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순반란사건, 반란이 아니라 억울했다며 둔갑하다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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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01 11:58
1948년 여수의 국군 14연대 내 좌익이 반란을 했고 여수 순천을 휩쓸어 막대한 사람이 죽었다. 이를 '여순반란사건'이라 했다.
좌익 쪽에서 수십 년을 노력했고 이제 '반란'의 꼬리표를 떼고 반란을 일으킨 쪽이 억울했다며 되레 보상을 받게 되었다.
앞으로 인민군으로 죽은 사람도 남한 정부가 전사자로 훈장 주고 보상해 주겠지. 이렇게 다 뒤집다가 어느 날 또 뒤집히겠지.
그래서 세상은 인생의 가는 길을 之라고 적었다. 좌로 > 우로 > 다시 좌로 > 다시 우로... 좌우좌우 계속 뒤집으며 가게 된다.
이 노선이 이 문제를 주목하는 것은 최근 이 나라 만사가 다시 좌측의 끝까지 가고 있으니 또 우측으로 온다는 것보다는
여수 순천의 100리길에 딱 중간에 다른 길도 없이 거쳐야 하는 병목에 '신풍'이 있고 그 대로에 처음 세운 곳이 '신풍교회'며
공회의 이 교회가 시작한 것은 여순반란사건에 2명 아들이 죽고 그 여파에 손양원이 2년 후 순교함으로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상은 '사건'으로 뒤집어도 신풍교회에게는 여전히 '반란사건'이고 공회 신앙이란 지역에 상관 없이 같은 입장이다.
공회 모든 것이 설교록에 있다. 이 설교의 전부는 다시 목에 칼을 들이 댈 세력은 좌파 공산주의니 이를 대비하자는 것이었다.
이 연구소를 운영하는 부공3에, 연구소와 공회를 지도한 사이트 본부에도 좌파를 주창한 핵심이 있고 주변은 그를 비호했다.
따라서 이런 글은 과거 동인 동신 손양원처럼 내부인에 의하여 고발 되고 목이 떨어 질 때 내부 고발을 각오하며 적고 있다.
주님이 그렇게 당했고 앞 선 순교자들 대부분이 그러했고 공회의 역사도 그러했으니 이 곳인들 방향을 유지하면 마찬 가지다.
손동인 손동신을 처형한 여수 순천의 좌익 세력들, 그들은 1명 2명이 아니다. 수도 없이 많았다. 그들은 며칠 뒤에 진압 됐다.
그 집압 과정에 판사의 영장을 발부 받아 체포를 해야 했는가? 반란사건을 토벌하며 교통법규를 지키지 않은 것이 죄였던가?
바로 이 점을 파고 들며 좌익들은 그 때 불법 진압이었다고, 그래서 집압이 불법이었다고, 그래서 좌익은 억울하게 당했다고.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몹쓸 나라이고 몹쓸 불법을 자행했기 때문에 여수 순천에 억울한 사람은 보상을 받아야 한다고?
귀신의 논리, 세상으로 말하면 좌파의 간교, 심지어 이렇게 법을 제정하여 사실을 뒤집은 배후는 거의 교계 지도자들이다.
교계 지도자들 중에서도 한신대 계열의 기장은 극히 일부고 대부분이 그들 스스로 정통 보수를 주장하는 통합측이 문제다.
어쨌든 법이 제정 되었다. 그러나 신풍교회는 신앙적으로 교회 연혁적으로 그리고 이 노선의 그 분위기 때문에 또 외친다.
코로나 때도, 저작권 때도, 노곡동 철거의 그런 우스꽝스런 부공1과 2의 광우병 같은 난리 때도 우리는 늘 그 모습 그대로다.
신풍교회 게시판에 이런 글을 올려 놓고 전체 교인들께 입장을 밝혔다.
신풍교회 교인 중에는 일부 가족은 여순 반란 사건에 우익 쪽이라고 피살을 당했다. 많은 분들은 좌익의 선봉에 섰었다.
그런데 우익도 좌익도 중간에 애매했던 분들도 신풍의 73년 전과 이후를 생활 속에 서로가 전부 그 당시를 세세히 안다.
반란사건이다. 여수 순천 지역을 무대로 반란군이 반란을 일으켰고 지방의 좌익이 반란에 가담하여 우익을 처단했었다.
죽인 쪽도 죽인 것을 자랑스러워 하지 않고 그런 운동에 나섰던 것을 탄식하며 살았다. 신풍 교인이야 더욱 더 그러했다.
그런데 동네 주변에 1인당 몇억씩 보상이 나올 듯하다며 대한민국의 국군에게 토벌 된 사람은 억울하다고 밝히라고 한다.
