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양원 순교 70주년 - 공회만의 자료와 재독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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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20 09:19
1950.9.28. 순교한 손양원, 애절하며 그리고 가슴을 멎게 하는 귀한 걸음
만 70년을 맞아 교계가 어지럽게 행사를 하고 수 없는 발표들이 쏟아 지고 있다.
이 곳은 손양원 가족회의 총무로, 대표로, 또는 실무자로, 손양원 가족들의 모교회며 고향이 되어 때로는 전면에 나섰다.
가족들의 의견이 다를 때는 일부 가족을 대신하지만 그럴 때도 다른 가족들에게 중요한 결정이나 소식은 전하고 있다.
애양원교회는 마치 이 곳이 개입하여 어느 날 가족과 애양원 사이를 갈라 놓았다고 절규를 하지만
가족들은 애양원과 한 번도 마음을 함께 한 적이 없다. 불가피하게 애양원을 돕거나 이름을 빌려 줬지만 근본이 아예 다르다.
애양원은 통합 계통이고 지역의 주도 세력을 끼고 있어 여론전에 능하며 이로 인해 가족들은 일제 때처럼 매장 당할 정도나
애양원 측은 이 곳이 가족을 대신하여 만나자 하면 단 한 번도 피하지 않은 적이 없다. 사실 관계는 너무 뻔하기 때문이다.
세상과 교계와 애양원 기념관 등의 각종 단체는 그들대로 '손양원'을 통해 그들의 평소 소신을 이 번 기회에 또 펼칠 것이고
손양원의 실제 걸어 간 신앙은 오늘도 공회 교회에 속한 가족들의 모교회를 통해 내막과 자료가 전해 지고 있으니
이 곳은 이 노선 연구에 포함이 된 손양원의 세계를 이 곳에 모아 두는 것이 이 노선의 오늘과 훗날에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백영희의 생애)
백 목사님의 가족들을 만나 보면 아버지를 잘 안다고들 말씀한다.
다 안다는 분이 3명, 다 알지만 표시하지 않는 분이 1명, 중요한 것은 알지만 다 알 수는 없다는 분이 3명이다.
그런데 7명이 한 자리에 앉아 자료를 공유하고 대화를 이어 나가면 다 안다고 말할 수 있다. 그 것은 그렇게 되어 있다.
문제는 7명은 나이와 생활 일정과 각자 생애의 방향과 거주 거리가 전혀 다르고 심지어 사상이 전혀 달라서 교류가 없었다.
물론 아주 잠간씩 이해 관계 때문에 함께 할 때가 있다. 그렇다 해도 모르는 것을 배우려는 자세가 없으니 일부씩만 안다.
가족들이 들으면 또 난리가 나겠지만 백영희 노선의 역사와 연구를 위해 또한 우리가 나아 가야 할 사명을 위해 한 마디 하면
잘 모른다는 3명 중 2명과는 가족처럼 나머지 5명과는 가족 이상이거나 동지나 측근이나 대리인으로 많은 세월을 함께 했다.
그리고 7명과 지나는 모든 기간에 나는 이 노선의 교훈과 역사를 위해 '백영희 생애와 내면'을 주제로 늘 면담하고 기록했다.
그래서 부친을 다 안다는 분들도 내게는 질문을 한다. 가족끼리는 자존감 때문에 묻지 않아도 내게는 묻는다. 그래서 좀 안다.
(손양원의 생애)
백 목사님을 연구하다 보니 주남선 이인재 박윤선 등을 연구해야 했고 손양원은 기본적으로 알게 되었다.
손양원을 살피는 과정에 나는 백영희 가족사와 같은 점을 너무 많이 알게 되었고 별 불편 없이 바로 핵심을 전부 추출했다.
손양원 가족들도 나이와 각자 일정과 생의 방향 그리고 거주지와 신앙 성향이 달라서 일부 대화도 하나 대부분 따로 지낸다.
1989년부터 손양원의 최측근과 직계 가족들과 한 솥밥을 먹은 가족 이상의 교인들과 동지들, 자녀와 같았던 분들을 접하며
7명의 자녀 중 순교로 가신 2명 동인 동신 분 외에 5명의 가족들은 세세히 접하거나 살필 수 있었다. 자녀를 통해서라도.
(손양원 자료와 연구)
이 나라 교인으로서 손양원의 생애는 누구나 관심을 가지고 있다. 많은 분들은 그 신앙의 본질을 살펴 닮고자 한다.
목사 신학자를 비롯하여 적지 않은 교계 전문가나 지도자들은 실제 그의 생애처럼 살아 보려고 그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다.
70년을 통해 한국교회 최고의 연구 대상이 되는 바람에 손양원의 생애에 대한 자료와 연구는 전부 다 밝혀 졌다고 할 정도다.
그런데 백영희 신앙 노선, 이 관점에서 이 위치에서 본다면 손양원에 대한 교계의 연구는 겉만 맴돌고 있다고 판단한다.
전기나 각종 연구서나 기념 활동이나 학술 발표를 살펴 봐도 그렇게 짐작을 했고 가족들을 가족처럼 만나면서 분명해 졌다.
1989년 이후 '알려 진' 손양원이 아니라 '알려 지지 않은' 손양원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고 그 내용을 여러 기회에 적어 봤다.
1950년 9월 28일의 순교, 올해가 만 70년이라 전국의 많은 단체나 교회에서 헤아릴 수 없는 행사와 발표가 줄을 잇는다.
이 곳에 손양원과 관련하여 밝혀 지지 않은 외적인 자료, 기록들을 먼저 모아 보고자 한다.
그리고 이 곳에 손양원에 관련하여 교계가 전혀 몰랐던 사실들도 안내를 해 보고자 한다.
