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가 자초한 '세상의 교회 개입'

남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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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판에는 이 홈에 올려진 글 중에 이곳에서 따로 소개하고 싶은 글도 포함됩니다. 

교회가 자초한 '세상의 교회 개입'

담당 0 2
1. 세상의 교회 개입
집에서 먹어도 되는 식사를 외식으로 즐기는 일은 정부가 막지 않고 있다. 학교는 6월부터 열고 있다. 교회를 향해서는 초기부터 딱 찍어서 막고 나섰다. 그 때는 대형 교회를 막고 나섰고 지금은 작은 교회를 또 찍어서 막고 나서고 있다. 아무리 봐도 기독교 손 보기로 보인다. 2월부터 6월까지의 일반 뉴스 어디를 봐도 정부의 발표 어디를 봐도 이 것은 과거 기준에서 명확한 기독교 탄압이다.

2. 교회 탄압의 역사
초대 교회처럼 교회를 연단하기 위해 세상을 동원하는 성경과 역사를 통해 많다. 그러나 교회가 세상에 개입을 하다가 세상과 세상식으로 맞서 싸우는 과정에 세상에게 당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교회가 당하지 않아도 될 일을 자초하는 경우도 많다. 우선 성경에서 찾아 보면 왕하23:29에서 요시야는 신앙으로 손 꼽을 좋은 왕이지만 애굽과 앗수르의 전쟁에 나섰다가 죽었다. 구약은 육체의 이스라엘이니 국가의 전쟁은 오늘로 말하면 신앙 싸움이다. 그런데 요시야가 애굽 왕 느고를 막고 나선 것은 가지 않아도 될 일이다. 왕상22:4에서 다윗과 비교할 정도의 여호사밧조차 아합과 전쟁에 나갔다가 죽을 뻔했다. 이 전쟁은 겉 보기에 아합의 신앙 전쟁으로 보이나 내용적으로 보면 하나님께서 아합을 죽이려던 전쟁이다. 아합의 아들 요람도 아버지 아합과 같은 길을 걸었고 유다 왕 아하시야는 요람을 방문하러 갔다가 예후에게 죽는다. 가지 말아야 할 길, 병문조차 하지 말아야 할 일도 있다.

교회가 세상에게 교회 안으로 들어 와서 교회를 운영해 달라거나 개입해 달라거나 교회를 탄압해 달라고 길을 깔아 주고 문을 열어 준 사례들, 교회가 세상에게 교회를 탄압하지 말라고 할 때는 그렇게 말을 해도 되는지 먼저 자신을 살펴 보는 것이 맞다.

한국 교회는 3.1 독립운동에 대대적으로 나섰다. 선교사들은 남의 나라 문제기 때문에 교회의 사회화는 교회의 속화 타락이기 때문에 반대를 하거나 주저했다. 그런데 훗날 신사참배를 거부했던 분들이 1919년 3.1 운동에는 직접 또는 가정적으로 주력이 됐다. 한국교회가 한국의 독립운동에 교회를 사용했다면, 한국의 교회는 일본교회에게 조선 점령을 위해 일본 교회를 동원하라고 부탁하는 것과 같다. 3.1 운동에 전국 교회가 대대적으로 나서자 신사참배 때는 일제가 교회에게 한국교회는 종교단체인 척 하지만 실제로는 정치 단체니 신사참배를 신앙 문제로 보지 말라고 요구한다.

출옥성도들은 거의 다 독립운동 때 주력이었기 때문에 순수하게 신앙 문제로 신사참배를 거부하려 해도 1919년의 정치 활동 경력 때문에 그들의 신앙 순수성을 설명하는 데 무척 고생이 많았을 듯하다. 주남선 목사님은 해방 후 초대 국회의원에 추대가 되는 상황에서 딱 거절을 해 버렸다. 바로 이런 경험 때문이었을 것이다. 교회가 세상에 나서서 정치 사회 문화 활동을 하게 되면 그 다음부터 세상이 교회를 향해 세상의 일부로서 역할을 하라고 요구하게 된다. 그래서 교회는 박해를 당하는 일이 있다 해도 평소 세상과 친하게 놀면 나중에 세상을 교회 안으로 부르게 됨을 기억해야 한다. 닭장 속에 여우를 들여 놓는 일이 된다.

