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은하철도 999' - 주일학교를 덮친 말세적 환란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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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22 17:03
(주일 아침의 '만화영화')
최근 말세적 현상이 겹치고 겹치는 과정에 자꾸 떠오르는 생각은 '세상이 너무 좋다 보니 교회가 세상 속에 푹 잠겨 침몰을 했다'는 생각뿐이다. 그리고 40여 년 전에 겪었던 전초전이기도 하고 훗날을 짐작할 징조가 될 일을 떠올린다. 원리는 같으니 그때의 환경과 대처했던 경험으로 오늘의 확대되고 짙어진 환경을 분석해 본다.
80년대는 '서부교회의 주일학교' 전성기였다. 실제 전성기는 70년대였으나 남들이 볼 때는 80년대였다. 주일학교는 역사적이며 세계적인 기록을 세웠고 한국의 교계는 물론 세계의 교계에 주목을 받았다. 바로 이 시기 서부교회 주일학교 반사들은 의외의 적을 만나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서부교회와 주일학교의 발전사에서 이 부분이 갖는 의미를 신학적으로 주목한 글은 아직까지 읽어 볼 수 없었다. 공회 내에 박사 학위를 받은 2세대 학자들이 즐비한데도 공회 내의 좋은 논문 제목이나 관련 글들을 거의 접하지 못해서 아쉬움은 크다.
(학자와 논문의 세계)
참고로, 신학계에 새로운 논문이 나온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신학이라는 학문이 세계사에서 워낙 오래 되었고 학자도 많고 기존 발표가 차고 넘치며 지금도 수없는 학위가 남발이 되는 상황에 어느 신학도나 신학자가 의미 있는 논문은 커녕, 의미 있는 논문거리를 잡는 것조차 힘든다고 본다. 올해 난리가 난 '코로나19'는 새로운 주제일 수 있다. 그러나 이 새로운 주제를 두고 세계의 수만 명 신학자들이 한 마디씩 다 적을 것이니 일반 학자로서 여기에 뛰어들어 봐야 자기가 알지 못한 나라의 어느 학자의 논문과 너무 비슷한 글을 적게 될 것이고, 실제 독창적으로 적었다 해도 결과적으로 비슷한 글이 검색되면서 베꼈다는 의심을 피하기도 어려울 듯하다. 공회 소속 또는 공회 출신의 학자라면 공회 내에서 논문거리를 찾아보면 대단히 유리하지 않을까? 사안이 '역사적'인 사례는 허다하다.
(은하철도 999)
주일 아침이 되면 4시 30분 새벽예배를 참석하고 6시 안팎이면 대개 30분 거리에 사는 학생들을 데려오기 위해 달린다. 1시간 조금 넘게 한 바퀴를 돌면서 집집마다 소리를 치며 아이들을 깨운다. 매 주일 아침 어김없이 계속하기 때문에 부모들이 알고 있다. 7시가 넘어가면 안내 방송 차원이 아니라 이제는 출발을 시키기 위해 방문을 열어야 하고 이불 밑에 한 가족이 함께 자는데 아이의 발을 당겨야 한다. 이런 모습을 보며 부모가 웃어 주거나 오히려 미안해서 고개를 돌려주는 아량이 있었다. 지금은 꿈도 꾸지 못할 절정의 시대였다. 나는 이런 시대를 인류사에서 가장 아름답고 귀하게 발전된 시절로 본다. 오늘은 아주 미개하여 몹쓸 세상이라고 생각한다.