우스운 일은 조사를 맡거나 조사를 알선하는 쪽이다. 그냥 대충 다 그렇게 넘어 갈 분위기다. 뒤로는 회비를 거두고 있다.
여순사건만 이런 식으로 조사하며 보상을 하는 것일까? 전국의 토지 보상 때마다 전국의 보상 실무와 대처 요령은 상식이다.
정치적으로 이런 법이 나오면 이 법을 만든 세력이 힘이 있고 그 흘러 가는 분위기가 있기 때문에 보상은 마구 쏟아 지게 된다.
그렇게 해 봐야 교회 돈이 나가는 것이 아니라 세상 나라, 그들의 돈이 나갈 뿐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 교회를 향해 나서면?
그 때는 그 칼의 끝이 나와 교회와 이 노선을 향하면 부공2는 번개처럼 발을 뺄 분들이다. 참 날래기도 그렇게 순식간에!
부공1은, 대구공회는... 그 동안 처신하고 조처해 온 역사를 보면 수에 칠 가치조차 없다. 마지막에 남는 것은 늘 하나뿐이다.
'나는 독립으로'
'무언의 용사로'
'주님만 모시고'
그리고
그리고 그 후가 문제다. 정말 끝까지 가겠는가? 이 것은 오늘의 각오로 되는 일이 아니다, 가 봐야 안다. 꺾일 수도 있다.
그런데 꺾이기 전에 아직은 폭풍이 불기 전이다. 불기 전에 미리 다 도망을 갔으니 폭풍에 견딜지 안 견딜지 볼 것도 없다.
부공3, 이 곳만 총공회 전체를 통해 총공회 노선이라고 밝혀 진 사안을 두고는 혼자만 걸어 왔다.
신풍교회, 이 곳만 여전히 그렇게 걸어 왔다. 그리고 신풍교회와 동지 된 교회들은 아직도 그렇게 걷고 있다.
신풍교회 교인? 이 곳은 투표 때만 되면 놀랍게도 거의 좌파나 좌파를 동조하는 쪽에 몰표를 준다. 그런데 신풍교인이다.
늑대에게 몰표를 주는 토끼.
이들을 과연 토끼라고 할 수가 있나? 그런데 평소에 늘 토끼 우리 안에서도 가장 토끼다운 신앙으로 똘똘 뭉쳐 있다.
그러다가 밖에서 늑대 소리만 나면 전부 밖에 나가서 열렬히 환호를 한다. 누구 죽은 곳에 촛불 들고 울고 오는 분들도 많다.
교회의 제일 중심 제일 핵심에 계신 분은 내게 직접 자기는 진보 좌파라고 스스로 밝힌다. 그런데 신풍교회의 중심교인이다.
나는 그들에게 설교 때마다 미리 양 쪽의 한 쪽에 서지 않으면 손양원을 잡아 준 인물이 밖이 아니라 내부라고 당부를 한다.
그런데 그런 분들은 자기가 죽지 왜 목회자를 넘기겠냐고 자신을 할 듯하다. 자신 한다고 자신 한 대로 되는가? 그렇지 않다.
출처 : 신풍교회
제목 : 여순사건 10.19특별법의 국회 통과와 교회 입장
오늘 대한민국 국회가 1948년의 '여순반란사건'을 '여순10.19사건'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특별법으로 보상하게 됩니다.
이 법은 여순 반란 사건 과정에 공산 좌익의 반란을 돕다가 처벌 받은 사람까지 억울하게 되었다며 보상을 해 줍니다.
우리 신풍교회는 여순반란사건 때 손양원 목사님의 2명 아들인 손동인 손동신의 순교와 이어 진 6.25사변에 순교한
손양원 목사님의 신앙을 잇는 자세로 1952년에 개척한 교회입니다. 따라서 우리 교회는 이 법의 취지를 반대합니다.
그렇다 해도 세상이 만든 법이니 이 법 자체를 반대할 수는 없습니다. 오직 신앙 때문에 그 취지를 반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일제 시기에 일본 사람이 만든 법도 반대하지 않습니다. 그 것이 손양원 신앙이고 그 것이 신풍교회 노선입니다.
마찬 가지로 우리는 대한민국 전복을 위해 반란을 일으킨 여순 사건을 반대하지만 그렇다고 총 들고 막지는 않습니다.
또 세월이 바뀌었다 해서 그 반란군을 돕다가 처벌 받은 사람을 억울한 사람으로 보상하는 법도 역시 그냥 지켜 봅니다.
