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노선의 '연구' 자세와 진행의 방법론

남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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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판에는 이 홈에 올려진 글 중에 이곳에서 따로 소개하고 싶은 글도 포함됩니다. 

이 노선의 '연구' 자세와 진행의 방법론

담당 2 1
최근 이 곳의 연구 작업에 부탁할 분이 있어 오간 대화입니다.
이 곳의 자세이며 이 노선의 기본 방향과 내용을 파악할 수 있는 내용이어서 함께 공유합니다. 이런 것을 공회라 합니다.



* 연구소 > 교인

(형식 없는 실제 진행)
시간을 갖고 필요한 부탁을 하나씩 해 가면서 맞춰 갔으면 합니다. 우리는 발령, 근무 출근, 서류 보고, 기록을 따로 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오가는 대화가 발령, 근무, 업무, 보고, 기록이 됩니다. 목사님 생전 서부교회와 공회가 일제 때부터 세계적인 교회가 될 때도 늘 그랬고 우리도 그렇습니다.

다만 최근의 수백 건 고소 고발에 전과까지 받게 되면서 지금은 법적 문제가 생길 정도의 몇 가지만 절차나 기록화를 하여 이전 교인들은 의아해 하고 불편해 합니다.

공회는 말하자면 사람에 따른 우선 순위나 위치 대우 대신에 현재 맡은 업무의 중요도에 따라 우선 순위와 위치 대우를 합니다. 내계 운영을 맡은 목회자는 조사님이라 해도 내계 운영 건에 대해서는 다른 목사님들보다 모든 면에서 확실하게 전권 행사를 합니다. 백 목사님 생전에 특수반 책임자나 제가 20대 초중반에 서부교회와 총공회 전체를 통해 각자 맡은 분야는 백 목사님의 제1 부목이나 수석 목사 정도로 활동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연세 많은 분들에게 교만하다 건방지다는 말을 들었지만 타고 난 부족은 할 말이 없고 업무 집행에는 지장을 받아 본 적이 없습니다.


(저와 대화 자세)
이 노선은 실제로 '절대 진리'를 추구하기 때문에 외부에서 비판해 줄수록 환영하고 우리를 고치고 우리가 배울 기회로 봅니다. 동시에 내부의 의견도 비판이든 대안까지 항상 그렇게 상대합니다. 첫 교인의 첫 발언이나 제일 오래 된 목회자의 권위나 '정확성'만 놓고 살핍니다. 인간적 예절 등의 사회성은 신앙의 연구나 교회 운영에 지장 없는 범위에서 최소한으로 유지합니다.

특히 연구소와 글이나 대화나 연락 등의 관계는 업무상 필요한 정도로 유지하면 됩니다. 인사, 예절, 배려가 지나 치게 끼어 들면 해야 할 사명이나 업무에 지장이 있습니다. 간단히 오가는 연락에 '예'라는 글이 따로 필요하지 않으면 그냥 읽었다는 표시만 나는 것으로 대신하면 좋고, 내용에 따라 꼭 표시를 해야 할 때만 '예' '아니라' 표시하면 됩니다.

언제든지 의견이 있을 때는 선생님의 발언은 적극적이면 더 좋습니다. 외부에 지적을 받아서라도 배우고 고쳐야 한다는 자세 때문입니다. 한 가지 문제에 대해 끝까지 연구소와 의견이 다른데 선생님이 선생님의 의견이 맞다고 생각하면 그 의견이 발표할 기록에 본문으로 올라 가고 연구소의 우려는 각주 처리를 할 수도 있습니다. 선생님 글이 우려 정도의 가치가 있으면 각주 처리를 합니다. 선생님 의견을 각주 처리할 가치가 없으면 표시도 하지 않는데 이럴 때 선생님은 그 사안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면 별도로 연구소 사이트 '발언'이나 '연구'로 발표할 수 있습니다. 학자들의 세계에서는 선생과 제자, 선후배 사이에 이렇게 하면 자존심 문제가 깔리면서 원수 관계가 되는 단초가 되는데, 연구소 직원들은 목사님 생전에 목사님 교리 곳곳에 반론을 가장 많이 했었습니다. 다만, 외부 다른 분이 아니라 목사님께 직접 제기 했습니다. 우리가 이해 될 때까지 반복했습니다. 제기 한 것 중에 어떤 것은 목사님께서 주일 오전 설교 시간에 공식적으로 정정한 것도 있었고 그럴 정도가 아닌 것은 자연스럽게 반영하셨습니다. 이런 것은 단순 실수인데 그냥 두면 훗날 오해를 크게 일으킬 것으로 봤습니다. 제기한 것 거의 전부는 저희의 이해 부족이었고 세월 속에 해결이 되었습니다.

