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백번 고쳐 죽겠다는 성삼문.. 일천 년 되돌아 보겠다는 이 노선 - 고사목을 보며
외부에서 방문하는 분들이 예배당의 현관 앞에 고사목을 눈여겨 봅니다. 그 때마다 설명을 합니다.
2015년 11월에 예배당을 마련하면서 교인 한 분이 현관 입구에 농장의 '주목'을 옮겨 심었습니다.
적게 잡아도 수천 만원을 넘기던 특별한 나무였습니다. 시세가 좋을 때는, 1억 홋가가 있었습니다.
이 나무는 옮겨 심고 1년을 넘기며 말라 죽었습니다. 말라 죽은 나무가 그 자리를 버티고 있으면 '고사목'이라고 합니다.
옮긴 나무는 뿌리가 내릴 때까지 갓난 아이처럼 약하게 해서 먹이고 또 잎을 통해 발산을 억제해야 생존할 수 있습니다.
같은 시골에서 평생 농사 짓고 산 다른 교인이, 곡물은 거름을 많이 하면 잘 자란다는 것만 알고 거름을 듬뿍 줬습니다.

교인 한 분이 돌아 가신 만큼 원통했으나 이 일을 통해 실행 없이 지식만 너무 앞 서 가면 신앙이 말라 죽는 이치였습니다.
죽은 나무니 바로 없애려는 것을 사정을 해서 남겨 뒀습니다. 비싼 나무가 죽었으니 나무를 보면서 늘 배워고 싶었습니다.
이 나무를 보존하는 더 큰 이유는 '죽어 천년을 가도!' 지켜 내야 할 우리 교회의 설립과 백 목사님 사후의 사명 때문입니다.
이 연구소와 부공3의 중심이 되어 있는 신풍교회는 그 설립이 손양원 사후에 주님 오실 때까지 그 노선을 지키자고 했고,
백 목사님 사후에는 공회의 이 노선을 지켜 내는 중심이 되면서 최후가 되겠다는 뜻을 전 교인이 함께 각오를 했었습니다.
살아서만 아니라, 죽은 후 천 년! 그 천 년 세월을 더 주신다 해도 훗날 돌아 보면 이 노선은 그럴 가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현재 모든 교인은 이 나무를 보며 예배당에 들어 갑니다. 들어 갈 때마다 '죽어도, 죽어 1천 년이 지난다 해도!'
모두가 이 약속을 기억하는지 마음 속으로 늘 묻고 있습니다. 모두가 잊었을까? 소리 없는 우리의 결심입니다.
이 나무의 밑 부분을 둘러 놓은 돌은 예배당의 주차장 둘레 전체를 감싸고 있는 화단에 돌들 중에 일부입니다.
손 목사님의 순교 직후 가족들이 애양원 사택을 후임에게 내어 드리고 새로 살던 집을 해체할 때 나온 돌입니다.
이 돌집에서 신풍교회가 개척 되었고 훗날 이 집은 매각이 되어 최근 해체 될 때 이 돌들을 교회로 가져 왔습니다.

사진이나 화면을 통해 흔한 덕유산의 주목입니다. 죽어 천 년을 간다는 이 모습을 특히 고사목이라고 합니다.
덕유산은 전국에 눈이 제일 많은 곳입니다. 연구소의 부공3이 집회를 하는 거창의 내계에 맞은 편에 있습니다.
성경의 번역도, 찬송가의 가사도, 교회의 교리도 노선도 급하면 바꾸고 이제 부부도 쉽게 바꾸는 시대입니다.
신앙이란 처음부터 영원 불변의 하나님께서 우리를 길러 가기 때문에 자라 가면서 변화 되는 것은 성장이지만,
어떤 성장에도 불구하고 절대 바꿀 수 없는 본질이 있는 법이니 무조건 지켜 내야 하는 것을 노선이라 합니다.
나무를 통해 천 년이라는 세월이 지나 가도 바꾸지 않고 견디며 지켜 내는 신앙의 노선이라는 것이 있겠는가?
영원 불변의 나라를 바라 보면서 이 땅 위에서부터 변치 않는 것은 따로 뽑아서 구별해 보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자라 가면서 변화 되는 성장이라는 것은 우리의 생명성을 말합니다. 바꿀 수 없는 것은 우리의 노선일 것입니다.
오늘 잘못 된 것은 바로바로 고치면 성장에도 좋고 영원히 변치 않는 신앙의 길일 터이니 함께 찾고자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