이 곳에 이 글을 적는 것은, 우리 교회 주변의 여론은 손양원 손동인 손동신의 순교를 그렇게 칭송해 놓고는 돌아 서서
이들을 죽인 이들을 진압한 것이 잘못된 것처럼 또 진압을 하면서 불가피하게 발생한 일을 가지고 사건을 뒤집어 놓고
이제 당시 반란군을 돕고 반란군과 함께 교인들을 처형한 인물들을 마치 국가 유공자처럼 대우하고 보상하는 이런 일에
신앙인으로서는 앞으로 또 총칼로 반란을 일으켜 우리를 죽일 이들이 훗날에 다시 유공자가 될 꿈을 가지게 되겠다며
걱정하는 것입니다. 인간적으로는 신풍에서 배출한 순교자들을 처형한 이들을 잘했다고 하는 것은 찬성할 수 없습니다.
교회란, 세상이 앞으로 가든 뒤로 가든 지켜 볼 뿐이고 법으로 강제하면 성경에 죄가 아닌 이상 반항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알고 있어야 앞 날에 신앙도 지킬 수 있고 또 신앙을 지키기 위해 무슨 위험을 각오해야 할지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아무리 세상 일이라 해도 우리의 손으로 그런 나쁜 법을 만들 때 지지해 놓고 뒤에는 몰랐다 하면 참 곤란합니다.
예수님을 처형할 때 모든 군중이 멋도 모르고 처형하라고 외쳤습니다. 그 말 한 마디에 따른 역사적 저주는 컸습니다.
우리 교인들 중에서도 이런 법을 찬성하느라고 무척이나 노력한 분들이 계실 터인데 신앙적으로는 돌아 서야 합니다.
이 글 때문에, 또는 이런 글을 적는 그런 노선과 신앙 때문에 손양원 목사님과 두 아들이 걸었던 고난고 처형의 그런 일이
우리에게도 어느 날 닥칠 수 있고, 그런 날은 오늘 갑자기 닥친다 해도 별로 이상하지도 않을 만큼 이 곳은 그렇습니다.
평소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분위기에 휩싸여 다니다 자기 손으로 제 부모를 처형하는 그런 법을 지지하지 않기 바랍니다.
교인이 교회 처벌하라는 법을 소리 높여 지지하는 것은 심각하게 다시 생각하기 바랍니다.
손양원 목사님과 두 아들이 순교할 때 그들을 잡아 준 이들은 멀리 있지 않았습니다. 신풍 안에 있었고 친구들이었습니다.
오늘의 가룟 유다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좌익 쪽에서 수십 년을 노력했고 이제 '반란'의 꼬리표를 떼고 반란을 일으킨 쪽이 억울했다며 되레 보상을 받게 되었다.
앞으로 인민군으로 죽은 사람도 남한 정부가 전사자로 훈장 주고 보상해 주겠지. 이렇게 다 뒤집다가 어느 날 또 뒤집히겠지.
그래서 세상은 인생의 가는 길을 之라고 적었다. 좌로 > 우로 > 다시 좌로 > 다시 우로... 좌우좌우 계속 뒤집으며 가게 된다.
이 노선이 이 문제를 주목하는 것은 최근 이 나라 만사가 다시 좌측의 끝까지 가고 있으니 또 우측으로 온다는 것보다는
여수 순천의 100리길에 딱 중간에 다른 길도 없이 거쳐야 하는 병목에 '신풍'이 있고 그 대로에 처음 세운 곳이 '신풍교회'며
공회의 이 교회가 시작한 것은 여순반란사건에 2명 아들이 죽고 그 여파에 손양원이 2년 후 순교함으로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상은 '사건'으로 뒤집어도 신풍교회에게는 여전히 '반란사건'이고 공회 신앙이란 지역에 상관 없이 같은 입장이다.
공회 모든 것이 설교록에 있다. 이 설교의 전부는 다시 목에 칼을 들이 댈 세력은 좌파 공산주의니 이를 대비하자는 것이었다.
이 연구소를 운영하는 부공3에, 연구소와 공회를 지도한 사이트 본부에도 좌파를 주창한 핵심이 있고 주변은 그를 비호했다.
따라서 이런 글은 과거 동인 동신 손양원처럼 내부인에 의하여 고발 되고 목이 떨어 질 때 내부 고발을 각오하며 적고 있다.
주님이 그렇게 당했고 앞 선 순교자들 대부분이 그러했고 공회의 역사도 그러했으니 이 곳인들 방향을 유지하면 마찬 가지다.
손동인 손동신을 처형한 여수 순천의 좌익 세력들, 그들은 1명 2명이 아니다. 수도 없이 많았다. 그들은 며칠 뒤에 진압 됐다.