아침 8시가 되면 반 아이들이 적어도 집을 나서야 한다. 멀면 먼 대로 가까우면 가까운 대로 지각하지 않거나 지각이라 하기에 애매한 시간에 예배당 안으로 들어 갈 수 있는 시간이다. 만일 여기에서 10분만 더 지체를 한다면 예배 시작 후 10분이 되면서 바쁘게 진행되는 주일학교 오전 예배가 엉성하게 된다. 아이들은 평범한 자세지만 반사는 애가 타고 피가 마른다. 한 주간 기도하고, 한 주간 마음에 품으면서 걱정되는 집은 전화를 하거나 직접 찾아가서 집집마다 살핀다. 그리고 한 주간의 절정인 주일 오전 8시 30분에 예배당 안에 아이를 앉히려면 8시에 아이들이 대문을 나서야 한다. 보통 1개 반에 1명 반사가 1명의 보조 반사를 두며 출석 30~50명에 이를 위해 심방하고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고 방문을 열어젖히며 끌어 와야 하는 학생이 100~150명이다. 그런데 8시가 되면 집집마다 '~ ~ ~ 은하 철도 999 ~ ~ ~' 라는 합창이 나온다. 올림픽 때나 월드컵 때 한국과 일본의 숙명적 대결이 벌어지다가 한국이 골을 하나 넣었을 때 집집마다 함성이 나오고 골목에는 합창이 되는 것처럼 그렇다.
반사는 기가 막힌다. 그 소리가 나오기 전에 집을 나선 아이들은 비교적 나은데 자다가 그 소리를 들었거나 옷을 입다가 그 소리를 들으면 발걸음을 떼놓는 경우는 아주 어려워진다. 옷을 입고 막 나오다가 그 소리가 나오면 열어젖혀도 문짝을 붙들고 아이는 얼굴을 TV로 향한다. 반사는 내 민 손을 당겨 본다. 부모가 없으면 인상을 그리면서 웬만하면 끌어 낼 수가 있다. 부모가 있으면 상황은 달라진다. 평소 잘 보내 주며 적극적인 부모는 밀어 내 준다. 10% 정도나 될까? 80% 정도의 부모는 중립적이다. 교회서 데리러 오니 보내 준다. 그런데 아이가 망설이면 부모로서 학교 가는 것이 아니니 딱 잘라 밀치지 않는다. 이런 집이 이어 지면 이제 시간이 없어서라도 포기를 해야 한다. 10% 정도 부모는 가지 못하게 막을 분위기이니 아예 말도 못해 보고 '다음 주일에는 일찍 나서자'라고 인삿말만 던지고 나온다. 이 인사는 다음 토요일에 심방을 가고 주일 아침에 아이를 데리고 올 때 약간의 힘을 보탠다. '너! 지난 주간에 약속을...' 이렇게 밀고 당기는 과정에 당기는 힘으로 작용한다.
(어느 날 들이 닥친 새로운 세계)
우리처럼 활동하지 않은 교회들은 이런 세계를 알 리가 없다. 우선 주일학교 오전 예배를 8시 30분에 드리는 경우가 없다. 그러니 은하철도 만화 영화를 다 보고 나서 가뿐 마음으로 교회를 가면 된다. 서부교회만 주일학교 예배가 늘 8시 30분이다. 고정이다. 마치 교리처럼 불변인 줄 알았다.
서부교회 주일학교는 70년대 말에 매주 오전에 예배당 안에 앉히는 어린 아이들의 머리 숫자가 7천명을 쉽게 넘기고 8천명 가까이 유지를 했는데 일본에서 넘어온 이 만화 영화를 TV에서 주일 오전 8시부터 30분을 방영하자 1천 명은 확실히 넘고 거의 2천 명 정도의 결석 손해를 봤을 듯하다. 이 숫자는 경험이다. 교계는 1980년대에 서부교회 주일학교를 탐방하는 유행이 돌아서 그때만 기억하지만 70년대의 발전 과정과 80년대를 겪어 본 반사로서는 80년대가 70년대보다 노력도 더 했고 더 부흥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9천명을 넘기고 1만명을 바라봐야 할 터인데 이 만화 영화 하나 때문에 출석할 학생을 7천명에 고정 시키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최근 코로나 전염병 때문에, 또 출산율에다 인권 문제, 넘치는 돈과 시간과 주말의 휴일 일정 때문에 멀리멀리 심지어 해외까지 나가는 것이 예사가 되어 이제는 서부교회 주일학교가 불과 몇 백 명으로 줄어 80년대와 비교하면 5% 정도만 출석하는 정도일 듯하다.