우리 자신이 그렇게 걸어 왔고 그 것이 신앙이고 그 것이 모두에게 좋은 길인데, 공회 분위기가 이렇게 해야 하는데도 이런 식의 대화가 좀 서툰 편입니다. 어떤 교인과는 10여년 전에 너무 지나 칠 만큼 반복을 많이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는 그 분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글을 많이 적었습니다. 이제 그 분과 서로 아는 사이라 단순 반복이 될 상황이면서 사안이 시급하지 않은 것은, 그 정도에서 숨을 멈추고 시간에게 좀 맡겨 놓으면 좋습니다.



(연락 방법)
이전에는 연구소의 업무를 직원용 게시판과 이메일을 사용했는데 최근 카톡이 편리해서 거의 카톡만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메일로 보내야 할 정도의 용량이나 내용이면 카톡에 연락을 표시하고 보내면 좋습니다.



(직업과 업무)
백 목사님은 세계 10대 교회가 되기 직전까지도 서부교회 담임 목사 1인이 월급을 받으며 교회 전체를 맡았습니다. 나머지 업무는 일반 교인들이 분담했기 때문에 교회 운영비를 아꼈습니다. 이런 추세 때문에 저희들은 목회자들이 각 교회를 맡으면서 연구소 업무를 분담하고, 일반 교인들은 자기 생활을 하면서 연구소 업무를 분담합니다.

연구소 운영을 평소 이렇게 하기 때문에 교회나 공회나 연구소 때문에 업무를 특별히 맡는 분들의 가정에 경제 문제가 생기면 연구소에서 현금 지출보다는 최대한 기초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살펴 드렸습니다. 아이들의 교육 문제로 경제가 문제가 되면 그런 면도 좀 살폈습니다. 목회자나 교인이나 기본 생활만 해결 되면 남는 시간에 연구소 일을 도와 달라는 취지로 운영해 왔습니다. 뜻은 이러했지만 목회자들은 교회 일이 우선이 되고 교인들은 막상 직업을 갖게 되자 직장에 붙들려 교회 생활만 빠듯이 하는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연구소 일과 자기 직업이나 생활에 주력하는 문제를 두고 어디에 어느 정도 쏟느냐는 것은 각자 자기 결정으로 정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모아 진 역량을 합한 것이 공회의 역량이면서 그 개인의 신앙 역량입니다. 각자 자기 생활과 자기 신앙에 바쁜 상황이어서 연구소의 중요한 일은 많이 미루어 졌지만, 꼭 필요할 때는 연구소가 부탁하면 즉각 움직일 분들은 많습니다.

업무 중에 1명이 일일이 확인하거나 처리하기 어려운데 '단시간'에 조처해야 일이 있으면, 연구소가 여러 교회의 교인들께 업무 분담을 급하게 부탁합니다. 그렇게 하면 바로 해결이 됩니다. 업무 상 혹시 필요하면 제게 부탁하면 됩니다.

