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의 경력

남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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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판에는 이 홈에 올려진 글 중에 이곳에서 따로 소개하고 싶은 글도 포함됩니다. 

신학의 경력

담당 0 1

(신학에 대한 공회의 근본 인식)

말씀을 듣는 것으로 그치면 자기 귀를 즐겁게 하고 남을 비판하는 율법이 된다. 말씀은 말씀으로 살 때 사는 만큼 자기에게 복음이 된다. 공회가 강조하는 기본 철칙이다.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하지 성경 외적으로 해석하는 신학적 접근은 참고만 할 뿐이다. 그래서 공회는 신학 과정을 목사 될 사람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구경으로 그친다. 이런 공회의 자세를 '시찰'이라고 한다. 신학은 성경의 사람이 한 번 둘러 보는 시찰로 그치라고 부탁한다.


1983년 5월 집회 직전 주간에 예배당의 옆 쪽 출입문에 있던 연구소, 그 방은 교회의 연장 창고였으나 편집실로 막 개조한 상태였다. 문 앞을 지나 가시던 목사님이 미국에 신학 공부 좀 하고 오라 하셨다. 목사님의 설교를 집중하던 시기였고 한 설교로 여러 차례, 때로는 10여 차례를 검토하며 말씀의 세계에 아주 빠져 있던 상황이어서 신학은 평소 하지 말라 하셨지 않느냐고 대꾸를 했다. 공회에서 한 사람은 갔다 와야 하기 때문이라 하셨다. 서영준 목사님이 계시지 않느냐고 말씀을 드렸다. 서울대 법대 행정학과를 공부한 분이고 사시 1차 합격 후 서부교회 중간반을 맡고 청주에 막 목회를 나가는 전환기에 계셨다. 서 목사님은 바빠서 안 된다고 하셨다. 그 분은 실력이 있고 나는 중1 영어조차 어려울 정도였다.


(신학 과정을 거치고)

엄한 지시는 거의 하지 않는 분인데 너무 단호하여 83년 5월 집회 직후부터 1년을 공부했고 84년 5월에 미주리 세인트루이스에서 St. Louis U.와 Covenant 신학교를 86년 5월까지 바쁘게 대충대충 거치고 돌아 왔다. 관광이야 잘 했지만 그 시간들은 너무 아까왔고 허무했다. 요즘 세상 말로 '이러려고 이 바쁘고 귀한 세월을 쏟았나'라는 마음뿐이었다. 87년 8월에 서 목사님이 갑자기 돌아 가셨다. 그 때야 그 분에게는 공회와 서부교회의 후계자로서 사명이 있고 그런 위치에 그런 실력을 넘치게 가졌지만 하나님께서 이 땅 위에서 데려 가실 시간이 촉박했기 때문에 해외 유학을 거칠 만한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 경력을 가지고 와서 사용할 시간도 없었던 것이다. 당시 백 목사님은 그런 앞 날을 아셨을까?


그 분은 만사를 결정할 때 신앙의 본능과 자신이 처한 환경을 고려하여 신앙으로 판단한다. 그렇다 해도 그 분은 마지막에 주님의 최종 답을 꼭 듣는 분이다. 이론적으로 계산적으로는 아무리 서 목사님이 다녀 오는 것이 공회와 서부교회의 앞 날을 위해 필요하다 해도 그 분을 데려 갈 시간이란 성경과 신앙의 여러 상식으로 판단할 일이 아니다. 그래서 만사를 늘 주님께 기도하며 그 인도를 받는다. 바로 이 면 때문에 그의 모든 결정은 교리적으로 성경적으로 신앙의 상식과 원리적으로 다 맞는 동시에 좀 애매하게 결정을 내릴 때는 마음에 그 어떤 다른 면을 보셨다고 짐작을 한다. 오랜 세월 많은 일들을 겪어 보며 그런 애매한 결정들이 있었는데 훗날 훗날 세월이 지나 가면 그의 모든 결정은 사람이 할 수 없고 주님이 알려 주셔야 하는 결정으로 내려 왔었다.


내게 유학을 가라 하면서 서영준 목사님은 시간이 없다 하실 때, 나는 전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만사 모든 면으로 그 분이 가면 맞고 내가 가면 도저히 맞지를 않는다. 결과적으로 내가 갔고 그 분은 곧 돌아 가셨다. 그 분이 돌아 가신 후 나는 그 분이 설 자리에서 오늘까지 내려 왔다. 그 분이 살아 계시고 이 위치를 지켜 왔다면 서부교회와 공회는 오늘처럼 되지 않고 백 목사님 생전과 비교 될 정도였을 듯하다. 그를 데려 가고 그 자리에 나를 두시는 순간, 공회와 서부교회는 오늘처럼 이름만 남고 실제로는 그냥 없어 진 정도가 되었다. 그리고 오늘까지 내가 걸어 온 이 수준 이 처지 이 규모 이 정도의 결과에 그쳐 버렸고 이 것이 공회에 대한 주님의 현재까지 뜻이다. 그러니 하나님의 이런 결정에 뭐라 말할 수도 없다. 앞으로는 몰라도 현재까지는 이 노선을 겨우 생명만 유지 시키고 있다.


(집회를 두고)

감사할 일이 참으로 많다. 서 목사님이 계셨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규모로도 은혜로도 얼마나 넘쳤을까 라는 생각이다. 그 생각이 드는 만큼 참석한 교인들에게 미안한 마음이다. 못난 것을 세웠으니 난들 어떻게 하느냐, 이렇게 대꾸 한다면 세상일 것이다. 나는 한 없이 죄송해야 한다. 그러나 교인들로서는 강단의 수준이 그런데 그 이상을 요구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것이라고 위로를 해야 맞다.


개최 자체가 가능할까? 가능했다. 그래서 감사하다.

진행 자체가 가능할까? 진행이 되었다. 그래서 또 감사하다.

안 배운 말씀을 중심에 두고 말씀만 전할 터인데 가능할까? 아이들까지 재독 때 이상으로 잘 따랐다는 점에서 감사하다.

시국도 그렇고 그 분 사후 33년인데 아직도 이 노선을 고수하는 집회에 올 분들이나 계실까? 생전처럼 유지 되니 감사하다.


공회들은 나뉘어 있어도 이 노선은 고수 되면 좋겠다.

세월이 아무리 가고 세상 환경이 아무리 급변한 상황이지만 여전히 신앙이란 이 노선이 맞다는 것이 갈수록 더 증명이 된다.

우리는 원래 몇 되지 않는다. 그 범위로 비교하면 공회의 전성기의 최소 모습은 유지 되고 있다.

그러나 서부교회와 대구공회처럼 총공회 전체를 대부분 차지하던 곳이 그렇게 되어야 총공회의 외부 모습도 좋아 진다.


한 편으로는 주일까지 열 감기 문제가 보고되지 않아야 5월 집회를 실제 종료할 수 있다.

집회 기간을 일단 무사히 마치며 남은 날까지와 8월의 집회를 우리 모든 공회들이 함께 이 시대를 맞서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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