은하철도 999라는 원수는 우리 사회에 칼라 TV가 처음 나오고, 집집마다 보급이 되었고, 일본에서 만든 당시 최고 인기의 만화영화인데다, 시간이 주교 예배와 딱 맞아 떨어져 버렸다. 여기에다 서부교회는 거의 전부 불신 가정 아이들이 다녔고 출석 거리가 대개 30분 안팎이었다. 그리고 이런 식의 아이들이 환호할 대상이 처음이었다. 그 첫 반응은 전국적으로 광풍이 되었다. 주일학교 시간과 겹쳤다. 믿는 집과 반사 선생님의 지도를 잘 따르는 학생들은 문제가 없었지만, 대부분 불신 가정에서 나왔고 예배 시간이 늘 아침 8시 30분이며 이 시간을 맞추기 위해서는 집에서 8시까지는 무조건 출발을 해야 한다. 바로 그 시간에 전국의 아이들이 열광하는 만화 영화가 겹쳤던 것이다.
어느 정도로 위협적이었을까?
서부교회 주일학교의 부흥은 1970년대 10년을 가파르게 상승을 했는데 이 시기에는 TV 있는 가정이 적었고, 흑백 화면에다 어린이 프로그램이 변변치 않았다. 거기다 서부교회 주교 학생은 거의 빈민층이었기 때문에 주일 아침에 아이들을 데려오는데 TV는 불편을 주지 못했다. 그런데 전두환 장군의 군사정권이 들어서면서 민심을 얻기 위해 몇 가지 파격적인 조처를 했다. 경제 발전에 좀 손해가 있다 해도 국민이 좋아할 거리를 던져야 했다. 저녁 10시부터 새벽 4시까지의 야간통행금지를 해제하고, 칼라 TV를 허용하고, 씨름 축구 등 프로 스포츠를 풀었다. 정권에 위협될 요소는 확실히 제거했고 민심이 들떠 흥청 될 수 있는 각종 구경거리를 풀었다. 여기에 만화영화가 들어가면서 주교 운동의 동력을 잃었다.
몇 가지 다른 요소도 있다. 만화영화만큼 큰 장애가 된 것은 1980년부터 서부교회 주교 소식이 알려지고, 전국은 물론 부산의 주요 교회들의 방문 견학이 줄을 잇게 되자 다 같이 주일학교에 힘을 쓰게 된 것이다. 부산 전역의 아이들을 막힘없이 데려오다가 골목마다 모든 교회가 함께 힘을 쓰게 되니 부산과 한국 교회 전체의 부흥은 크게 이루었으나 막상 서부교회 예배당 안에 앉힐 학생은 손해를 본 것이다.
(말세 세상과 신앙의 관계)
역사 이후로 세상이 교회를 칠 때는 거의 다 외적 핍박이었다. 20세기를 지나 21세기로 들어오면서 교회의 적은 외부의 타 종교나 독재 국가의 탄압이 아니라 발전된 세상의 문화의 좋은 모습과 문명의 발전 속에 교회가 스스로 신앙을 내버리고 속화일로로 달려가는 자기 실패다. 지금은 거의 모든 면으로 다 그렇다고 보인다. 1980년대, 그 만화 영화는 1981년부터 1987년까지 계속되었고 이후에도 속속 다른 작품들이 주일 오전 8시를 어린이 프로그램의 황금 시간대로 활용했다. 예배 시간을 변경하지 않고는 전도 대상의 불신 가정 아이들을 데려오는 것은 너무 어렵다. 그러나 그 시간을 옮기게 되면 신앙과 교회는 또 다른 적을 만나야 한다. 그래서 시간 변경을 1981년에 잠깐 시도는 해 봤으나 원 상태로 돌렸다. 그리고 지금까지 공회의 예배 시간은 교리는 아니나 마치 교리나 되는 것처럼 주일 오전 8시 30분 주교, 10시 장년반, 오후 2시 오후 장년반, 새벽은 매일 4시 30분을 고수하고 있다.
코로나와 같은 상황이 앞으로 예고 없이 일상화 될 조짐을 보이게 되자 교회마다 신학자마다 향후 교회론을 어떻게 규정해야 할지를 고민하는 듯하다. 대부분은 그냥 환경에 따라 대충 맞춰 가며 흘러간다. 코로나보다 더 큰 범위에서 보면 이미 우리는 역사에 도저히 기대할 수 없었던 세상을 살고 있다. 그 세상은 수 없는 분야에서 교회를 세상 속으로 끌어가고 있다. 관련 글을 적어 보려고 한다. 이어 지게 되면 '답글'로 모아 보려 한다.
