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떼의 힘, 세상처럼 모이면 힘이 될까 떼죽음이 될까 - 1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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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22 14:47
(한국 교회의 분열)
한국의 교단은 최대 2-300개로 잡는다. 현재 총공회 안에만 5개 공회들이 있는데 본 연구소만 총공회는 1개이고 5개 공회는 총공회 소속 공회들이라고 애써 우긴다. 부공3의 이 연구소 외에는 불신자들 앞에도 자기 공회만 총공회의 전부이고 나머지는 제명을 당했거나 사이비라며 존재 자체도 인정하지 않는다. 참 잔인하다. 그런데 그들의 입에는 늘 부공3은 사람을 아끼지 않는다거나 복음 운동을 고려하지 않는다고 한다. 북한이 수백 만 명을 죽인 전쟁을 일으켜 놓고도 남한을 향해 노동자가 경찰에게 늘 탄압을 받는 비인륜 반인권 국가라고 선전하는 모습과 같지 않을까? 큰 것도 보고 작은 것도 함께 봤으면 한다.
나는 한국의 교단을 보통 5-600개로 잡는다. 200개 되는 총공회 내에 내 눈에 실제 총공회는 10개쯤 된다. 부공3 안에도 3명 목사님들이 따로 모여 그들만 총공회라고 자부한다. 그런데 그 3명은 각자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난다. 1명이 1개 교단으로 봐도 된다. 회비를 따로 모으고 회의를 따로 하며 임원을 따로 선정을 따로 한다면 교단 형성의 필요 충분 조건이 되지 않을까? 이 조건을 엄하게 적용한다 해도 총공회 안에는 현재 최소 5개다. 한국 교단은 2-300개에 그칠 수는 없다. 일단 파악 자체가 불가능하다. 최근 나뉜 교단 중 교세가 상대적으로 불리하면 실체 공개를 극구 거부한다. 교회의 의미조차 모르기 때문이다.
(교계의 사회적 역량과 활동)
불교는 조계종 하나가 거대 세력으로 전국 불교를 대변하고도 남는다. 천주교와 원불교는 교세가 적지만 내부 통제가 독재 수준이어서 분열이 없어 각종 선거나 사회 활동을 통해 그들의 이익을 잘 챙기고 있다. 천주교는 잘 알 것이고, 원불교는 로스쿨 배정에 원광대학을 포함 시켰고, 군종에도 끼어 들었다. 원광대학은 특수대학원을 모두 가진 유일한 대학이다. 약대 치대 의대 한의대 로스쿨까지 다 가지고 있다. 서울대조차 한의대는 없다. 종교단체가 비록 규모가 작아도 단결을 하게 되면 영향력은 엄청 커진다. 한국 사회를 좌지우지하는 민노총도 불과 1백 만 명이다. 합동이나 통합 교단이 독자적으로 250만명이 넘는다. 감리교나 순복음도 100만 명을 쉽게 넘긴다. 이런 교세를 가지고 우리 사회의 별별 이익 단체가 우리 사회 전체를 상대로 이권을 챙기는 모습을 볼 때 기독교는 '단합'의 힘을 실감하였다.
이익을 챙겨 오는 문제로 단합하기는 어렵지만 코로나에 교회 문만 폐쇄를 시킨다든지 목사 월급에 세금을 거두며 교회 재정을 꿰차려 한다거나 낙태법과 전도 금지법처럼 교회로서 더 이상 물러 날 수 없는 법과 규제가 들어 오는데 심지어 각 교단의 핵심 이익이 되는 신학교나 각종 학교의 운영을 틀어 쥐게 되자 교계의 지도자들일수록 이런 문제에 심각성을 더 잘 알기 때문에 기독교의 연합회 운동을 전개해 왔다. 모이면 다시 흩어 지고 흩어 지면 여러 개의 단체들이 난립해서 자멸하고 세월이 지나면 대동 단결을 앞 세워 다시 한 단체가 되지만 한 단체가 되어 힘을 가지는 그 순간 그 힘을 대표 1인이 혼자 다 누리는 모습을 다른 사람이 두고 보지 못한다. 교단 자체의 사분오열도 거의 다 그런 문제였고 각 교단의 벼슬은 그냥 둔다 해도 기독교 연합회들도 같은 모습이다.