2009년에 이인재 목사님의 필라델피아 본가에 가서 자료를 많이 받아 온 적이 있는데, 한 주간만에 데이타 처리를 하고 돌려 보내자 이인재 목사님 자녀 분이 고려신대원에 보냈던 자료의 처리와 비교가 되지 않는다면서 따로 보관한 자료 일체를 본 연구소로 다 보내 주셨습니다. 천안 고려신대원에 따로 간 자료가 있다는 것을 알고 우리가 자료화한 것을 신대원에 먼저 보내 드리면서 그 쪽 자료를 우리가 자료화 한 다음에 공유하자고 했으나 그 쪽에서는 무슨 규정 무슨 절차 때문에 공개를 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흐지부지 된 것이 많습니다. 그래서 그 쪽에서 이 쪽을 아마 제대로 상대하는 것이 어려울 것입니다.



(첫 과제 : 성령론 파악)
지금 성령론을 백영희조직신학 차원에서 요약하고 있습니다. 우선 우리가 기억하는 조직신학 책은 '벌콥' '하지' '박형룡' '버즈웰' '기독교강요' 정도입니다. 성령론에 대한 별도 편제가 없거나 미미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체계는 '삼위일체'나 '기독론' 정도의 성령론을 말합니다.

세계 기독교사적으로 볼 때 20세기 초반까지의 학자들은 정통 학자로 칠 수가 있고 20세기 중반 이후의 학자는 발달 된 도서 출판 정보를 가지고 취합하여 만든 2차 정보로 상대하기 때문에 제가 거의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만일 의미 있는 성령론이 있다면 당연히 참고할 것이고,

'성령론'의 기존 출간 도서가 있다면 추천해 주셨으면 합니다. 연구소는 성경만 가지고 일단 제가 원하는 분야를 최대한 적은 뒤, 외부 것은 이후에 비교합니다. 공회의 진리 추구 원칙입니다. 백 목사님 설교록을 교인들에게 처음부터 철저히 읽도록 부탁하는 것은 성경을 대하는 자세와 은혜 때문입니다. '신앙의 정리'라는 개념은 말하자면 '신학'이 되는 것이니 이런 정리 단계에서는 성경 하나만으로 자기의 체계를 갖춘 뒤, 다른 것과 비교해서 체계 자체가 더 좋은 것이 있으면 배우고 적용합니다. 그렇지 않고 남이 정리한 것을 일반 학문의 공부처럼 학습하고 배워 나가다 보면 그 아류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 것이 말하자면 세상 모든 학문의 방식인데 이공계는 방식이 어떻든 결과를 따로 도출하면 되지만 인문 사회 쪽은 문학적 표현에 그치기 때문에 방식 자체를 무조건 배우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기존 것에 시각까지 점령을 당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자기 시대에 주시는 하나님의 새로운 인도를 따라야 할 때 기존 깔린 인식이 역작용을 일으킵니다. 주님이 오셨으면 주님이 말씀 하는 대로 받아 적으면 아무 문제가 없는데 바리새인들이 구약에 내려 온 전승의 시각과 전제를 가지고 주님을 맞다 보니 일일이 충돌이 되었습니다.

