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내가 선 곳, 돌아 보며 또 돌아 본다. - 공회사를 중심으로

남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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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판에는 이 홈에 올려진 글 중에 이곳에서 따로 소개하고 싶은 글도 포함됩니다. 

현재 내가 선 곳, 돌아 보며 또 돌아 본다. - 공회사를 중심으로

담당 0 1
(1987년 8월 15일)
서영준 목사님의 사망일이다. 그 분은 당시 39세였다. 백 목사님 생전에 백 목사님이 공회 후계자로 유일하게 거명했던 분이다. 백 목사님 자녀들 중에 목사님의 후계자를 꿈꾸던 가족들은 나의 입을 쳐다 봤다. 나는 가족 전체를 가족 이상으로 알면서 가족이 아니라는 점 때문에 유일하게 객관성을 가진다. 7명의 자녀 중에 4명은 후계자였거나 후계자가 될 마음을 비췄다. 한두 가지 아쉬운 점만 해결한다면 후계자가 되고도 남을 분이다. 그 한두 가지를 해결하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은 치명적 단점이었다. 나는 고쳐 질 가능성은 없다고 봤다. 백 목사님이 직접 지목한 서 목사님, 그 분에게도 아쉬운 점들은 있다. 그런데 그런 점은 말 그대로 그냥 아쉬울 뿐이었다. 모든 면으로 백 목사님을 이을 신앙과 자질과 능력과 실적을 갖춘 분이었다. 이 분은 사위라는 점 때문에 괜히 남들의 오해를 받기 때문에 참으로 이 점이 아쉬웠다. 귀신은 이 분의 평생 뒤를 따라 다니며 '백 목사님도 세습 시키네'라는 말 하나로 공회 내부의 거의 전부를 삼킬 것이다. 생전에 이미 그러했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부터 그러했다. 그 분은 전남 장흥 쪽 분이다. 지역 출신으로는 공회에서 아주 불리하지만 이 분은 지역색을 쉽게 그리고 깔끔히 초월했기 때문에 누구도 그 문제로 시비하지는 못했다.

1986년 6월 29일, 곧 공회를 탈퇴할 어느 목사님이 그 지역 사회에서 중대 범죄로 의혹을 받고 있었고 나는 공회 대표로 관련 자료를 모았고 또 현지 주민들과 공회 교인들을 면담하러 현지에 갔었다. 모든 혐의는 의혹이 아니라 사실로 드러 나고 있었다. 이 날 그 목사님을 직접 사택으로 찾아 갔다. 별별 이야기가 있었고 내게 무참하게 당한 그 분은 일어 서서 나가는 내게 서 목사님의 출생 지방을 언급했다. 내 속에 의심에 씨앗을 심기 위한 것이겠지.. 나는 돌아 온 뒤 확인해 보지도 않았고 오히려 새롭게 안 사실 때문에 더 존경하게 되었다. 백 목사님 장례 후 전기를 적는 과정에 목사님과 가족들 전체의 학적부 호적부 족보까지 세세히 살피는 과정에 확인은 했으나 그 사실 때문에 나는 지금도 그 쪽 주변 분들을 접하게 되면 이 노선의 후계자를 배출한 지역으로 존경심을 담고 대화한다.




(후계자가 없는 시대, 오늘을 살며)
다윗에게는 솔로몬, 모세에게는 여호수아, 엘리야에게는 엘리사를 후계자로 주셨다. 이렇게 주신 시대는 후계자를 통해 전임자의 은혜에 후계자의 은혜까지 더하여 챙기면 된다. 감사할 일이다. 바울처럼 베드로처럼 그리고 그 수 많은 성경의 위대한 인물들처럼 후계자를 주지 않고 그들을 불러 가면 그들이 간 다음에도 살아 가야 사람들은 어떤 자세라야 할까? 낙망은 아닐 것이고, 용감하게 나간다고 될 일도 아니다. 나는 후계자를 주지 않은 시대를 살게 되면 한 사람을 통해 다시 한 시대를 이끌지 않고 앞에 인물에게 배운 모든 분들이 후계자의 일부를 떠맡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백 목사님은 생전에 책임자를 지목한다 해도 그 직책 자에게게 무엇을 맡기지 않았다. 장로 아닌 사람이 장로보다 나으면 장로 이상으로 대우한다. 반사가 부장보다 나으면 반사를 부장보다 더 대우한다. 교인이 목회자보다 나은 교회가 있다면 목사님은 그 교회를 두고 의논할 때 그 교인과 의논했다. 목사님이 서 목사님을 후계자로 세운다면 일단 목사님 사후의 출발 순간에는 혼란을 최소화 하고 또 새 출발에 엄청난 혜택이 주어 진다. 공회의 분위기가 그렇다. 그런데 어떤 권리를 주고 후원을 한다 해도 목사님은 세월 속에 후계자가 후계자답지 않게 된다면 후계자의 위치와 권위가 저절로 사라 지게 한다. 후계자 축에 들어 갈 수 없는 사람이 후계자처럼 잘 하면 저절로 그에게 후계자 위치와 권위가 주어 지도록 해 놓는다. 이 것이 백 목사님과 공회의 기본 체계다. 참 특수하다. 참 좋아 보인다.