(교회의 힘은 무엇인가?)
대통령이 교회 지도자를 청와대로 특별히 초청을 하고, 각종 청탁을 들어 주고, 장관 등의 추천에 영향을 미치고, 그로 인해 교회가 사회로부터 각종 국고 사업을 인수하거나 대행하면서 엄청 난 돈과 기회를 가지기도 하고 교회를 향해 들어 오는 각가지 규제를 막아 내는 것을 통해 교회는 교회의 힘을 느낄 수가 있다. 이 것이 모든 기독교 단체의 발표와 행동과 기독교 언론들의 소식이며 각 교회들과 목회자들의 경력도 그런 면으로 전개가 된다. 교회의 힘이란 그런 것인가?
마10:16에서 주님은 우리를 두고 양이라고 하셨고 우리를 이리 가운데 보냈다고 하셨다. 그렇다면 오늘 한국 교회를 둘러 싼 한국 사회는 교회에게 이리가 아닐까? 한국 사회의 법, 규제, 정부, 정권, 공무원, 코로나 등등의 온갖 문제를 두고 성경은 이 모든 것을 궁극적으로 교회의 신앙을 향해 틈을 노리고 있는 이리라고 했다. 세상 자체나 그 제도나 사람 자체가 이리라는 말이 아니라, 신앙을 모르는 세상이란 자기들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의 신앙을 삼키고 해칠 수밖에 없으니 '뱀처럼 지혜롭게, 비둘기처럼 순결'이라는 방어법으로 신앙을 지켜 내라는 것이다.
교회의 힘이 민노총처럼, 여당 야당의 광화문 데모대 동원처럼, 의사 간호사의 업무 거부처럼, 판사들의 사표 운동처럼, 또는 불교계의 전국 사찰 출입문을 걸어 닫고 방문객을 거부하는 것처럼 하는 것일까? 전국 교회가 예배 거부를 하면 세상이 좋아할까 겁을 낼까? 전국 목사가 자격증을 문화관광부 종교과에 반납을 하러 가면 종무국에서 겁을 먹을까 속으로 참 감사하다 라고 할까? 목사와 찬양대가 전국적으로 설교와 특송을 거부하고 침묵한다면 이리 떼가 겁을 내고 설교 좀 하시라고 할까? 아니면 전국 1천 만 기독교인이 광화문을 점령하고 불을 지르며 난동을 부리면 지방의 어느 도시처럼 폭동이 민주화가 되고 반란이 구국의 열사 운동으로 바뀌어 질까? 아니면 귀신이 자기 손발이 되었다며 환영을 할까?
이리 떼 속에 양을 보냈는데, 양떼들이 대표단을 구성해서 이리 두목을 만났다면 기독교 언론이 일제히 홍보를 해 주고...
이리 떼 속에 양이라는 것이 신앙의 본질인데, 양들이 이리들과 청와대에서 국회에서 시장실에서 언론사에서 사진을 찍고...
양들이 떼를 지어 이리를 몰아 세우니 이리들이 겁이 나서 확인서를 써 주고, 양해 각서를 발표를 한다? ....
이 것이 동물 농장의 이야기인가, 전설인가, 신화인가, 미신인가... 아니면 현재 이 나라 한국 교계가 하고 있는 짓일까?
교회의 힘은 주님에게 더 가까이 가는 거리만큼 강해 진다.
교회의 교세는 진리에 맞고 말씀으로 자기를 꺾는 것이다.
교회의 본질은 세상에게 맞으며 당하고 못을 박히는 것이다.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마10:16...
세상이 교회를 힘으로 밀다가 타협해서 협의적으로 해 보자고 회의장으로 불러 낸다. 일부는 타협하고 일부는 단속한다.