그 집압 과정에 판사의 영장을 발부 받아 체포를 해야 했는가? 반란사건을 토벌하며 교통법규를 지키지 않은 것이 죄였던가?
바로 이 점을 파고 들며 좌익들은 그 때 불법 진압이었다고, 그래서 집압이 불법이었다고, 그래서 좌익은 억울하게 당했다고.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몹쓸 나라이고 몹쓸 불법을 자행했기 때문에 여수 순천에 억울한 사람은 보상을 받아야 한다고?
귀신의 논리, 세상으로 말하면 좌파의 간교, 심지어 이렇게 법을 제정하여 사실을 뒤집은 배후는 거의 교계 지도자들이다.
교계 지도자들 중에서도 한신대 계열의 기장은 극히 일부고 대부분이 그들 스스로 정통 보수를 주장하는 통합측이 문제다.
어쨌든 법이 제정 되었다. 그러나 신풍교회는 신앙적으로 교회 연혁적으로 그리고 이 노선의 그 분위기 때문에 또 외친다.
코로나 때도, 저작권 때도, 노곡동 철거의 그런 우스꽝스런 부공1과 2의 광우병 같은 난리 때도 우리는 늘 그 모습 그대로다.
신풍교회 게시판에 이런 글을 올려 놓고 전체 교인들께 입장을 밝혔다.
신풍교회 교인 중에는 일부 가족은 여순 반란 사건에 우익 쪽이라고 피살을 당했다. 많은 분들은 좌익의 선봉에 섰었다.
그런데 우익도 좌익도 중간에 애매했던 분들도 신풍의 73년 전과 이후를 생활 속에 서로가 전부 그 당시를 세세히 안다.
반란사건이다. 여수 순천 지역을 무대로 반란군이 반란을 일으켰고 지방의 좌익이 반란에 가담하여 우익을 처단했었다.
죽인 쪽도 죽인 것을 자랑스러워 하지 않고 그런 운동에 나섰던 것을 탄식하며 살았다. 신풍 교인이야 더욱 더 그러했다.
그런데 동네 주변에 1인당 몇억씩 보상이 나올 듯하다며 대한민국의 국군에게 토벌 된 사람은 억울하다고 밝히라고 한다.
우스운 일은 조사를 맡거나 조사를 알선하는 쪽이다. 그냥 대충 다 그렇게 넘어 갈 분위기다. 뒤로는 회비를 거두고 있다.
여순사건만 이런 식으로 조사하며 보상을 하는 것일까? 전국의 토지 보상 때마다 전국의 보상 실무와 대처 요령은 상식이다.
정치적으로 이런 법이 나오면 이 법을 만든 세력이 힘이 있고 그 흘러 가는 분위기가 있기 때문에 보상은 마구 쏟아 지게 된다.
그렇게 해 봐야 교회 돈이 나가는 것이 아니라 세상 나라, 그들의 돈이 나갈 뿐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 교회를 향해 나서면?
그 때는 그 칼의 끝이 나와 교회와 이 노선을 향하면 부공2는 번개처럼 발을 뺄 분들이다. 참 날래기도 그렇게 순식간에!
부공1은, 대구공회는... 그 동안 처신하고 조처해 온 역사를 보면 수에 칠 가치조차 없다. 마지막에 남는 것은 늘 하나뿐이다.
'나는 독립으로'
'무언의 용사로'
'주님만 모시고'
그리고
그리고 그 후가 문제다. 정말 끝까지 가겠는가? 이 것은 오늘의 각오로 되는 일이 아니다, 가 봐야 안다. 꺾일 수도 있다.
그런데 꺾이기 전에 아직은 폭풍이 불기 전이다. 불기 전에 미리 다 도망을 갔으니 폭풍에 견딜지 안 견딜지 볼 것도 없다.
부공3, 이 곳만 총공회 전체를 통해 총공회 노선이라고 밝혀 진 사안을 두고는 혼자만 걸어 왔다.
신풍교회, 이 곳만 여전히 그렇게 걸어 왔다. 그리고 신풍교회와 동지 된 교회들은 아직도 그렇게 걷고 있다.
신풍교회 교인? 이 곳은 투표 때만 되면 놀랍게도 거의 좌파나 좌파를 동조하는 쪽에 몰표를 준다. 그런데 신풍교인이다.
늑대에게 몰표를 주는 토끼.
이들을 과연 토끼라고 할 수가 있나? 그런데 평소에 늘 토끼 우리 안에서도 가장 토끼다운 신앙으로 똘똘 뭉쳐 있다.