(전두환 정권에 대한 공회의 입장)
1980년대 들어선 군사정권은 역대 정권들처럼 공회와 극한적인 대치와 우호감을 교차했다.
전두환 대통령이 실질적으로 정권을 잡으면서 바로 조처한 것은 정권에 위협적인 교수 언론 정치 단체를 일거에 제거해 버렸다. 여기까지는 공회로서 물 건너 불구경이었고 국가의 안보와 경제 발전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세상 나라의 본질에 충실하다고 봤다.
교회란, 교회가 신세를 지는 국가의 안보가 위태롭고 경제가 어려우면 어린 교인들을 향한 복음 운동에 지장이 오기 때문에 긴장을 해야 한다. 그런데, 국가의 안보가 확실히 지켜지고 경제가 크게 발전을 하게 되면 교회는 고도로 발전한 사회 속에서 교회의 내부가 썩어 버리는 더 큰 위협을 받게 된다. 그렇다고 교회가 자기 사회를 직접 운영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피해야 하기 때문에 이래도 애가 타고 저래도 애가 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하나님께서 우리 입맛에 딱 맞게 안보와 경제 수준을 잡아 주지도 않으신다. 우리를 기르기 위해 좌로 우로 흔들기 때문이다.
전 대통령은 정권을 잡자 바로 교회의 교단 통합을 통해 고삐를 쥐려고 나섰다. 미국이 볼 때 종교 탄압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에 그냥 뒀지 싶다. 대북 안보 정책은 잘했다. 나라는 지켜야 한다. 경제 발전도 박정희 대통령의 기적을 이어 갔다. 그러나 먹고 마시고 놀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한 것은 아쉽다. 1982년에 야간 통행을 금지한 것, 1983년의 학생 교복 자율화 등은 이 나라 사회의 기강을 아주 문란하게 만들어 버렸다.
최근 말세적 현상이 겹치고 겹치는 과정에 자꾸 떠오르는 생각은 '세상이 너무 좋다 보니 교회가 세상 속에 푹 잠겨 침몰을 했다'는 생각뿐이다. 그리고 40여 년 전에 겪었던 전초전이기도 하고 훗날을 짐작할 징조가 될 일을 떠올린다. 원리는 같으니 그때의 환경과 대처했던 경험으로 오늘의 확대되고 짙어진 환경을 분석해 본다.
80년대는 '서부교회의 주일학교' 전성기였다. 실제 전성기는 70년대였으나 남들이 볼 때는 80년대였다. 주일학교는 역사적이며 세계적인 기록을 세웠고 한국의 교계는 물론 세계의 교계에 주목을 받았다. 바로 이 시기 서부교회 주일학교 반사들은 의외의 적을 만나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서부교회와 주일학교의 발전사에서 이 부분이 갖는 의미를 신학적으로 주목한 글은 아직까지 읽어 볼 수 없었다. 공회 내에 박사 학위를 받은 2세대 학자들이 즐비한데도 공회 내의 좋은 논문 제목이나 관련 글들을 거의 접하지 못해서 아쉬움은 크다.
(학자와 논문의 세계)
참고로, 신학계에 새로운 논문이 나온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신학이라는 학문이 세계사에서 워낙 오래 되었고 학자도 많고 기존 발표가 차고 넘치며 지금도 수없는 학위가 남발이 되는 상황에 어느 신학도나 신학자가 의미 있는 논문은 커녕, 의미 있는 논문거리를 잡는 것조차 힘든다고 본다. 올해 난리가 난 '코로나19'는 새로운 주제일 수 있다. 그러나 이 새로운 주제를 두고 세계의 수만 명 신학자들이 한 마디씩 다 적을 것이니 일반 학자로서 여기에 뛰어들어 봐야 자기가 알지 못한 나라의 어느 학자의 논문과 너무 비슷한 글을 적게 될 것이고, 실제 독창적으로 적었다 해도 결과적으로 비슷한 글이 검색되면서 베꼈다는 의심을 피하기도 어려울 듯하다. 공회 소속 또는 공회 출신의 학자라면 공회 내에서 논문거리를 찾아보면 대단히 유리하지 않을까? 사안이 '역사적'인 사례는 허다하다.