칼빈주의 역사도 마찬 가지입니다. 칼빈은 성경 하나로 그에게 들이 닥친 16세기 초반의 천주교를 반박하면서 신앙을 체계적으로 정리했습니다. 그 것이 기독교 강요였습니다. 이 책이 너무 좋다 보니 그 제자들은 이 책을 가지고 성경을 읽었고 그 후 시대도 또 그 이후 시대도 계속 반복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며 주님은 전혀 다른 현실을 과제로 주시는데도 오로지 천주교가 천하를 지배하던 16세기 이전만을 그들의 현실로 상대하며 기독교 강요라는 방패로만 막고 그 창으로만 천주교를 찔렀습니다. 그렇게 하면 자기 교회가 바로 될 줄 알았습니다. 이미 16세기 이전의 천주교는 묘지에 갔고 17세기 천주교와 18세기 천주교는 기독교에게 힘을 쓸 수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16세기 이전에 천주교를 앞 세워 기독교를 유린했던 귀신은 17세기 18세기에는 기독교 안에 다른 이름과 다른 운동과 다른 방식으로 다시 기독교를 통째로 삼키려 곳곳을 포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 유명한 기독교 강요와 칼빈의 방식만으로 16세기 이전의 천주교만 상대하려 든 것이 소위 개혁주의입니다. 개혁주의의 개혁을 잘못 알면 어제의 천주교는 이기고 오늘 기독교 안에 들어 온 천주교에게는 속수무책 당합니다. 1950년의 북한 공산당은 38선을 탱크로 밀고 왔지만 오늘의 휴전선 너무 탱크는 움직일 기름도 없는 대신 서울의 좌파를 통해 남한의 문화와 정권과 법원을 모두 공산화를 시켜 현재 낙동강까지 밀렸던 1950년 8월보다 오늘은 더 점령을 당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면을 백 목사님은 일찍 간파했습니다. 백 목사님 외에 이런 면을 간파한 경우는 제가 아직은 보지 못했습니다. 이 노선은 칼빈 것을 받아 내려 오면서 오늘에 새로 나타나는 오늘의 천주교와 오늘의 귀신들을 상대하다 보니 당연히 칼빈의 기독교 강요에서 당시 밝힐 필요가 없었던 마음의 세계를 더 분석했고 마음 속에 마음과 영을 구별해 냈으나 칼빈의 16세기만 붙들고 내려 오는 이들은 칼빈이 맡은 그 시대를 감당한 것 이상으로 나가지 못했다고 봅니다.



현재 연구소의 모든 노력은
집회 교재든 어떤 것이든 다 이런 식입니다. 목사님 생전부터 공회는 공회 내에 체계화 된 출간 자체가 없었습니다. 있다면 전부 이 연구소에서 시작했습니다. 목사님은 설교만 남겼고 연구소에 정리를 맡기기 위해 1982년에 설교 편집 출간을 맡겨 놓고 곧 바로 '연구소' 이름을 붙여 놓았습니다. 우리는 그 이름을 왜 그렇게 붙였는지 그 당시는 몰랐습니다. 세월 속에 우리는 설교록을 전하는 한 편 체계화를 했습니다. 이 체계화가 오늘과 또 다른 후 시대를 주님이 주신다면 어느 시점에 또 후배 교인들이 그들 시대를 향해 앞에 체계화 된 것은 참고만 하고, 성경만 가지고 그들 시대를 새로 상대해야 할 일이 있을 것입니다. 그 것은 현재까지 그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아마 우리 평생 연구할 진리의 세계가 많을 것입니다.

'성령론'의 편제를 살펴 보려면 주변의 신학 대학교 도서관 정도에서 살피면 충분할 듯한데, 갈 수 있다면, 쉬는 날 시간을 내서 가시고 현장 일을 제쳐 놓고 가야 할 바쁜 일이 있으면 그런 날은 일당으로 남을 시킬 수 있다면 연구소에서 비용 지출을 하겠고 본인이 아니면 안 될 때는 일정이 그렇다고 이야기를 해 주시면 좋습니다. 주변 대학에서 책을 뒤지며 목차나 해당 페이지를 휴대폰으로 찍어 대략 정보를 심부름 할 교인은 항상 많습니다. 그럴 때 선생님이 가지 않아도 선생님이 어디 가서 어떻게 찾으면 된다고 가르쳐 주고 중간에 막힐 때 한두 마디 하면 될 것으로 보입니다. 도서 목록은 최근 인터넷으로 국내 대학 도서관 전체 목록이 나와 있기 때문에 검색을 통해 살펴도 되고, 수도권이든 어디든 직접 가서 찾을 필요가 있으면 공회나 연구소 회원 중에 부탁할 분들이 있습니다. 전국 어디든 보낼 수 있습니다. 아는 분이 시키면 심부름 할 정도는 됩니다. 이런 분들도 남는 시간에 가면 그냥 다녀 오시고 교통비나 일당을 따로 드릴 만하면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연구소로서는 '성령론'의 편재가 현재로서는 궁금합니다. 기독론이나 삼위일체론처럼 조직화가 되어 있는지, 소제목까지 볼 수 있는 목록과 책 분량을 알 수 있다면 대략 짐작을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성령론은 올해 내내 양성원이나 평소 설교를 통해 진행할 것이고, 체계화는 가을이나 내년에 될 일입니다. 따라서 이 부탁 내용은 한 주간이면 좋고 한 달이라도 좋습니다.


