주일에 갑자기 일이 터지면 참 곤란하다.
부모에 대한 것도 그렇다. 목회 나오기 전에 최선을 다했어야 하는데 그냥 대충 살다 목회를 출발하면 어떻게 할 길이 없다.
목회자는 교인을 식구로 삼는다. 한 사람이 두 가지를 동시에 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고향 식구가 오해를 해도 할 수 없다.
목회자는 믿는 일에 함께 하는 친구만 친구다. 신앙을 제쳐 놓고 세상 이런저런 다른 사연으로 친구를 가지고 있을 수 없다.
그래서 목회자는 목회를 출발할 때 세상에 너무 큰 빚이 있는지 살펴 보지 않을 수가 없다. 세상 빚 때문에 교회에 짐이 된다.
넓게 깊게 여러 면으로 잘 생각해 봐야 할 문제다. 다 잘 할 수는 없다. 모든 면에 완전은 없다. 적어도 알기는 해야 할 문제다.
그런데 그 가는 길이 본토와 친천과 아비 집을 떠나지 않고는 따라 갈 수 없다면, 베드로처럼 다 버려 두고 따라 가게 된다.
본토 자체가 싫어서 떠나면 자기 가나안을 버리는 사람이고 친척 아비 집이 싫어서 떠나면 딤전5:8의 불신자보다 악한 자다.
주님과 말씀 때문에 본토를 떠날 수밖에 없고 부모 친척을 떠날 수밖에 없을 때만 우리는 자기 환경과 사람을 가질 수 없다.
한 번씩 연구소 일 때문에 교계 지인을 찾는 경우가 있었다. 10년에 1회.. 대략 그 정도다. 찾아 오는 경우는 물론 제외하고.
한 번씩 전도 할 상황이 되면 친척뿐 아니라 과거 친구를 찾는 수가 있다. 그들은 내게 붙들리면 너무 힘들기 때문에 피한다.
학교처럼 서로 피할 수 없게 지낸 경우는 전도해 본 경우가 있다. 그런데 졸업을 한 후에 전도하려고 연락하면 극구 피한다.
교회 가자는 말에 조금이라도 여지를 주면 평생 떼 낼 수가 없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나는 그 정도로 집착하지는 않는데도..
최근 업무 때문에 초등 동창들에게 연락을 했었다. 우정 때문이 아니라 업무 때문에 50년만에 연락했으니 참 미안할 일이다.
간단하게 확인만 하는 사안이고 별 어려워 보이지 않는 일이나 사람은 반가워 하면서도 다시 연락하기가 어려운 느낌이었다.
그런데 요 며칠 급하게 다시 목회하는 고교 졸업생들을 찾을 일이 생겼다. 서로 아는 친구 중 신학을 한 사람만 10여명이다.
그들은 서로 연락하며 산다. 나만 집안이든 초중고 대학이든 내가 교회 일 때문이 아니면 연락하는 수가 없다. 미안한 일이다.
어떻게 한 곳이 연락이 되었고 현재 도움을 받고 있다. 이 곳을 들어 올 분은 아니지만 이 자리를 통해 감사를 적어 본다.
그들의 잘못이 아니라 나의 잘못이다. 함께 공부할 때 성실했더라면 그렇게까지 그러지는 않았을 터인데 대충 살아 왔다.
그리고 교회의 필요 때문에 먼저 전화를 하게 되면 그들 마음에 얼마나 의아할까, 너는 친구가 필요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들에게 이해를 구하는 것도 우습고 또 내 형편을 설명하는 것도 어색하다. 그래도 교회 때문에 일단 부탁은 해 볼 뿐이다.
용서하고, 품는 마음으로, 이해하면서 도와 주면 감사한 일이고 그렇지 않음으로 도움을 받지 못해서 교회가 어려워 진다면?
그 것은 그들의 잘못이 아니라 평소 매몰찬 면을 미리 바꾸지 못한 내 불찰이다. 주님 위해 정말 어쩔 수 없었던 일이었던가..
이렇게 물으면 그런 경우도 좀 많고 어떤 경우는 그렇지 않은 경우도 분명히 좀 있다. 그런데 공회 노선을 어떻게 설명하나?
친구라 하기는 애매하고 학교를 함께 다녔던 지인이라고 소개하고 싶다. 참으로 감사도 많고 생각 못한 이야기도 많이 했다.
부족했지만 그래도 공회 목회자로서 교회의 필요가 아닌 인간적 세상적 관계로 먼저 연락하지는 않는 원칙은 보배롭다.
이런 좋은 원칙을 지키려 한다면 목회자가 되기 전에 그들에게 미리 잘 했었어야 한다. 사실 신앙 전반에 해당 되는 이치다.
주일 아닌 날 성실하게 잘 살아야 주일을 주일답게 지낼 수 있다. 평일에 방심하다 주일에 갑자기 일이 터지면 참 곤란하다.
부모에 대한 것도 그렇다. 목회 나오기 전에 최선을 다했어야 하는데 그냥 대충 살다 목회를 출발하면 어떻게 할 길이 없다.
목회자는 교인을 식구로 삼는다. 한 사람이 두 가지를 동시에 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고향 식구가 오해를 해도 할 수 없다.
목회자는 믿는 일에 함께 하는 친구만 친구다. 신앙을 제쳐 놓고 세상 이런저런 다른 사연으로 친구를 가지고 있을 수 없다.
그래서 목회자는 목회를 출발할 때 세상에 너무 큰 빚이 있는지 살펴 보지 않을 수가 없다. 세상 빚 때문에 교회에 짐이 된다.
넓게 깊게 여러 면으로 잘 생각해 봐야 할 문제다. 다 잘 할 수는 없다. 모든 면에 완전은 없다. 적어도 알기는 해야 할 문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