(은하철도 999)
주일 아침이 되면 4시 30분 새벽예배를 참석하고 6시 안팎이면 대개 30분 거리에 사는 학생들을 데려오기 위해 달린다. 1시간 조금 넘게 한 바퀴를 돌면서 집집마다 소리를 치며 아이들을 깨운다. 매 주일 아침 어김없이 계속하기 때문에 부모들이 알고 있다. 7시가 넘어가면 안내 방송 차원이 아니라 이제는 출발을 시키기 위해 방문을 열어야 하고 이불 밑에 한 가족이 함께 자는데 아이의 발을 당겨야 한다. 이런 모습을 보며 부모가 웃어 주거나 오히려 미안해서 고개를 돌려주는 아량이 있었다. 지금은 꿈도 꾸지 못할 절정의 시대였다. 나는 이런 시대를 인류사에서 가장 아름답고 귀하게 발전된 시절로 본다. 오늘은 아주 미개하여 몹쓸 세상이라고 생각한다.
아침 8시가 되면 반 아이들이 적어도 집을 나서야 한다. 멀면 먼 대로 가까우면 가까운 대로 지각하지 않거나 지각이라 하기에 애매한 시간에 예배당 안으로 들어 갈 수 있는 시간이다. 만일 여기에서 10분만 더 지체를 한다면 예배 시작 후 10분이 되면서 바쁘게 진행되는 주일학교 오전 예배가 엉성하게 된다. 아이들은 평범한 자세지만 반사는 애가 타고 피가 마른다. 한 주간 기도하고, 한 주간 마음에 품으면서 걱정되는 집은 전화를 하거나 직접 찾아가서 집집마다 살핀다. 그리고 한 주간의 절정인 주일 오전 8시 30분에 예배당 안에 아이를 앉히려면 8시에 아이들이 대문을 나서야 한다. 보통 1개 반에 1명 반사가 1명의 보조 반사를 두며 출석 30~50명에 이를 위해 심방하고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고 방문을 열어젖히며 끌어 와야 하는 학생이 100~150명이다. 그런데 8시가 되면 집집마다 '~ ~ ~ 은하 철도 999 ~ ~ ~' 라는 합창이 나온다. 올림픽 때나 월드컵 때 한국과 일본의 숙명적 대결이 벌어지다가 한국이 골을 하나 넣었을 때 집집마다 함성이 나오고 골목에는 합창이 되는 것처럼 그렇다.
반사는 기가 막힌다. 그 소리가 나오기 전에 집을 나선 아이들은 비교적 나은데 자다가 그 소리를 들었거나 옷을 입다가 그 소리를 들으면 발걸음을 떼놓는 경우는 아주 어려워진다. 옷을 입고 막 나오다가 그 소리가 나오면 열어젖혀도 문짝을 붙들고 아이는 얼굴을 TV로 향한다. 반사는 내 민 손을 당겨 본다. 부모가 없으면 인상을 그리면서 웬만하면 끌어 낼 수가 있다. 부모가 있으면 상황은 달라진다. 평소 잘 보내 주며 적극적인 부모는 밀어 내 준다. 10% 정도나 될까? 80% 정도의 부모는 중립적이다. 교회서 데리러 오니 보내 준다. 그런데 아이가 망설이면 부모로서 학교 가는 것이 아니니 딱 잘라 밀치지 않는다. 이런 집이 이어 지면 이제 시간이 없어서라도 포기를 해야 한다. 10% 정도 부모는 가지 못하게 막을 분위기이니 아예 말도 못해 보고 '다음 주일에는 일찍 나서자'라고 인삿말만 던지고 나온다. 이 인사는 다음 토요일에 심방을 가고 주일 아침에 아이를 데리고 올 때 약간의 힘을 보탠다. '너! 지난 주간에 약속을...' 이렇게 밀고 당기는 과정에 당기는 힘으로 작용한다.