(집회 교재 단톡)
현재 집회 교재를 위한 전체 연락처를 사용하도록 서기에게 부탁하겠습니다. 집회 교재 단톡은 8월 집회를 위해 교재의 목차만 잠깐 초안을 잡아 놓았는데, 이 초안에 다른 분들의 의견을 물어 가며 교재화 하는 과정입니다. 지켜 보시면 연구소가 하는 모든 연구 작업의 진행 모습입니다. 성령론도 그렇게 될 것입니다.

참고로, 2018년 이전에는 혼자 며칠이면 책 1권에 해당 되는 내용을 거의 끝내고 한두 달이면 구체적으로 내용의 정확성을 살핀 뒤에 출간하는 방식이었으나 1명 주도란 건강에도 무리가 되고, 또 이어 지는 분들을 위해 2018년부터는 일부러 이런 단계를 밟고 있습니다.
신학생 2021.05.25 14:56  
"성령론"출간에 대한 개인적 의견 입니다.

이번에 "하나님의 단순성" 교리를 살펴 보면서, 교부시대 때부터 중세 종교개혁 종교개혁이후 근대 현대까지 정통신학에서 "하나님의 단순성"을 논의하고 있음을 영미권 역사신학 책에서 확인을 했습니다.

현재까지 파악한 바로는 공회의 단일성교리가 더 깊은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아직 제가 공회의 하나님의단일성 교리에 대하여 전체적으로 세부적으로 설명된 글은 보지 못하고, 영의 단일성과 관련하여 설명한 글만 조금 보았습니다.
그래서 공회의 하나님의 단일성에 대한 교리도 전체적으로 세부적으로 보았으면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죄론에 대하여서도 청교도는 죄의 본질을 "하나님에 대한 적대감 반감"(하나님과 원수)으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청교도의 죄론과 공회의 죄론을 구홈페이지에서 담당자님이 비교하신적이 있으십니다.

성령론은 청교도에서 제가 눈여겨 보는 책이 있는데, 현재 저의 판단으로는 공회의 성령론과 비슷한 방향이라 생각이 됩니다. 청교도는 누구보다 성화를 강조한 노선이어서, 성화와 성령론이 많이 연결된 것 같습니다.
개혁주의내에서 불건전한신비주의가 아니고, 성령의능력역사와 바른성령세례에 대하여서도 이야기 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아직 제가 총체적으로 세부적으로 보지 않았기에
정확히 이렇다 저렇다 말할 수 없지만...

공회의 성령론에 대한 초안이 나왔다면 여기 홈페이지에 올려주시면 청교도의성령론과 비교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물론 청교도는 이분론과 기본구원 범주에서 모든 교리가 전개되어서, 공회와 깊이는 차이는 나겠으나
기본적으로 청교도는 성화를 강조했기에 공회의 성령론과 청교도노선의 성령론을 함께 비교해보면 좋지않을까 생각이 되어져서 글을 올립니다.

지금 적은 저의 글의 판단이 잘못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신학생 2021.05.25 16:23  
그리고 지방교회의 성령론도 알아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지방교회는 백목사님을 전혀 접하지 않고, "삼분론 - 구원을 법리적구속 /유기적구원" 구분하였는데

거듭난 영,  유기적구원과
사람의 하나님됨(동방정교회 교리와 비슷)에 대하여 강조를 하는 것 같습니다.

지방교회는 공회와 인론과 구원론이 비슷한 부분이
많기에 성령론도 일맥상통 하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 부분 확인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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