이 모든 세상의 행위는 전부 우리의 신앙을 삼키는 덪이고 궤휼이고 미끼다. 뱀 같이 지혜롭다? 속지 않는 것이 지혜다.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뱀의 삼키는 궤술을 피하고 벗어 나고 이기려다 보면 우리 속이 뱀처럼이 아니라 뱀이 되어 버린다.
저 세상과 언제 어떻게 얽힌다 해도 우리의 내면은 오로지 성령에 붙들려 진리에 깨끗하고 성령에 밝은 상태라야 한다.
교회의 힘,
교회의 실력,
교회의 대처라는 것은...
세상과 겉 모습이 결과적으로 비슷할 수 있다. 그러나 교회의 본질, 교회의 내용, 교회의 방향은 세상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개와 사람이 입으로 밥 먹는 것은 같다. 그 외에 다른 것은 다 다르다. 나무와 사람이 햇빛을 필요로 한다. 그 면은 같다.
그러나 사람과 나무가 태양이 필요하다는 사실 하나 때문에 먹는 방식이 같고 공간의 이동까지 같을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시청에도 시장님이 있고, 국회에도 의장님이 있다. 교회에는 장로님도 있고 당회장님도 있다. 비슷한가? 비슷하다.
같은가? 같아 보이지만 그 내용을 보면 본질적으로 다르다. 세상은 우리의 신앙을 삼키는 이리다. 우리는 그 속에 양들이다.
양에게 구원은 이리 속에서 찾지 못한다. 타협도 도주도 전투도 모두 불가능하다. 결과는 같다. 떼죽음뿐이다. 양의 구원은?
주님뿐이다. 주님께 달려 가는 것이다. 주님과 손을 잡는 것이다. 주님과 동행하는 것이다. 주님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다.
주님이 적어 주신 말씀, 그 말씀으로 사는 것이 주님에게 달려 가는 것이고 주님의 도움을 받는 방법이다. 왜? 이리 때문에...
양이란 이리를 무조건 이길 수 없다. 그러나 양에게는 주인이 있다. 이리 때문에 더욱 목자를 찾아야 한다. 달려 가야 한다.
목회자에게 세금을 걷겠다면?
교회가 떼거리로 모여 면세를 요구하기 전에 세상이 세금을 거두려 해도 목사의 월급도 저금도 재산도 없으면 문제가 없다.
목회자들이 뒷돈은 챙겨 놓고 일반인도 내는 세금을 내지 않으려고 버티다 보니까 이겨도 지고 져도 지는 결과만 나온다.
세상이 교회의 장부를 들여다 보겠다면 교회의 회계 지출을 정부가 본 이상 정부의 돈을 보태지 않을 수 없게 하면 된다.
현재 세상 법은 경제든 건강이든 너무 어려운 국민은 도울 의무가 있다. 교회를 조사하면 도움 받지 못한 사례가 나온다.
우선 목사 가정부터 저소득 수급 대상으로 입증이 될 것이고 목사 가정의 기초 생활비를 국가가 지출하는 문제가 생긴다.
교회가 세상에게 조사해 달라고 부탁을 해도 세상이 손해를 볼까 싶어 도망을 가도록 만드는 것이 이리를 이기는 것이다.
코로나 때문에 예배를 막고 나섰다.
교회와 예배를 막고 나선 것은 세상이 죽을 짓을 했다. 그러나 교회로서는 제 나라의 정부가 조사하는 경험을 통해
앞으로 적대국이 적대적으로 교회를 없애려고 신사참배 때처럼 6.25 때처럼 들이 닥칠 때를 지금 미리 연습할 기회다.
돈을 줘서라도 모의고사를 치러 봐야 하고, 실전 같은 훈련을 해야 하고, 전지 훈련도 해야 하는데 이왕 해 주니 좋지 않은가?
마26:52에서 검을 가지는 자는 검으로 망한다 하신 '검'이란 교회의 진리 운동이 아니라 세상의 전법을 말한다.