(어느 날 들이 닥친 새로운 세계)
우리처럼 활동하지 않은 교회들은 이런 세계를 알 리가 없다. 우선 주일학교 오전 예배를 8시 30분에 드리는 경우가 없다. 그러니 은하철도 만화 영화를 다 보고 나서 가뿐 마음으로 교회를 가면 된다. 서부교회만 주일학교 예배가 늘 8시 30분이다. 고정이다. 마치 교리처럼 불변인 줄 알았다.
서부교회 주일학교는 70년대 말에 매주 오전에 예배당 안에 앉히는 어린 아이들의 머리 숫자가 7천명을 쉽게 넘기고 8천명 가까이 유지를 했는데 일본에서 넘어온 이 만화 영화를 TV에서 주일 오전 8시부터 30분을 방영하자 1천 명은 확실히 넘고 거의 2천 명 정도의 결석 손해를 봤을 듯하다. 이 숫자는 경험이다. 교계는 1980년대에 서부교회 주일학교를 탐방하는 유행이 돌아서 그때만 기억하지만 70년대의 발전 과정과 80년대를 겪어 본 반사로서는 80년대가 70년대보다 노력도 더 했고 더 부흥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9천명을 넘기고 1만명을 바라봐야 할 터인데 이 만화 영화 하나 때문에 출석할 학생을 7천명에 고정 시키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최근 코로나 전염병 때문에, 또 출산율에다 인권 문제, 넘치는 돈과 시간과 주말의 휴일 일정 때문에 멀리멀리 심지어 해외까지 나가는 것이 예사가 되어 이제는 서부교회 주일학교가 불과 몇 백 명으로 줄어 80년대와 비교하면 5% 정도만 출석하는 정도일 듯하다.
은하철도 999라는 원수는 우리 사회에 칼라 TV가 처음 나오고, 집집마다 보급이 되었고, 일본에서 만든 당시 최고 인기의 만화영화인데다, 시간이 주교 예배와 딱 맞아 떨어져 버렸다. 여기에다 서부교회는 거의 전부 불신 가정 아이들이 다녔고 출석 거리가 대개 30분 안팎이었다. 그리고 이런 식의 아이들이 환호할 대상이 처음이었다. 그 첫 반응은 전국적으로 광풍이 되었다. 주일학교 시간과 겹쳤다. 믿는 집과 반사 선생님의 지도를 잘 따르는 학생들은 문제가 없었지만, 대부분 불신 가정에서 나왔고 예배 시간이 늘 아침 8시 30분이며 이 시간을 맞추기 위해서는 집에서 8시까지는 무조건 출발을 해야 한다. 바로 그 시간에 전국의 아이들이 열광하는 만화 영화가 겹쳤던 것이다.
어느 정도로 위협적이었을까?
서부교회 주일학교의 부흥은 1970년대 10년을 가파르게 상승을 했는데 이 시기에는 TV 있는 가정이 적었고, 흑백 화면에다 어린이 프로그램이 변변치 않았다. 거기다 서부교회 주교 학생은 거의 빈민층이었기 때문에 주일 아침에 아이들을 데려오는데 TV는 불편을 주지 못했다. 그런데 전두환 장군의 군사정권이 들어서면서 민심을 얻기 위해 몇 가지 파격적인 조처를 했다. 경제 발전에 좀 손해가 있다 해도 국민이 좋아할 거리를 던져야 했다. 저녁 10시부터 새벽 4시까지의 야간통행금지를 해제하고, 칼라 TV를 허용하고, 씨름 축구 등 프로 스포츠를 풀었다. 정권에 위협될 요소는 확실히 제거했고 민심이 들떠 흥청 될 수 있는 각종 구경거리를 풀었다. 여기에 만화영화가 들어가면서 주교 운동의 동력을 잃었다.