3. 해방 후 한국교회의 처신
자유당 시절 교회는 부통령, 고시위원장, 국회, 교육계의 핵심 요직이나 수장을 줄줄이 꿰찼다. 그렇다면 정권이 바뀐 뒤에 야당 측에게 교회가 줄줄이 당해도 할 말이 없어야 한다. 세상 정치에 무슨 불변적 진리가 있는가? 이해관계만 있다. 신학생을 군에서는 1951년부터 중위나 대위로 임명했다. 1968년 불교가 중을 군종 장교에 포함하자 이제는 중이 상급자가 되고 목사가 그 밑에서 군종 활동을 해야 하는 경우도 생겼다. 2007년 원불교도 가입을 했다. WCC를 반대하는 합동과 고신 목사가 군목이 되면 WCC를 피할 길은 없다. 그런데도 고신과 합동이 WCC를 반대할 때 무슨 논리인지 모르겠다. 만일 국방부가 오늘이라도 기독교 군종을 다 없애고 중으로 군종을 다 채운다 해도 기독교는 반대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1968년까지는 독점하지 않았던가?

같은 논리로 경목이라는 것도 있다. 군목이 만들어 지자 경찰 내에 목사를 임명했다. 경찰서 주변의 목사가 경찰관과 죄수들을 자유롭게 만나 복음을 전하게 되었다. 군목처럼 취지는 다 좋다. 문제는 경찰과 기독교의 유착이다. 유착을 넘어 경찰서 내에 목사가 여러 형태로 얽히면서 경찰이 교회 내로 영향을 미치도록 길이 열려 버렸다.

4. 계9:14, 유브라데 강이 열리면
이스라엘의 북쪽 이방인의 혹독한 공격을 막아 주는 것이 유브라데 강이다. 교회가 하나님을 버리고 사욕으로 돌아 서면 하나님은 교회를 막아 주던 세상 방어막을 없애 버린다. 그렇게 되면 세상이 교회 안으로 밀고 들어 온다. 교회를 천국을 향해 구원의 은혜 기관으로 주신 것을 돌아 보지 않고 자기 야욕의 수단으로 삼으면, 다섯째 나팔의 황충이 문제가 된다. 이 때 돌아 서지 않으면 교회 안으로 세상이 들어 온다. 자기 중심의 사욕이란 세상이 교회보다 우리의 신앙 세계보다 잘 안다. 더 익숙하다. 교회가 세상이 될 요건을 갖추면 당연히 세상이 교회 안으로 밀고 들어 온다. 세상이 강제로 밀고 들어 오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스스로 교회를 세상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교회의 초대에 의하여 세상이 당당하게 들어 온 것이다.

3.1 독립운동, 해방 후 군목 경목 제도로부터 교회는 그들의 이름이 교회라는 것을 잊고 세상의 환영을 받으며 세상 깊숙히 곳곳을 다녔다. 세상과 교회가 아주 하나가 되었다. 그렇다면 세상이 교회를 싫증 내고 절로 갈아 탄다면 교회가 뭐라 할 문제는 아닐 듯하다. 세상이 교회를 탄압한다면 세상에게 밉보여 밀려 나는 것이니 누구를 탓할 수 있을까? 이렇게 세상이 변심을 수시로 하자 교회는 세상이 좋아 하는 짓에 더 적극적으로 나섰다. 사회의 환경 운동, 시민 운동, 민주화 운동, 복지 운동, 교육 운동... 다 헤아리기도 어려울 정도다. 교회는 세상에게 교회도 세상의 일부임을 강조했다. 홍보도 했다. 태안반도 기름띠 제거 운동에 교회의 이름을 걸고 앞에 섰다. 이 때부터는 공회 교회들도 교회 차원에서 달려 갔다.