세상의 전법은 신앙의 생명을 해친다. 교회가 세상의 데모, 연판장, 연합운동, 피켓 들기라는 검을 잡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
한국의 교단은 최대 2-300개로 잡는다. 현재 총공회 안에만 5개 공회들이 있는데 본 연구소만 총공회는 1개이고 5개 공회는 총공회 소속 공회들이라고 애써 우긴다. 부공3의 이 연구소 외에는 불신자들 앞에도 자기 공회만 총공회의 전부이고 나머지는 제명을 당했거나 사이비라며 존재 자체도 인정하지 않는다. 참 잔인하다. 그런데 그들의 입에는 늘 부공3은 사람을 아끼지 않는다거나 복음 운동을 고려하지 않는다고 한다. 북한이 수백 만 명을 죽인 전쟁을 일으켜 놓고도 남한을 향해 노동자가 경찰에게 늘 탄압을 받는 비인륜 반인권 국가라고 선전하는 모습과 같지 않을까? 큰 것도 보고 작은 것도 함께 봤으면 한다.
나는 한국의 교단을 보통 5-600개로 잡는다. 200개 되는 총공회 내에 내 눈에 실제 총공회는 10개쯤 된다. 부공3 안에도 3명 목사님들이 따로 모여 그들만 총공회라고 자부한다. 그런데 그 3명은 각자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난다. 1명이 1개 교단으로 봐도 된다. 회비를 따로 모으고 회의를 따로 하며 임원을 따로 선정을 따로 한다면 교단 형성의 필요 충분 조건이 되지 않을까? 이 조건을 엄하게 적용한다 해도 총공회 안에는 현재 최소 5개다. 한국 교단은 2-300개에 그칠 수는 없다. 일단 파악 자체가 불가능하다. 최근 나뉜 교단 중 교세가 상대적으로 불리하면 실체 공개를 극구 거부한다. 교회의 의미조차 모르기 때문이다.
(교계의 사회적 역량과 활동)
불교는 조계종 하나가 거대 세력으로 전국 불교를 대변하고도 남는다. 천주교와 원불교는 교세가 적지만 내부 통제가 독재 수준이어서 분열이 없어 각종 선거나 사회 활동을 통해 그들의 이익을 잘 챙기고 있다. 천주교는 잘 알 것이고, 원불교는 로스쿨 배정에 원광대학을 포함 시켰고, 군종에도 끼어 들었다. 원광대학은 특수대학원을 모두 가진 유일한 대학이다. 약대 치대 의대 한의대 로스쿨까지 다 가지고 있다. 서울대조차 한의대는 없다. 종교단체가 비록 규모가 작아도 단결을 하게 되면 영향력은 엄청 커진다. 한국 사회를 좌지우지하는 민노총도 불과 1백 만 명이다. 합동이나 통합 교단이 독자적으로 250만명이 넘는다. 감리교나 순복음도 100만 명을 쉽게 넘긴다. 이런 교세를 가지고 우리 사회의 별별 이익 단체가 우리 사회 전체를 상대로 이권을 챙기는 모습을 볼 때 기독교는 '단합'의 힘을 실감하였다.
이익을 챙겨 오는 문제로 단합하기는 어렵지만 코로나에 교회 문만 폐쇄를 시킨다든지 목사 월급에 세금을 거두며 교회 재정을 꿰차려 한다거나 낙태법과 전도 금지법처럼 교회로서 더 이상 물러 날 수 없는 법과 규제가 들어 오는데 심지어 각 교단의 핵심 이익이 되는 신학교나 각종 학교의 운영을 틀어 쥐게 되자 교계의 지도자들일수록 이런 문제에 심각성을 더 잘 알기 때문에 기독교의 연합회 운동을 전개해 왔다. 모이면 다시 흩어 지고 흩어 지면 여러 개의 단체들이 난립해서 자멸하고 세월이 지나면 대동 단결을 앞 세워 다시 한 단체가 되지만 한 단체가 되어 힘을 가지는 그 순간 그 힘을 대표 1인이 혼자 다 누리는 모습을 다른 사람이 두고 보지 못한다. 교단 자체의 사분오열도 거의 다 그런 문제였고 각 교단의 벼슬은 그냥 둔다 해도 기독교 연합회들도 같은 모습이다.