몇 가지 다른 요소도 있다. 만화영화만큼 큰 장애가 된 것은 1980년부터 서부교회 주교 소식이 알려지고, 전국은 물론 부산의 주요 교회들의 방문 견학이 줄을 잇게 되자 다 같이 주일학교에 힘을 쓰게 된 것이다. 부산 전역의 아이들을 막힘없이 데려오다가 골목마다 모든 교회가 함께 힘을 쓰게 되니 부산과 한국 교회 전체의 부흥은 크게 이루었으나 막상 서부교회 예배당 안에 앉힐 학생은 손해를 본 것이다.
(말세 세상과 신앙의 관계)
역사 이후로 세상이 교회를 칠 때는 거의 다 외적 핍박이었다. 20세기를 지나 21세기로 들어오면서 교회의 적은 외부의 타 종교나 독재 국가의 탄압이 아니라 발전된 세상의 문화의 좋은 모습과 문명의 발전 속에 교회가 스스로 신앙을 내버리고 속화일로로 달려가는 자기 실패다. 지금은 거의 모든 면으로 다 그렇다고 보인다. 1980년대, 그 만화 영화는 1981년부터 1987년까지 계속되었고 이후에도 속속 다른 작품들이 주일 오전 8시를 어린이 프로그램의 황금 시간대로 활용했다. 예배 시간을 변경하지 않고는 전도 대상의 불신 가정 아이들을 데려오는 것은 너무 어렵다. 그러나 그 시간을 옮기게 되면 신앙과 교회는 또 다른 적을 만나야 한다. 그래서 시간 변경을 1981년에 잠깐 시도는 해 봤으나 원 상태로 돌렸다. 그리고 지금까지 공회의 예배 시간은 교리는 아니나 마치 교리나 되는 것처럼 주일 오전 8시 30분 주교, 10시 장년반, 오후 2시 오후 장년반, 새벽은 매일 4시 30분을 고수하고 있다.
코로나와 같은 상황이 앞으로 예고 없이 일상화 될 조짐을 보이게 되자 교회마다 신학자마다 향후 교회론을 어떻게 규정해야 할지를 고민하는 듯하다. 대부분은 그냥 환경에 따라 대충 맞춰 가며 흘러간다. 코로나보다 더 큰 범위에서 보면 이미 우리는 역사에 도저히 기대할 수 없었던 세상을 살고 있다. 그 세상은 수 없는 분야에서 교회를 세상 속으로 끌어가고 있다. 관련 글을 적어 보려고 한다. 이어 지게 되면 '답글'로 모아 보려 한다.
(전두환 정권에 대한 공회의 입장)
1980년대 들어선 군사정권은 역대 정권들처럼 공회와 극한적인 대치와 우호감을 교차했다.
전두환 대통령이 실질적으로 정권을 잡으면서 바로 조처한 것은 정권에 위협적인 교수 언론 정치 단체를 일거에 제거해 버렸다. 여기까지는 공회로서 물 건너 불구경이었고 국가의 안보와 경제 발전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세상 나라의 본질에 충실하다고 봤다.
교회란, 교회가 신세를 지는 국가의 안보가 위태롭고 경제가 어려우면 어린 교인들을 향한 복음 운동에 지장이 오기 때문에 긴장을 해야 한다. 그런데, 국가의 안보가 확실히 지켜지고 경제가 크게 발전을 하게 되면 교회는 고도로 발전한 사회 속에서 교회의 내부가 썩어 버리는 더 큰 위협을 받게 된다. 그렇다고 교회가 자기 사회를 직접 운영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피해야 하기 때문에 이래도 애가 타고 저래도 애가 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하나님께서 우리 입맛에 딱 맞게 안보와 경제 수준을 잡아 주지도 않으신다. 우리를 기르기 위해 좌로 우로 흔들기 때문이다.
전 대통령은 정권을 잡자 바로 교회의 교단 통합을 통해 고삐를 쥐려고 나섰다. 미국이 볼 때 종교 탄압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에 그냥 뒀지 싶다. 대북 안보 정책은 잘했다. 나라는 지켜야 한다. 경제 발전도 박정희 대통령의 기적을 이어 갔다. 그러나 먹고 마시고 놀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한 것은 아쉽다. 1982년에 야간 통행을 금지한 것, 1983년의 학생 교복 자율화 등은 이 나라 사회의 기강을 아주 문란하게 만들어 버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