그러다가 밖에서 늑대 소리만 나면 전부 밖에 나가서 열렬히 환호를 한다. 누구 죽은 곳에 촛불 들고 울고 오는 분들도 많다.
교회의 제일 중심 제일 핵심에 계신 분은 내게 직접 자기는 진보 좌파라고 스스로 밝힌다. 그런데 신풍교회의 중심교인이다.
나는 그들에게 설교 때마다 미리 양 쪽의 한 쪽에 서지 않으면 손양원을 잡아 준 인물이 밖이 아니라 내부라고 당부를 한다.
그런데 그런 분들은 자기가 죽지 왜 목회자를 넘기겠냐고 자신을 할 듯하다. 자신 한다고 자신 한 대로 되는가? 그렇지 않다.
출처 : 신풍교회
제목 : 여순사건 10.19특별법의 국회 통과와 교회 입장
오늘 대한민국 국회가 1948년의 '여순반란사건'을 '여순10.19사건'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특별법으로 보상하게 됩니다.
이 법은 여순 반란 사건 과정에 공산 좌익의 반란을 돕다가 처벌 받은 사람까지 억울하게 되었다며 보상을 해 줍니다.
우리 신풍교회는 여순반란사건 때 손양원 목사님의 2명 아들인 손동인 손동신의 순교와 이어 진 6.25사변에 순교한
손양원 목사님의 신앙을 잇는 자세로 1952년에 개척한 교회입니다. 따라서 우리 교회는 이 법의 취지를 반대합니다.
그렇다 해도 세상이 만든 법이니 이 법 자체를 반대할 수는 없습니다. 오직 신앙 때문에 그 취지를 반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일제 시기에 일본 사람이 만든 법도 반대하지 않습니다. 그 것이 손양원 신앙이고 그 것이 신풍교회 노선입니다.
마찬 가지로 우리는 대한민국 전복을 위해 반란을 일으킨 여순 사건을 반대하지만 그렇다고 총 들고 막지는 않습니다.
또 세월이 바뀌었다 해서 그 반란군을 돕다가 처벌 받은 사람을 억울한 사람으로 보상하는 법도 역시 그냥 지켜 봅니다.
이 곳에 이 글을 적는 것은, 우리 교회 주변의 여론은 손양원 손동인 손동신의 순교를 그렇게 칭송해 놓고는 돌아 서서
이들을 죽인 이들을 진압한 것이 잘못된 것처럼 또 진압을 하면서 불가피하게 발생한 일을 가지고 사건을 뒤집어 놓고
이제 당시 반란군을 돕고 반란군과 함께 교인들을 처형한 인물들을 마치 국가 유공자처럼 대우하고 보상하는 이런 일에
신앙인으로서는 앞으로 또 총칼로 반란을 일으켜 우리를 죽일 이들이 훗날에 다시 유공자가 될 꿈을 가지게 되겠다며
걱정하는 것입니다. 인간적으로는 신풍에서 배출한 순교자들을 처형한 이들을 잘했다고 하는 것은 찬성할 수 없습니다.
교회란, 세상이 앞으로 가든 뒤로 가든 지켜 볼 뿐이고 법으로 강제하면 성경에 죄가 아닌 이상 반항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알고 있어야 앞 날에 신앙도 지킬 수 있고 또 신앙을 지키기 위해 무슨 위험을 각오해야 할지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아무리 세상 일이라 해도 우리의 손으로 그런 나쁜 법을 만들 때 지지해 놓고 뒤에는 몰랐다 하면 참 곤란합니다.
예수님을 처형할 때 모든 군중이 멋도 모르고 처형하라고 외쳤습니다. 그 말 한 마디에 따른 역사적 저주는 컸습니다.
우리 교인들 중에서도 이런 법을 찬성하느라고 무척이나 노력한 분들이 계실 터인데 신앙적으로는 돌아 서야 합니다.
이 글 때문에, 또는 이런 글을 적는 그런 노선과 신앙 때문에 손양원 목사님과 두 아들이 걸었던 고난고 처형의 그런 일이
우리에게도 어느 날 닥칠 수 있고, 그런 날은 오늘 갑자기 닥친다 해도 별로 이상하지도 않을 만큼 이 곳은 그렇습니다.
평소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분위기에 휩싸여 다니다 자기 손으로 제 부모를 처형하는 그런 법을 지지하지 않기 바랍니다.
교인이 교회 처벌하라는 법을 소리 높여 지지하는 것은 심각하게 다시 생각하기 바랍니다.
손양원 목사님과 두 아들이 순교할 때 그들을 잡아 준 이들은 멀리 있지 않았습니다. 신풍 안에 있었고 친구들이었습니다.
오늘의 가룟 유다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