(교회의 힘은 무엇인가?)
대통령이 교회 지도자를 청와대로 특별히 초청을 하고, 각종 청탁을 들어 주고, 장관 등의 추천에 영향을 미치고, 그로 인해 교회가 사회로부터 각종 국고 사업을 인수하거나 대행하면서 엄청 난 돈과 기회를 가지기도 하고 교회를 향해 들어 오는 각가지 규제를 막아 내는 것을 통해 교회는 교회의 힘을 느낄 수가 있다. 이 것이 모든 기독교 단체의 발표와 행동과 기독교 언론들의 소식이며 각 교회들과 목회자들의 경력도 그런 면으로 전개가 된다. 교회의 힘이란 그런 것인가?
마10:16에서 주님은 우리를 두고 양이라고 하셨고 우리를 이리 가운데 보냈다고 하셨다. 그렇다면 오늘 한국 교회를 둘러 싼 한국 사회는 교회에게 이리가 아닐까? 한국 사회의 법, 규제, 정부, 정권, 공무원, 코로나 등등의 온갖 문제를 두고 성경은 이 모든 것을 궁극적으로 교회의 신앙을 향해 틈을 노리고 있는 이리라고 했다. 세상 자체나 그 제도나 사람 자체가 이리라는 말이 아니라, 신앙을 모르는 세상이란 자기들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의 신앙을 삼키고 해칠 수밖에 없으니 '뱀처럼 지혜롭게, 비둘기처럼 순결'이라는 방어법으로 신앙을 지켜 내라는 것이다.
교회의 힘이 민노총처럼, 여당 야당의 광화문 데모대 동원처럼, 의사 간호사의 업무 거부처럼, 판사들의 사표 운동처럼, 또는 불교계의 전국 사찰 출입문을 걸어 닫고 방문객을 거부하는 것처럼 하는 것일까? 전국 교회가 예배 거부를 하면 세상이 좋아할까 겁을 낼까? 전국 목사가 자격증을 문화관광부 종교과에 반납을 하러 가면 종무국에서 겁을 먹을까 속으로 참 감사하다 라고 할까? 목사와 찬양대가 전국적으로 설교와 특송을 거부하고 침묵한다면 이리 떼가 겁을 내고 설교 좀 하시라고 할까? 아니면 전국 1천 만 기독교인이 광화문을 점령하고 불을 지르며 난동을 부리면 지방의 어느 도시처럼 폭동이 민주화가 되고 반란이 구국의 열사 운동으로 바뀌어 질까? 아니면 귀신이 자기 손발이 되었다며 환영을 할까?
이리 떼 속에 양을 보냈는데, 양떼들이 대표단을 구성해서 이리 두목을 만났다면 기독교 언론이 일제히 홍보를 해 주고...
이리 떼 속에 양이라는 것이 신앙의 본질인데, 양들이 이리들과 청와대에서 국회에서 시장실에서 언론사에서 사진을 찍고...
양들이 떼를 지어 이리를 몰아 세우니 이리들이 겁이 나서 확인서를 써 주고, 양해 각서를 발표를 한다? ....
이 것이 동물 농장의 이야기인가, 전설인가, 신화인가, 미신인가... 아니면 현재 이 나라 한국 교계가 하고 있는 짓일까?
교회의 힘은 주님에게 더 가까이 가는 거리만큼 강해 진다.
교회의 교세는 진리에 맞고 말씀으로 자기를 꺾는 것이다.
교회의 본질은 세상에게 맞으며 당하고 못을 박히는 것이다.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마10:16...
세상이 교회를 힘으로 밀다가 타협해서 협의적으로 해 보자고 회의장으로 불러 낸다. 일부는 타협하고 일부는 단속한다.
