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 안 개구리의 장악력, 바깥 세상은 넘겨 준 줄 모른다.

남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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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판에는 이 홈에 올려진 글 중에 이곳에서 따로 소개하고 싶은 글도 포함됩니다. 

우물 안 개구리의 장악력, 바깥 세상은 넘겨 준 줄 모른다.

담당 0 1
(항상 나를 먼저 돌아 봐야 하는데..)
멀리 있는 것을 예로 들면서 나의 속을 들여다 본다. 그렇게 글을 적다 보니 글의 앞만 읽으면 남 비판만 한다고 할 듯하다.
이 글은 순서를 바꿔 본다. 이 연구소, 이 부공3, 나의 교회, 나를 먼저 예로 들어 본다. 자기와 가깝게 되면 우물 안이 된다.

우물 안이 나쁜가? 자기 주택이며 침실이며 일기장이며 자기의 소중한 추억이다. 나를 나 되게 하는 공간이 우물 안이다.
우물 안의 개구리가 나쁜 말이 된 것은 우물이나 우물 안이 문제가 아니라 우물을 담장 삼아서 자기를 가두기 때문이다.
우물 안이 전부인 줄 안다. 그 순간 우물 밖의 모든 세상은 남의 것이 된다.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 된다. 이 것이 문제다.

신앙은 하나님과 관계가 먼저다. 뿌리가 있고 둥치와 가지가 있지 뿌리 없는 나무는 의미가 없다. 신앙은 하나님과 관계다.
지금은 하나님은 빼 놓고 이웃에게 잘 하는 것을 신앙인 줄 안다. 세상은 물론 교회까지도 세상에게 잘 하는 데 주력한다.
신앙이란 내 속에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생명이며 여기에 주력한다. 그러다 보면 저절로 우물 안에 주력하게 되어 진다.
우물 안에 하나님이 나에게 바깥 구경을 하라면 해야 하고 사명을 주시면 바로 왕궁에도 바벨론에도 어디라도 갈 수 있다.

그런데 우물 안에 오래 있어 볼수록 우물 밖은 서툴고 우물 안에 익어 지는 바람에 우물 밖으로 나가는 것을 주저하게 된다.
그렇게 된 자신을 솔직하게 말하기는 어렵다. 대신에 우물 안이 좋다는 것을 강조를 하게 된다. 속으로는 겁이 나서 그렇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 가게 되면 이제는 나갈 수도 없고 또 나가서도 안 되는 붙박이 우물 안에 개구리로 영영 고착이 된다.
나를 먼저 돌아 보는 것이 맞다. 그런데 우물 안에 개구리가 되는 시험에 빠져서는 안 된다. 양 면을 함께 보면 좋겠다.





(연구소 안에도 왜 이렇게 벽이 많은지)
연구란, 하나님이 과연 있기나 하는가? 하나님은 인간이 만든 허구가 아닐까? 이런 것까지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 세계다.
연구라는 것이 벽을 세워 다른 사람의 시선이나 접근이나 대화의 내용을 막아 버리면 연구가 아니라 주입식 세뇌 교육이다.

공회란, 그 출발이 대단히 허무했다. 그런데도 그 나중이 정말 이렇게 대단하게 된 것은 제대로 된 '연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백영희는, 초등학교 5학년 배운 것이 전부다. 그런데 세상이든 신앙이든 그 어떤 것이든 질문을 하고 살펴 보는 인물이다.
백영희 스스로 삭개오 신앙이다. 모르면 묻고 필요하면 직접 확인한다. 남의 말을 듣고 그 말을 또 전해 듣고 끝내지 않는다.
학자가 말을 해도 신학서에 인쇄가 되어 있어도 학위가 줄줄이 보증을 해도 성경으로 직접 확인을 하고 실행으로 실험한다.
그렇게 하나씩 하다 형성 된 것이 공회다. 이 연구소도 기본 방향이 그렇다. 그래서 이 곳만 총공회를 잇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외치고 노력해 온 연구소 안에도 한 순간만 방심하면 바로 벽이 세워 진다. 자기만의 별 공간을 만든다.
혼자 가지고 싶은 것이다. 소유욕이기도 하고 명예욕이기도 하다. 사람의 본능이 그렇다. 타락 후에는 나누는 것이 싫다.
복음은 어두움 속에 빛이다. 감추려 해도 감춰 지지도 않고 애초부터 전하는 것이기 때문에 빛이라고 표현을 붙인 것이다.
교회마다 빛이라 해 놓고 각 교회가 혼자 가지면 좋을 것은 철저히 덮어 놓는다. 신학자도 목회자도 교인도 모두가 같다.
공회들도 다 그렇다. 이말출 노트 속에 숨어 30년을 우물 덮개에 용접을 하고 이 뜨거운 여름 볕을 견디는 저 강단을 보라!
그 곳뿐 아니다. 연구소도 순간 방심하면 직원 별로 업무 별로 꽁꽁 감춘다. 혼자 가져야 희소성의 가치가 올라 간다.

