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회의 집회 장소, 20년 사용의 의미
백 목사님 생전의 마지막 전성기에 총공회는 5월의 대구 집회에 5천명 모이고, 8월의 도평 집회에 1만 5천명이 모였다.
이 때의 은혜는 평생 어디서 신앙 생활을 해도 늘 그 때를 생각하면 사도행전 2장의 초대교회적 은혜로 간직할 것이다.
이 은혜 때문에 그 장소는 예루살렘 성전을 건물로 육체로 지키려 했던 유대인처럼 공회인들에게도 그런 경향이 있다.
충분히 이해를 한다. 은혜가 크면 그 때의 장소와 분위기 그리고 그 때 모인 사람과 추억 그 자체까지도 참석의 은혜다.
백 목사님 사후 대구와 거창의 2 곳 집회의 주소와 건물과 집회의 연례 개최를 장악하는 것이 공회 장악처럼 여겨 졌다.
이로 인해 수 많은 충돌이 생겼으나 연구소를 운영하는 부공3은 분쟁이 격화 될 상황으로 판단하고 집회를 따로 열었다.
교회의 소속과 예배는 제명을 당하고 밀려 나면 나오지 자기 발로 걸어 나올 수 없으나, 집회는 고수할 성격은 아니다.
평소 교회와 예배와 신앙 생활을 보충 하기 위해 모이는 특별 집회이므로 은혜 대신 분쟁이 격화 된다면 달리 할 수 있다.
부공3은 신풍의 뒷산에서 1993년부터 1998년 5월까지 부공3의 주력 교인들과 30여 명에서 150여명까지 함께 하다가
1998년 5월 집회 이후 동천교회가 함께 하면서 그 해 8월부터 신풍 서진 조례 모덕 동천교회가 거창으로 옮겨 개최했다.
은혜 때문에 모이는 집회이므로 다른 공회와 접촉을 우리가 먼저 피해 거창군 완대초등학교에서 2000년까지 하다가
2001년과 2002년에 고제의 개명기도원을 거쳐 오늘까지 부공3의 기도원이자 집회 장소가 되는 내계 집회로 이어 왔다.
지금은 부공3을 비판하지만 얼마 전까지 내계의 부공3 집회 진행을 맡았던 책임자는 전국 공회들이 모두 부러워 한다며
그가 접한 다른 공회 지도자들과 교역자들의 이야기를 늘 전해 줬고 우리 역시 여러 면에서 그렇게 느끼고 운영해 왔다.
모든 것은 은혜였다. 우리 공회는 교회와 교인도 적다. 공회라 하기도 미안할 정도다. 그러나 내용적으로는 가장 좋았다.
연구소 사이트를 통해 실질적으로 총공회 운영을 전담했고 집회나 각 교회 내용이 그래도 원래 공회를 지켜 낼 수 있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집회를 준비하고 있다. 방역 때문에 예배당을 막으면 마당에서 하고 마당을 막으면 마당 밖에서 한다.
교인들이 오지 못하면 강사 혼자 산 속에서 나무와 짐승과 하늘의 구름과 별을 보면서 설교를 하게 된다. 공회가 그렇다.
모든 면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공회의 원래와 중심과 방향을 이어 나가는 곳은 이 곳뿐이다. 그 것이 아프고 몹시 안타깝다.
모든 공회들이 이 곳을 우습게 보며 평소 이 곳이 어리다고 했다. 어른스런 공회들이 우뚝 서면 우리는 그늘에 서고 싶다.
올해 집회 장소를 구입한 지 20년이 된다. 백 목사님 자신도 그의 생전의 집회 장소를 20년 이상을 계속 사용한 곳은 없다.
거창의 도평 집회 장소가 일취월장 발전하고 있던 시절 백태영 목사님은 해마다 새로 텐트를 치려니 어렵다며 호소를 했다.
텐트 치는 밑 자리 1평만 콘크리트를 했으면 했다. 백 목사님은 주님이 언제 오실지 모르니 매번 그 때만 생각하자고 했다.
이 것이 공회의 '재림 준비 자세'다. 그리고 '현실에 충성하고 미래를 설계하지 않는 신본주의'다. 말이 아니라 실제 그렇다.
내계의 집회 장소, 사용한 지 20년째가 된다. 부공3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아 왔다. 이 곳을 거쳐 간 분들이 1천명이 넘는다.
그 분들은 거의 다 각 1명이 10여 명 역량을 넘어 서거나 목회자급이나 아니면 한 교회를 대표할 수 있는 분이 대부분이다.
부공3을 출석하고 부공3 교회에서 신앙 생활 하다 집회까지 참석하는 분들이면 같은 총공회 내에서도 여간 어려운 경우다.
우선 5월 집회는 학교나 사회가 한창 바쁠 때인데 어린 아이들까지 전부 집회를 참석하기 때문에 실제 그렇게 하기 어렵다.
불신 가정 아이들도 대개 참석을 했다. 8월도 마찬 가지다. 그리고 교인 대부분 백 목사님 생전보다 비율적으로 더 많았다.
설교자도 없이 설교책을 읽으며 재독만 하는데도 어린 아이 하나 숨소리가 나지 않는다. 성령이 아니고는 이어 갈 수 없다.