이 모든 세상의 행위는 전부 우리의 신앙을 삼키는 덪이고 궤휼이고 미끼다. 뱀 같이 지혜롭다? 속지 않는 것이 지혜다.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뱀의 삼키는 궤술을 피하고 벗어 나고 이기려다 보면 우리 속이 뱀처럼이 아니라 뱀이 되어 버린다.
저 세상과 언제 어떻게 얽힌다 해도 우리의 내면은 오로지 성령에 붙들려 진리에 깨끗하고 성령에 밝은 상태라야 한다.
교회의 힘,
교회의 실력,
교회의 대처라는 것은...
세상과 겉 모습이 결과적으로 비슷할 수 있다. 그러나 교회의 본질, 교회의 내용, 교회의 방향은 세상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개와 사람이 입으로 밥 먹는 것은 같다. 그 외에 다른 것은 다 다르다. 나무와 사람이 햇빛을 필요로 한다. 그 면은 같다.
그러나 사람과 나무가 태양이 필요하다는 사실 하나 때문에 먹는 방식이 같고 공간의 이동까지 같을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시청에도 시장님이 있고, 국회에도 의장님이 있다. 교회에는 장로님도 있고 당회장님도 있다. 비슷한가? 비슷하다.
같은가? 같아 보이지만 그 내용을 보면 본질적으로 다르다. 세상은 우리의 신앙을 삼키는 이리다. 우리는 그 속에 양들이다.
양에게 구원은 이리 속에서 찾지 못한다. 타협도 도주도 전투도 모두 불가능하다. 결과는 같다. 떼죽음뿐이다. 양의 구원은?
주님뿐이다. 주님께 달려 가는 것이다. 주님과 손을 잡는 것이다. 주님과 동행하는 것이다. 주님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다.
주님이 적어 주신 말씀, 그 말씀으로 사는 것이 주님에게 달려 가는 것이고 주님의 도움을 받는 방법이다. 왜? 이리 때문에...
양이란 이리를 무조건 이길 수 없다. 그러나 양에게는 주인이 있다. 이리 때문에 더욱 목자를 찾아야 한다. 달려 가야 한다.
목회자에게 세금을 걷겠다면?
교회가 떼거리로 모여 면세를 요구하기 전에 세상이 세금을 거두려 해도 목사의 월급도 저금도 재산도 없으면 문제가 없다.
목회자들이 뒷돈은 챙겨 놓고 일반인도 내는 세금을 내지 않으려고 버티다 보니까 이겨도 지고 져도 지는 결과만 나온다.
세상이 교회의 장부를 들여다 보겠다면 교회의 회계 지출을 정부가 본 이상 정부의 돈을 보태지 않을 수 없게 하면 된다.
현재 세상 법은 경제든 건강이든 너무 어려운 국민은 도울 의무가 있다. 교회를 조사하면 도움 받지 못한 사례가 나온다.
우선 목사 가정부터 저소득 수급 대상으로 입증이 될 것이고 목사 가정의 기초 생활비를 국가가 지출하는 문제가 생긴다.
교회가 세상에게 조사해 달라고 부탁을 해도 세상이 손해를 볼까 싶어 도망을 가도록 만드는 것이 이리를 이기는 것이다.
코로나 때문에 예배를 막고 나섰다.
교회와 예배를 막고 나선 것은 세상이 죽을 짓을 했다. 그러나 교회로서는 제 나라의 정부가 조사하는 경험을 통해
앞으로 적대국이 적대적으로 교회를 없애려고 신사참배 때처럼 6.25 때처럼 들이 닥칠 때를 지금 미리 연습할 기회다.
돈을 줘서라도 모의고사를 치러 봐야 하고, 실전 같은 훈련을 해야 하고, 전지 훈련도 해야 하는데 이왕 해 주니 좋지 않은가?
마26:52에서 검을 가지는 자는 검으로 망한다 하신 '검'이란 교회의 진리 운동이 아니라 세상의 전법을 말한다.
세상의 전법은 신앙의 생명을 해친다. 교회가 세상의 데모, 연판장, 연합운동, 피켓 들기라는 검을 잡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