원래는 별로 그렇지 않았다. 전부를 다 가진 직원이 무조건 무제한으로 모든 자료를 늘 풀어 놓고 운영해 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2013년에 백 목사님의 자녀들이 고소를 시작하면서 형사처벌이 이어 지게 되자 이제는 공개 자체가 어렵게 됐다.
모든 자료가 비공개가 아니라 극히 일부 표현에만 해당이 되는데도 이 참에 덮을 것은 최대한 모두 덮느라고 정신이 없다.
아! 알고 보니 수십 년을 혜택 보고 수십 년을 노력해도 돌아 서면 바로 자기 중심의 자기 이권을 위해 덮고 보는 것이다.
법적으로 불법이 되는 것, 자료 자체의 보관과 유지에 꼭 필요한 경우.. 이 정도가 아니면 연구소는 철저하게 공개를 했다.



(성경의 하체란 것이 있다. 감출 것도 있다.)
성경은 아담 하와가 에덴 안에서 부부 싸움을 하고 하나님께 역적 질을 한 것부터 기록하고 있으며 가인 아벨의 형제 살인,
아브라함이 한 술 밥 그릇을 위해 아내를 바로 왕궁에 들여 보내 몸을 팔게 한 일, 롯의 딸들 이야기를 세세히 기록했다.
그렇다면 다 드러 내는가? 치마도 벗고 다니라는 말인가? 함은 창9장에서 아비의 하체를 덮지 않다가 저주를 받았다.
율법이 '하체'는 감추고 지켜 주도록 했다. 그러나 귀신은 감출 하체는 천하에 훌떡 벗고 돌아 다니게 하여 이 지경을 만들고
모두가 알아야 할 진리의 빛은 말 아래 감추느라고 정신도 없다.

백 목사님의 10대 인물 사진은 희귀본이다. 가족들조차 그 존재 자체를 모른다. 이런 자료는 손을 대면 부스러 진다.
또한 이 사진은 목사님이 공개를 원치 않았다. 그래서 목사님조차 존재를 밝히지 않았다는 점 때문에 비공개를 하고 있다.
이런 자료들 때문에 또는 법적으로 공개가 금지 된 내용 때문에, 또는 해당인의 특별한 사연 때문에 금지 되는 것이 있다.
직원들은 바로 이런 문제 때문에 공개를 해도 되는 것까지 함께 다 덮어 버리고 혼자만 알고 흐뭇해 한다. 자기 중심이다.


어항 속에 물고기들을 유심히 보면 주먹 만한 돌 하나를 두고 이 쪽과 저 쪽이 서로 자기 영역을 지킨다. 이렇게도 좁힌다.
연구소의 각종 자료들이 책으로 유품으로 각종 인쇄물로 또는 데이타로 분산 되어 있다. 전부를 하나로 만드는 중이다.
자료 접근의 등급을 나누어 최대한 최대한 공개를 원칙으로 삼고자 해도 연구소 내 직원들의 벽에 먼저 막히고 있다.
업무 상 불가피 해서 그렇다고 말은 한다. 실제 그럴 일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하다가 자기도 모르게 우물 안 개구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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