죄 되지 않으면, 또한 꼭 바꾸어야 할 필요가 없으면 이 노선은 우직스럽게 옛 것을 고수한다. 그러나 꼭 바꿀 필요가 보이면, 그리고 그 필요가 확실하다면, 바로 바꾼다. 대단히 개혁적이다. 말로만 말하는 개혁 혁신 진보... 말고, 정말 공회만큼 개혁적인 곳이 있을까? 나 알기로는 세상에도 없고 종교계에도 없고 교계에도 없다. 공회는 오늘 처음 출석한 사람의 의견이, 정말 그 의견이 옳기 때문에 따라 가야 한다는 점이 명확하면 그의 의견이 마치 군주의 지시처럼 반영 되도록 한다.

나는 백 목사님을 가깝게 아는 가족들과 서부교회 핵심 권사님들과 몇몇 직원들 사이에 후계자 이름에 올랐었다. 그들은 백 목사님이 지목하는 후계자를 마치 평양의 후계자처럼 또 우리 주변의 회사나 세상 조직의 후계자처럼 알고 있었다. 나는 생전부터 목사님의 입에서 나오는 후계자란 후계자의 실력과 실적을 갖춘 만큼 후계자 되는 것이고, 그렇게 되라고 격려하는 것으로 알기 때문에 그런 표현을 들을 때 나뿐 아니라 그런 표현을 듣는 주변 모두에게 하는 말인 줄 알고 있었다. 조직신학처럼, 내 이름이 명시되면서 발표가 된 것이라 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내게 그럴 자격이 있느냐고 묻는 분들에게 내게 묻지 말고 당신이 공회가 인정할 조직신학을 발표하면 그 사실이 바로 백 목사님이 부탁한 실상이 되는 것이라고 말해 왔다. 지금도 그렇다.




(여러 문제로, 현재 좌표를 또 돌아 본다.)
나는 현재 어디쯤 서 있는가? 지도로 말하면 내가 있는 곳의 좌표를 말한다. 목사님이 후계자를 남기지 않고 가신 지 33년째가 된다. 최근에 유독 오늘의 공회들과 과거 전성기였던 1980년대의 공회를 비교해 본다. 다른 공회들은 너무 많이 바뀌었다. 본질을 바꾼 것이 많다. 내가 속한 공회는 본질은 바꾸지 않았으나 곳곳에 변형은 적지 않다. 이 변형 된 부분을 가지고 늘 고민해 왔다. 개선인가, 개악인가, 주변에 피동 되면서 탈색이 된 것인가...

어떤 것 하나라도 바꿀 때는 80년대의 총공회를 기준으로 더 좋게 더 좁게 더 잘 되는 방향으로 바꾸어 왔다. 시무투표를 찬반만 표시했으나 지금은 적을 수 있는 환경이어서 항목별로 평가를 덧붙였다. 부공1 쪽은 이렇게 하는 경우 변질이라고 입에 거품을 문다. 말하자면 검정 양복에 007 가방을 든 십수 명의 청년들이 예고도 없이 사무실에 들이 닥쳐 조폭처럼 살벌한 분위기를 만든다. 실제 있었던 일이다. 그들을 이끌고 온 이들이 지금도 부산공회1과 4의 지도부들이다. 그들은 이미 공회 본질은 물론 겉 모습까지 떠난 지 오래다. 그들보다 부공2는 더 일찍 모습과 본질을 바꿨음에도 불구하고 복구풍이 공회 사업에 더 낫다고 판단을 했는지 요즘은 새끼양처럼 아주 고풍스러운 공회 모습을 연출한다. 나는 이런 모습을 볼 때는 신앙 없을 때 뱉고 다닌 표현으로 평가해 버린다. 바로 이런 면 때문에 평소 얻은 점수를 모다 다 까 먹는다.

5월 집회는 백 목사님 생전에도 잘 믿는 가정의 몇몇 아이들만 참석했다. 현재 내가 속한 공회는 웬만하면 다 참석한다. 참석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다. 최근만 아니라 목사님 사후부터 30여 년 계속 그렇게 해 왔다. 목사님 생전의 공회가 세월을 더 지나 간다면 어떻게 더 좋아 졌을까? 이 것이 내가 노력하는 목표다. 어떤 것은 그렇게 되었고 어떤 것은 기본 신앙과 실력이 따라 가지 못해서 그렇지 못하다. 실력이 한 달란트여서 그런 것은 하나님의 책임이니 내가 알 바가 아니고, 내가 받은 것이 둘이나 다섯 달란트가 되는 분야는 나는 조금씩 더 공회답게 걸어 왔다고 평가를 한다. 그리고 세월을 되 돌아 보니 그 발전과 향상의 거리가 굼뱅이 구르는 정도다. 그래서 서영준 목사님과 같은 후계자가 내게는 마음 깊이 뜨겁게 아쉬움을 남긴다. 그 분이 계셨다면 지금과 질과 양으로 비교할 수 없는 공회가 되었을 것이다. 그 분이 빠지면 그 옆에 다른 분들이 순차적으로 빠져 버린다. 그렇게 빠진 모습이 2013년의 저작권 고소로 드러 났다. 그 때도 그 분이 참 아쉬웠다. 그 분이 아쉬울 때마다 그 분의 빈 자리에 오늘 나와 이 글을 읽는 우리에게 그 자리를 맡고, 그 자리를 서라는 부탁으로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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