인도자의 능력도 아니고 어떤 기술과 방법도 아니다. 모두가 다 그러했다. 그런 집회 장소에서 벌써 20년을 하게 되는 시점,
주님의 다음 단계가 궁금하다. 모세는 40년씩 3번을 끊어 전혀 다른 길로 인도했다. 믿음의 사람들과 교회들도 그러 했다.
공회도 서부교회도 그렇다. 주님은 우리를 기계처럼 대하지 않는다. 기르고 인도를 한다. 그 과정에 자라 가는 단계가 있다.
야곱이 아버지 집의 시절, 외삼촌 밧단 아람, 돌아 온 가나안, 그리고 마지막 애굽의 생애가 있었다. 요셉도 다윗도 그렇다.
이제까지는 뒤를 돌아 보면 주님의 인도를 확인하는 것은 쉽다. 그러나 눈이 어두운 우리로서 앞을 예측하는 것은 어렵다.
이 때 지혜와 노력으로 앞을 계획하고 추구하는 교회가 있다. 이런 노력을 주님께 맡기고 당장에 충성하는 것이 신앙이다.
공회는 일단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충성 차원에서 힘껏 한다. 그러나 닥친 현실에만 충성하며 일단 한 걸음만 걸어 본다.
이 한 걸음, 그 다음의 순서는 또 다시 한 걸음만 더 내딛어 본다. 주님 중심으로 또 주님의 뜻을 찾으며 그렇게 한 걸음씩.
그리고 그 걸어 온 점들을 이어 보면 눈이 어두운 우리라도 주님이 인도해 가는 앞 날을 조금씩 더 밝게 더 멀리 보게 된다.
집회를 준비하며,
주님의 은혜가 아니고는 진행할 수 없는 공회의 집회를 그려 본다.
인간의 수고로 칭찬 받을 것이 무엇무엇인지도 살피지만 그보다는 인간이 수고하고 노력한다고 되지 않는 것은 무엇일까?
이 소망으로 늘 집회를 기다린다.

지금 자기 형편이 갈 수 없는 상황이라도 가고 싶다 가야 한다 가겠다는 의지의 결단력이면 현실의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꿀 수 있는 분도 우리 주님이시다 우리는 현실에 돌아가는 외모만 보고 집회 참석 여부를 가늠하지만 주님은 네 소원이 무엇이냐 네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먼저는 중심을 묻고 계신다 공회인이라면 5월 집회 참석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생각한다 참석하고 싶은 소망 하나면 그 어떤 직장이나 개인의 불가능한 일정도 가능으로 바꿀 수 있는 분이 우리 주님이시다.
소망은 영생케 한다 마음 가는 곳에 보물도 있다 공회인들에게 있어 5월 집회 참석 여부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거룩한 산 제사, 영적 예배라는 4일간의 특식을 마다할 사람이 있겠는가? 소원만이라도 5월 집회 참석을 소망하면 자녀 세대는 부모의 그 마음을, 그 정성을 보고 자란다 나의, 우리의 사후를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실지, 인도하실지 모르니 집회 때만 다가오면 이런 기대를 품어 본다.
이번에는 어떤 말씀으로 나를 좀 죽여 볼까? 나를 좀 살려 볼까? 죽일 것과 살릴 것, 살아 있지만 죽어 있는, 말 그대로 산 제사다 오늘도 주일 예배를 통해 새로운 마음과 삶의 변화를 그려 본다 개인적으로 집회란, 주일을 더욱 주일답게 만드는 것이 집회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내게 있어 5월 집회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어 있다.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임을 밝히지만, 겉으로는 집회가 주일이 될 수는 없지만 속으로는 집회가 주일만큼 느껴진다 신앙 효과, 내 삶에 미치는 영향력, 신앙의 파급 효과나 그 실효성 면에서는 주일 예배 그 이상이다 새벽 예배의 은혜는 주일 예배로 이어지고 주일의 은혜는 집회로 이어진다 계명으로 주신 주일이라는 중대성의 비중을 다른 예배와 따질 수는 없지만 새벽, 주일, 집회, 산 제사의 모든 영적 예배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매일이 주일이고 모든 예배는 주일 예배처럼 설교를 준비하고 드리는 것이 맞다.
주새 말씀을 듣고 감사한 마음을 적어 본다 참석은 못해도 마음은 늘 그 곳을 향해 있다 자녀(교인)의 일생은 평소 부모(목회자)가 기도한 그 말대로 되게 되어 있다 부모(목회자)가 일상 속에서 자녀(교인)에게 무심코 던진 그 말, 한 마디가 자녀를 죽이기도 살리기도 한다 집회를 참석 못해도 4월 마지막 주만 되면 마음만은 늘 내계 골짝 그 곳에 가 있듯 말이다 전쟁 기간 피를 많이 흘려 거룩한 성전은 못 지었어도 성전 재료를 준비하며 동참을 함께했던, 소원했던 다윗 왕의 마음이 이러했을까? 자녀 세대도 이런 마음이기를... 내일을 위해 오늘 할 일을 찾아 본다.
5월 집회를 사모하는 우리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