답글로 계속 이어 나가려 한다.
만 70년을 맞아 교계가 어지럽게 행사를 하고 수 없는 발표들이 쏟아 지고 있다.
이 곳은 손양원 가족회의 총무로, 대표로, 또는 실무자로, 손양원 가족들의 모교회며 고향이 되어 때로는 전면에 나섰다.
가족들의 의견이 다를 때는 일부 가족을 대신하지만 그럴 때도 다른 가족들에게 중요한 결정이나 소식은 전하고 있다.
애양원교회는 마치 이 곳이 개입하여 어느 날 가족과 애양원 사이를 갈라 놓았다고 절규를 하지만
가족들은 애양원과 한 번도 마음을 함께 한 적이 없다. 불가피하게 애양원을 돕거나 이름을 빌려 줬지만 근본이 아예 다르다.
애양원은 통합 계통이고 지역의 주도 세력을 끼고 있어 여론전에 능하며 이로 인해 가족들은 일제 때처럼 매장 당할 정도나
애양원 측은 이 곳이 가족을 대신하여 만나자 하면 단 한 번도 피하지 않은 적이 없다. 사실 관계는 너무 뻔하기 때문이다.
세상과 교계와 애양원 기념관 등의 각종 단체는 그들대로 '손양원'을 통해 그들의 평소 소신을 이 번 기회에 또 펼칠 것이고
손양원의 실제 걸어 간 신앙은 오늘도 공회 교회에 속한 가족들의 모교회를 통해 내막과 자료가 전해 지고 있으니
이 곳은 이 노선 연구에 포함이 된 손양원의 세계를 이 곳에 모아 두는 것이 이 노선의 오늘과 훗날에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백영희의 생애)
백 목사님의 가족들을 만나 보면 아버지를 잘 안다고들 말씀한다.
다 안다는 분이 3명, 다 알지만 표시하지 않는 분이 1명, 중요한 것은 알지만 다 알 수는 없다는 분이 3명이다.
그런데 7명이 한 자리에 앉아 자료를 공유하고 대화를 이어 나가면 다 안다고 말할 수 있다. 그 것은 그렇게 되어 있다.
문제는 7명은 나이와 생활 일정과 각자 생애의 방향과 거주 거리가 전혀 다르고 심지어 사상이 전혀 달라서 교류가 없었다.
물론 아주 잠간씩 이해 관계 때문에 함께 할 때가 있다. 그렇다 해도 모르는 것을 배우려는 자세가 없으니 일부씩만 안다.
가족들이 들으면 또 난리가 나겠지만 백영희 노선의 역사와 연구를 위해 또한 우리가 나아 가야 할 사명을 위해 한 마디 하면
잘 모른다는 3명 중 2명과는 가족처럼 나머지 5명과는 가족 이상이거나 동지나 측근이나 대리인으로 많은 세월을 함께 했다.
그리고 7명과 지나는 모든 기간에 나는 이 노선의 교훈과 역사를 위해 '백영희 생애와 내면'을 주제로 늘 면담하고 기록했다.
그래서 부친을 다 안다는 분들도 내게는 질문을 한다. 가족끼리는 자존감 때문에 묻지 않아도 내게는 묻는다. 그래서 좀 안다.
(손양원의 생애)
백 목사님을 연구하다 보니 주남선 이인재 박윤선 등을 연구해야 했고 손양원은 기본적으로 알게 되었다.
손양원을 살피는 과정에 나는 백영희 가족사와 같은 점을 너무 많이 알게 되었고 별 불편 없이 바로 핵심을 전부 추출했다.
손양원 가족들도 나이와 각자 일정과 생의 방향 그리고 거주지와 신앙 성향이 달라서 일부 대화도 하나 대부분 따로 지낸다.
1989년부터 손양원의 최측근과 직계 가족들과 한 솥밥을 먹은 가족 이상의 교인들과 동지들, 자녀와 같았던 분들을 접하며
7명의 자녀 중 순교로 가신 2명 동인 동신 분 외에 5명의 가족들은 세세히 접하거나 살필 수 있었다. 자녀를 통해서라도.
(손양원 자료와 연구)
이 나라 교인으로서 손양원의 생애는 누구나 관심을 가지고 있다. 많은 분들은 그 신앙의 본질을 살펴 닮고자 한다.
목사 신학자를 비롯하여 적지 않은 교계 전문가나 지도자들은 실제 그의 생애처럼 살아 보려고 그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다.
70년을 통해 한국교회 최고의 연구 대상이 되는 바람에 손양원의 생애에 대한 자료와 연구는 전부 다 밝혀 졌다고 할 정도다.
그런데 백영희 신앙 노선, 이 관점에서 이 위치에서 본다면 손양원에 대한 교계의 연구는 겉만 맴돌고 있다고 판단한다.
전기나 각종 연구서나 기념 활동이나 학술 발표를 살펴 봐도 그렇게 짐작을 했고 가족들을 가족처럼 만나면서 분명해 졌다.
1989년 이후 '알려 진' 손양원이 아니라 '알려 지지 않은' 손양원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고 그 내용을 여러 기회에 적어 봤다.
1950년 9월 28일의 순교, 올해가 만 70년이라 전국의 많은 단체나 교회에서 헤아릴 수 없는 행사와 발표가 줄을 잇는다.
이 곳에 손양원과 관련하여 밝혀 지지 않은 외적인 자료, 기록들을 먼저 모아 보고자 한다.
그리고 이 곳에 손양원에 관련하여 교계가 전혀 몰랐던 사실들도 안내를 해 보고자 한다.
답글로 계속 이어 나가려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