교회가 세상이 알지 못하는 예수 구원을 주장하면서 고난을 당할 때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것인데
교회가 불신 세상이 휠씬 잘 하고 있는 위생 환경 복지 교육 민주 운동을 교회의 주력 활동으로 변경을 하자
세상은 이제 교회라는 단체를 상대하기를 아예 세상의 일부인 줄 안다. 세상의 일부가 되었으니 코로나 때 식당보다 먼저 교회 문을 닫음으로 모범을 보이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 원래 교회는 건강과 교육과 복지보다, 심지어 목숨보다 예수 구원이 더 중요하다고 세상에게 각인을 시키고 교육 복지 환경 정치는 세상 너희들이 해도 충분하다고 했어야 하는데 세상이 맡을 일을 교회가 맡고 교회만이 맡을 예수 구원을 2선 3선으로 밀어 내 버리자, 코로나 사태가 되자 한국 사회는 교회에게 국민의 건강을 위해 식당보다 교회가 먼저 문을 닫으라 했다. 결과적으로 보면 교회 탄압이다. 내용적으로 보면 교회가 스스로 보건 복지 단체로 변신을 했으니 불신 국민의 건강을 위해 예배와 주일과 교회의 본질적 모든 행위를 다 철폐해도 맞다고 본다. 스스로 자취한 일이다. 누구를 탓할 것인가?
학생 2020.06.14 13:31  
지금이라도 길이 있을까요?
서기 2020.06.14 15:32  
윗 글을 적은 분의 심정으로 대신 적습니다.

한국에 교단 숫자를 보통 2~300개로 잡습니다. 공회도 보통 2~3개로 잡지만 속으로는 실제 5~6개입니다. 다른 교단은 더 많습니다. 대략 5~600개로 잡는 것이 실제일 듯합니다. 그 교단들이 나뉠 때 정말 교리가 달라서 나뉜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세상 정당이 대통령 후보를 선출하면서 분열 되는 것처럼 교회는 전국의 교회를 지도하는 '총회장' 선거 때문에 주로 분열합니다.

이런 상황이 실제 내막인데 과연 군목 경목처럼 막대한 이권 사업을 포기할 교단이 있을지요? 지금도 1명을 더 확보하려고 사활을 걸고 경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군목과 경목보다 더 큰 사업이 고신대학교의 대학병원입니다. 의과대학 교수가 몇 명이며 의과 대학 입학생을 선발하는 이런 기회를 놓치겠습니까? 교단들이 국가로부터 학교를 인가 받게 되면 그 후에 교육부의 감사권이 있고 신학교나 신학대학의 주인을 불신 세상이 불신자로 바꿀 수 있음을 알면서도 허가를 받고 혜택을 누렸습니다. 그렇게 하다가 고신대나 총신대의 이사장이 자기 교단도 아닌 사람으로 교체 되거나 심지어 불신자로 교체 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다 알면서도 혜택이 많으니 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그냥 세상 주는 모든 혜택을 벗어 버리면 좋겠는데
어떤 공무원이라도 자기 연금이나 평생 정규직이 보장 된 것을 버리지 못하고 교사도 교수도 자기 권리를 포기하면서 학생을 위해 헌신할 사람은 없는 것처럼 교회도 그렇다고 보면 될 정도입니다. 이런 국내 상황을 설명하는 이유는, 그들을 비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 글을 읽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만이라도 그렇게 되지 말자는 뜻입니다. 한 사람씩 자기를 지켜 내면 그 한 사람을 붙들고 다윗으로 새 나라를 다시 열어 주시는 앞 날이 있습니다. 그 것을 소망하는 글입니다. 물론 교회에게는 '회개'라는 것이 있으니 돌아 서면 되는데, 돌아 설 마음들이 없는 듯합니다. 이미 교회가 세상의 일개 단체가 되어 버렸는데 그 단체를 돌려 세우려면 전부를 설득을 해야 합니다. 남을 돌려 세우는 것보다 자기 하나를 잘 지켜 살려 가고, 그리고 나서 자기 식구 몇을 지켜 내고, 그리고 몇 사람을 더 끌어 옳게 세우다 보면 어느 날 자기를 다윗으로 삼고 전체를 살리는 것이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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